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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인터뷰] ALICE 국제공동연구팀 한국 대표, 인하대학교 물리학과 권민정 교수

세계 최초로 ‘데드콘’을 직접 관측하다, 양자색소역학의 근본적 특성 검증

인하대학교 물리학과 권민정 교수가 한국 대표로 참여하고 있는 ALICE 국제공동연구팀이 강한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이론의 근본적인 특성인 ‘데드콘(Dead cone)’ 효과를 세계 최초로 직접 관측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데드콘은 양자색소역학의 기본 방정식을 바탕으로 글루온이 방사되지 않는 파톤 샤워의 사각지대를 지칭하며, 종전까지는 간접적으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성과는 쿼크의 질량을 측정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을 뿐 아니라 향후 연구를 통해 바닥 쿼크가 포함된 제트를 측정한다면 데드콘 효과를 정량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나아가 우주 초기물질과 유사한 고온 고밀도 물질을 이해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ALICE 실험, 빅뱅 당시의 원시 우주를 연구
세상을 이루는 근본적인 입자들은 무엇인지, 입자들끼리는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 즉 미시세계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마치 돌을 망치로 깨부수어 구성물을 살펴보듯이 물질을 쪼개어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자를 높은 에너지로 가속시킨 후 충돌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높은 에너지로 가속된 입자는 아주 짧은 파장의 파동적 성질을 갖고 있어서 짧은 파장만큼이나 작은 세계를 살필 수 있고, 에너지-질량 등가원리에 따라 새로운 입자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입자를 높은 에너지로 가속시키는 장치가 바로 ‘가속기’이다. 가속기를 이용하면 미지의 미시세계를 탐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초기 우주의 상태를 실험실에서 재현시킬 수도 있다. 

현존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핵입자 가속기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위치한 거대강입자가속기(LHC)로 2008년 9월 10일부터 공식적으로 가동되었다.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을 넘나들면서 지하 100m 지대에 길이 27km의 가속 터널을 형성하고 있다. 납과 같은 중이온이나 양성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해 충돌시켜 초미시세계를 연구하는 데 활용된다.

거대강입자가속기에는 양성자 및 원자핵들이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두 개의 가속관이 있는데, 여섯 개의 지점에서 두 가속관을 교차시켜 이들을 충돌시킨다. 그중 네 개의 충돌 지점에 엄청난 크기의 입자검출기가 설치되어 있다. 이 입자검출기를 통해 양성자나 중이온이 충돌한 결과 어떤 입자들이 어떻게 새로이 생겨났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LHC의 검출기들은 각각이 매우 거대한 실험실 수준이며 4개의 주된 검출기, 즉 ATLAS, CMS, ALICE, LHCb라 불리는 대형 실험들이 있다. 전 세계 9천여 명의 과학자들이 4개의 대형 국제공동실험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 중 ALICE 실험은 ‘대형 이온 가속기 실험(A Large Ion Collider Experiment)’의 약자로, 인하대학교 물리학과 권민정 교수가 한국 대표를 맡고 있다. 

“한국은 지난 2006년 10월 CERN과 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CMS와 ALICE 실험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힉스입자 발견에 기여한 CMS가 표준모형 입자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한다면, ALICE는 이들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생기는 물질에 대한 연구가 주라고 할 수 있죠. 즉, ALICE 실험은 빅뱅 직후 백만분의 1초 후에 형성되었을 원시 우주를 실험실에서 재현하고 관찰함으로써, 우주 초기 물질의 생성 과정과 상호작용을 밝히고, 이를 통해 우주의 진화 과정 및 강한 상호작용의 근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ALICE 실험에는 40개국, 192개 기관에서 1,900명의 연구원들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9개 연구기관(강릉원주대, 부산대, 성균관대, 세종대, 인하대, 연세대, 전북대, 충북대, KISTI) 50명이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글루온 방사의 사각지대 ‘데드콘’ 존재 증명
거대강입자가속기와 같은 가속기를 이용해 빛에 가까운 속도로 입자를 충돌시키면 쿼크나 글루온과 같은 입자들이 생성된다. 이렇게 생성되는 쿼크와 글루온을 파톤(Parton)이라 부른다. 이 입자들은 더 낮은 에너지의 쿼크와 글루온을 연속적으로 방사하면서 진행하는데, 이를 파톤 샤워(Parton shower)라 한다. 

