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연구를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다
고려대학교 생체응용 나노결정 융합연구단 김영근 교수
Q. 연구단을 설립하시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생체응용 나노결정 융합연구단’은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진행하는 ‘미래유망 융합기술 파이오니아 사업’에 선정되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본 사업은 교육과학기술부의 기초연구과가 진행하던 우수공학연구센터(ERC: Engineering Research Center)나 과학연구센터(SRC: Science Research Center)와는 다르게 융합기술팀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융합기술을 바탕으로 연구·개발하여 원천기술로 국제특허 취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장기간 선진국의 문턱에 숨 고르기를 하던 대한민국을 기술·경제 강국으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미래유망 융합기술 파이오니아 사업’에는 국내 유수의 대학교는 물론 정부출연연구기관 등 10개의 사업단이 선정되어 연구가 진행 중이며, 지난해에는 네 곳이 추가로 선정되어 총 14개의 연구단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생체응용 나노결정 융합연구단’은 나노기술과 바이오기술의 융합을 통해 복합기능을 수행하는 ‘바이오메디컬 나노결정’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해당 기술을 개발하려면 신소재와 의학은 물론, 화학, 물리 등이 두루 적용되어야 하는데 각 분야의 유능한 인재들이 하나 되어 훌륭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연구인력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A. 현재 진행 중인 과제는 세 가지의 세부과제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제1세부팀은 소재기술을 개발하고 있고, 제2세부팀은 서울대 의대가 주관하여 혁신적인 의학기술개발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제3세부팀에서는 한국화학연구원이 주관하여 나노측정 기반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본 연구단은 책임연구원급 박사 14명이 소속되어 있는데, 함께하는 연구인력을 모두 더한다면 상당한 규모가 됩니다. 참여하는 기관은 고려대학교,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등이며, KISTI와 University of Idaho 에서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Q. 현재 연구단에서는 어떤 연구를 진행 중인가요?
A. 본 연구단에서는 생체에 응용될 수 있는 나노결정, 그중에서도 복합기능을 갖는 나노결정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복합기능을 갖는 나노결정의 매력에 대해 세포치료의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기존의 단일기능을 갖는 나노결정을 이용할 경우 바이오 물질의 분리와 분석이 각기 다른 장비와 다른 프로세스에 의해 이뤄지지만, 복합기능을 가진 나노결정으로 세포치료를 한다면 기능복합화를 통해서 한 대의 기기 내에서 생체분자의 분리와 분석이 동시에 가능하게 합니다. 결국, 치료의 효율을 높이고 시간과 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효과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합기능을 갖는 나노결정은 세포치료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영상진단과 바이오센서, 질병예방을 위한 방역은 물론 환경감시를 위한 센서, 환경복원을 위한 촉매 등 바이오메디컬 이외의 부분까지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 연구단에서는 1년이 넘는 치밀한 기획과 분석 끝에 비교적 시장잠재력과 성장가능성이 큰 분리·분석 치료분야로 적용하여 연구를 심화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대표적 연구는 면역세포와 관련된 연구입니다. 항원전달세포중 하나인 수지상세포(dendritic cell)와 자성과 광학특성을 동시에 갖는 복합기능 나노결정을 결합하여 MRI 진단뿐아니라 광학특성을 이용한 진단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같은 나노물질 표면에 펩타이드를 붙여서 항원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수지상세포에 넣는다면 T셀(T-cells)을 자극하게 되는데, 궁극적으로 세포치료기능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실험은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며 머지않아 발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Q. 전 세계 ‘복합기능 바이오메디컬 나노결정’에 대한 연구상황은 어떠하며, 대한민국의 연구성과는 어느 정도 인가요?
