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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 인터뷰]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전자재료연구센터 송현철 박사

생활 속 주변 진동으로 전기를 생산하다, 스스로 공진하는 ‘에너지 하베스터’ 개발

최근 진동이나 열과 같이 우리 주변에서 버려지는 에너지들을 수확해 이용하는 ‘에너지 하베스팅(Energy harvesting)’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은 배터리나 전원선 연결 없이 주변 에너지로 자가 발전하는 소자를 가능하게 해준다. 

특히, 사물인터넷과 같이 무선으로 동작하는 소형 전자기기에서 배터리 대신 독립전원으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 에너지 하베스팅 관련 연구가 앞다퉈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전자재료연구센터 송현철 박사 연구팀이 자동 공진 튜닝 기술이 탑재된 압전 에너지 하베스터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며 실용화에 큰 걸음을 내디뎠다. 
독립전원으로 사용 가능한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
사물인터넷 환경에서는 무형 또는 유형의 객체들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기 때문에 빛, 온도, 소리 등의 정보를 수집하는 센서가 곳곳에 설치되어야 한다. 
또한 웨어러블 기기의 경우 사람이 장시간 착용하고 다닐 수 있도록 편리해야 한다는 조건이 필수적으로 따라붙는다. 따라서 사물인터넷 센서와 웨어러블 기기는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설치되거나, 인체에 밀착되어야 하므로 독립전원이 필요하다. 

현재 배터리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배터리는 정기적인 교체가 필요하고, 사람의 몸에 직접 부착하기에 너무 크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이러한 배터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이다. 

“센서와 같이 아주 작은 전력으로 구동이 가능한 초저전력 소형 전자기기들이 개발됨에 따라 배터리나 전원선을 연결할 필요 없이 주변의 에너지를 이용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독립전원 개발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특히 무선 센서 네트워크와 같이 많은 센서들을 넓은 지역에 설치할 필요가 있는 곳에서는 수많은 센서들의 배터리를 교환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죠. 연구팀에서는 이러한 무선 센서 네트워크의 독립전원을 개발하기 위해 에너지 하베스팅 연구를 수행해 왔습니다.”

에너지 하베스팅은 자동차, 건물, 가전제품 등의 일상 환경에서 진동, 열, 빛, 전자기파와 같이 버려지는 에너지를 수확해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바닥을 누르면서 압력에너지가 발생하고, 집이나 사무실 조명에서는 빛에너지가 나온다. 

또한 발전소나 공장에서 돌아가는 기계에서 진동과 열이 발생하고, 자동차, 기차, 비행기 등을 가동할 때에도 진동과 열이 발생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에너지이다. 

쉽게 말해 이런 자투리 에너지를 모아서 전기로 바꿔 쓰는 것이 에너지 하베스팅의 개념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외부 전원장치 없이 주변 에너지원 수확만으로도 소형 전자기기를 구동하기에 충분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어 스마트시티 구현의 필수적인 기술로 손꼽힌다. 
자동 공진 튜닝 기술 탑재로 실용화 가능성 높여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은 원리에 따라 압전 하베스팅, 열전 하베스팅, 광전 하베스팅 등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도 압력 또는 진동으로부터 에너지를 수확하는 압전 하베스팅은 전력 밀도가 다른 기술에 비해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압전효과란 압전 소재를 매개로 기계적 에너지와 전기적 에너지가 상호 변환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압전 특성이 있는 물질에 압력이나 진동을 가하면 전기가 생기고, 반대로 전기를 가하면 진동이 생기는 현상이다. 압전 하베스팅은 이 압전효과를 가지는 소자를 이용해 에너지를 수확하고 전기를 발생시킨다. 

하지만, 압전 에너지 하베스팅의 경우 진동을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기계적 에너지 손실이 발생해 에너지 변환 효율이 낮아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물체의 고유진동수와 진동의 주파수가 일치할 때 큰 진동이 발생하는 공진(Resonance)현상을 활용한다. 

그러나 에너지 하베스터의 고유진동수는 고정되어 있는 반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진동들은 각기 다른 범위의 주파수에 분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에너지 하베스터의 사용환경에 맞춰 매번 고유진동수를 조정하고, 공진을 유도해야 해서 실용화에 성공하기 어려웠다. 

