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대중에게 생소했던 3D프린팅(적층제조)은 이제 제조의 한 축으로 중요성을 인정받으며, 첨단산업 현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술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3D프린팅 시장이 해마다 높은 성장률을 보이면서 적층제조 특화설계(DfAM, Design for Additive Manufacturing)*
또한 3D프린팅 분야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전통적인 제조 방식은 그에 맞춰진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이 오랜 시간 지속되어 왔지만, 적층제조(AM, Additive Manufacturing)의 역사는 30년에 불과하고, 기존의 방식과 반대되는 방식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디자인인 DfAM이 필수적이다.
이에 세계적으로 DfAM 관련 기술 개발이 한창인 가운데 국내에서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박근 교수 연구팀이 DfAM 기반 혁신적 설계기법 연구를 수행, 괄목할 만한 성과를 속속 내놓으며 산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적층제조 특화설계(DfAM): 3D 프린팅과 같은 적층제조 기술에 권장되는 설계 방법론.
DfAM, 기존 제조 공정의 한계를 뛰어넘다
3D프린팅은 쉽게 말해 프린터로 물체를 뽑아내는 기술을 말한다. 프린터로 평면의 문자나 그림을 인쇄하는 것이 아니라 입체모형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프린터는 잉크를 사용하지만, 3D프린터는 플라스틱, 금속 등의 기능성 소재를 사용하고 3차원 모델링 파일을 출력 소스로 활용한다.
3D프린팅 기술을 사용하면 기존의 생산 방식에서 벗어나 어떤 제품이더라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제조업의 혁신,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대부분의 3D프린터에서 사용하는 방식은 적층제조식이다. 단면을 적층해 3차원 형상을 제조하는 방식으로 기존 양산 기반 제조 공정과 달리 다품종 소량 생산에 효과적으로 적용이 가능하다.
최근 적층제조 공정은 금속 프린팅의 발전 등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기존의 시제품 제작에서 제품의 직접 제조로 영역을 넓혀가는 추세다.
이에 따라 적층제조 특화설계(DfAM)의 중요성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DfAM은 기존의 기계가공이나 금형 기반 양산 공정에서 적층제조 공정의 설계 복잡도(Complexity)로 인해 불가능했던 제품의 제조를 가능하게 만들어 기존 제품설계 개념을 바꿀 수 있는 혁신적인 설계기법으로 전망되고 있다.
설계 관점에서의 적층제조 공정 복잡도는 형상 복잡도(Shape complexity), 계층적 복잡도(Hierarchical complexity), 기능적 복잡도(Functional complexity), 재료 복잡도(Material complexity) 등 4가지가 있다. 이런 구조와 소재의 복잡성, 스케일의 복잡성 등의 문제 때문에 기존 공법으로는 제작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제작 비용 및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하는 경우 DfAM이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적층제조 공정을 사용하면 제품의 직접 제조가 가능하지만 제조시간 및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아직은 기존의 생산 공정을 대체하기에는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DfAM은 적층제조 공정의 복잡도를 십분 활용해 기존 제조 공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신개념의 설계가 가능하죠. DfAM 설계를 적용하면 표면 미세구조, 다공경량구조, 부품일체화 설계, 위상최적화, 내부구조물, 다중재료 복합구조 등의 구현이 가능해 기존 제품의 성능을 향상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혁신적인 제품 개발이 가능합니다.”
최근 들어 DfAM 기술에 대한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도 뜨겁다.
