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병 치료제 개발의 새로운 길을 열다
항생제 젠타마이신 B의 생합성 과정 규명
이화여자대학교 화학·나노과학과 윤여준 교수님 인터뷰
젠타마이신 B는 결핵균, 포도상구균 등에 사용되는 가장 오래된 항생제로, 내성이 강한 슈퍼박테리아에 사용되는 2세대 항생제 이세파마이신의 합성 원료이기도 하다. 자연에서 극소량만 생산되기 때문에 그 생합성 과정을 규명하고 생성물의 양을 늘리려는 연구가 계속되었지만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이화여대 윤여준 교수 연구팀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젠타마이신 B의 생합성 경로를 최초로 규명하며 세계 과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생합성 과정 규명을 통해 찾아낸 새로운 중간체들이 유전병 치료제로 개발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국민 보건의 미래를 견인할 원천기술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세계 최초로 젠타마이신 B 생합성 경로를 밝혀내다
젠타마이신은 반세기 전부터 사용된 최초의 결핵치료제 스트렙토마이신과 같은 계열인 아미노글리코사이드 계열 항생제로서, 결핵균, 포도상구균과 녹농균 등 그램음성 병원균 치료에 사용되는 가장 오래된 항생제 중 하나이다. 그러나 항생제의 오남용으로 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다제내성 병원균이 빈번히 발견되어 기존 항생제의 구조를 변형한 새로운 항생제 개발이 지속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1970년대에 개발된 대표적인 2세대 항생제인 이세파마이신은 젠타마이신 B를 원료로 화학 합성을 통해 얻어지는 반합성 항생제입니다. 다제내성 병원균의 치료에 아직도 사용되고 있죠. 따라서 자연에서 미생물이 젠타마이신 B를 생합성 하는 과정을 규명하고, 이를 기초로 젠타마이신 B를 주생성물이 되도록 조절하는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젠타마이신을 생산하는 토양미생물(방선균)인 마이크로모노스포라 에키노스포라는 성장 속도가 보통 미생물보다 10배 이상 느리고, 유전자 조작이 어려우며, 젠타마이신 B를 극소량만 생산하기 때문에 어떤 원리로 합성 되는지 연구하기가 어려웠다. 최근 젠타마이신 생합성 과정 중 일부가 알려졌지만, 야생생산균주에서 극소량 생산되는 젠타마이신 B의 생합성 경로 규명은 1972년에 처음 발견된 이후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었다.
“젠타마이신 B는 야생생산균주로부터 극소량 생산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유전자를 삭제한다고 하더라도, 축적되는 중간체를 검출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연구팀은 젠타마이신 B의 생합성에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모든 중간체들을 화학 합성하고, 생합성 과정에서 필요한 효소들을 발현·정제해 각각의 중간체들이 효소 반응을 통해 만들어낸 물질들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젠타마이신 B의 생합성 경로를 최초로 규명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연구는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생합성 과정의 규명을 통해 젠타마이신 B가 자연에서 미생물로부터 극소량 생산되는 원인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윤여준 교수는 당전이 효소와 C6′-아민화 효소의 낮은 기질 유연성, DNA의 전사 과정을 통해 살펴본 2′-탈아민화 효소의 낮은 발현 양상이 야생생산균주에서 젠타마이신 B의 낮은 생산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C6′-아민화 과정은 해당 효소의 결정 구조 분석으로 보다 자세하게 기질 특이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유전병 치료제 개발 가능성 높은 새로운 중간체 발견
또한 연구팀은 이번 생합성 과정에서 자연에 극소량 존재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중간체 7종을 발굴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새로운 중간체들은 난센스 돌연변이(Nonsense mutation)에 의해 생성된 조기 종결 코돈의 계속된 해독(Translation)을 유도하는 활성을 보였다. 난센스 돌연변이란 DNA 염기서열이 단백질로 전환될 때, 염기서열의 일부가 정지코돈으로 전환되어 더 이상 단백질의 합성이 이루어지지 않는 돌연변이를 의미한다. 특정 단백질이 난센스 돌연변이로 인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을 경우에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유전병을 유발시킬 수 있다.
