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물질을 통해 암을 예방한다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정원윤 교수
Q. ‘천연물로부터 암 예방, 항암효능물질 개발’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A. 서울대학교 약대를 졸업한 이후에 학문의 길을 계속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특히 생화학분야에 흥미를 느꼈고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지도교수님을 결정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가장 열정적이고 진취적일 것이라 생각되는 교수님을 찾아갔고 그 교수님과 함께 천연물관련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석사과정은 토양미생물이 생성하는 항생물질을 분리해서 구조를 밝히는 일을 했고, 박사과정을 보낼 때는 식물추출물에서 염증을 억제하는 유효성분을 찾아서 구조를 밝히는 연구를 했습니다. 항암물질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서영준 교수님과 박광균 교수님을 만나면서 부터였습니다. 두 분은 암 발생 기전과 암 예방 물질에 대한 연구를 하고 계셨고 저도 두 분을 쫓아 연구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천연물을 통해서 암 발생율도 낮추고 암환자들의 치료에도 도움이 되는 것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Q. 구체적인 연구의 내용이 어떻게 되나요
A. 우리가 쉽게 접하는 과일, 야채, 약초 추출물을 통해 이들에 함유된 약효성분의 암 예방 및 항암 효능을 밝히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암 예방이란 암이 생기는 것을 막는 것은 물론 이미 암이 생겼더라도 더 진행되지 않도록 하며 또한 완전히 없어지는 것을 모두 포함합니다.
인도의 경우 구강암의 발생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매우 높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씹는담배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암 예방물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카레를 많이 먹기 때문에 전체적인 암 발생률은 다른 국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이는 토마토소스가 포함된 스파게티를 많이 먹는 이탈리아의 국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식품에 포함되어있는 암 예방성분을 찾아서 개발하면 암을 예방할 수 있고 암의 발생률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또한 이미 암에 걸린 환자들이라도 항암효과를 통해서 사망률을 낮추게 할 수 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암세포를 독한 항암치료로 제거 할 것이 아니라 암세포가 더 이상 전이 되지 않도록 하고 나아가 인간의 수명이 다 할 때까지 발전하지 않게 하는 방법도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하며 연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상연구를 하시는 분들과 이야기 해보면 예방 쪽보다는 치료 쪽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암이 이미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은 비교적 단기간에 효과를 확인할 수 있지만, 예방효과를 확인하는 것은 대상자의 평생을 추적해서 예방의 원인이 운동을 통한 것인지 천연물 식품과 관련한 것인지 정확한 원인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이런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인력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암, 염증, 뼈 질환을 연결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암 발생과정과 염증반응이 밀접한 관련이 있고 유방암, 전립선암, 폐암의 경우 암세포가 뼈로 전이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약물도 염증을 억제시키는 약물이나 골다공증에 사용되는 약물들이 암 발생을 억제하거나 암세포에 의해 뼈가 파괴되는 것을 억제하는데 많이 사용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항암효능만 조사하는 것이 아니고 항암효능이 있는 천연물에 대해서는 항산화효능, 염증억제효능, 뼈 손상 억제 효능들을 다양한 세포와 동물모델을 이용해서 조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은 2006년 학술진흥재단의 중점연구소로 지정되었으며 그 안에 구강종양연구소가 있습니다. 주로 구강암 쪽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일반적인 암은 눈으로 과정을 관찰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구강암은 직접적인 확인이 가능한 이점이 있습니다. 암으로 발전하기 이전에 전암 병소과정이 있는데 이후에 암이 되기까지 눈으로 그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때문에 암을 연구하고 예방하는데 좋은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천연물질을 통해서 구강암세포에 대한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고, 더불어 낮은 독성과 높은 효과를 적용해 볼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Q. 세계적으로 암 예방 연구 상황은 어떠한가요
A. 논문이 발표되는 것을 살펴보면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방향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국립암연구소(NCI: National Cancer Institute)를 설립하여 다양한 천연물에 대해서 암 예방 실험과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간암발생률이 높은 중국의 특정지역을 대상으로 엽록소의 유도체인 클로로필린(chlorophyllin)을 통해서 간암발생이 낮아지는지 확인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녹차성분의 암 예방 효과에 대해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탁솔(Taxol)과 같은 우수한 항암물질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천연물에서 효능이 뛰어난 물질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기존 항암제에 비해서 낮은 독성과 꾸준한 섭취 및 투여를 통한 질병 예방·극복을 생각한다면 매우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암환자 치료시 항암제의 독성으로 인한 건강 악화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좋은 대안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연구진들에 의해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그에 따른 좋은 논문들도 많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천연물질에 대한 관심도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실용화나 임상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단계를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정부나 기업에서도 관심을 갖고 지원하고 있나요