벨기에의 Materialise은 DfAM 전용 소프트웨어인 3-Matic을 출시해 위상최적화, 표면/내부 격자구조 생성 등의 기능을 지원하고, 미국 Autodesk는 2015년 적층제조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Netfabb를 인수해 자사의 위상최적화, 경량구조설계 등을 포함한 DfAM 솔루션으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또한, 다쏘시스템(CATIA), 지멘스(NX) 등의 글로벌 CAD 솔루션 기업들도 최근 DfAM 설계 기술에 AI를 접목한 Generative Design 개념을 도입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했을 뿐 아니라 MSC(Nastran), ANSYS 등의 CAE 전문 기업에서도 Additive Manufacturing 모듈을 출시해 위상최적화, 경량구조 해석, 프린팅 공정 시뮬레이션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CAD/CAE 업계를 중심으로 DfAM 설계 및 관련 시뮬레이션(CAE 해석) 시장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에 국내에서도 DfAM 설계 기술에 대한 이론적 정립 및 응용기술 개발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D프린팅 분야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겨 온 박근 교수가 적층제조 공정의 4가지 복잡도를 활용한 DfAM 기반 혁신적 설계기법 연구에 나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DfAM 기반 혁신적 설계기법 연구 수행
박근 교수가 이끄는 이번 연구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비단 DfAM이라는 연구주제의 화제성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선행연구를 통해 의미 있는 연구성과를 창출하고 기술을 축적해 온 만큼 다양한 산업 분야에 실제 적용할 수 있는 기술들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행해 온 박근 교수의 대표적인 연구성과들을 살펴보면, 먼저 적층제조 관련 분야의 경우 3D스캐닝과 3D프린팅을 연계한 개인맞춤형 캐스트를 개발한 바 있다.
특히 캐스트에 다공성 구멍을 형성한 하이브리드 구조를 적용해 통기성을 높여 의료 현장에서의 적용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3각형 격자구조 기반 다공성 구조물 자동설계기술, 4면체 격자구조 기반 3차원 경량구조물 자동설계기술 개발에 성공해 DfAM 설계기법 연구에 대한 기반을 다져 왔다.
DfAM 적용 경량구조물 자동설계기술 개발 관련 내용은 기계공학 분야 세계 상위 7%의 국제 저명 학술지인 'IJPEM-Green Technology(IF: 4.561)’에 2018년 논문이 게재되었고, 한국정밀공학회 뉴스레터에 우수연구사례로 소개되었다(제목: 꽃잎 위에 올라서는 경량구조물, 화분 전체의 무게를 버티다).
CAE 및 최적설계 관련 분야에서는 CAE 해석과 반응표면분석을 연계한 최적설계 관련 연구를 수행했고, 구조/열/유동 등 다양한 분야의 CAE 해석을 연계한 다중물리계 전산모사(Multiphysics simulation)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에서의 DfAM 응용에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우수한 연구에 힘입어 박근 교수는 2014년 대한기계학회 효석학술상, 2016년 한국정밀공학회 학술상 수상에 이어 2017년에는 정보통신진흥원으로부터 3D프린팅 산업유공자로 선정되었고, 2019년에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로부터 제29회 과학기술 우수논문상을 수상하는 등 연구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박근 교수는 적층제조 연구 경험과 CAE 및 최적설계 기술, 미세구조물 제조 경험 등을 기반으로 지난해부터 한국연구재단 지원 중견 연구자 사업으로 ‘적층제조 특화설계 기반 혁신적 설계기법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적층제조의 장점인 4대 복잡도를 활용한 적층제조 특화설계 기법의 기반기술 확립 및 응용기술 개발을 목표로 하며, 1단계인 3차연도까지 기반기술을, 2단계인 5차연도까지 응용기술 개발에 전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종횡 3D프린팅 통한 형상기억, 4D프린팅 기술 개발
DfAM 설계기법 기초 연구에 중점을 두었던 지난해에는 위상최적화 기술과 구조해석 기술을 연계한 자동차용 부품 경량설계 및 최적화 연구를 수행해 금속 프린팅 기술을 이용한 시제품 제작과 특성 평가를 마쳤다.
이와 함께 형상기억 기능이 없는 일반 열가소성 필라멘트로 프린팅 방향을 조절해 열적 이방성을 부여함으로써 열을 가하는 시간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4D프린팅 기술을 개발했다.
