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밀리미터파 연구의 중심
동국대학교 밀리미터파 연구센터 이진구 교수
Q. 연구센터를 설립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A.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무선통신의 수요는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주파수대역도 점차 포화상태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에 주파수대역의 확장은 필수불가결한 인류의 과제가 되었고 각국의 연구자들은 주파수 확장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국내의 연구상황은 선진국 수준에 따라가기도 어려운 열악한 소규모의 연구만이 진행될 뿐이었습니다. 밀리미터파를 이용한 무선통신이 일반화될 미래를 생각하면 이대로 가다가는 핵심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기술 속국으로 전락할 것이 분명했기에 연구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그리하여 밀리미터파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한 연구자들과 마음을 모으기 시작했고 1999년 당시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의 ERC(Engineering Research Center)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9년간 연구지원을 약속받으며 연구센터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밀리미터파에 대한 연구는 계속됐지만, 특수한 연구장비를 기반으로 하는 연구인 밀리미터파 연구의 특성상 정부의 지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연구를 하게 된 것입니다.
본 센터를 통해서 국내의 우수한 연구인력을 발굴·육성하고 산업에 필요한 기술을 연구·개발하여 세계무대에서 인정받는 훌륭한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것에도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Q.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계신가요?
A. 우선 밀리미터파를 이용한 시스템을 개발하려면 반도체 부품과 모듈, 시스템과 밀리미터파 통신 등 다양한 전문분야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반도체 부품 쪽에서는 밀리미터파 대역의 HEMT(High Electron Mobility Transistor)소자를 개발하였고, MEMS(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s) 제작기술을 개발하였습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밀리미터파 대역 무선통신용 전력증폭기, 저잡음 증폭기, 믹서 등과 같은 집적회로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또한 일본CRL(통신총합연구소)과 국제협력 연구를 통하여 본 센터에서 개발한 반도체칩을 적용한 60GHz 무선통신 시스템을 개발하였고 특히 국내 최초로 저잡음 증폭기와 믹서를 하나의 칩에 제작하여 94GHz 밀리미터파 센서모듈을 제작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밀리미터파 이미지 센서에 대한 연구개발로 ‘수동 밀리미터파 영상화 시스템’과 관련한 특허를 등록하였는데, 이 기술은 ‘2009 대한민국 발명특허 대전’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Q. 선진국의 밀리미터파 연구상황은 어떠한가요?
A. 전 세계가 밀리미터파 연구에 집중하는 상황인데, 특히 미국의 핵심 국방업체 중 하나인 ‘Nothrop Grumman’에서는 밀리미터파 반도체 소자 연구개발에 독보적인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상품화된 시스템으로는 밀리미터파를 이용한 보안 검색 시스템이 있는데, 최근 테러의 공포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공항 검색대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군수용으로 개발한 최첨단 밀리미터파 응용제품이 실전에 배치되는 등 그 입지가 점차 넓어지는 상황입니다. 본 센터에서도 군수용을 목적으로 한 밀리미터파 센서모듈을 개발하여 우수한 성능의 센서모듈을 제작한 바 있습니다.
비록 대한민국의 밀리미터파 연구기술이 기술선진국보다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속적인 국가의 지원과 연구센터의 활발한 연구활동을 통해 세계수준의 밀리미터파 선진국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Q. 동국대학교 밀리미터파 연구센터만의 특징이 있다면
A. 밀리미터파를 연구하려면 반드시 기반시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국내에 있는 다른 소규모의 연구집단에서 기반시설이 확보된 본 연구센터로 다양한 요청을 하곤 합니다. 이에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연구개발한 성과도 교류하고 인프라도 구축하는 등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또한, 연구를 활성화하고 연구자들 간 정보교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밀리미터파 국제학술대회인 ‘Global Symposium on Millimeter Waves’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한국에서 열리는데 각국의 연구자들이 한데 모여 최신 연구정보를 주고받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Q. 정부나 기업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나요?
A. 정부나 기업의 밀리미터파 연구 자체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그 지원은 아직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대부분 공학기술이 그러하지만 특히 밀리미터파와 관련된 반도체 부품 소재 및 시스템 기술은 하루아침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수익구조를 보고 기술에 투자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 같은 분야에 투자를 결정하기란 쉬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에 정부에서는 장기적인 지원을 계획하여 기술발전에 힘을 실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국가의 장기적인 지원을 통하여 연구기반과 기술이 쌓이게 되면 기업에서는 기술을 응용하여 이뤄낼 수 있는 제품을 고민해야 합니다. 정부와 기업, 연구센터가 한마음으로 움직였을 때 세계기술을 선도하는 기술강국의 대한민국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Q. 연구센터를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
A. 그간 연구하면서 매 순간이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서도 이 연구센터가 ERC에 선정될 수 있도록 준비하던 기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1998년 9월부터 거의 매일 밤샘작업을 했는데 새벽 3~4시에 마치고 집에 갔다가 다음날 아침 9시에 다시 연구하러 나오는 생활을 수개월간 반복했습니다. 그때 함께 힘든 시간을 보냈던 학생들과의 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함께했던 연구원 중에는 지금까지 연구센터에서 함께 손발을 맞추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지난해에는 연구자로서 매우 명예로운 일도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미국 전기전자공학회인 IEEE(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에 Fellow(석학회원)로 선임되는 영광을 얻은 것입니다. IEEE는 미국에 본부를 둔 전기·전자·컴퓨터·정보 및 통신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대규모의 학회로서, 자신의 전공 관련 분야에서 특이하게 뛰어난 소수 학자에게만 매년 IEEE Fellow 자격을 부여한다고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갈륨비소화합물 반도체, 마이크로파 및 밀리미터파 집적회로에 관한 연구결과를 인정받아 IEEE Fellow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Q. 연구의 어려움을 겪을 때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A. 연구자로서 겪을 수 있는 고난은 저마다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연구가 잘 풀리지 않거나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 닥치면 저는 학생들과 브레인스토밍의 시간을 가지며 어려움을 이겨내곤 합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난상토론을 하고 난 내용을 바탕으로 많은 시간 고민하며 실험의 방향을 결정하거나 실험의 내용을 수정합니다. 깊은 고민에 빠지며 연구에 더욱 매진할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힘을 얻곤 합니다.
