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 나노 구조에서 광 흡수와 근접장 강화 동시 측정
금속 나노 구조에 빛을 입사시켜 유도하는 표면 플라즈몬은 수백 나노미터 수준에 집속(focusing)되는 강한 근접장(표면/광원으로부터 거리가 파장보다 짧은 영역에 형성된 전자기파)을 형성하고, 주변 환경에 대한 높은 민감도를 가진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생체 바이오 물질의 관찰을 통한 기질 특성 연구뿐만 아니라 에너지 하베스팅, 차세대 광촉매 등 다양한 연구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주의할 점은 표면 플라즈몬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열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이때 계산상으로 예측하기 힘든 잡음이 발생해 센서 및 이미징 시스템의 비선형적 성능 저하를 유발한다는 문제가 있었던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발열 특성 측정 기술들이 제시되었지만, 근접장 강화와 광 흡수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 해결이 어려웠다. 따라서 그동안 플라즈모닉 발열에 의한 표면 플라즈몬의 비선형 광 특성은 큰 난제로 남아 있었다.
“빛이 들어오면 물질과 상호작용하며 표면에 작은 패턴이 만들어집니다. 이때 패턴만 생기는 게 아니라 빛이 흡수되면서 열이 함께 발생하는데, 워낙 작은 스케일로 만들다 보니 측정이 어렵습니다. 이에 우리 연구팀은 ‘각도 분해 근접장 주사 광학 현미경 시스템’을 개발해 금속 나노 구조에서 발생하는 열과 근접장 강화를 측정하고자 했습니다. 입사광의 각도, 편광, 파장, 출력 등을 조절할 수 있는 광 입사 시스템과 근접장 주사 광학 현미경을 결합한 것이죠. 개발한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플라즈몬 공명 형상을 유도하고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각도 분해 근접장 주사 광학 현미경 시스템’은 소리굽쇠와 연결된 조리개 기반 근접장 주사 광학 현미경 탐침이 광 흡수에 의한 종축 열팽창을 정밀하게 측정한다. 조리개와 커플링 된 근접장은 광섬유를 따라 광 증폭관을 통해 측정 가능하다.
연구팀은 개발한 측정 기술을 활용해 기존에는 원거리장 영역에서의 산란을 통해 비간접적으로만 측정이 가능했던 플라즈모닉 발열에 의한 비선형 광 특성을 근접장 영역에서 세계 최초로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이를 광열 회귀 분석법을 활용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검증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기존 방법들로 불가능했던 광 흡수와 근접장 강화의 동시 측정이 가능하고, 나노 구조의 모양이나 재료와 무관하게 측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구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나노 과학 기술 분야 세계 최상위 저널인 ‘나노 레터스(Nano Letters)’ 커버로 선정되었으며, 2024년 2월 26일 온라인 게재되었다.
“첫째로 근접장 강화와 광 흡수의 동시 측정을 가능케 했다는 점, 둘째로 플라즈모닉 발열에 의한 표면 플라즈몬의 비선형 광 특성을 실험적으로 규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활용된 시스템은 나노 광학 분야의 핵심 기반 기술일 뿐만 아니라, 광촉매 등 화학 분야와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추후 더 다양한 구조에서 측정해 보고 미시적인 열광학 구조를 만드는 연구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나노미터 수준의 고해상도 위치 보정 기술 개발
연구팀이 거둔 또 하나의 성과를 꼽는다면, 지난해 ‘나노미터 수준의 형광 신호 왜곡 보정 기술’을 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의공학에서 굉장히 중요도가 높은 연구 분야 중 하나는 생체 바이오 물질의 관찰을 통한 기질 특성 연구다. 생체 바이오 물질을 관찰할 때는 높은 감도와 넓은 측정 범위를 가진 센서가 필요하다.
따라서 고감도·고해상도로 바이오센서 및 이미징 시스템에 활용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로서 ‘금속 나노구조를 이용한 형광 나노 입자의 관찰’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금속 나노구조 근처에 있는 형광 입자의 위치가 금속 나노 입자에 의해 크게 왜곡되기 때문에 실제 형광 입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 큰 걸림돌이었다.
이에 연구팀은 정확한 위치 측정이 어려웠던 형광 입자의 위치를 고해상도로 추정하고 나노미터 수준의 형광 신호 왜곡을 보정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금속 나노구조 근처에 있는 형광 나노 입자의 위치를 높은 정확도와 고해상도로 추정하기 위해 형광 입자의 허초점 이미지를 획득했습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초점이 맞지 않으면 이미지가 흐릿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렌즈의 초점거리로부터 형광 입자를 벗어나게 위치시키는 것이죠. 이러한 허초점 이미지로부터 형광 입자의 형광 방출 각도 분포에 대한 정보를 얻어 전자기장 시뮬레이션 데이터와 비교해 형광 입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은 기존 방법에 비해 정확도가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고가의 특수 영상 장비 없이 형광 입자의 위치를 더욱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연구는 금속 나노구조와 형광 입자 간 상호작용 이해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정밀한 단분자(單分子) 영상화 및 트래킹에 적용 가능하다.