A. 단일기능을 갖는 나노결정이 아닌 복합기능을 갖는 나노결정을 개발하는 곳은 그 숫자가 매우 적은데, 사실 해당 분야의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태동하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각국에서 발표되는 논문이나 특허를 살펴보더라도 누가 우월하게 앞서간다는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emerging technology이기 때문에 아직은 춘추전국시대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에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기술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계획을 성취하여 반드시 멋진 성과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고려대학교 생체응용 나노결정 융합연구단만의 특징이나 강점이 있다면
A. 우선 파이오니아 사업 자체가 특징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연구지원 사업은 모두 성공적인 결과를 이뤄내야만 완성되는 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파이오니아사업은 연구의 성실실패를 용인하는 사업입니다. 예를 들어 연구과정에서 타겟이 바뀌었거나 환경이 변하여 목표 시장이 좁아짐에 따라 더 이상의 연구가 진행되기 어려울 때 중지하더라도 그러한 오점을 관용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파이오니아 사업에 투입된 연구자들은 산업의 동향과 기술의 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이러한 부분은 학계에서 연구선진화 사례로 꼽히는 점입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탄탄한 기획단계가 선행되었음을 꼽을 수 있는데, 짜임새 있는 기획과정을 인정받아 부총리 간담회에서 발표하기도 했으며 우수한 기획사례로 뽑히는 영광을 안기도 했습니다. 탄탄한 기획은 성과적인 측면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보다 임팩트있는 주제를 선택하여 효율적인 연구가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물론 연구자로서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이미 연구가 진행되었으니 그만큼 빠른 결실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올해 1월에는 신종인플루엔자나 HIV 등 바이러스의 감염 여부를 수 시간 내에 확인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그 결과가 Nature Materials에 소개되는 영애를 안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우수연구성과는 출원된 특허 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지난해만 해도 국내에서 6건, 해외에서 4건이 출원되는 우수한 결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해당 결과는 기존에 계획한 목표를 이미 초과달성한 것으로 현 추세라면 계획한 연구가 끝날 시점에는 우수한 연구발표는 물론 국가 경제를 부흥시킬 원천기술 개발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밖에 본 연구단의 특징으로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인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 매년 논문분석이나 특허분석을 통해 본 연구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바로잡게 하고 있고, 외국기관도 함께 관여되어 국제공동연구를 진행하는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Q. 학제간 융합연구를 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점은 없으신지
A. 국내에서 융합연구를 하는 연구자 대부분이 느끼는 부분일 텐데, 융합연구를 시작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함께 연구하는 다른 학문의 연구자들과 의사소통을 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연구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모르는 것은 어쩌면 국내의 교육환경에서는 익숙한 현상입니다. 학부시절부터 석사에 이르기까지 한우물만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다른 학문의 언어를 접할 기회가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대한민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인데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복합적인 학문이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학부 때부터 박사학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접하기 때문에 언어는 물론 융합학문의 응용까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처음에는 함께 연구하는 연구자들과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방법도 달라서 원활한 연구를 진행하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은 자주 만나서 이야기해야 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잦은 논의는 물론, 특정 주제에 대한 세미나를 통해 격차를 줄이려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어느덧 연구자들 간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대학원생들까지 연구결과에 대한 견해를 주고받으며 좋은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이제는 재료공학을 전공한 학생이 직접 세포배양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학제간 융합이 진행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놀라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혁신적인 기획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이를 와해적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 하는데 이러한 점이 융합학문의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융합연구를 꿈꾸는 후학들에게 지침이 될 말씀이 있다면