따라서 난센스 돌연변이로 조기 종결 코돈이 생겨 특정 단백질이 결핍된 환자에게 해독 유도 활성을 보이는 물질들을 투여할 경우 종결 코돈을 계속 해독하도록 해 정상 단백질의 합성이 가능하다. 아미노글리코사이드인 G418은 이러한 활성을 가지는 대표적인 물질로 알려져 있는데, 새로운 젠타마이신 B 중간체들은 G418과 비교했을 때 독성은 현저히 감소하고 활성은 유지되는 특징을 나타내 낭성 섬유증, 듀시엔형 근이영양증, 헐러 증후군 등의 유전병 치료에 응용 가능한 잠재력을 보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1972년 발견된 이후 50년 동안 규명되지 않았던 젠타마이신 B의 미생물 내 합성과정을 최초로 밝힌 매우 의미 있는 결과이며, 미생물 내에서 젠타마이신 B가 극소량 생산되는 원인을 밝혀냄으로써 생산성 향상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특히 생합성 과정 규명을 통해 찾아낸 자연에 극소량 존재하는 새로운 중간체들은 유전병 치료제로 개발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제약 산업의 고부가 가치 창출뿐만 아니라 국민 보건과 관련된 미래 사회 창출에 필수적인 원천 기술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사업(중견 연구)의 지원으로 수행되었으며, 생화학분야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인 ‘네이처 케미컬 바이올로지(Nature Chemical Biology)’에 2019년 1월 15일 게재되었다. 윤여준 교수의 주도로, 차선신 교수(이화여대), 항웬 류 교수(Hung-wen Liu, 텍사스대학교), 박제원 교수(고려대) 연구팀이 공동으로 연구를 수행했다.
카나마이신 생합성 과정 규명 등 독보적 연구력 입증
윤여준 교수는 미생물로부터 추출한 천연물로 만든 항생제, 항암제, 면역억제제 등 주요 의약품의 합성과정 규명과 이들의 유전자를 다양하게 조립,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는 ‘조합생합성’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왔다.
대표적 성과로 지난 2011년 결핵균 등의 치료에 사용되어 온 항생제 카나마이신의 생합성 과정을 최초로 규명하고, 생합성 유전자들을 조합해 내성이 강한 슈퍼 박테리아와 같은 다제내성 병원균에 작용하는 신규 항생제 후보물질을 개발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카나마이신은 스트렙토마이신과 같은 계열 아미노글리코사이드의 항생제로서, 결핵균과 페렴균 등의 치료에 사용되어 온 가장 오래된 항생제 중 하나이다. 그러나 카나마이신을 생산하는 토양미생물(방선균, 스트렙토마이세스 카나마이세티쿠스)은 유전자 조작이 거의 불가능해 카나마이신의 생합성 경로는 밝혀지지 않았었다.
당시 윤여준 교수 연구팀은 카나마이신 합성에 관여하는 모든 유전자를 선별한 후, 이들을 여러 개의 유전자 조각으로 잘라 레고 블록처럼 조립해 유전자 조작이 쉬운 또 다른 방선균(스트렙토마이세스 베네주엘라)에 넣었다. 연구팀은 다양하게 조합된 유전자 세트(스트렙토마이세스 세포)에서 만들어낸 물질을 하나씩 확인하는 방법(조합생합성 방법)으로 카나마이신 합성 경로를 밝혀냈다.
이 기술은 카나마이신의 생합성 유전자를 유전자 조작이 쉬운 방선균 이종숙주 내에서 조합, 발현해 카나마이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밝히는 방법으로, 새로운 생리활성물질 개발에 직접 활용될 수 있는 원천기술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전까지 과학자들은 카나마이신의 생합성 과정이 카나마이신 C로부터 카나마이신 B, 카나마이신 A의 순서로 생합성된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연구팀은 2-디옥시스트렙타민으로부터 만들어진 새로운 중간체들(2′-디아미노-2′-하이드록시파로마민과 2′-디아미노-2′-하이드록시니아민)을 처음 발견하고, 최종 생산물(카나마이신 A)은 카나마이신 B, C와 관계없이 카나마이신 X와 새로운 중간체(2′-디아미노-2′-하이드록시니아민)로부터 생성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같은 사실은 반세기 동안 하나의 고정관념처럼 고착되어 있었던 기존 과학자들의 가설을 뒤엎는 획기적인 발견으로, 베일에 가려져 있던 카나마이신의 생합성 경로를 명백히 밝혀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었다.
