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오염물질, 국내 초미세먼지 농도에 영향’ 과학적 규명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가스표준분석센터 정진상 책임연구원
몇 년 전부터 봄이 되면 화창한 날씨를 즐기기보다 일기예보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는 언제가 부터 우리의 삶을 찾아온 불청객 미세먼지 때문이다. 특히 올해 봄은 역대급 고농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다. 미세먼지의 성분은 발생 지역이나 계절, 기상조건, 발생원에 따라 달라진다. 자연적인 미세먼지는 흙, 해염, 식물의 꽃가루 등이며 인위적인 미세먼지는 화석연료의 연소로부터 주로 배출된다.
초미세먼지는 지름 2.5 ㎛(마이크로미터)이하의 먼지로 주로 화석연료나 바이오매스(화학적 에너지로 사용가능한 생물체를 의미. 농작물 잔유물, 산림 등이 해당)를 태울 때 발생한다. 미세먼지의 4분의 1 규모로 입자 크기가 매우 작기 때문에 코나 기관지에서 잘 걸러지지 않고 인체에 축적되어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
초미세먼지의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원인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국내에서는 초미세먼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중국발 미세먼지를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한국의 미세먼지가 ‘중국산’이라는 과학적 입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학술지 ‘대기환경’(Atmospheric Environment, IF= 3.629) 4월호에 게재된 정진상 연구원의 연구는 국내 초미세먼지의 원인이 중국발이라는 점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중국발 초미세먼지 추적에 성공하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원장 박상열) 가스표준분석센터의 정진상 책임연구원은 중국발 오염물질이 국내에 유입되어 초미세먼지 농도를 ‘나쁨’ 수준으로 올렸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연구원은 중국 춘절기간 동안 한반도 전역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나쁨(51-100 μg/m³) 수준인 것을 발견, 초미세먼지의 화학적 조성을 분석하여 중국 춘절 불꽃놀이에 사용한 폭죽과의 상관관계를 최초로 규명했다.
정진상 연구원 외에도 많은 연구원들이 초미세먼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지만 국내 초미세먼지 농도에 중국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경우는 처음이다. 한·중 양국 모두 산업이나 농업의 성격이 비슷해 대기에 유사한 물질들을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성영상 분석이나 대기질 모델링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위성영상은 대기의 흐름을 거시적으로만 제공하고, 대기질 모델링은 실제 관측치와 오차가 커 정확도가 부족하다.
정진상 연구원은 중국이 국내 초미세먼지 농도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문화적, 사회적 특성을 찾아내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6년 전쯤 중국에서 우리의 설에 해당하는 춘절 때에 대대적으로 폭죽을 터뜨려 대기오염이 심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설날에 폭죽놀이를 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의 오염물질이 이동해 한국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입증하면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한국까지 날아온다는 분명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구를 위해 초미세먼지를 구성하는 물질인 칼륨과 레보글루코산을 실시간 측정하는 시스템(폭죽 및 바이오매스 연소 지시물질을 이용한 추적기법 및 칼륨과 레보글루코산의 실시간 측정방법)을 개발했다. 칼륨은 폭죽과 바이오매스가 연소하는 과정에서 모두 배출되지만, 레보글루코산은 바이오매스 연소에서만 배출된다.
