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펼침-접힘 원리 규명 및 공학적 모사, ‘네이처’ 게재
곤충 모방 로봇은 낮은 대기 밀도에서도 비행이 가능해 여러 시도가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새와 달리 꼬리날개가 없는 곤충의 비행법은 기술적 구현이 어려워 오랜 시간 비행에 성공한 사례가 드물었다. 뒷날개 중간을 접었다 펼치며 비행하는 장수풍뎅이는 특히 안정적 비행이 가능하지만, 뒷날개가 펼쳐지는 과정과 원리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
연구팀은 날개의 각도에 주목했다. 지상에서는 뒷날개를 접어서 앞날개 아래에 넣어 보관하는 장수풍뎅이는 비행 직전에 앞날개를 완전히 펼치는 반면, 뒷날개는 바깥 부분이 접힌 채로 노출된다. 이어서 접힌 뒷날개는 몇 차례의 날갯짓으로 뒷날개를 완전히 펼쳐서 비행한다. 이러한 과정을 날갯짓 각도가 증가할 때 변화하는 날개 펼침 각의 각도로 설명했다.
이는 날개의 접힘 과정에서도 검증되었다. 비행하던 장수풍뎅이는 아주 짧은 시간에 날갯짓 각도와 속도를 줄이면서 하강한다. 이때 날개에 발생하는 원심력이 줄어 날개의 상승각과 날개 펼침 각이 감소하면서 지상으로 내려온다.
뒷날개를 떼어서 날갯짓 장치에 부착해 구동할 경우에도 몇 차례의 날갯짓으로 접힌 뒷날개를 완전히 펼칠 수 있었다. 이로부터 장수풍뎅이가 특정 근육을 움직여 날개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날갯짓으로 발생하는 원심력으로 뒷날개를 완전히 펼친다는 것을 입증했다.
날개가 접힐 때 한쪽의 앞날개가 없는 경우, 앞날개가 있는 쪽은 앞날개가 접히면서 뒷날개도 따라 접히는 반면, 앞날개가 없는 쪽 뒷날개는 접히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앞날개 없이 뒷날개를 접기 위해서 다리를 이용해 뒷날개를 접으려 시도하는 장면도 포착할 수 있었다.
이처럼 장수풍뎅이는 특정 근육의 작동 없이, 날갯짓으로 발생하는 원심력으로 뒷날개를 수동적으로 펼치고, 날갯짓을 멈추면 뒷날개는 수동적으로 접히는 위치로 내려온 후, 앞날개와 연동해 완전히 접힌다.
“장수풍뎅이 날개의 펼침-접힘 원리를 모방해 저희가 개발한 ‘KU비틀’에 지지대와 날개 막, 경첩 관절, 탄성 힘줄로 이뤄진 날개를 부착했습니다. 몸통과 날개는 힌지로 연결해 날개가 접히게 하고, 적절한 탄성을 갖는 와이어(wire)로 날개 뿌리와 힌지를 연결했죠. 그 결과 아래쪽으로 접혀진 날개는 초기 날갯짓의 원심력으로 상승해 일정한 날갯짓 평면을 이루며 로봇의 무게인 18g보다 큰 양력을 발생시켜 로봇이 비행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연구팀에 따르면 ‘KU비틀’은 날개가 외부 물체와 충돌하는 경우, 날갯짓을 멈추고 날개를 접으면서 착륙해 날개의 파손도 방지한다.
이처럼 원심력과 탄성력을 이용해 접혔던 날개를 펼치고, 펼쳐진 날개의 날갯짓으로 양력을 발생해 비행하기 때문에 극지·우주 탐사 등에 활용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보통 로봇을 이동하는 데에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데, ‘KU비틀’은 평소 날개를 여러 번 접어서 숨겨뒀다가 비행할 때만 날개를 펴는 장수풍뎅이의 생체적 특성을 모방하는 만큼 볼륨이 줄어들어 패키징 비용이 적게 든다. 이 밖에도 통상적인 비행체, 비행로봇에 비해 제작단가가 낮아 다량으로 제작할 수 있어 비행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곤충의 에너지 저장 매커니즘을 제대로 구현한다면 비행효율 면에서도 5~6배가량 유리하다.
다만, 헬리콥터와는 달리 곤충 모방 비행로봇은 사람이 타는 형태로 실험이 어렵다 보니 실용화까지 진행하기에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작은 크기 때문에 공기의 변화, 바람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초소형 비행로봇 발전을 막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박 교수는 제어 분야와의 융합연구를 통해 이러한 위험 요소들을 극복한다면 소형 생체 모방 로봇의 활용도가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2024년 7월 31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 온라인판에 게재되었으며, 박 교수의 제자인 판 호앙 부(Hoang-Vu Phan) 스위스 로잔 공대 박사후연구원과 로잔 공대 다리오 플로리아노(Dario Floreano) 교수가 함께 참여했다.
