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온초전도 현상의 베일을 벗기다 2차원 물질에서 ‘홀스타인 폴라론’ 입자 발견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김근수 교수님 인터뷰 폴라론은 물질 속 전자가 주변 원자를 강하게 끌어당겨 원자 배열의 왜곡을 동반하며 움직이는 합성 입자를 말한다. 그리고 이 폴라론 입자의 거동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 모델이 바로 홀스타인 폴라론이다. 홀스타인 폴라론은 1950년대에 처음 예측된 이후 고온초전도 현상이나 태양전지 효율성 저하 등 여러 물리학 난제를 설명해 줄 열쇠로 기대를 모았지만, 검증할만한 적당한 물질계가 존재하지 않아 실험적인 관측이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연세대학교 김근수 교수 연구팀이 2차원 물질에서 홀스타인 폴라론 입자를 발견하고, 초전도성이 나타날 때 폴라론 입자의 결합 세기가 점차 증가함을 밝혀내 폴라론에 의한 초전도 메커니즘 규명에 한 걸음 다가섰다. 이번 결과는 고온초전도 현상의 비밀을 푸는 것은 물론 2차원 반도체 소자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황화몰리브덴의 초전도 현상 발생에 주목 현대 고체물리학의 화두는 고체 물질에 존재하는 새로운 합성 입자를 탐색하고 그로 인해 발현된 물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새로운 합성 입자 발견의 핵심은 폴라론이라고 할 수 있다. 고체 내에 자유 전자가 있으면, 그 주변의 원자들이 전자로부터 영향을 받아 위치를 바꿔 전자 주위의 원자 배열에 변화가 생기는데, 이처럼 전자가 고체 내에서 원자 배열에 변형을 수반하며 운동하는 입자를 폴라론이라고 한다. 1933년 소비에트 과학자 란다우에 의해 도입된 이후 폴라론 결합에 의한 고온초전도 메커니즘(바이폴라론 모델), 트랜지스터와 태양전지의 효율성 저하 등 수많은 물리학 난제의 숨은 비밀을 밝혀줄 열쇠로 지목되어 왔다. 특히 1959년 홀스타인에 의해 제안된 홀스타인 폴라론은 원자 배열을 포함해 상호작용이 작은 폴라론과 큰 폴라론의 거동을 고루 기술 가능한 모델로, 물질에서 발생하는 폴라론 입자의 거동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 모델이다. 이 모델은 해석적으로 푸는 것이 매우 어려웠지만 최근 이론적 근사과 계산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홀스타인 폴라론의 분광학적 성질을 이해하는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예측된 성질을 검증할만한 적당한 물질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험적인 관측이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김근수 교수 연구팀이 2차원 물질에서 홀스타인 입자를 발견하는 데 성공하며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과를 거뒀다. 원자 수준의 두께를 갖는 2차원 물질은 얇고 유연하며 전기적·광학적 특성이 우수해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주목받는 신물질이다. 대표적으로 그래핀, 포스포린, 전이금속 칼코게나이드 등을 꼽을 수 있다. 2차원 물질의 중요한 특징은 외부 전기 신호나 도핑을 통해 전하량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물리학계에서는 이러한 2차원 물질의 제어 가능한 전하량을 활용해 ‘2차원 자성’ 또는 ‘2차원 초전도’와 같은 양자 현상에 대한 기초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연구팀은 새로운 합성 입자를 발견하는 데 있어 2012년 일본 동경대 그룹에서 보고한 바 있는 ‘2차원 물질의 초전도 현상’에 주목했다. 2차원 반도체 이황화몰리브덴(MoS2)에 전자를 도핑하면 고온초전도체와 유사한 특징의 초전도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었는데, 그 근본적인 원리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이황화몰리브덴은 전이금속(몰리브덴, Mo)과 칼코겐(S) 원자들이 그래핀과 유사한 형태의 평면구조를 이루는 대표적인 2차원 반도체 물질이다. “2차원 반도체의 제어 가능한 물성은 반도체 소자 응용에도 중요하지만 기초 학문 연구에도 매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제어 가능한 물성을 이용해 기존에 발견된 적이 없던 새로운 합성 입자를 유도하고 발견해 낸다면 엄청난 학문적 파급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에 우리 연구팀은 최근 이황화몰리브덴에서 흥미로운 2차원 초전도 현상이 보고된 부분에 주목했고, 새로운 합성 입자가 발견될 확률이 가장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이황화몰리브덴에서 홀스타인 폴라론 신호 감지 연구팀은 초고진공 환경에서 이황화몰리브덴 표면에 루비듐(Rb) 원자를 분사해 전자 도핑을 유발했고, 각분해광전자분광(ARPES)을 통해 도핑된 전자의 분광학적 특징을 정밀하게 측정했다. 