이에 연구팀은 기존의 공진 튜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의 전기장치 없이도 주변 진동수에 스스로 튜닝될 수 있는 특별한 구조의 에너지 하베스터를 개발하는 데에 주력했고, 그 결과 주변 환경에 따라 공진을 맞추는 자동 공진 튜닝(Autonomous Resonance Tuning, ART) 압전 에너지 하베스터 개발에 성공했다. ART 에너지 하베스터는 사람의 개입이나 추가적인 튜닝 에너지 없이도 빔의 진동역학만을 이용해 주변 진동 주파수에 따라 고유진동수를 조정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에너지 하베스터 내부에 주파수에 따라 움직이는 적응형 클램핑 시스템(튜닝 시스템)을 부착해 에너지 하베스터가 주변의 진동을 감지하면 튜닝 시스템이 공진 주파수에 도달하게 되어 외부의 진동과 같은 진동수를 갖고 공진할 수 있게 됩니다. 그 결과, 2초 이내 빠른 공진 주파수 튜닝으로 광대역 주파수 대역(30Hz) 이상에서 연속적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는 튜닝 시스템이 장착된 에너지 하베스터를 세계 최초로 실제 주행하는 자동차 엔진에 부착해 외부 전원 없이 ART 에너지 하베스터만으로 무선 위치 추적장치를 구동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번 연구성과는 진동을 이용한 에너지 하베스터가 이제 곧 우리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향후 무선 센서나, 웨어러블 기기, 저전력 소형 전자기기 등의 독립전원 또는 추가전원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진동수가 다이나믹하게 변화하는 환경(자동차 주행)에서 자가 튜닝 에너지 하베스터를 활용해 위치 추적 장치를 구동한 것으로 실용성을 검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소형 전자기기 내부에 에너지 하베스터를 장착하기 위해서는 하베스터의 소형화와 에너지 하베스터용 정류회로를 비롯한 에너지 하베스팅 시스템 개발 연구가 추가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창의형융합연구사업, 한국연구재단 신진연구개발사업,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에너지기술개발사업으로 수행되었으며, 연구 결과는 에너지 분야 국제 학술지인 ‘Advanced Science’에 2023년 1월 표지 논문으로 게재되었다. 
마찰발전 이용한 초음파 무선 전력 전송 기술 개발 
이 밖에도 연구팀은 지난해 초음파 무선 전력 전송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이는 배터리 교체가 번거로운 체내 이식형 의료기기 또는 심해저 센서에 전력을 무선으로 공급하는 기술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의료기술의 발전과 함께 고령화가 가속됨에 따라 인공 심박동기, 제세동기와 같은 인체삽입형 의료기기를 이용하는 환자 수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는 인체삽입형 전자기기의 배터리를 교체하려면 절개수술이 필요하며 이 과정 중 합병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인체 내부에 무선으로 전력을 전송해 배터리를 충전하는 기술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무선 전력 전송 기술은 해저케이블의 상태를 진단하는 센서와 같이 수중 환경에서 배터리를 충전해야 하는 기기에도 필요하다.

대표적인 무선 전력 전송 기술로는 전자기유도 방식과 자기공명 방식이 있다. 전자기유도 방식은 이미 스마트폰과 무선 이어폰 등에서 쓰이는 기술이지만 물이나 금속과 같은 전도체는 통과하지 못하고, 충전거리도 매우 짧다. 

또한 충전 중 발열 문제로 신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자기공명 방식은 자기장 발생 장치와 송신장치의 공진주파수가 정확하게 일치해야만 하므로 와이파이나 블루투스와 같은 무선통신 주파수와 간섭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이에 연구팀은 전자기파나 자기장 대신 초음파를 에너지 전송매체로 채택했다. 이미 바다에서는 초음파를 이용한 소나(Sound Navigation And Ranging; 음파가 해저로 전송되어 물체에 접촉한 뒤 다시 반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해 위치 및 거리를 알아내는 방식) 장비가 보편화된 상태고, 의료계에서는 장기 또는 태아 상태를 진단할 때 초음파를 흔히 쓸 정도로 인체에 대한 안정성이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기존의 초음파를 이용한 에너지 전송 기술은 에너지 효율이 낮아 상용화가 어려웠다.

