산업현장 난제 해결의 단초를 제공하다
빛에 의해 변형되는 물질의 멀티스케일 해석기술 개발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 조맹효 교수
21세기 과학계의 화두는 단연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한 우물만 파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요즘은 학문의 영역을 넘어 다각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다학제 융합연구가 자연스러워졌다.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 조맹효 교수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빛에 의해 대변형을 일으키는 광반응 고분자 소재의 기계적 거동 설계와 응용을 위한 멀티스케일 해석 기술은 융합연구가 일궈낸 대표적인 결실로 손꼽힌다. 기계공학에 재료공학, 역학적 시각을 더해 완성한 이 멀티스케일 해석 기술은 향후 유연로봇에 필요한 광반응 소재의 개발, 배터리나 전기회로 없이 빛을 쪼여주는 것만으로도 작동하는 재료로 활용돼 극한 환경에서의 디바이스 구현에 기여할 전망이다.
광반응 소재의 변형 메커니즘 규명
최근 과학계의 이목이 강한 빛을 쬐면 광이성질화 현상에 의해 변화되는 광반응 소재에 집중되고 있다. 광반응 소재의 기계적 변형 특성을 이용하면 유연로봇의 제조나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극한환경에서 원격조종 가능한 무선기기 재료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 조맹효 교수가 빛에 의해 대변형을 일으키는 광반응 고분자 소재의 기계적 거동 설계와 응용을 위한 멀티스케일 해석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멀티스케일 해석은 현상을 해석할 때 특정 영역은 미시적인 수준으로, 나머지 영역은 거시적 스케일로 거동을 분석하는 최신 수치기법이다.
조맹효 교수는 광반응 고분자 소재에 강한 빛을 쬐면 광이성질화 현상(물질이 빛을 흡수하면 물리적·화학적 작용으로 분자식은 동일하지만 구조가 다른 화합물로 변화하는 것)이 발생, 기계적 변형을 일으킨다는 점에 착안해 빛의 조건이나 재료가 바뀌는 변수 발생 시 광반응 소재의 변화를 계산할 수 있는 ‘멀티스케일 공식’을 만들어냈다.
“원래 저는 복합재료의 거시적 역학 거동에 대한 모델링과 해석을 주로 수행해 왔습니다. 그런데 고체의 움직임을 더욱 세밀하게 기술하려면 분자의 움직임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죠. 그때 마침 서울대에 ERC센터가 들어섰고, 2003년부터 센터 연구원으로 참여하면서 분자동력학 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후 NRL(국가지정연구실)사업, WCU 멀티스케일연구사업을 통해 분자동력학은 물론 미시역학, 양자역학, 연속체 등을 아우르며 멀티스케일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다양한 스케일을 결합하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빛에 반응하는 소재의 변형거동에 대한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됐고, 연구실에서 개발한 멀티스케일 해석 기술을 기반으로 소재를 설계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해 이번 연구를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연구팀이 개발한 광반응 변형구조체의 멀티스케일 해석 기술은 먼저 광반응 고분자 소재의 반응 부분 비율을 10-10m 스케일에서 예측하고, 예측된 반응 비율로부터 광반응 구조체의 미세구조를 10-8m 스케일에서 도출한다. 이렇게 미세구조에서 얻어진 변형을 이용해 육안으로 관찰되는 10-2m 스케일에서 실제 광반응 양상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이번 연구는 광반응 물질의 독특한 거동 메커니즘을 규명해 설계에 반영할 수 있도록 했을 뿐 아니라 광반응 고분자 멀티스케일 설계 연구의 경우 빛이라는 새로운 자극원에 기반을 두고 기계시스템 설계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과학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다학제 융합연구의 꽃을 피우다
최근 기계공학 분야에서는 학문의 영역을 파괴하는 다양한 도전과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나노, 바이오, 에너지공학 등 신생 분야에 기계공학자들이 뛰어들면서 고전적인 기계공학 분야의 외연이 급속히 확장되고, 융합연구와 협력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추세다. 조맹효 교수의 이번 연구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융합연구와 협력연구가 시너지 효과를 냈기에 가능했다.
“우리 연구실이 시뮬레이션 기술을 원천적으로 보유하고 있어 멀티스케일 역학을 광반응 소재에 적용해 그 변형 메커니즘을 예측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기계공학 전공자인 제가 설계 결과를 검증하고 광반응 소재의 변형 메커니즘을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죠. 다행히 고분자 합성 전공자와의 융합연구를 통해 합성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고분자 합성경험이 있는 재료과학 전공자, 역학에 기반을 갖고 있는 설계 전공자와 협력연구를 수행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조맹효 교수는 광반응 소재의 기계적 변형 특성을 이용해 유연로봇에 적용하거나 배터리나 전기회로 없이 움직이는 작동기기를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어 산업현장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이러한 가능성과 연구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11월에는 미래창조과학부·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이달의 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밖에 ‘축소기법을 이용한 대형시스템의 해석과 설계에 대한 활용기술’ 또한 과학계와 산업계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항공기 부품 제작의 경우 설계 단계에서 데이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계산하면 한 달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축소기법을 적용하면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 실질적으로 영향력이 큰 데이터를 추출해 대푯값을 계산하기 때문에 하루 만에 계산을 마칠 수 있다는 것. 즉, 해석시간이 100배까지도 빨라진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설계과정에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해석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미국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사, 삼성전자 등에 기술이전을 마친 상황이다.