연구 결과는 ‘빛: 과학과 응용(Light: Science & Applications)’에 2023년 9월 18일 게재되었다. 해당 학술지는 IF 19.4, JCR 상위 3%(게재 당시 기준)에 달하는 광학 분야 최고 권위의 학술지다. 연세대학교 문귀영 박사, 손태황 박사, 유하준 연구원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광생체 공학 분야에서 독보적 영역 구축
2004년 연세대학교에 부임한 이후 김 교수는 바이오포토닉스 연구에 매진해 왔다. 바이오포토닉스 기술은 광학 기술을 사용해 생명체의 구조와 기능을 조사하는 데 중점을 둔다. 비침습적이고 고해상도의 이미징 및 분석 기술을 제공하기 때문에 의료, 생명과학 연구 분야에서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바이오포토닉스 연구라는 외길을 걸어온 김 교수는 국내 바이오포토닉스 분야의 대표 연구자로 입지를 다지며, 자신만의 확고한 연구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기존의 연구 방향 또는 흐름을 답습하지 않고자 끝없이 자기검열을 거치면서 노력해 왔다. 많은 수의 논문보다는 하나의 논문이더라도 학술적·산업적으로 가치 있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연구결과를 내놓기 위해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이러한 연구철학은 그가 밝혀지지 않았던 현상을 규명하고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비결이다.
물론 김 교수가 걸어온 길이 항상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2018년 과제 종료 이후 연구비 부족으로 한동안 연구가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만의 연구주제를 바탕으로 새로움을 좇다 보면 분명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현실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동료 연구자들과 더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하려는 노력을 이어갔다. 그 결과 공동연구를 통해 머닝러신 기반 광 바이오센서 설계 기술을 개발하며 2020년 9월, 분석화학 최고 권위지인 ‘바이오센서스 앤 바이오일렉트로닉스(Biosensors and Bioelectronics)’에 논문을 게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당시 공동연구에는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최종률 박사 연구팀, 연세대학교 의공학과 김경환 교수 연구팀이 함께했다.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바이오센서 설계 기술은 기존 물질로부터 획득할 수 없는 메타물질을 이용해 미세한 생체 분자 측정이 가능한 광 기반 바이오센서를 머신러닝 알고리즘들을 조합해 효율적으로 디자인하는 기술이다. 시뮬레이션 결과를 바탕으로 선택된 사양의 메타물질로 구성된 광 바이오센서의 반사율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구축한 것. 가장 높은 감도의 바이오센서 후보 중 주어진 반사율 커브 조건에 해당하는 바이오센서 사양을 k-평균 군집화(k-mean clustering)를 통해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효율적인 고감도 바이오센서 설계 핵심기술로 활용 가능하며, 바이오센서 기반 질병 진단, 치료물질 탐색, 높은 효율의 광신호 감지장치 개발 등 첨단의료기술 연구개발로 확장될 수 있다.
당시 연구성과를 계기로 김 교수는 더욱 주변의 의견을 경청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자 노력하며 끊임없는 질문과 토론으로 스스로의 한계극복에 도전을 거듭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이 켜켜이 쌓이며 이후 의미 있는 성과들을 창출해 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외국인 연구인력 유입에 개방적 자세 필요해
상상 속 기술이라 여겨지던 많은 부분들이 빠른 속도로 개발되어 현실에 속속 적용되고 있다. 신기술 개발은 더욱 가속화되어 미래 사회에는 고성능의 연구개발 인프라와 연구력을 구축한 국가만이 세계 산업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우리나라 또한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한 대응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국제 네트워킹이 자리 잡고 해외 연구인력에 대한 개방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연구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과학계의 가장 큰 문제는 연구원 이탈과 인력 부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연구비 문제라면 정부에서 예산을 확대하거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면 해결이 되는 부분이지만 연구인력 문제는 단시간에 해결이 어렵습니다. 10년 전 연구인력 구조와 현재 연구인력 구조는 이미 확연히 달라졌고, 과거 수준으로 회복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도 외국인 연구인력을 유입하고 양성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보안 문제, 외국인력 양성에 소요되는 예산 문제 등 민감한 영역에서 딜레마가 있을 수 있지만 국가 과학 경쟁력의 성패가 달린 문제인 만큼 개방적 관점에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과학계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최근 국내 대학 연구실에 지원하거나 유학을 원하는 외국 학생들이 확연히 늘어났다며 긍정적인 시그널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추세를 보다 폭 넓게 받아들여 국제 네트워킹을 강화하다 보면 연구인력의 안정적인 수급과 연구 질 향상, 건강한 연구 생태계 조성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최선이 쌓여 최고가 된다
김 교수는 교육자로서 ‘독립적인 연구자’들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교육철학을 갖고 있다. 학생들 스스로 연구주제를 찾아 실험하고, 논문을 쓰고, 심사를 받는 과정을 겪으면서 연구자로서 큰 자양분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연구역량은 결국은 스스로가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각자 나름의 기술과 목표를 가진 섬이라 생각하라고 조언하고는 합니다. 전 그들이 덜 헤맬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존재일 뿐이죠. 단지 바람이 있다면, 학생들이 연구자의 길을 학위를 얻기 위한 공부라 생각하지 말고, 주체적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하나의 업(業)으로 여겼으면 합니다.”
연구는 굉장히 많은 시도와 실패 끝에 결실을 맺는 분야다. 새로운 기술을개발한 후에도 산업에 실제로 응용 가능한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지만 과정이 힘든 만큼 목표로 한 결과가 나왔을 때 성취감이 큰 영역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작은 계단들을 올라 기회의 문이 열리는 것처럼 학생들도 하루에 조금이라도 자신의 꿈을 위해 의미 있는 전진을 한다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언제든 최선을 다한다는 신념을 지키며 연구자의 삶을 이어가고자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쌓아온 연구결과들을 더욱 발전시켜 과학계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학생들의 연구성취감을 심어주는 데도 집중할 계획이다. 노력을 통해 성취를 얻고, 이로써 얼마나 성장했는지 체감하는 일련의 과정이야말로 스스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이라는 확신에서다. 서로의 성장을 이끌며 새로움을 찾아 나서는 김 교수 연구팀이 발견할 새로운 미래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취재기자 / 안유정(reporter1@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4년 6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