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나 여타의 동물, 식물은 모두 생명체이다. 생명체들은 유전자를 통해 생명을 유지하고 후손에게 자신의 특질을 전승한다. 이러한 생명체들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유전자들을 ‘최소유전체’라고 한다. 지난 3월, 최소유전체의 생장원리를 규명한 KAIST의 조병관 교수를 만나 연구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다.
최소유전체 생장 원리 규명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 개수는 몇백 개에서 수십만 개까지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유전자의 차이는 생물의 특성과 그 생명이 살아가는 환경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바다에 서식하는 생명체들은 육상생물의 허파 대신 아가미가 필요한 만큼 이와 관련한 유전자가 발달한다. 하지만 육지나 바다 등 다양한 환경에서 사는 생물들은 같은 생명체로서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서식하는 환경 등에 따라 각기 다른 유전자로 구성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생명체라는 공통점 아래 오직 생명 유지만을 위한 최소한의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을까?
이렇게 육지나 바다 등 다양한 환경에서 사는 생물들은 모두 생명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서식하는 환경 등에 따라 각기 다른 유전자로 구성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생명이라는 공통점 아래 오직 생명만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유전자 수는 얼마나 될까?
최소유전자에 관한 관심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어 식물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광합성 과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햇빛과 이산화탄소가 요구된다. 만약 식물에 이산화탄소와 햇빛이 없는 상태에서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한다면 광합성 유전자가 필요 없어지니 이에 관한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제공했을 때 마지막까지 꼭 필요한 유전자가 필수 유전자이다. 생명체의 게놈을 구성하는 수많은 유전자 중에서 이 필수 유전자만 남기고 모두 삭제한 상태가 ‘최소유전체’이다.
KAIST 생명과학기술대학 생명과학과 조병관 교수는 지난 3월, 이러한 최소유전체의 생장 원리를 규명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최소유전체란 생명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유전자 이외에 불필요한 유전자를 모두 제거한 유전체로 불필요한 유전자의 전사, 번역 및 이로 인해 낭비되는 대사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인 유전체입니다.” 조 교수의 설명이다.
최소유전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생명현상에 필수적인 유전자 집합을 알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이를 알더라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최소유전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수백 가지 유전자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규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현재의 과학 기술로는 유전자 발현이 어떻게 조절되는지, 또한 유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규명하기 쉽지 않다. 또한 기존에 구축된 최소유전체 미생물들은 성장 속도가 느리거나, 유전자 회로 구축이 어려운 등의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조 교수는 이러한 문제점을 초래하는 유전자를 일일이 분석하기보다는, 발상을 전환하여 문제에 접근했다.
우선 성장 속도가 감소한 최소유전체의 성장 속도를 회복시킨 후, 유전체의 변화를 분석하여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자연계에서 수십~수백만 년에 걸쳐 진행되는 진화 과정을 실험실에서 재현·가속한 적응진화기법*을 진행했다.
*적응진화기법: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환경에 적응하는 진화 과정을 실험실에서 모방하는 실험 기법으로, 수천 개 유전자의 상호작용을 정확히 알지 못해도 원하는 특성 등을 얻어내는 실험 기법이다.
실험실 조건에서 60일간 최소유전체 세포를 매일 2회씩 계대(세대를 거듭함) 배양하자 최소유전체 대장균의 성장 속도가 일반 대장균과 동등한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진화한 최소유전체 대장균의 유전체, 전사체, 단백체, 대사체, 상호작용체 등의 오믹스 결과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동시에 분석하는 다중오믹스(Multiomics) 연구를 통해 성장 속도 회복의 원인이 되는 118개의 돌연변이를 발견하였고, 특히 DNA의 유전자 정보를 mRNA로 전사하는 RNA 중합 효소의 돌연변이로 인하여 세포 내의 전체적인 유전자 발현이 재구축(Reprogramming)되어 최소유전체의 대사 경로와 유전자 발현이 일반적인 미생물과 완전히 다른 것을 분석해냈다.
조 교수 연구팀은 기존 최소유전체 제작 시 설계 단계에서 이러한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장 속도 저하 등의 문제가 발생하였음을 알아내고, 이번 연구를 통해 이를 해결하고 최소유전체에 알맞은 대사과정 및 유전자 발현 패턴을 규명함으로써 향후 최소유전체 제작 및 이를 이용한 다양한 응용 연구의 초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 글로벌프론티어사업, 해양극지원천기술 개발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된 이번 연구는 지난 3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되었다.