3D프린팅 분야에서는 형상기억수지*나 합금을 활용해 일정 조건과 시간에 따라 형상이 변화하는 4D프린팅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형상기억수지: 물질이 만들어진 처음 상태와 같은 조건(온도, 빛, 습도 등)을 만들어 주면 본래의 모양으로 되돌아가는 고분자 소재.
그러나 형상기억수지를 사용하려면 소재와 3D프린터가 제한적이어서 확산이 어려웠다. 이에 연구팀은 일반 열가소성 필라멘트(ABS)와 재료압출(ME, FDM) 방식 3D프린터로 가로와 세로로 순차적으로 연속 적층해 형상기억 효과를 나타내는 기술 개발에 나섰다. 가로와 세로로 인쇄된 층의 열 변형 차이를 응용한 것이다.
“이방성 열 변형을 활용해 0.2mm 두께로 총 8개의 층을 가로·세로 방향으로 적층된 시편이 유리전이 온도 이상으로 가열되면 잔류응력 차이로 인해 세로 방향으로 인쇄된 시편은 길이가 감소하고, 폭이 증가하는 변형이 발생합니다.
반면, 가로로 인쇄된 시편은 길이가 증가하고 폭이 감소하는 반대 변형이 이뤄지게 되죠. 실제로 별 모양의 형상을 3D프린팅한 후 150℃에서 15분간 열처리한 결과 예상대로 꽃받침 형태로 변화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개발된 4D프린팅 기술은 형상기억수지와 달리 변형한 뒤에는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재활 기구 등 개인 맞춤형 도구 제작에 유용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향후에는 헤어드라이어처럼 일상 도구로도 쉽게 변형을 유도할 수 있도록 반응온도를 낮추는 연구도 병행할 예정입니다. 3D프린팅은 비싸고 복잡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더 많은 애플리케이션을 발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연구를 추진하겠습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재료공학 분야 국제전문학술지 ‘Materials & Design(IF: 5.770)’ 2020년 3월호에 게재되며 주목을 받았으며, 세계적인 3D프린팅 사이트인 ‘3dprint.com’ 사이트에서 우수 연구성과로 소개되기도 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올해에는 미세 격자구조를 적용한 Functionally Graded Lattice 설계 및 제작을 추진해 관련 논문이 생산공학 분야 1위 국제전문학술지 ‘Additive Manufacturing(IF: 7.173)’ 2020년 5월호에 소개되었다.
미세 격자구조 설계 및 유연 고분자소재를 사용해 제작했으며, 격자구조 설계 및 제조 방법을 다양화해 강성을 최대 10만 배까지 변화시킴으로써 Self-positioning, Self-guided movement 등의 기능을 구현했다.
또한, DfAM 설계기법 중 위상최적화를 적용해 장애인 아이스하키용 썰매 프레임 경량 설계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팀의 설계안을 바탕으로 금속 프린팅 공정을 사용해 4개의 연결부를 제작했으며, 제작된 연결부를 환봉재와 조립해 경량화된 외절단 선수용 아이스하키 썰매 프레임의 무게를 20% 정도 절감 시켜 경기력 향상에 활용할 전망이다.
제작품은 추후 국가대표 선수에게 적용해 테스트 과정을 거치게 되고, 관련 논문은 2020년 6월 한국정밀공학회지에 게재될 예정이다.
산업화를 염두에 두고 연구의 방향을 기획, 진행
박근 교수의 연구는 앞서 소개한 DfAM 연구와 금형/성형 연구를 두 축으로 삼아 진행되고 있다. 금형/성형 분야에서도 오랜 시간 연구 경험을 쌓으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창출해 왔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사출성형 CAE에 중점을 두고 연구를 수행했다면,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광학부품 사출성형, 2005년부터 2010년까지 급속 금형가열,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초음파 임프린팅* 연구에 주력했다.