양자색소역학(QCD) 이론에 따르면 파톤 샤워의 모양새는 날아가는 입자의 질량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즉, 입자가 진행하는 방향을 기준으로 질량과 에너지의 비(질량/에너지) 보다 작은 각도로는 글루온을 방출하지 않는데, 이 사각지대를 ‘데드콘(Dead cone)’이라 부른다. 
사각지대를 의미하는 데드(Dead)와 사각지대의 형태가 원뿔이라는 의미의 콘(Cone)을 합쳐서 만든 명칭이다. 

데드콘 효과는 강한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이론인 양자색소역학의 근본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강한 상호작용은 글루온을 통해 쿼크 간에 생기는 상호작용으로, 자연계의 네 가지 기본 상호작용 중 가장 세기 때문에 강한 상호작용이라 불린다. 

“약 30년 전 물리학자들은 양자색소역학의 기본 방정식을 바탕으로 ‘데드콘’의 존재를 예측했습니다. 이후 여러 실험팀이 검증을 위한 노력을 이어왔지만 간접적으로만 데드콘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죠. 
그러나 양자색소역학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데드콘의 존재를 직접 측정해야 합니다. 더불어 상대론적 중이온 충돌에서는 데드콘의 존재를 통해 우주 초기물질과 유사한 고온 고밀도 양자색소역학 매질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ALICE 실험팀은 데드콘 효과를 측정하고자 수년간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데드콘의 크기는 입자의 질량에 비례하므로 질량이 큰 맵시 쿼크(양성자 질량의 약 1.3배)와 바닥 쿼크(양성자 질량의 약 4배)에서 그 효과가 질량이 작은 쿼크에 비해 크게 나타난다. 이는 진행하는 입자의 질량이 클수록 사각지대가 커져 입자의 진행방향 부근에서는 파톤 샤워로부터 생성되는 입자들의 평균수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DELPHI 실험팀에서는 무거운 바닥 쿼크를 만들어 내는 충돌 사건과 가벼운 쿼크(u, d, s)를 만들어 내는 충돌 사건에서 각각 생성되는 입자 수를 비교해 데드콘 효과를 간접적으로 확인한 바 있습니다. 이후 LHC의 ATLAS 실험팀과 CMS 실험팀에서도 간접적인 확인은 이루어졌으나 직접적으로 데드콘 효과를 검증하지는 못했죠. 입자가 글루온을 방사하면서 진행 방향을 계속 바꾸고 방사된 글루온들도 다른 입자들로 바뀌어서 데드콘의 원뿔형 사각지대를 직접 측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ALICE 실험팀은 LHC에서 얻은 양성자-양성자 충돌 데이터에 최첨단 분석 기술을 적용해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했다. 글루온 방사에 의해 생성된 파톤 샤워는 시간이 지나면서 관측 가능한 강입자 다발로 바뀌게 되는데, 이를 제트라 부른다.
새로운 실험 기법에서는 검출기를 이용해 강입자 다발을 모아 제트를 측정한 후, 제트를 구성하는 입자들을 샤워 패턴에 따라 묶고 나누어 각각의 글루온 방사에 의해 생겨난 파톤 샤워를 구분해 낸다. 이렇게 재조합한 파톤 샤워를 시간을 거슬러 가는 순서대로 재구성함으로써 충돌 초기에 생성된 입자가 글루온을 방사하며 파톤 샤워를 만드는 큰 그림을 모두 재현한다. 이렇게 하면 입자가 지나가면서 글루온을 방사하는 각도와 매 순간 입자의 에너지를 모두 알아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데드콘의 크기는 질량이 클수록 커지기 때문에 맵시 쿼크는 큰 데드콘 사각지대를 만들 것이라 예상된다. 하지만 가벼운 쿼크(u, d, s)나 글루온은 질량이 매우 작아 데드콘에 의한 사각지대가 거의 나타나지 않으므로, 두 경우에 각각 이 분석 기법을 적용한 결과를 비교하면 데드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실험에서는 입자가 지나가면서 글루온을 방사하는 각도 분포의 비율을 구해 특정 각도 영역에서 글루온 방사가 덜 일어나는 사각지대가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글루온 방사 각도가 작아질수록 맵시 쿼크에서 생성되는 글루온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어져 실제로 원뿔형의 사각지대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질량이 큰 맵시 쿼크의 경우엔 글루온이 방사되지 않는 사각지대, 데드콘이 존재함을 직접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쿼크의 질량 측정하는 방법 제시, 연구성과 ‘네이처’ 등재 
데드콘의 관측은 강입자에 속박되지 않은 맵시쿼크가 유한한 질량을 갖고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된다. 쿼크의 질량은 입자 물리학의 기본 양이지만 탑(Top) 쿼크 이외의 쿼크들은 강입자 안에 갇혀 있어서 실험에서 직접 측정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번 연구결과는 데드콘의 크기와 질량의 상관관계를 이용해 쿼크의 질량을 직접 측정하는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리학 이론은 실험을 통해 검증이 되어야만 물리학 법칙으로 인정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델이나 이론이라 불리며 언제든 거짓으로 판명될 여지가 있죠. 이번 연구결과는 강한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표준모형의 이론인 양자색소역학의 근본적인 특성을 직접적으로 검증하고 쿼크의 질량을 직접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 사용한 방법을 이용해 앞으로 얻을 LHC 데이터를 분석하면 보다 정밀히 양자색소역학의 근본적인 특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최근 이루어진 ALICE 업그레이드 작업에서도 입자 충돌 지점에 가장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내부궤적추적 장치를 제작하는 데 핵심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이 업그레이드 된 ALICE 검출기를 이용하면 더 많은 데이터를 이용해 보다 정밀한 측정을 할 수 있다. 