연구 통해 합성 유전자 디자인 가능
유전자합성 과정에서 최소유전체는 디자인할 유전체들의 거푸집 역할을 한다. 생명 현상 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은 가지고 있지만 불필요한 대사경로 및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푸집에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해당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세포공장을 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최소유전체에는 일반 미생물에 적용되던 여러 가지 유전자 도구들과 설계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데, 최소유전체가 일반 미생물과는 상당히 다른 대사과정과 유전자 발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소유전체의 생장 원리를 규명한 조 교수의 연구는 최소유전체를 이용하여 다양한 산물을 생산하는 세포 공장을 구축할 방안을 제시한 연구로 중요성을 가진다.
대장균 최소유전체의 분석 결과, 적응진화 최소유전체는 포도당을 분해하여 에너지와 양분을 얻는 해당 과정에서 대부분 생물이 주로 이용하는 EMP 경로가 아닌 ED 경로를 주로 이용하는 것을 발견했다. ED 경로를 이용하는 최소유전체는 포도당을 일반 대장균보다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고, 월등히 높은 환원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환원력: 세포 내에서 화합물을 합성할 때 사용하는 에너지; NADPH/NADP+로 대변됨.
이러한 특징을 이용하여 합성에 다량의 환원력이 소모되는 고부가가치 화학물질인 리코펜 및 비올라세인 생산에 최소유전체를 활용한 결과, 일반 대장균 대비 최대 1.8배 높은 생산량을 보여 최적의 최소유전체 제작에 성공하였다.
뛰어난 성과를 거둔 연구이지만 어려운 점도 많았다. 연구에 이용된 적응진화와 차세대 서열분석을 기반으로 한 다중오믹스 분석은 유전체학, 단백질, 대사공학, 생화학, 생물정보학 등 각각의 분야에서도 최첨단의 기술을 이용한 분석 방법으로 하나의 연구팀에서 모든 전문성을 가지고 수행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국내외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참여하여, 서로 맡은 연구를 진행한 후 이를 하나로 통합하고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분석을 이해하고 전체적인 시각에서 이해하기 위해 투자한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해결되었다.
조 교수는 “우리 연구팀을 믿고 지원해준 바이오합성사업단, 많은 공동 연구자들과 연구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인슐린 등의 단백질 의약품을 대량 생산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라이코펜 등 유용한 바이오소재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해당 연구를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최소유전체 연구는 최소유전체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일련의 과정을 통해 최소유전체를 구축하여 보고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최소유전체 구축 이후 이에 대해 폭넓고 깊은 분석과 후속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최소유전체가 안고 있던 여러 가지 문제점과 향후 최소유전체 신규 제작할 때 참고하거나 적용하여야 할 대사 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연구를 통해 이에 대한 문제가 다소 해소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후학 양성, 효율적인 신규 최소유전체 제작할 것
조 교수팀은 그 외에도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첫 번째는 하나의 탄소 원자를 포함하는 C1 가스(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메탄 등)를 양분으로 사용하는 미생물 연구이다. 석유 자원의 사용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일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세계적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를 양분으로 성장할 수 있는 미생물을 조작하여 바이오 연료를 포함한 다양한 고부가가지 화합물을 생산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류가 화석연료에 대한 제약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연구는 방선균*을 활용한 연구이다.
방선균은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항생제의 90% 이상을 생산하는 균주로 잘 알려져 있다. 평균적으로 하나의 종이 10가지 이상의 항생제를 생산할 수 있는 유전자 경로를 가지고 있지만, 인류는 극히 일부의 유전자만을 활성화할 수 있고, 이 또한 많이 생산하도록 변형하는 것이 어렵다. 조 교수팀은 다중오믹스 분석을 통해 비활성의 항생제 유전자를 활성화하여 새로운 항생제를 발견하고 이를 대량 생산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방선균: 토양에 서식하는 미생물로, 자신이 서식하고 있는 환경에 다른 미생물이 접근하여 양분을 소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화학 물질을 분비하는데 이것이 항생제이다.
마지막은 곰팡이를 활용해 소나무 재선충을 해결하는 연구다. 우연히 발견한 곰팡이가 소나무 재선충을 죽인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살선충 작용 기재를 확인하고 이를 개량하여 효과를 높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앞으로 연구 결과를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연구할 예정이다.
물론 최소유전체에 대한 연구도 지속해서 수행하여 이번 연구로 도출한 여러 원리를 통해 최소유전체를 처음부터 재설계하고 화학적으로 합성하여 완전히 인공적으로 만든 최소유전체를 합성하는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기존 유전체 크기와 비교하여 현재 70% 정도인 최소유전체의 크기를 더욱 축소하여 더욱 효율적인 신규 최소유전체를 제작할 계획이다.
조 교수는 “실험실에서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미생물 연구가 잘 진행되길 바라고, 더불어 후학 양성에 집중하며 제가 시작한 연구가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0년 1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