연구팀은 매우 작은 기계적 진동도 전기에너지로 변환이 가능한 마찰발전 원리를 이용해 초음파를 수신하고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소자를 개발했다. 
마찰전기(Triboelectricity)는 서로 다른 두 물질의 마찰에 의해 각기 다른 전하로 대전되는 고전압 정전기이다. 마찰전기 현상을 이용하면 두 물질 사이의 표면에 대전된 전하가 전기적 위치에너지를 발생시키며, 이를 상쇄하기 위해 가까운 전극 표면에 대전된 것과 반대의 전하가 유도되는, 가리움 효과(Screening effect)에 의해 기계적인 진동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전환된다. 
소자 제작이 매우 간단하며 저렴하게 제작할 수 있어 에너지 하베스팅 용도로 압전시스템과 더불어 매우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마찰 발전기에 강유전물질을 추가함으로써 채 1%도 되지 않던 기존 초음파 에너지 전송효율을 4% 이상으로 크게 높일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6cm 떨어진 거리에서 8mW 이상의 전력을 전송하는 데 성공했고, 이는 200개의 LED를 동시에 켜거나 물속에서 블루투스 무선 센서를 실시간으로 작동시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정도의 수치입니다. 
또한 저희가 개발한 소자는 에너지 전환 효율이 높아 열 발생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 연구성과는 체내 이식형 센서를 사용하는 의료기술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무선 충전을 통해 심장박동을 돕는 심박동기의 배터리를 충전함으로써 수년마다 배터리 교체를 위한 절개술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합병증 및 불편함을 감소시킬 수 있다. 해저 환경의 경우 가까이 근접하지 않고도 에너지 전송이 가능하므로 수중 장비를 고효율 무선 에너지 전송방식으로 운용할 수 있고, 수중 드론 등 차세대 무인 로봇 기술에도 적용할 수 있다.

“장시간 동안 물속 또는 인체 속과 같은 환경에서 안정적인 구동이 가능해야 하는 만큼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이어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신체 내부에 삽입하기 위해서는 임상 테스트가 필요하며, 본 연구에서 활용한 납계 재료는 중금속이기 때문에 비납계 재료를 활용한 개선연구가 필요합니다.”

이 연구 결과는 에너지 분야 국제 학술지인 ‘Energy & Environmental Science’에 2022년 3월 게재되었고, YTN 뉴스 등 각종 언론에 보도되며 큰 관심을 받았다. 
남들과는 다른 독창적 아이디어 개발에 집중
송 박사는 현재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 전자재료연구센터 책임연구원으로 연구팀을 이끌고 있다. 2021년 KHU-KIST 융합과학기술학과 경희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2022년부터 현재까지 KIST-SKKU 탄소중립연구센터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를 맡고 있기도 하다. 이 밖에도 2021년 KIST Young Fellow로 선정된 데 이어 2022년 4월 이달의 KIST인상을 수상하는 등 전자재료 분야에서 그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괄목할 만한 연구성과를 거두며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던 데에는 남들과는 다른 것이 경쟁력이라는 소신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 개발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겠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이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 같습니다. 
그렇지만 남들이 했던 것, 유행하는 분야를 따라가고 싶지는 않아요. 때로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수개월간 고민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을 찾아내 인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한 명의 성공한 사람을 위해 수십, 수백의 실패한 사람들이 나타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들이 가지 않은 개척자로서의 길을 간다는 것은 연구자로서의 뚝심과 용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 과정이 녹록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것을 찾겠다는 그의 소신은 변함이 없었고, 그 결과 전자재료 분야에서 그의 연구력과 노하우는 한층 두터워졌다.

이제 송 박사는 그동안 거둔 성과들을 기반으로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를 실제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후속연구에 매진하는 것은 물론 발전기와 관련해 교류로 발전하지 않고 바로 직류로 발전할 수 있는 직류발전기 개발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연구자가 한발 한발 내딛는 한걸음이 인류의 한 조각조각을 이루고, 세상을 발전시키는 일임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송 박사, 그가 새롭게 그려갈 내일이 더욱 기대된다. 
취재기자 / 안유정(reporter1@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3년 6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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