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 나노포토닉스연구센터에서 나노 소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김인수 박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환경과 에너지 분야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성균관대 손동희 교수와 함께 ‘납 유출을 막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기술’을 개발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활용성을 높였다.
투명 전극 소재를 통해 나노 소재에 관심을 가지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 나노포토닉스연구센터에서 나노 소재를 활용해 다양한 소자를 만들고 있는 김인수 박사는 2017년부터 해당 분야에 대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김 박사가 나노 소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기는 학부 연구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료공학과에서 학부 연구생으로 있을 때, 투명전극이라는 소재에 대한 연구를 접했습니다. 당시에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디스플레이에 대한 연구가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던 시기라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박막 소재에 대해 연구하다 자연스럽게 나노 소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나노 소재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석사 과정에 진학했습니다.” 김 박사의 설명이다.
석사 과정에 진학해 나노 소재에 대해 심화된 연구를 이어가던 김 박사는 ‘연구를 지속해서 진행하다 보면 나노 소재 분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박사 과정에 진학했고 이후, 나노 소재에 대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김 박사는 지난해 12월 성균관대 손동희 교수와 함께 ‘납 유출을 막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기술’을 개발했다. 이 연구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활용도를 더욱 높일 수 있는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의 태양전지는 대부분 실리콘 기반의 소재가 사용되어 왔기에 납 성분의 유출 문제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미미했다.
하지만 최근 주목받고 있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실리콘보다 저렴한 가격과 공정이 쉽다는 장점에 반해 납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일으키고 있다. 인체에 유해함을 고려해 이를 다른 원소로 대체하는 방법도 고안되었지만 그렇게 되면 페로브스카이트 자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에 연구자들의 고민이 깊은 상태다.
이에 김 박사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온전히 활용하면서 납 유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에 연구를 시작했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효율에 관련한 연구가 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납 유출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았습니다.
납 유출과 관련된 환경 안전성에 대한 문제는 물론 전지의 작동 안정성 문제도 있었기에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수분이나 공기, 열 등에 노출되면 망가지게 된다.
김 박사는 기존의 딱딱한 유리 대신 가볍고 유연한 자가치유 소재로 열과 수분에 취약한 페로브스카이트에서 납 성분이 유출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연구를 생각했다.
구부리거나 늘이는 것은 물론 외부 충격으로 소재가 찢어져도 자가치유를 통해 납 유출을 차단할 수 있도록 구상했다.
연구 계획을 수립하자 이후 연구 진행은 막힘없이 진행됐다. 연구에 활용한 기술들을 김 박사가 자체 보유하고 있었기에 약간의 개량을 통해 연구를 진행했다.
“이미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만드는 소자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손 교수가 자가 치유 고분자라는 소재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이 소재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잘 감싸준 후 여러 가지 특성 평가를 진행하며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김 박사의 설명이다.
Figure 1.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수분 또는 열에 노출되면 망가지게 되는데 현재까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완성된 태양전지를 유리로 밀폐처리 하였다. 하지만 유리를 활용하게 되면 작동 안정성은 개선이 되지만 유연성 또는 신축성을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외부 충격에 의해 유리가 깨지면 생체 독성이 높은 납 화합물이 유실될 가능성이 있다.
본 연구에서는 유리 대신 자가치유가 가능한 고분자를 사용하여 태양전지를 밀폐처리 하였다. 그 결과 작동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며 유연/신축성있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제작되었다.
특히, 자가치유 고분자의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외부 충격에 의한 납 화합물 유실을 완벽하게 차단하였다. 뿐만 아니라, 레고 블럭을 쌓는 것과 같이 태양전지, 배터리, 발광다이오드 등의 다양한 소자를 사용자가 원하는 조합으로 구성할 수 있는 DIY 형태의 모듈러 전자 소자의 구현도 가능해졌다.
그 외에도 소자의 수명이 다하게 되면 핵심 구성요소인 ITO 기판을 재활용 할 수 있다는 점 등 여러가지 추가적인 장점이 있다. 기존에는 이러한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수의 추가적인 공정이 필요했으나, 본 연구에서는 자가치유 고분자만을 활용하여 추가적인 공정 없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였다.
<자료제공: 김인수 박사>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안전성에 주목하다
페로브스카이트는 티탄산 칼슘(CaTiO3)으로 이루어진 칼슘 타이타늄 산화광물이다. 이 광물은 1839년에 구스타프 로즈에 의해 러시아 우랄 산맥에서 발견됐다. 당대의 유명 광물학자인 러시아 레프 페로브스키(1792-1856)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페로브스카이트는 최근 태양전지에 응용되며 많은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저렴한 비용, 높은 발전 효율, 반투명성과 유연성 등의 장점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페로브스카이트 소재는 열과 수분에 취약해 외부환경과 차단을 위해 유리 기반의 봉지 공정을 거치는데 이 봉지용 유리는 얇기 때문에 외부 충격에 의해 손상될 우려가 높다. 또한 딱딱한 유리를 활용하기에 신축성이 필요한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에 응용되기에 한계가 있었다.