또한 연구팀은 조합생합성 방법을 이용해 카나마이신의 생합성 유전자와 또 다른 아미노글리코사이드 계열의 항생제 부티로신으로부터 나온 AHBA 생합성 유전자를 조합함으로써, 아미카신과 유사하지만 새로운 구조의 항생물질(1-N-AHBA-카나마이신 X)을 생합성 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연구팀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화합물(1-N-AHBA-카나마이신 X)의 항균활성을 직접 확인한 결과, 카나마이신과 아미카신의 내성균들에 대해 높은 항균활성을 보였다. 아미카신에 비해 더 높은 항균활성을 보이는 이유는 구조적으로 6′-탄소 위치의 작용기가 달라짐으로써 내성균이 갖고 있는 아미노글리코사이드 구조 변형 효소가 공격할 부분이 없어지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했다. 즉, 내성균 내에서 아미카신은 변형 효소에 의해 6′-탄소 위치의 구조가 바뀌어 활성이 없어지는 반면에, 1-N-AHBA-카나마이신 X는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어 효과적으로 항균작용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도 당시 연구팀은 1-N-AHBA-카나마이신 X를 생합성한 방법을 적용해 반합성(카나마이신 A를 원료물질로 화학합성)으로만 생산되던 아미카신을 미생물 배양에 의해 생합성으로 생산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이 연구 결과는 ‘네이처 케미컬 바이올로지(Nature Chemical Biology)’ 2011년 10월 9일 자에 게재되었으며,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Nature Review Drug Discovery’의 ‘Research Highlights’에 소개된 바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교수들 2천 명 이상이 전문분야별로 논문을 평가해 중요성과 영향력이 있는 논문들만 엄선, 발표하는 ‘Faculty of 1000’에 ‘Must read’로 소개되었다.
이 밖에도 윤여준 교수가 현재까지 발표한 다수의 논문이 Nature Chemical Biology, 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 PNAS 등 권위 있는 학술지에 게재되며 탁월한 연구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연구의 질 높여 국제경쟁력 갖춰야
연구란 밝혀지지 않았던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고, 새로운 사실을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끝없이 인내를 시험받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독창적인 연구일 경우 불모지에서 꽃을 피우는 일만큼 어렵고, 감수할 부분이 많은 일이다.
윤여준 교수가 과학계에서 인정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줄곧 연구를 수행해 온 조합생합성 연구의 경우 오랜 시간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분야이다. 그동안 과감한 도전정신과 특유의 성실함으로 포기하지 않고 연구를 지속한 결과 과학계가 주목하는 조합생합성 분야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다.
“우리 연구팀은 기초 연구를 하면서 바로 응용이 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생물 내 항생제의 생합성 과정을 밝히는 일은 기초적인 것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항생물질을 만드는 데 연계가 되기 때문이죠. 이러한 연구는 시간과 노력이 굉장히 많이 소요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얻기까지 어려움이 많지만 한 분야를 깊이 있게 연구해서 우리만의 독보적인 기술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윤여준 교수는 국내 과학계의 연구풍토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구의 질을 높여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추는 데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논문 수에 치중됐던 연구실적 내기 풍토에서 우수한 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풍토로, 그리고 비인기 연구 분야라고 할지라도 오랫동안 연구할 수 있는 환경으로 근본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학생들을 보면 내가 이 연구를 통해 의미 있는 논문을 내야겠다는 생각 없이 단순히 학위 취득에만 목적을 두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발적, 창의적 연구가 아니라 수동적이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빨리 끝내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는 하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연구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연구비를 현실화하고 연구자들의 복지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후학들이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마음껏 연구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현실적인 개선책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으로 윤여준 교수는 아미노글리코사이드 계열 항생물질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쌓아온 연구팀만의 노하우를 활용해 신규 항생제의 효율적인 생합성 방법론과 새로운 항생제 후보물질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며, 오랜 시간 끈질긴 근성과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연구라는 길을 걸어온 윤여준 교수, 그를 통해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이들의 절망이 희망으로 바뀔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9년 8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