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은 어디서부터 왔으며, 어떻게 상호작용해 이 우주를 형성하게 되었을까?
이 같은 인간의 원초적인 호기심은 모든 물질의 가장 기초에서부터 밝혀져야 한다. 모든 물질은 기본입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물질의 구성 요소인 기본입자가 무엇인지뿐 아니라 이들이 어떠한 상호작용을 통해 결합하는지도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다.
현재 물리학에는 네 가지 상호작용이 알려져 있는데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이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강력과 약력은 그 작용범위가 짧아 보통의 주변 환경에서는 경험하기 힘들다.
우주가 생겨난 최초에 기본입자들을 엮어주기 시작한 힘인 강력과 약력에 대한 탐구는 현재 전 세계 연구자들을 통해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최근 ALICE 국제공동연구팀을 통해 강한 핵력이 작용하는 초미시세계에서 입자간의 강한 상호작용에 대한 새로운 성과를 얻었다. 이에 ALICE 국제공동연구팀의 한국팀 대표인 인하대학교 물리학과 윤진희 교수를 만나 이번 성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강상호작용의 상관관계를 밝혀내다
최근 ALICE 연구팀은 양성자간 충돌에서 생성된 강입자간 운동량 차이를 측정해 모든 강입자 사이의 강상호작용의 상관관계를 밝혀냈다. 특히, 이번 연구를 통해서 강력이 작용하는 영역인 1펨토미터(10-15미터) 정도의 초미시세계를 탐사할 수 있는 펨토스코피 기술이 완성되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
쿼크들이 결합해서 만들어지는 입자를 통칭해서 강입자라고 하는데, 물질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양성자나 중성자는 모두 강입자에 속한다. 현재 입자가속기의 개발로 인해 많은 종류의 강입자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의 상호작용을 밝히는 것은 현재 물리학자들에게 안겨진 숙제이다. 이런 상호작용은 직접 측정하기는 불가능하고, 모델을 통해 예측하는 이론값을 측정값과 비교함으로써 가능하다.
특히, 무거운 쿼크를 포함하는 강입자의 상호작용은 실험적으로 무척 어렵기 때문에, 이를 탐색하는 것은 현재 핵물리학의 가장 큰 도전 중 하나인 것이다.
이 같은 도전의 벽을 뛰어넘는 중요한 결과가 바로 이번 ALICE 연구팀의 성과다. 연구팀은 양성자와 양성자간의 충돌에서 생성된 강입자 간의 운동량 차이를 측정하는 기술을 사용해 하이퍼론과 양성자 사이의 강상호작용을 밝혀냈다.
하이퍼론은 무거운 쿼크 중에서는 그나마 제일 가벼운 기묘쿼크를 포함하는 강입자를 일컫는데, 무거운 쿼크로 이루어진 강입자 중에서는 가장 많이 생성되는 강입자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1펨토미터 정도의 초미시세계를 탐사할 수 있음으로 이를 펨토스코피라 부른다.
이 영역이 대략 강입자의 크기에 해당하며, 강력이 작용하는 영역인데, 이번 연구는 하이퍼론 뿐 아니라 모든 강입자들의 상호작용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러한 방법은 이전에 ALICE 팀이 기묘도가 1인 람다나 시그마 입자, 기묘도가 2인 Xi 입자들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데 사용된 바 있는데, 이번 연구팀의 연구 결과 가장 희귀한 하이퍼론인 기묘도3의 오메가 입자와 양성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같은 방법을 통해 매우 정밀하게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양자역학적으로 아주 작은 영역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운동량이 필요한데, 이번 연구를 통해 거대강입자충돌기에서 발생하는 희귀한 강입자들을 아주 높은 운동량까지 측정함으로써 지금까지는 관찰할 수 없었던 펨토미터 영역을 탐사하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즉, 전자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초미시세계의 영역을 볼 수 있는 현미경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펨토미터의 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보다
1펨토미터 정도의 초미시세계를 탐사할 수 있는 펨토스코피 기술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ALICE 국제공동연구팀의 한국팀 대표인 인하대학교 물리학과 윤진희 교수는 드디어 쿼크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실마리를 얻게 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펨토미터는 핵자*의 크기로, 이제까지의 실험들은 이보다 더 가까운 영역에서의 상호작용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즉, 핵자 내부를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핵자: 핵을 구성하는 입자들로써 양성자나 중성자 뿐 아니라 쿼크 세 개로 이루어진 입자들을 총칭해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연구를 통해 드디어 펨토미터 이내를 들여다보는 방법을 확인했고, 드디어 쿼크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
윤 교수는 “이제까지 가로막고 있었던 펨토미터의 벽을 뛰어넘어 내부를 탐사하는 기술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라고 전했다.
이번 연구는 인간의 원초적인 호기심인 ‘물질은 어디서부터 왔으며, 어떻게 상호작용해 이 우주를 형성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다. 이러한 기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나면, 그 응용은 무궁무진하다.