각분해광전자분광은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 원리를 이용해 고체 물질의 전자 구조를 측정하는 실험 기법으로 주로 방사광가속기의 밝은 빛을 활용한다. 따라서 방사광가속기의 각분해광전자분광 장치 성능과 이를 활용하는 연구팀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연구자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합성 입자를 발견하려면 무엇보다 세계적인 수준의 분해능을 갖춘 실험 장치가 필요합니다. 우리 연구팀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각 분해광전자분광의 경우 국가 차원의 대형연구시설인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하는데, 우리나라 방사광가속기의 각분해광전자분광 장치도 매우 우수한 편이지만 아직 세계 최고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영국 다이아몬드 방사광가속기 연구소에서 일주일 동안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실험을 수행했고, 그 기간 안에 모든 데이터를 확보하고자 모든 연구원들이 밤낮없이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이처럼 그동안 축적해 온 2차원 물질과 각분해광전자분광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 여기에 우수한 성능의 장치가 시너지를 이루면서 연구팀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분해능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에 모든 역량을 쏟은 결과 마침내 홀스타인 폴라론의 미묘한 신호를 감지해 내는 데 성공했다. 홀스타인 폴라론의 분광학적 특징을 측정할 수 있다면, 종래 불가능했던 폴라론 상호작용의 세기 변화를 추적하는 것도 가능하다. 따라서 연구팀은 2차원 초전도 현상이 나타날 때 폴라론의 상호작용 세기가 점차 증가한다는 사실을 규명하기도 했다. 즉, 폴라론 입자와 초전도 현상 간의 숨은 연관성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결과는 고온초전도 현상을 폴라론 간 결합으로 설명하는 이론 모델을 뒷받침하는 만큼 후속 연구가 더욱 기대된다. 홀스타인 폴라론 발견은 학문적인 측면뿐 아니라 응용적인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2차원 물질 기반의 트랜지스터, LED, 태양전지 등에서 전하이동도와 같은 소자 물성의 근본적인 한계가 바로 홀스타인 폴라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2차원 반도체의 물성 한계를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실용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홀스타인 폴라론 입자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연구성과는 물리학에서 관측이 어려웠던 홀스타인 폴라론을 2차원 물질을 이용해 발견한 것으로, 폴라론에 의한 초전도 메커니즘을 규명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물리학의 오랜 난제인 고온초전도 현상의 비밀을 푸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뿐 아니라 2차원 반도체 소자의 성능 한계를 물리적으로 이해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김근수 교수는 고온초전도의 비밀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도록 후속연구에 더욱 역량을 집중할 예정이다. 먼저 단기적으로는 폴라론과 초전도의 연결 고리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하고, 장기적으로는 2차원 물질의 물성 제어 기술을 더욱 고도화해 새로운 입자나 양자 현상을 탐구하며, 이를 이용해 전자 소자가 동작하는 물리학적 원리를 새롭게 창안하는 데 도전할 계획이다. 김근수 교수 연구팀의 이번 연구성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사업, 연세대 미래선도연구사업, 포스코청암재단 포스코사이언스펠로십의 지원으로 수행되었으며, 세계적인 권위지 ‘네이처 머티리얼스(Nature Materials)’지에 2018년 5월 28일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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