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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 인터뷰]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뇌융합기술연구단 최낙원 박사

뇌신경 회로망, 자극·억제를 마음대로 조절한다 3차원 체외 환경에서 국소적 신경 조절 구현

구조가 복잡한 장기인 뇌의 경우 발달 과정이나 뇌 질환 발병기전을 분석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뇌의 복잡한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동물 모델을 이용하고 있지만, 동물과 사람의 몸이 100% 일치하지 않은 만큼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뇌를 생물학적·병리학적으로 분석하고, 동물 모델 사용을 최소화하려면 체외 환경에서의 뇌 모델 구축이 필수적이다. 

체외 3차원 뇌 모델 플랫폼 개발의 필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뇌융합기술연구단이 인공 뇌 구현에 한 획을 그을 성과들을 내놓으며 뇌과학 연구의 새 길을 열고 있다. 뇌융합기술연구단 최낙원 박사 연구팀은 지난 2017년 뇌신경 회로망의 특성을 모사해 3차원 체외 환경에서 구축했을 뿐 아니라 이후로도 기술을 꾸준히 보완해 최근에는 특정한 부위에 국소적으로 신경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 뇌신경 회로망의 정밀한 분석이 가능해짐에 따라 모사의 범위를 확장해 뇌신경 조직을 형성한다면, 향후 뇌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으로 기대된다.
3차원 체외 환경에서 뇌신경 회로망 구현
사람의 뇌는 다른 장기와는 달리 두껍고 단단한 머리뼈로 덮여 있다 보니 접근이 어려워 해상도가 낮은 영상 기반이나 뼈 밖에서 측정하는 뇌파 분석 등으로 연구 방법이 한정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뇌의 발달 단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이나 장애의 원인, 그리고 그 치료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에 뇌과학자들은 쥐에서 추출된 신경세포나 인간 유래의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이용해 인공 뇌를 구현하는 데 주목했다. 동물이나 사람의 몸이 아닌 실험실에서 실제 뇌와 유사한 모델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서 뇌 발달 과정을 연구하거나 뇌 질환 원인을 규명한다는 것이다. 

과거 인공 뇌는 평면 형태로 제작해 연구해 왔는데, 이러한 2차원 기반 체외 플랫폼에서는 뇌의 각 구성 요소에 해당하는 실험 데이터베이스를 얻는 데 한계가 있고 입체적인 실제 뇌와는 괴리가 존재했다. 
따라서 체외 3차원 뇌 모델 플랫폼들이 요구되었고, 지난 2017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뇌과학연구소 최낙원 박사(현재 뇌융합기술연구단 단장)와 허은미 박사(현재 서울대학교 교수) 공동연구팀이 3차원 체외 환경에서 뇌신경 회로망의 구조 및 기능을 구현하는 데 성공(Nature Communications, 2017년 게재)하며, 인공 뇌 구현의 새 장을 열었다. 