생체 모방 로봇을 향한 연구 외길, 최장 비행 달성 결실
박 교수와 생체 모방 로봇의 운명적인 만남은 20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의 전공은 수치기법의 일환인 유한요소법을 통해 항공기의 구조를 설계하고 해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수치해석 기법으로는 연구비 규모가 작고, 연구실 학생들을 유지하기 어려워 고민이 컸다. 그러던 중 미국 학회들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생체 모방이라는 새로운 연구주제를 접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2002년 미국 항공우주학회에서 처음으로 무인기학회를 개최했는데, 당시 미국의 국방고등기술연구소가 새롭게 지원하는 연구는 전례 없이 현실과 동떨어진 주제들이었습니다. 학회에 참석한 많은 미국 교수가 불만을 표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패널토론에 참석한 미국 공군 대위가 ‘우리는 연구비를 지원하는 100개 과제 중 하나만 성공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자 회의장에 순간 적막이 흘렀습니다. 저 역시 그의 말에 소름이 돋았죠. 그때부터 저도 새로운 연구를 해보자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 교수는 건국대 호숫가를 산책하던 중 무당벌레가 날개를 접었다가 펼치며 비행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주 보던 모습이었음에도 이상하게 그날따라 눈앞에 느린 화면이 재생되듯 보였다는 것.
“곤충의 날개는 아무런 근육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데도 날개를 접었다가 펼쳐서 비행이 가능한 것이 신기했습니다. 이것을 모방해 보자는 생각을 들었고, 장수풍뎅이의 비행과 날개 펼침-접힘을 모방하는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장수풍뎅이처럼 날갯짓을 180도 이상 안정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터 구동형 날갯짓 장치를 개발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비행이 가능하도록 모든 장치를 최대한 간단하고 가벼운 형태로 개발해야 했고, 날개를 자동으로 회전하게 하는 방법도 고안해야 했다.
큰 각도의 날갯짓과 날개의 자동회전이 가능해진 후에는, 날갯짓에 따른 공기력을 예측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중점을 뒀다. 날갯짓으로 비행이 가능한 공기력이 발생한다 해도 안정된 비행이 가능하려면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제어 모멘트가 필요하다. 조류와는 달리 곤충 모방 비행로봇에는 꼬리날개가 없어서, 날갯짓 중에 날개의 궤적을 계속 변경해 공기력과 제어력을 동시에 발생해야 한다.
다음으로 요구된 것은 되먹임 전자 제어 기술이었다. 연구팀은 소형 드론에서 사용하는 초소형 전자부품을 조합해 되먹임 제어 시스템을 구성함으로써 2016년 약 40초 제어 비행에 성공했다. 개선된 질량 1g의 일체형 전자보드에 구현된 제어시스템은 건국대 기계항공공학부 강태삼 교수 연구실에서 개발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9년 이를 탑재한 ‘KU비틀’이 약 9분의 비행에 성공해 전 세계 대학 연구실에서 개발한 곤충 모방 날갯짓 비행로봇 중 최장 비행시간을 기록했다.
장애물과 충돌해도 추락하지 않는 비행로봇 ‘KU비틀’
2004년 생체 모방 로봇 연구를 시작한 이후 15년 가까운 연구 끝에 전 세계가 주목할 결과를 얻었지만, 그 과정의 이면에는 수없이 반복된 실패와 인내의 조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살아 움직이는 곤충의 특성 원리를 탐구하는 것이 필수였던 만큼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곤충의 비행을 관찰하기가 어려운데, 크기가 작은 곤충 날개의 움직임을 관찰하기는 더욱 힘들었습니다. 비교적 크기가 큰 장수풍뎅이를 연구 대상으로 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장수풍뎅이가 야행성이라 밤에만 비행한다는 점이었죠. 아주 밝은 광원을 사용하는 디지털 초고속 카메라로 장수풍뎅이의 비행을 촬영해야 하는데 카메라의 광원 때문에 장수풍뎅이가 밤에도 날지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더구나 훈련이 가능한 새와는 다르게 곤충은 길들이기가 힘듭니다, 날더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날지 않는 것이죠. 장수풍뎅이를 특정 방향으로 날게 하려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반복 실험하는 데 큰 인내심이 필요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연구비도 발목을 잡기 일쑤였다. 3D프린터로 부품을 직접 만들고, 천장을 뚫어 초고속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연구를 이어 나갔다. 박 교수는 개발하는 과정에서 해외 연구진이 협업을 위해 연구실을 찾았다가 연구 환경에 놀라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전했다.