A. 몇년 전부터 학부과정에서 ‘융합기술 및 신소재응용’이라는 타이틀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융합기술이라는 단어조차도 학생들에게 생소했을 텐데 이제는 학계에 널리 사용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강의를 통해 우리나라의 융합기술과 정책은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일본의 사정을 살펴보고 있으며, ‘생체응용 나노결정 융합연구단’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상당히 깊은 관심을 보이며 진로결정에 참고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이처럼 학부 때부터 융합학문에 대해 관심을 두고 정책, 기술동향, 전략을 배경지식으로 학문을 닦아 성장한다면 어떤 분야에서 연구하더라도 훌륭한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융합연구에 관심 있는 학생뿐 아니라 모든 학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항상 강의할 때도 언급하는 부분인데, ‘다른 사람은 무엇을 하는지 관찰하라.’라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연구자라면 자신의 연구에 집중하는 것은 물론 주변의 기술과 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자신의 전공이 무엇이든, 진행 중인 연구가 어떤 분야이건 간에 줄기세포분야에도 관심을 두어야 하고 스마트폰과 앱스토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술의 흐름과 신흥기술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할 때에도 더욱 폭넓은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과거에는 한우물만 파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한우물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옆 우물도 관심을 둬야 하고 필요하다면 옆 우물까지 함께 팔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각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이러한 부분을 충족시키기 위해 외부전문가를 초청하여 세미나를 열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이러한 세미나에 참여하여 다른 연구자들의 흐름도 살펴보고 사고를 확장하는 노력을 하길 바랍니다. 어쩌면 이러한 것이 전공책만 달달 외는 것보다 더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Q.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오늘날의 이공계 기피현상은 대한민국의 산업구조가 중화학에서 전자, IT기반 산업으로 변화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들을 대학과 정부, 기업이 모두 탄력적으로 대처하지 못해서 발생하게 된 것으로 어느 사람만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어제오늘만의 문제가 아닌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학생들의 사고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연구실에서는 매년 2월과 8월에 일본 동북대학교 전자공학과와 2박3일간 진행되는 워크샵을 주관하고 있으며, 학생을 포함하여 모든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워크샵을 진행하면서 각 연구소에서 진행되는 기술적인 이야기도 하지만 그 외에 시간에는 학생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화를 합니다. 그러다 보면 학생들의 진로를 묻게 되는데 일본학생 대부분은 중소기업으로 진로를 계획합니다. 상당수의 한국 학생들이 대기업이나 대형 연구소를 준비하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라 조금 놀랐는데, 일본의 환경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도시가 아닌 지역에서 중소기업의 사원으로 일하려는 이유를 묻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능력을 발휘하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답했습니다. 대기업에 취직하면 작은 부속품의 역할밖에 못 하지만 중소기업에선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 시마즈社에서 근무하는 ‘다나까 고이치’같은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꿈이 현실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중소기업으로의 진로가 자연스러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국가적인 중소기업 육성정책 때문입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중소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대기업과의 임금차이도 상당 부분 해결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인데, 대한민국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중소기업을 육성하여 유능한 학생들이 가고 싶은 매력적인 곳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국내에 소프트웨어 인력이 점차 외국으로 진출하여 국내에 남은 인력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기교육을 통해 어렸을 때부터 외국으로 나가서 공부하고, 학창시절에도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학생활을 하면서 상당수가 현지에서 취직하여 국내로 돌아오지 않는 현상이 지속하다 보니 브레인드레인(brain drain) 현상이 심화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법학, 의학에 지원하는 학생까지 제외하고 나면 이공계 인력 부족현상은 더욱 장기화할 것이며 쉽게 해결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어느 때처럼 애국심에만 호소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대학, 정부, 기업이 모두 마음을 모아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Q. 연구단의 2010년 한 해 계획이 궁금합니다.
A. 본 연구단의 연구는 2008년부터 시작되어 3년간 1차 연구가 마무리되고 이후에 3년간 2차 연구가 진행되는 방식입니다. 올해는 1단계 연구가 끝나는 시점으로 그간의 성과들을 하나씩 돌아보고 융합기술주제가 될 대표적인 연구를 선정하여 2단계에서는 보다 고도화된 원천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집중할 것입니다. 물론 산업과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인지라 계획대로 연구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의 큰 틀은 유지하며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서 목표를 반드시 이뤄낼 것입니다.
또한, 매년 외부전문가를 통해 자체적인 분석을 통한 컨설팅과 피드백이 이뤄지는데 특히 올해는 1단계 연구를 돌아보며 연구에 필요한 신진인력은 충분히 충원하고 성과가 미진한 연구자와 교체될 것입니다. 이처럼 계획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0년 5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