학생들도 각자 힘든 상황이 찾아오면 저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곤 하는데, 항상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진심으로 토론하며 함께 방향을 찾고 있습니다.
Q. 함께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강조하는 원칙이 있다면
A. 연구센터는 학생들과 국내·외 연구교수들, 직원들을 포함하여 모두 30여 명의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에게 자주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연구센터에 오랫동안 있지 마라.’입니다. 다시 말해 빨리 다른 연구환경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특히 연구교수들에게는 “이곳이 당신의 영원한 직장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다소 매정하게 이야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마다 생각하는 꿈인 대학교수나, 기업의 연구원이 되려면 반드시 훌륭한 연구성과가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현재의 연구센터에서 훌륭한 논문을 많이 발표하여 업적을 쌓은 다음 각자가 원하는 분야로 진출해서 꿈을 하루빨리 현실화시키라는 것입니다. 처음 들으면 오해를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알고 보면 연구자로서 발전하기 위해 해주는 조언입니다.
이 이야기는 외국에서 온 연구자들에게도 어김없이 해주곤 하는데, 정시 출·퇴근과 주5일근무가 생활화되어 있는 외국인들에게 늦은 밤까지 진행되는 연구소의 생활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습니다. 특히 주말과 공휴일도 없이 연구에 몰두하는 것을 본 외국인 연구자들은 고개를 저으며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한국에서의 공부기간을 줄일 수 있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어 미래의 성공적인 결과를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외국인들도 거부감 없이 연구소의 생활 방식을 따르는 상황입니다.
Q. 지난해 경제위기에 어려움을 겪으시지는 않았는지요?
A. 아마 저를 포함한 많은 연구자가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물론 정부의 지원을 통해 연구센터가 운영되는지라 절체절명의 큰 위기가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연구에 필요한 재료를 구입하는데 있어서 불안정한 환율은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달러가 상승해버려서 기존에 예상했던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지출해야만 연구가 진행될 수 있었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재료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국내의 다른 연구자들도 저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Q.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A. 바쁜 연구활동으로 관리를 위한 시간을 내기 어렵지만, 종종 시간이 날 경우 운동을 즐기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꾸준하게 한 검도가 7단인데, 비록 젊었을 때처럼 격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건강을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 짬을 이용하여 운동하고 있습니다.
Q.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아무래도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는 교수이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 많은 체감을 하곤 합니다. 물론 과거보다 점차 상황이 나아지는 편이긴 하지만 학생들이 지금처럼 이공계를 꺼리게 된 것에는 교수들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문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또한 함께 연구를 이뤄내는 연구자로서 중·장기적으로 이공계가 어떻게 흘러갈 것이고 발전할 것인지 전망하고 비전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학문을 시작하는 학생들에게도 어려운 용어로 가르치다 보니 학생들에게 호기심을 주지 못하게 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도 이해가 쉽도록 설명해주는 것이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교수들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또한, 가정의 부모님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청소년기부터 혹은 유년시절부터 자녀의 진로를 부모가 결정하는 것은 물론 집에서부터 왕자님, 공주님으로 양육했기 때문에 이공계와 같은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학생들은 집에 있을 때의 습관에 젖어서 교우들과 함께 동화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대한민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을 원동력은 다름 아닌 과학기술이 될 것입니다. 학생들은 그 주인공이 나 자신이 될 것이라는 꿈을 갖고 이공계에 투신해야 할 것이며 매 순간 그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Q. 밀리미터파 연구를 꿈꾸는 후학들에게 지침이 될 말씀이 있다면
A. 젊은 학생들은 아직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가 기회인 줄도 모르고 지나치는 일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회를 잡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준비된 자들에게는 기회가 천천히 지나가게 되고 자신이 원하는 기회를 선택해서 잡을 수 있게 됩니다. 각자 준비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더 잘 알 것이기에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도록 합시다.
또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많은 도전을 하길 바랍니다. 이는 학생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연구센터에서도 학생들이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학생이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 진출해서까지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만 학생은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끝으로 연구자는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과학이라는 것이 데이터에 의해서 객관적으로 규명되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사실의 학문이기 때문에 작은 거짓말도 언젠가는 밝혀지게 됩니다. 항상 진실한 자세로 연구하길 바랍니다.
Q. 2010년 연구실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A. 그간 함께 손발을 맞추고 호흡했던 연구팀과 함께 장기적인 밀리미터파 연구를 지속하려면 또 다른 프로젝트를 받아야만 합니다. 이에 지금 결실을 준비 중인 연구의 진행이 한창인데 이 연구가 원활하게 잘 마무리되어 좋은 연구내용으로 거듭나는 것이 올해의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큰 문제 없이 잘 진행 중이며 머지않아 좋은 소식을 기대합니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0년 4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