*초음파 임프린팅: 고분자 기판/필름 표면에 초음파 가진을 부여해 고분자 표면을 국부적으로 가열, 연화시키면 연화된 고분자 소재가 공구혼/금형 표면에 각인된 미세 채널 내부로 충진되어 미세형상이 형성되는 기술이다. 열에너지 대신 초음파를 사용하기 때문에 에너지 절감, 성형 시간 단축 등의 장점을 지닌다.
박근 교수는 초음파 임프린팅을 사용한 마이크로/나노 기능성 미세패턴 성형기술을 개발해 선택적 임프린팅 기술, 반복적 임프린팅 기술, 곡면 미세패턴 형성기술에 대한 특허를 획득했다.
먼저 선택적 임프린팅 기술(관련 특허 10-1151220)은 초음파 임프린팅 시 혼과 소재(필름) 사이에 임의 형상의 마스크 필름을 삽입해 Masking 영역만 연화되어 미세패턴이 선택적으로 복제되는 방식이다.
단일 미세패턴 금형을 사용, 다양한 영역에 대해 선택적으로 미세패턴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패턴 영역 변화 시 미세패턴 금형을 다시 제작해야 하는 기존 공정의 불편을 해소시켰다.
미세패턴이 복제된 시편 또는 금형을 회전 시켜 초음파 임프린팅 공정을 반복 수행하는 반복적 초음파 임프린팅(관련 특허 10-1427160) 기술은 초음파를 통한 국부적인 마찰열을 이용해 기 형성된 미세패턴 위에 새로운 형태의 미세패턴을 형성할 수 있다.
단일 금형을 사용해 별도의 금형 제작 및 교체 없이 복잡한 형상의 미세패턴 복제가 가능하며, 선택적 초음파 임프린팅과 연계해 단일표면 내 다양한 복합 미세패턴을 제조할 수 있다.
또한 미세패턴 함유 기능성 표면의 경우 곡면 형태로 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나 미세패턴이 각인된 금형을 곡면 제작하는 데에는 가공의 어려움이 따른다.
이에 박근 교수 연구팀은 양각의 경질 공구혼과 음각의 연질 몰드를 사용해 적절한 초음파 가진** 을 부여하고, 초음파 성형의 국부적인 고분자 연화특성을 이용, 기 형성된 미세패턴 손상 없이 곡면부를 형성하는 곡면 미세패턴 형성기술(관련 특허 10-1554528)을 개발했다.
**가진: 초음파로 진동을 일으켜서 패턴을 만드는것.
이처럼 기반기술을 확립한 연구팀은 선택적 젖음특성 및 광특성 등 다양한 기능성을 구현하려는 노력을 지속하는 한편 응용기술로 초음파 성형기술을 이용한 휴대폰용 마이크로스피커 진동판 제조기술, 초음파 성형기술과 적외선 보조거열을 적용한 TV용 스피커 진동판 제조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박근 교수는 앞으로도 금형/성형 기술 개발과 함께 DfAM 연구의 완성도를 높여 나가는 데에 중점을 두고 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다.
아울러 개발한 기술들이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다짐도 내비쳤다.
“평소 연구원들에게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산업화를 염두에 두고 연구의 방향을 기획, 진행하라는 것입니다.
제조를 배제한 설계는 단지 설계를 위한 설계에 불과할 뿐이죠. 개발한 기술들이 진정한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단순히 논문을 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산업화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연구의 완성도를 높여 산업화에 더욱 더 다가가는 것은 물론 제조 공정의 혁신을 이끌어 갈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도록 전력을 쏟을 계획입니다.”
그동안 창의적인 사고, 연구자의 사명, 다양한 분야와의 소통, 그리고 실천으로 연구라는 그림을 아름답게 완성해 온 만큼 향후 연구에도 관심이 쏠린다.
연구자가 한발 한발 내딛는 한걸음이 인류의 한 조각조각을 이루고, 세상을 더욱 이롭게 만드는 일임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박근 교수, 그가 새롭게 그려갈 내일이 더욱 기대된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0년 6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