당시 공동연구팀은 콜라젠 섬유를 특정 방향으로 정렬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콜라젠 내에서 신경세포를 3차원 배양할 때 세포 축삭의 성장 방향을 유도할 수 있도록 했다. 축삭이란 신경세포(뉴런)의 세포체에서 길게 뻗어 나온 가지로, 활동 전위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 기술을 적용해 뇌 안에 있는 해마의 CA3과 CA1(대뇌변연계의 양쪽 측두엽에 존재하는 해마 내 부위로 학습과 기억을 담당)에서 추출한 신경세포들이 정렬된 콜라젠 섬유를 따라 분화, 성장하면서 시냅스를 형성하는 CA3-CA1 신경 회로망을 재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이 신경 회로망이 구조적 연결성뿐만 아니라 기능적 연결성도 갖추었음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우리 몸 안의 여러 장기 및 조직은 세포와 세포 이외에 다양한 요소들이 특정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는데, 이는 구조적인 속성을 부여해 생물학적 기능이 작동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조직공학 측면에서 보자면, 체외 환경에서 장기 또는 조직을 새롭게 만들어 내고자 할 때 세포의 방향성을 구현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조직의 외형적 구조뿐만 아니라 기능도 모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당시 연구성과는 방향성 구현이라는 난제를 해결하고, 많은 신경 회로망들이 서로 복잡하게 연결된 뇌 조직을 체외 환경에서 재구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인공 뇌 구현에 한 획을 그은 연구로 평가받았지만, 당시에는 3차원 인공 뇌의 신호를 연구하기 위한 분석 툴은 개발되지 않았다. 따라서 표면에서의 신호만 분석하거나 입체 구조를 평면 형태로 무너뜨려 연구해야 해서 복잡하게 얽혀진 인공 신경망에서의 신경 신호 추적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연구를 이어간 결과 지난 2021년 최 박사와 조일주 박사(현재 고려대학교 교수) 공동연구팀이 입체 형태의 인공 뇌 회로를 망가뜨리지 않은 상태로 정밀하게 자극하고 세포 단위의 신경 신호를 내부의 여러 곳에서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초소형 분석 시스템을 개발(Nature Communications, 2021년 게재)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3차원 다기능 신경 신호 측정 시스템은 머리카락 절반 정도인 50㎛ 두께의 실리콘 탐침 6×3 어레이(18개)에 63개의 마이크로전극을 집적한 형태로, 인공 뇌에 꽂아 뇌 신경망 회로 내부 여러 곳의 신호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다. 
탐침 내부에는 광섬유와 약물 전달용 마이크로채널이 집적되어 있어 신경세포를 빛이나 약물로 정밀하게 자극해 자극에 반응하는 인공 뇌 회로의 기능 변화를 측정함으로써, 인공 뇌를 이용한 뇌 기능 및 질환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
국소적 신경 조절 구현으로 체외 모델 한계 극복
3차원 인공 뇌 회로 구현으로 방점을 찍은 이후 최 박사 연구팀은 원천기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2023년 3월 10일, ‘Science Advances’지 온라인판에 ‘체외 환경에서 뇌신경 네트워크 내 국소적 신경 조절 구현 기술’을 발표하며, 또 하나의 허들을 넘어섰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최낙원, 김홍남, 성지혜, 남민호, 홍규상 박사 등과 고려대학교 정석 교수, 동국대학교 방석영 교수 공동연구팀이 함께 개발한 플랫폼을 활용해 체외 3차원 환경에서 뇌의 신경 회로망의 특성을 모사한 뇌신경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동시에 생화학적 인자들을 국소적으로 전달해, 형성된 회로망의 특정한 부위의 신경을 조절, 신호 전달 과정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즉, 인간의 뇌신경 회로망을 3차원 체외 환경에 구축해 특정 구역의 신경을 입맛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체내에 여러 장기 및 조직은 세포와 세포 이외에 다양한 요소들이 방향성을 띤 상태로 정렬이 되어 있는데, 뇌속 신경 회로망들 또한 방향성을 지닌 채로 존재합니다. 
체외에서 이런 뇌의 신경 회로망의 특성을 모사한 후 신경 회로망에 대한 연구를 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형성된 신경 회로망의 특정한 부위에 국소적으로 신경 조절을 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아 뇌의 생리학적·병리학적 체외 모델 연구에 한계점이 존재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향성을 띤 뇌신경 회로망에 국소 신경 조절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집적된 체외 모델의 개발이 필요했습니다.(강현욱 학생연구원, 공동 제1저자)”

공동연구팀은 방향성을 가진 상태로 정렬이 되어 있는 뇌속 신경 회로망의 특성을 모사하기 위해 뇌신경 조직 내 신경세포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된 상태에서 배양되도록 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와 함께 3차원 체외 환경에 형성된 조직에 다양한 생화학적 인자가 포함된 액체가 흐를 수 있는 미세한 크기의 통로(미세유체 마이크로채널)들을 집적시키는 기술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3차원 뇌신경 조직 칩 제작 기술을 개발했다. 

미세유체 마이크로채널을 통해 신경 신호를 자극 또는 억제할 수 있는 약물을 주입함으로써 국소적으로 특정 구역의 신경 조절이 가능하도록 했다. 따라서 뇌신경 조직의 형성 및 국소 부위 자극 및 억제를 통해 네트워크상 신호 전달을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연구는 기존 체외 뇌신경 조직 모사 디바이스를 대체해 생리학적·병리학적 연구를 위한 기본 규격 디바이스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실용화를 위해서는 비숙련자의 다양한 실험에도 재현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강현욱 학생연구원, 공동 제1저자)” 

특히 이번 연구는 최 박사 리드 하에 2017년 원천기술 개발 당시부터 참여했던 김소현 박사(현재 SK바이오팜 소속)의 뒤를 정소현 박사(현재 멥스젠 소속)가 이어받고, 이후 강현욱 학생연구원(한국과학기술연구원/고려대학교)이 바통을 받으면서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마치 가업을 이어가듯 ‘3대’에 걸쳐 연구를 진화시켜 나갔고,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소현 박사와 정소현 박사는 현재는 뇌과학연구소 소속이 아님에도 연구가 난관에 부딪힐 때면 강현욱 연구원과 함께 해결책을 고민하며 연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연구원들의 자신이 해온 연구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 서로 간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3대에 걸쳐 연구가 진행되다 보니 재현성 부분에서 이슈가 있었지만, 어렵게 진행되었던 만큼 완성도는 더 높아진 것 같습니다. 향후 모사의 범위를 확장해 뇌신경 조직을 형성한다면 뇌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최 박사)”
핵산 센서기술, 전립선암 진단 마커 등 연구 결실 
이 밖에도 최 박사는 공동연구를 통해 바이오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들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단일 염기 서열의 차이도 빠르게 검출하는 핵산 센서기술 개발(Small, 2022년 게재)을 꼽을 수 있다. 
기존에는 염기 하나의 변이를 찾기 위해 염기서열을 하나하나 분석하거나 유전자를 증폭하는 PCR 과정이 이용되기에 시간이 상당히 소요된다. 또 증폭 후에도 긴 유전자 가닥 중 한 개의 염기 차이를 구분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이효진 박사와 최 박사, 고려대학교 최정규 교수 등 공동연구팀은 까다로운 효소 증폭 기술에 기반한 염기서열 해독에서 탈피, 더 빠르고 더 민감한 단일염기 변이 검출 기술을 설계했다.
핵심은 금나노입자와 자성입자를 이용한 선택적 단일염기 인식 및 서열치환 나노기술과 위치 특이적 하이드로겔 형광신호 발생을 이용한 광학기술로, 시간을 단축하면서 민감도는 높인 것이다. 