“앞으로 얻을 높은 휘도의 LHC 데이터를 바탕으로 좀 더 무거운 바닥 쿼크를 포함하는 제트를 측정해 데드콘 효과를 보다 정량적으로 이해하고, 바닥 쿼크의 질량도 직접 측정할 계획입니다. 더불어 상대론적 중이온 충돌에서 예견되는 데드콘 효과를 측정해 고온 고밀도의 QCD 매질 내에서 글루온이 방사되며 에너지를 잃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ALICE 실험팀의 궁극적인 목표인 우주 초기물질과 유사한 고온 고밀도의 QCD 매질의 특성을 이해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ALICE 한국 연구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 협력사업의 지원을 받았으며, 이번 성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2022년 5월 18일 게재되었다.
우주의 생성과 진화를 이해하기 위한 도전 계속
권 교수가 이끌고 있는 인하대학교 고에너지핵물리연구실에서는 ALICE 실험 참여를 중심으로 연구를 수행 중이며, 이 밖에 반도체 검출기 개발 연구와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라온’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굵직한 국제공동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연구실의 가장 큰 특징은 연구원들의 협업 능력이 우수하고, 글로벌 스탠다드가 자리 잡혀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연구실에서는 CERN과 평균 일주일에 2회 미팅을 진행하고, 연구원들이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과 토론 및 발표를 직접 한다. 또한 박사과정은 기본 1~2년 CERN에 장기 파견을, 석사과정은 1년에 몇 개월 또는 방학기간 동안 방문해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러한 국제교류 및 해외 파견 연구 등을 경험하면서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 환경을 접하고, 이로써 자신감, 협업 능력, 글로벌 마인드를 함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한 가지, 검출기에서 방대한 데이터가 생성되고, 이를 컴퓨터로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물리학뿐 아니라 하이 레벨 컴퓨팅 스킬 등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넘나드는 다양한 역량을 키울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관련 역량 측면에서 보자면, 연구원들이 단순히 소프트웨어만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하고 사용할지 계획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으로도 권 교수는 연구원들과 함께 우주의 생성과 진화를 이해하기 위한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먼저, ALICE 검출기 업그레이드로 더 많은 데이터와 더 정밀한 측정이 가능하게 된 만큼 데이터 분석 연구를 통해 강한 상호작용을 보다 세밀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전했다. 

또한 2035년 완료를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ALICE 검출기 업그레이드에도 참여하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으로 반도체 검출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는 데에도 힘을 보탤 예정이다. 
우리가 한 번도 접해 보지 않은 세상, 전혀 모르고 있는 우주의 비밀 하나를 찾기 위해 권 교수는 오늘도 미지의 세계를 향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3년 4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취재기자 / 안유정(reporter1@s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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