이처럼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노력을 거듭한 끝에 연구팀은 초고속 카메라 촬영으로 장수풍뎅이의 뒷날개가 처음 날갯짓으로 발생하는 공기력과 관성력으로 완전히 펼쳐지는 사실을 밝혔다. 또한 비행 중에 장애물 충돌로 뒷날개가 접히더라도 중앙부의 충돌 에너지 흡수로 짧은 시간 안에 다시 펼쳐져서 안정된 비행을 계속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 원리를 적용해 날개에 충돌 에너지 흡수 장치를 부착한 곤충 모방 날갯짓 비행로봇 ‘KU비틀’을 세상에 내놓으며 주목을 받았다. 이 연구결과는 2020년 12월 ‘사이언스(Science)’ 온라인판에 게재되었다.
“새를 모방한 비행로봇 연구는 이미 그 전부터 꾸준히 진행되었지만, 곤충 모방 관련 데이터는 단 한 건도 없었죠. 새는 날갯짓으로 비행에 필요한 힘을 발생시키고, 꼬리날개로 자세제어에 필요한 힘을 발생시킵니다. 일반적인 비행기나 헬리콥터도 새의 비행을 모방했다고 할 수 있죠. 반면 곤충은 오로지 양 날개만으로 안정적인 정지 비행과 다양한 기동 비행이 가능합니다. 특히 ‘KU비틀’에는 특수한 날개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비행 중에 날개 끝 쪽이 장애물과 충돌하면 날개가 접히는데, ‘KU비틀’의 특수날개는 충돌 직후 곧바로 다시 펼쳐지는 것이죠. 따라서 비행 중 장애물과 충돌이 발생해도 자세 유지와 안정된 비행이 가능합니다.”
박 교수는 해당 연구로 우주 저밀도 대기에서 비행 가능한 미래항공우주기술의 기반을 마련한 공로를 높이 평가 받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2021년 8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밀도 비행’과 ‘물고기 로봇’ 연구에 집중
박 교수는 ‘저밀도 비행’과 ‘물고기 로봇’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중심축으로 삼아 극한 환경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첫 번째 연구는 저밀도 환경에서의 비행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기 밀도가 낮아지면 비행은 어려워진다. 2021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화성에서 소형 헬리콥터를 성공적으로 비행시키며 이러한 한계를 극복한 사례를 만들었다. 화성의 대기 밀도는 지구의 1.7%, 중력은 3분의 1 수준에 불과해, 헬리콥터가 비행하려면 프로펠러를 다섯 배 빠르게 회전시켜야 했다. 연구팀은 이를 응용해 날갯짓 비행로봇이 저밀도 환경에서도 작동할 수 있을지를 탐색 중이며, 밀도를 낮춘 실험 공간에서 비행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두 번째 연구는 빠르고 효율적으로 수영하는 ‘물고기 로봇’ 개발이다. 2021년부터 시작된 이 연구는 수중 환경에서 날치처럼 물 위로 튀어 오를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초기 실험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추진력이 부족한 점이 한계로 작용했다. 현재 연구팀은 로봇의 속도를 더욱 높이고, 보다 강한 추진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군사·산업 분야에서의 실용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곤충을 모방한 소형 비행로봇은 실내, 동굴, 근거리 탐지 등 특정한 임무 수행에 적합하다. 다량 제작이 가능하며, 저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다목적 전투기나 헬리콥터와는 다른 방식으로 응용될 수 있다. 물고기 로봇은 기존의 프로펠러 기반 잠수정과 차별화된다. 잠수정은 운항 중 발생하는 소음으로 인해 쉽게 탐지되지만, 물고기 로봇은 소리 특성이 알려지지 않아 은밀한 작전 수행이 가능하다.
박 교수는 2년 후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연구에 속도를 늦출 생각이 없다. ‘저밀도 비행’ 연구와 ‘물고기 로봇’ 연구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가능하다면 장수풍뎅이 모방 비행로봇의 비행속도를 제한하는 요인들을 극복하는 데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연구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이를 탐구하고 밀고 나가는 것은 연구자들의 의지에서 비롯된다. 박 교수는 “한계를 이유로 주저앉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모든 연구에는 제약이 따르고, 실패는 반복된다. 그러나 오랜 시간 축적된 작은 실험들이 결국 하나의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그가 오랜 시간 연구실을 지켜오며 깨달은 것은 단순하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같지만,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미래는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 연구도, 기술도, 도전도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다.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끝까지 버티고 밀어붙이는 집념에서 나온다. 그의 연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취재기자 / 안유정(reporter1@s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