활발한 공동연구로 완성도를 높이다
조맹효 교수 연구의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지능구조설계연구실(SS&D)은 박사후 연구원 7명, 박사과정 16명, 석사과정 7명 등 약 30명 규모의 연구인력으로 구성돼 있다. 연속체 유한요소해석설계팀, 분자동역학 시뮬레이션팀, DFT 시뮬레이션팀, 고분자 작동기 실험팀 등으로 나눠져 있으며, 각 팀들이 전문성을 갖고 마치 하나의 기업과 같이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맹효 교수가 연구실의 리더로서 연구의 방향에 대해 큰 그림을 그려주면, 이에 맞춰 각 팀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과제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나노-연속체 멀티스케일 해석 기술 개발, 축소시스템 기법 개발 및 형상최적화, 햅틱 디바이스를 이용한 실시간 변형 해석, 형상기억합금 작동기/스마트구조 해석 및 실험, CAD/CAE 통합설계에 관한 연구, 광변형구조체 멀티스케일 해석 및 실험, 리튬이온전지 멀티스케일 해석 등이다.
특히 멀티스케일 해석 기술을 비롯해 다학제 분야를 연구하는 만큼 연구실은 학문의 영역을 넘나들며 공동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 공동연구를 원활히 진행하며, 네트워크를 탄탄하게 구축해 온 결과 괄목할 만한 연구성과들을 거둘 수 있었다.
“현재도 3~4곳과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교류하고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연구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대학원생 교류 공동연구의 경우 연구원들 스스로를 자극하고 발전시키는 촉매 역할도 하고 있죠. 더불어 국가과제를 수행해 기반기술을 확보하는 연구를 주로 해 왔지만, 연구결과가 고도화에 이르면서 산업체 공동연구과제 수행을 통한 산학협력이 잘 수행되고 있다는 점 또한 우리 연구실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연구실의 가장 큰 힘은 조맹효 교수와 연구원들 간의 끈끈한 신뢰다. 조맹효 교수는 언제든 연구원들이 난관에 부딪혔을 때 찾아올 수 있도록 연구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연구원 스스로가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신뢰가 형성되고 있는데, 이러한 신뢰가 연구가 꽃 필 수 있는 탄탄한 뿌리가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조맹효 교수는 평소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연구원들에게 인내와 도전정신, 큰 숲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강조하고 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연구자 본인이 아이디어나 방법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 연구가 미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연구의 갈래를 결정하는 데는 숙고가 필요하고 신중한 분석이 뒤따라야 하지만 일단 방향이 설정되면 본인의 방향이 옳다고 믿고 끈기 있게 진행해 나가야 합니다. 물론 그 방향이 틀릴 수 있지만 한 번 설정된 방향이 확실하게 잘못된 것으로 밝혀질 때까지 끈질기게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세계적인 등반가라 해도 한 번에 열 발자국, 스무 발자국 이상을 걸어올라 갈 수는 없다.
숨이 차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올라야지만 정상에 다다를 수 있는 법이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오르기 전의 막막함을 이겨내듯 연구 성공에 대한 부담감을 극복하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원하는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조맹효 교수는 눈앞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10년 이상 지속할 수 있는 큰 그림 속에서 묵묵히 연구를 수행할 것을 강조했다.
산업현장 공학적 난제 해결 도울 것
조맹효 교수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육자로서 멀티스케일 역학, 전산나노역학 등 대학원 교과목을 개발하는 것은 물론 후학 양성을 위해 쉼 없이 열정을 쏟아 왔다.
“멀티스케일, 멀티피직스 해석과 설계 분야는 다학제 분야이기 때문에 여러 전문 분야 간의 융합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학문과 학문의 경계에서 이를 이어주는 연구를 하려면 두 분야 또는 세 분야 전공 영역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죠. 이러한 경계 분야의 연구를 위해서는 계속해서 연계된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 연계 분야의 내용을 얼마나, 어디까지 알아야 할까요? 아마 자신의 지적 호기심이 충족될 만큼일 텐데요. 저는 학생들이 지적 호기심을 갖고 여러 분야를 탐험해 가는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후학 양성 외에도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금요일에 과학터치 등 대중을 위한 강연에도 참여하며 과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광반응변형구조체 창의연구단의 리더인 만큼 강연 내용은 주로 빛에 변형되는 구조체를 주제로 한다.
“초·중·고 학생들의 과학, 공학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진로방향을 가이드 하는 데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대중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지, 참석자들의 이해도와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 깨달아 간다는 점에서 제게도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과학자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한 조언도 덧붙였다. 과학기술자는 수리적 능력과 과학적 사고력을 갖추고 이를 부단히 갈고 닦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보는 직관력과 인문학적 감성 등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과학기술에서의 진보는 분석력과 종합력의 조화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학생들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독서와 주위의 환경, 특히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여러 가지 감성을 자연스럽게 키워나가는 것이 창의력과 종합력을 키우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조맹효 교수는 앞으로 ‘멀티스케일 역학’ 연구를 더욱 발전시켜 산업체 현장에서 공학적 난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데이터-주도 멀티스케일 시뮬레이션 기법’을 정립하고 ‘데이터 주도형 전산역학’ 연구의 초석을 다질 계획이다.
어느 분야나 그렇지만 기존의 것만을 유지하거나 고집해서는 결국 그 이상이 되기 어렵다. 과학도 마찬가지. 기존 생각의 틀을 벗어난 창의적 사고와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 위한 소신과 용기가 있어야만 과학은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조맹효 교수의 끊임없는 연구와 도전정신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기존 연구에 멈추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접근방법은 없는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땀 흘려 왔기 때문이다. 언제나 일희일비하지 않는 자세로 조용하지만 큰 울림을 전하고 있는 조맹효 교수, 대한민국 과학계를 빛낼 그의 찬란한 행보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7년 3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