김 박사의 연구팀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찢어지는 등의 손상이 있을 때 수소결합을 통해 손상된 부분을 회복하는 자가치유 고분자를 봉지막과 전극소재로 적용했다. 실제 자가치유 고분자 소재로 봉지된 페로브스카이트 기반 태양전지를 고온의 환경에 노출하고 우박으로 인한 충격을 인위적으로 재현했을 때 손상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에서 흘러나온 납 화합물의 양을 확인했다.
연구 결과, 납 화합물의 유출량은 0.6ppb 수준으로 나타나 5.6ppm 수준의 기존 유리 방식 봉지기술 대비 5,000배 가량 높은 납 유출 차단 효과를 거뒀다.
최근에 발견되는 많은 신소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좋은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안정성 및 독성 등의 문제가 따라온다.
김 박사가 개발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납 유출 방지 기술은 독성과 작동 안정성 문제를 모두 해결한 만큼 범용성 기술로 다양한 신소재에 활용할 수 있다.
또 이 기술을 활용하면 마치 레고 블럭을 쌓듯이 태양전지, LED, 센서 등 사용자가 원하는 조합의 모듈을 구성하여 핸드폰에 바로 연결할 경우, 다양한 DIY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납 유출을 막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기술 개발’ 연구의 성과는 2021년 11월 29일 나노소재 분야 국제학술지 ‘에이씨에스 나노’에 게재됐다.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에너지, 환경 문제 해결에 집중하다
현재 김 박사는 자가 치유 고분자 소재를 개량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김 박사가 보유하고 있는 표적형 원자층증착법이라는 기술을 활용해 자가 치유 폴리머를 이용한 금속 산화물복합체를 만드는 연구가 그것이다.
원자층증착법은 일반적으로 박막을 만드는 기술이다. 하지만 김 박사가 가지고 있는 표적형 원자층증착법은 박막을 만들기보다는 신소재 또는 나노 소재 분야에 활용성을 확장시킨 기술이다.
“금속 유기 골격체라는 다공성 소재가 있습니다. 그 안에는 많은 기공들이 있어 표면적이 매우 큽니다. 이 소재의 1g은 축구장 하나와 비슷한 표면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촉매나 가스 저장 등에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다공성 소재는 대부분 그 자체로는 촉매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즉, 활성도가 낮기 때문에 다공성 소재를 금속 등 타 소재로 기능화해줘야 촉매나 가스 저장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금속 유기 골격체를 기능화하는 작업을 용액상에서 진행해 왔다. 하지만 기능화 작업 후 용액이 모두 빠져나가면서 모세관 힘 때문에 기공들이 다 무너져 내리고, 표면적이 작아지는 단점이 있었다.
김 박사가 보유하고 있는 표적형 원자층증착법은 기체 상태에서 반응을 진행하기 때문에 모세관 힘에 의해서 기공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또 선택적으로 원하는 곳에 금속 등의 소재를 입힐 수 있어 더 효과적으로 다공성 소재를 기능화할 수 있다.
김 박사는 이러한 기술을 활용해 미세먼지 포집, 바이러스 포집, 도시 열섬 현상을 해결 등 환경 분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구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극자외선(EUV) 리소그래피라는 기술의 활용도 구상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에서 패턴 크기가 작아지면서 공정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고분자가 미세한 패턴을 형성하는 블럭공중합체와 표적형 원자층증착법을 활용하면 EUV 리소그래피 과정에서 아주 깨끗한 패턴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이 분야의 연구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김 박사는 소재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만큼 반도체 분야나 환경 분야에서 소재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응용 분야들을 두루 찾아보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내가 가진 소재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없을까’를 고민하며 자신이 가진 기술을 소자나 응용 분야에 맞게 개량하고, 에너지나 환경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고심 중이다.
김 박사는 자신의 연구 성과가 연구팀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아이 둘과 가족을 꾸리고 있는데 부모님이 아이들을 돌봐주시고 아내가 아이들 양육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저희의 연구에 대해 알고 계시지만, 이 같은 연구 성과 뒤에는 가족 등 여러 조력자들의 노력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족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한 김 박사는 연구 외에도 새로운 연구자들의 양성, 좋은 연구자들 배출에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의 가시적인 성과도 중요하지만 탄탄한 기초를 갖추고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연구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김 박사. 그의 연구가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취재기자 / 박아영(reporter3@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2년 4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