바이오매스가 연소될 때는 칼륨과 레보글루코산의 농도가 같이 올라간다. 만약 칼륨 농도만 급격히 올라가고 레보글루코산의 농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대규모의 폭죽이 초미세먼지의 원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같은 연구가 가능했던 이유는 화학물질을 측정할 수 있는 ‘실시간 미세먼지 액화포집 시스템’을 직접 개발했기 때문이다. 기존 대기 분석 장비들은 거름 필터로 대기를 흡입시켜 하루정도 먼지를 포집한 후 용매에 녹여 기계로 분석했다. ‘실시간 미세먼지 액화포집 시스템’은 중국 춘절 기간 국내 대기 중 존재하는 칼륨과 레보글루코산을 흡입한 다음, ‘미세먼지 액화포집기’를 통해 물에 녹여 분석기에 전달한다. 두 대의 이온크로마토그래피 장비를 이용해 물에 녹아있는 칼륨과 레보글루코산을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정 연구원은 “2017년 1월말 중국 춘절이 시작되면서 한반도의 초미세먼지는 나쁨 수준을 보였다. 시스템을 통해 연구한 결과 이 기간 동안 국내 대기 중 칼륨 농도가 평소보다 7배 이상 높아졌지만 레보글루코산의 농도는 변화가 없었다. 폭죽에서 배출된 중국발 초미세먼지가 한반도까지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초미세먼지 연구 위해 중국 대학과 연구협력 논의 중
정진상 책임연구원은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일본 북해도대학교 저온과학연구소에서 유기물질 분석과 관련해 약 3년 동안 박사 후 과정을 마쳤다. 2012년에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입사해 현재 책임연구원으로 가스분석표준센터에서 근무를 하고 있으며 독성가스 측정법 개발 및 표준물질 개발, 초미세먼지 측정에 대한 국제표준을 확립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2005년부터 미세먼지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정 연구원은 이번 연구성과 외에도 기상청의 예산 지원을 받아 광학적인 방법으로 가시거리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장비의 개발, 이산화질소 측정용 컨버터 개발, 시베리아 산불 배출 미세먼지 추적 증명 등의 성과를 냈다. (주)시정에 시정계 기술을 기술 이전해 창업을 도왔고, 현재 그 회사에 고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 UST 측정과학과 부교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첨단측정장비연구소 환경측정장비팀장, 필리핀국립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역임하고 있다.
최근에는 초미세먼지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위해 중국에 주요 대학과 연구협력을 논의 중이다. 직접 중국에 다녀왔다는 정 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강력한 규제정책으로 인해 최근 3년 사이 중국의 석탄 사용량이 크게 감소하고 있었고, 이를 통한 초미세먼지를 만드는 이산화황의 농도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도 한국과 같이 빈번히 발생하는 고농도 스모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 연구자들은 이러한 고농도 스모그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수행 중에 있다.
“중국에서 발생한 고농도 스모그가 장거리 이동해 한반도에 영향을 준다는 것에 대해서도 중국 연구진도 공감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과 중국이 협력해서 동북아시아 전역에서 발생하는 고농도 스모그의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한 공동연구를 함께 하기로 했다.”
연구는 텐진대학교, 화동사법대학교 연구진들과 2019년부터 진행한다. 중국의 텐진과 상하이 그리고 한국의 대전을 기본으로 타 도시까지 연구범위를 확장해 동일한 시기에 대기를 포집해 분석할 예정이다. 국내 분석 자료 외 중국 현지에서 데이터를 함께 분석한 다면 초미세먼지의 원인을 파악하기 쉬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국내 초미세먼지 발생 기저 파악 위한 연구 진행할 것
정 연구원은 국내 미세먼지 저감 정책이 두 가지 방향으로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평균을 줄이는 전략과 고농도 시를 대응하는 전략이 선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평균을 줄이는 것과 관련해서는 정부와 각 지자체가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저감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들은 연평균이 줄어드는 것보다는 고농도 스모그를 줄이는데 더 관심이 많다. 고농도 초미세먼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원인 규명이 선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고농도 초미세먼지가 발생했을 때 정부나 지자체가 진행하고 있는 비상저감조치들의 실효성에 관한 연구도 진행할 예정이다.
“올 봄 서울시에 고농도 초미세먼지가 발생했을 때 진행했던 차량 2부제를 예로 들어 이같은 정책의 실효성을 데이터로 입증하고 싶다. 중국의 미세먼지가 국내에 유입된 후 동쪽의 고기압에 막혀 정체된 상태에서 2~3일 동안 초미세먼지의 농도가 높아진다고 가정하자. 초미세먼지의 70~80%가 중국발이라고 할 때 나머지 원인은 무엇일까? 중국에서 유입된 초미세먼지들이 정체되면서 더 농도가 짙어 질 수도 있고, 중국에서 유입된 오염물질들은 수증기와 뭉쳐 땅으로 떨어지고 국내 대기와 결합해 농도가 짙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가정을 연구로 입증해 원인을 파악한다면 국내 고농도 초미세먼지 예방을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다.”
15년간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으로 끊임없는 연구를 진행해 온 정진상 연구원. 그의 중국발 미세먼지 추적 연구는 미세먼지 원인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연구로 그 의미가 있다. 그의 연구가 지속 될수록 봄날 맑은 하늘을 보는 날이 더 많아질 거라 기대해 본다.
취재기자 / 박아영(reporter4@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8년 8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