먼저 표적서열과 결합할 수 있는 금나노입자와 자성입자를 이용, 자석으로 원하는 표적서열만 추출하는 방식으로 증폭과정을 대신했다.
나아가 네 종류의 염기마다 하이드로겔 내 서로 다른 위치에서 형광신호를 생성하게 함으로써 염기서열을 읽지 않고도 광학현미경으로 염기 차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2021년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강지윤 박사, 고려대학교 봉기완 교수와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해 소변에 대단히 적은 양으로 존재하는 세포 외 소포체(세포들 사이 또는 세포와 외부 환경의 끊임없는 정보 교환을 위해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하는 세포 유래 물질) 내 전립선암 관련 마이크로RNA를 검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Biosensors & Bioelectronics, 2021년 게재)한 바 있다.
 
공동연구팀은 아주 적은 양의 마이크로RNA 신호를 하이드로젤 안에서 증폭해 검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실제 이를 이용해 정상인과 전립선암 환자의 소변 샘플 0.6ml에서 마이크로RNA 발현량 차이를 민감하게 검출해 냈다. 기존 PSA 검사의 경우 민감도 90% 기준 특이도 30%를 가지고 있는데 이보다 약 2.2배 높은 68%의 특이도를 보이며 이는 기존 마이크로RNA 검출법 대비 약 67배 적은 부피의 샘플로 얻은 결과였다. 

“세포 외 소포체 내 마이크로RNA가 질병 특이도 높은 바이오마커로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개발한 체액 분석기술을 활용하면, 전립선암 외에도 다양한 질병을 보다 정확하고 민감하게 진단할 수 있습니다.”
다학제 연구, 성공의 핵심은 ‘사람’이다
인간의 두뇌는 소형 우주라고 불릴 만큼 매우 복잡하고,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들이 셀 수 없이 존재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뇌과학연구소의 목표는 이러한 뇌의 신비를 풀어 세계 뇌과학 연구의 허브로 자리 잡는 데 있다. 
융합 연구를 기반으로 하며, 이를 통해 인간의 행동을 조절하는 신경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뇌 기능 장애 극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 박사는 2011년 뇌과학연구소가 설립되고, 그 이듬해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연구소에 합류했다. 당시만 해도 뇌과학 분야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낯선 분야였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고, 의공학 연구로 쌓아왔던 기술이나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뇌 연구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연구소 설립 초기부터 자리를 지켜왔고, 현재는 뇌융합기술연구단의 단장으로서 연구소의 중점 연구 분야 중 하나인 ‘3D 뇌신경망 조직 칩 & 뇌질환 진단 플랫폼’ 연구를 이끌고 있다. 
뇌신경망 연결성 증진을 위한 콜라젠 미세섬유 정렬, 하이드로젤 기반 동시다중 바이오마커 검출(뇌 질환, 암 등 질병 특이적 마커, 엑소좀 세포 외 소포체 내 핵산 마커, SNP)이 전문 분야다. 

뇌과학연구소가 전기·전자공학, 기계공학, 화학공학, 화학(의약화학/생화학), 재료공학, 물리학, 생물공학, 의과학 연구자들의 융합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뇌융합기술연구단 또한 ‘다학제’ 연구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접근방식과 학문 간 융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함께 연구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수년간 쌓아왔던 용어들, 사고방식, 행동방식의 차이로 인해 소통의 어려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죠. 그런 만큼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맞춰 나가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결국 연구의 성패는 ‘사람’에게 달린 셈이죠. 좋은 프로젝트라는 것은 없습니다. 단지 좋은 프로젝트를 만드는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실제 최 박사는 독립 연구자로 활동하지만, 단독 교신저자로 논문을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파트너십과 협력을 중시하는 그의 신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에 대한 믿음은 시간이 흘러 공동연구자, 연구원들과 더욱 견고한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내며, 의미 있는 연구성과들로 돌아오고 있다. 

앞으로도 최 박사는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과 호흡을 맞추며 인간의 뇌를 과학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계속할 계획이다. 사람에 대한 진심을 담아 뇌 연구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는 그의 걸음걸음에 응원의 마음을 담아본다. 
취재기자 / 안유정(reporter1@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3년 9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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