A. 암 예방의 연구를 위한 직접적인 지원은 없는 상황이며 연구과제도 거의 없는 상황이지만 항암 쪽의 신약개발방향으로 연구과제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임상연구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미 암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기에도 인력과 시간, 경비가 부족한데 예방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다고 합니다. 기업 쪽에서도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가시적인 결과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암 예방분야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또한 암을 예방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암 예방의 중요성과 천연물을 통한 접근의 유익함을 알리기 위해서 ‘암 예방학회’의 교수님들과 함께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사망률을 살펴보면 교통사고와 같은 갑작스런 사고를 제외한 가장 큰 원인이 암이라고 합니다. 많은 비용과 시간, 인력이 소요되지만 국민들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암 예방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기업이나 대학보다는 정부에서 주도하여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연구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A. 치과대학에 처음 와서 연구를 시작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일반 자연대학이나 약학대학, 의과대학보다 연구 환경이 열악한 상황이었고 함께 연구할 학생들을 찾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치과대학생들은 더 심도 있는 학문을 닦기보다는 치과병원을 개업하는 경우가 많아서 연구를 위한 인력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더불어 치과대학이 기초연구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저희가 하는 연구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지원하는 학생들이 적은편입니다. 그나마 몇 년 전부터 시작된 BK21사업 덕분에 학생들의 연구 환경이 개선됨에 따라 함께 연구할 학생을 뽑는데 좋은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학회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하다보면 치과대학에서 천연물과 관련한 암 연구를 한다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치과대학에서는 치아에 대한 연구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외국의 대학을 살펴보면 암은 물론이고 심지어 전립선암을 연구하는 곳도 있습니다. 지금은 많은 교수님과 연구진의 노력으로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Q. 연구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A. 논문이 발표될 때마다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고 더 나은 논문을 쓸 것을 다짐하곤 합니다. 특히 지난해 학술진흥재단에 우수성과 50선, 교육과학기술부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되었고 연송치의학 학술상을 받았습니다. 논문이 처음 발표된 시기에 뜻밖의 많은 성과를 거두어서 걱정이 되는 마음도 있었지만 함께 늦은 시각까지 연구에 매진한 학생들과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서 더 나은 한해를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Q. 연구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씀이나 원칙이 있나요
A. 꿈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목표가 높은 사람일수록, 또한 꿈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남들보다 많은 노력과 열정을 쏟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성취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꾸준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연구원들을 보면 서로가 일당백의 역할을 하기위해 노력합니다. 저희 연구소가 아직까지 큰 연구과제보다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연구를 여러 가지 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한명의 학생이 하나의 연구과제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물론 자신의 학위논문 실험도 해야 하기 때문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힘든 부분도 있겠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연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능력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학생들 스스로가 실험을 진행하는 방향을 제안하며 견해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실험에서 나온 데이터를 보며 함께 토론 하는 데 있어서 남다른 열정을 느끼게 됩니다. 열심히 하는 학생은 하루에 몇 번씩 찾아와서 토론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점차 연구에 대한 열정과 실력을 겸비한 연구자로 거듭나는 모습을 발견하며 뿌듯함을 느낍니다.
토론할 때도 자신이 맡은 분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라고 이야기하는데 항상 해당분야에서는 실험실의 다른 연구자보다 많은 지식을 쌓게 합니다. 심지어는 저보다 더 많은 논문을 읽으며 학문의 깊이를 깊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에게 기회가 왔을 때 부족한 실력으로 기회를 놓칠 것이 아니라 기회를 잡고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게 합니다.
Q. 대한민국에서 암 예방 연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지침이 될 말씀이 있다면
A. 전반적인 이공계 학생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 혹은 앞으로 자신이 하려는 일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맞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석사과정을 위해서 찾아오는 학생들도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6개월 정도 실험실에서 함께 일해보고 그래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때 함께하자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정말 열정을 갖고 투신할 수 있는 일인가 확인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돈과 명예, 권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자신이 진심으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그 과정이 괴로울 것이고 실패했을 때 쉽게 넘어질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면 성취감과 행복함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입니다.
또한 많은 학생들이 연구에 목적을 두기보다는 돈에 큰 가치를 두고 진로를 결정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기초과학 쪽의 인력이 부족해서 균형 있는 발전을 못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과거에는 개인이 절약하며 어려운 연구과정을 거치고 휴일에도 거의 쉬지 못하며 연구에 매진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자신의 연구목표보다는 연구 환경이 어떤가에 너무 연연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기준과 가치를 금전적인 부분에만 맞추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학생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나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의 영향도 있습니다.
Q. 2009년 계획이 궁금합니다
A. 연구는 단계별로 성취해나가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에 설정한 목표는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함께 연구할 학생들을 늘려나가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성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논문을 발표하고 논문의 질을 높여나가는 것에 집중하고, 향후 1~2년간은 발표한 논문의 질을 확인하고 다져가는 기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기초연구를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시키고 실용화할지 고민하기위해 임상연구하시는 분들과 식품의약품안전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연구결과를 활용할 수 있는 방향을 구체화 할 것입니다. 연구가 성공적으로 결실하여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면 그 뿌듯함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불어 연구비 걱정 하지 않으며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다면 연구자로써도 매우 만족한 결과가 될 것입니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09년 7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