우주의 진화과정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고, 언젠가는 쿼크들의 결합에너지를 현실에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한 세상이 올 수 있다.
윤 교수가 참여한 ALICE 실험이 바로 이러한 무궁무진한 세상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연구인 것이다.
ALICE 국제공동연구의 성과
이 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희귀한 종류의 강입자를 식별하고 운동량을 측정하는 검출기의 뛰어난 성능 덕분이다.
검출기의 생산과 연구를 이뤄낸 ALICE 실험은 유럽 핵입자물리연구소의 거대강입자 가속기를 둘러싼 네 개의 대형 국제 공동실험 중 하나로, 39개 국가 175개 기관 19,00여 명의 연구자가 참여하고 있다.
연구팀은 빅뱅 후 백만분의 1초 후에 형성되었을 원시 우주를 실험실에서 재현하고 관찰함으로써, 우주 초기의 물질의 생성과정과 상호작용을 밝히고 우주의 진화과정을 예측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물질의 근간이 되는 작은 입자들 간의 상호작용을 실험하는 가속기는 CERN(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의 거대강입자 가속기이며, 이를 개발하는 ALICE 실험에는 한국에서는 8개 기관 40여 명의 연구자가 참여하고 있다.
이번 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거대강입자 가속기는 하이퍼론이 많이 생성한다는 것, 단거리 특성을 조사할 수 있는 펨토스코피 기술을 갖고 있었다는 것, 입자를 식별하고 운동량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검출기, 이 세 가지 요인이다.
앞으로도 거대강입자 가속기를 기반으로 ALICE 실험을 통해 모든 강입자 쌍에 대한 강상호작용을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ALICE 연구에 오랜 시간 참여하며 연구를 계속해 온 윤 교수는 이번과 같은 국제적인 연구성과를 한국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과학에 대한 이해와 지원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윤 교수는 “초기에 한국에서 관심이 있는 연구자의 개인 연구비로 참여하기에는 연구비의 지속성이나 성격 등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06년부터 정부에서 CERN 연구소와의 MOU를 통해 안정적인 지원을 해줌에 따라 연구자의 수나 국제적 인지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공동연구에 참여하며 이 같은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었다는 데 연구자로서 뿌듯함을 느낀다. 앞으로도 ALICE 연구를 지속해 물리학에서 풀지 못하는 숙제를 풀어나가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강입자 간 상호작용 연구 지속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지난해 12월 9일에 게재되었으며, 이번 연구 성과는 앞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고휘도 빔에서 더 많은 충돌이 가능해져 더 무겁고 희귀한 강입자들의 상호작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연구를 통해 업그레이드 된 검출기는 좀 더 충돌지점에 가까이에서 정밀하게 입자를 식별하고 에너지를 측정할 수 있어짐에 따라 모든 종류의 강입자에 대해 펨토스코피 방법을 적용해 다양한 강입자 간의 상호작용이 연구될 수 있다.
윤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앞으로 강상호작용의 속성을 완벽하게 알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 연구팀의 연구역량을 높이고, 연구 인력 양성, 국내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ALICE 연구를 통해 업그레이드된 거대강입자 검출기를 통해 연구의 새로운 도약을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연구팀은 거대강입자 검출기의 업그레이드 작업에서 강입자 충돌 지점에 가장 가까이 위치한 내부궤적검출기를 개발하고 제작하는 데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
이번에 업그레이드 된 검출기를 이용하면 앞으로 더 많은 데이터와 더 정밀한 측정이 가능하게 되어 이를 통해 하이퍼론 뿐 아니라 매혹입자를 포함하는 강입자와의 상호작용을 밝힐 수 있게 되어 강상호작용을 보다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성”
기초과학은 눈앞의 작은 성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닌 인간의 가장 궁극적인 호기심으로부터 시작해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힘이다. 호기심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연구는 이러한 호기심을 해결하며 새로운 것을 발견해나간다.
윤 교수가 참여하고 있는 ALICE 연구는 바로 한 번도 접해 보지 않은 세상, 전혀 모르고 있는 우주의 조각을 찾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처럼 그 조각 하나를 발견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알려진 세상의 구조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윤 교수는 아직 완전히 알지 못하는 이 세상에 대해 ALICE 실험을 통해 이 전에 우리가 모르던 사실, 그 한 조각을 알아내고자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 오랜 시간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성실성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뛰어난 지식도 성실성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구 윤리도 중요하고, 기본 지식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성이라고 생각한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아무리 뛰어난 지식을 갖추었어도 성실성을 따라가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랜 연구를 지속하며 국제 공동연구에 참여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한 조각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윤 교수의 이번 연구 결과는 강한 핵력의 세계를 정밀 탐구하는 것은 물론, 1펨토미터 초미시세계에서의 입자간 상호작용을 밝히는 실마리로써 초미시세계의 새 지평을 연 연구로 평가받고 있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1년 6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