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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인터뷰] 국민대학교 신소재공학부 이미정 교수님



IT 입은 패션, 스마트 시대를 열다
실로 짜는 전자옷감 메모리 개발
국민대학교 신소재공학부 이미정 교수










최근 스마트 의류 개발이 속속 이뤄지면서 이제 패션은 단순히 의복으로서의 기능을 넘어 첨단기술까지 갖춘 스마트 패션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전에는 땀을 흡수하는 흡습제품, 첨단 소재를 활용한 발열제품, 비와 바람을 막는 특수 소재의 아웃도어 의류 등이 스마트 패션의 중심이었지만, 이제 그 범위가 웨어러블로 확장되었다. 즉, 패션에 기술을 접목하는 것이 아니라 첨단 정보기술 자체를 옷으로 입는 웨어러블 패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웨어러블 패션을 상용화하기 위한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는 가운데 최근 국민대학교 신소재공학부 이미정 교수 연구팀이 실로 짜는 전자옷감 메모리 개발에 성공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실 형태의 전자재료를 직조하는 방식으로 전자옷감을 만들 수 있어 사용자가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스마트 패션을 구현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저항변화메모리 소자 직물형 구현
스마트폰에 이어 우리의 일상과 시장의 패턴을 바꾸고 생태계 구조를 창의적으로 바꿀 수 있는 혁신적 산업으로 웨어러블 디바이스 산업이 급부상하고 있다. 즉, 소비자의 트렌드가 스마트 기기를 인식하고 ‘소지’해야 하는 방식에서 자연스럽게 ‘착용’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글래스형, 손목착용형 등과 같은 액세서리형의 웨어러블 기기를 시작으로 의복과 결합하는 직물조합형에 이르기까지 웨어러블 기기의 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정보기술과 섬유기술이 융합한 스마트 의류는 산업계와 과학계의 뜨거운 화두다. 국내에서도 스마트 의류 개발에 대한 시도가 활발한 가운데 NFC칩을 손목 부분 단추에 내장해 스마트폰과의 연동 기능을 집어넣은 스마트 양복, 블루투스 심장박동 측정 송수신기를 부착해 심장박동을 체크할 수 있는 의류 등은 이미 상용화된 단계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기존 의류와 동일한 옷감의 형태로 스마트 의류를 제작하기에 한계가 존재한다. 스마트 텍스타일과 관련한 제품은 직물에 집적회로를 올리기 위해 연성 PCB나 플라스틱 패키지 위에 집적회로를 올리고 이를 직물 위에 다시 올리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플라스틱 보드는 직물보다 무겁고 의상에 부착했을 때 착용감과 내구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사용자가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전자소자를 옷감 위에 조립하는 수준을 넘어 실 형태의 전자소자를 직조하는 방식의 진정한 전자옷감 구현이 이상적이다.







이러한 전자옷감은 새로운 형태의 소자 구조 및 소재 개발을 통해 옷감 형태의 전자소자를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대학교 신소재공학부 이미정 교수 연구팀은 기존의 전자옷감과 달리 완전한 천의 형태를 가지는 전자옷감을 개발하기 위해 차세대 전자메모리로 주목 받는 저항변화메모리 소자를 직물형으로 구현하는 연구에 착수했다. 저항변화메모리(Resistive switching Random access memory)란 저항변화 특성을 갖는 물질이 절연체 혹은 전도체로 저항이 변한 상태가 유지되어 각각 상태의 전도성을 기준으로 0과 1을 구분해 정보를 저장할 수 있고, 읽고 쓰기가 가능한 메모리 소자를 말한다.


연구팀은 특히 전자옷감의 경우 소자 동작의 원리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메커니즘을 개발하는 것은 물론 실과 옷감의 구조, 특성을 이해하는 융합적 연구가 필수적인 만큼 서울대학교 황철성 교수를 비롯한 국민대학교의 타 학과 연구진들과 공동연구로 진행해 완성도를 높였다.

“사용자 친화적이고 패셔너블한 웨어러블 디바이스 구현을 위해서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해 기존 옷감과 같은 형태를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우리 연구팀은 일반 실의 형태로 짤 수 있어 완전한 옷감의 형태를 가지는 전자옷감을 개발한다면 사용자들이 이질감 없이 착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토대로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세탁에도 안정적 동작…대면적 대량 생산 가능
기존에는 금속(metal)-절연체(insulator:저항변화 층)-금속(metal)의 3층 구조로 저항변화 층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연구팀은 별도의 저항변화 층 없이 알루미늄이 코팅된 실과 탄소섬유의 접합만으로 저항변화 특성이 나타나는 전자옷감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일반적으로 물질의 저항(전도성)은 물질 고유의 특성으로 그 값이 정해져 있지만, 특정 물질은 전압이 가해졌을 때 저항값의 급격한 변화로 절연체와 전도체의 특성이 번갈아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을 보이는데, 이를 저항변화라고 한다.
또한 분석 결과, 알루미늄 표면의 자연산화막(native oxide layer)과 탄소섬유의 접촉면에서의 산화-환원 반응으로 산소 빈자리가 생성되고, 사라지는 반응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안정적인 저항변화가 나타났다.

“알루미늄과 탄소섬유 사이의 저항변화 특성을 발견하고 메모리로 구현했지만, 기존에 알려져 있지 않은 저항변화 메커니즘이었기 때문에 이 원리를 규명하기 위한 다양한 분석을 시도했습니다. 또한 소자의 구조도 저항변화 층 없이 간단한 물질의 접촉만으로 일어나는 새로운 접근이었던 만큼 기존에 진행된 연구의 프레임을 벗어나 창의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중요했죠. 새로운 원리를 규명하기 위한 재료분석은 물론 다른 분야의 논문들도 찾아보며 다각도로 접근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연구팀은 직물형의 소자 제작을 위해 용액공정으로 일반 실을 코팅하는 기술을 활용해 알루미늄 실을 제작했다. 또한 탄소섬유와 접촉된 소자를 제작하기 위해 꼬매거나(stitching) 직조하는(weaving) 등 다양한 형태로 디바이스를 구현했고, 저항변화 메커니즘을 규명하고자 박막 형태의 소자로도 제작했다.
“기존 단단한 기판에 박막형으로 구현되는 소자가 아니기 때문에 직물형 소자를 구현하고 측정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직물을 참고하고 패션디자인 분야 및 섬유공학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얻으며 끈기 있게 시도한 결과 전자옷감 형태로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개발된 전자옷감은 일반 실의 형태로 짤 수 있기 때문에 완전한 옷감의 형태를 가진다. 천 위에 소자를 집적하거나 인쇄해 착용자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했던 기존의 전자옷감과는 차별화된다. 소자의 성능도 그대로 유지된다. 구부러지고 뒤틀리거나 세탁을 해도 안정적으로 동작한다. 여러 소자를 어레이 형태로 이어서 작은 부분의 소자 손상이 있어도 성능이 유지된다.

“이번 연구는 전자소재를 실 형태로 직조해 완전히 옷감화된 저항변화메모리를 개발한 것이 핵심입니다. 특히 복잡하고 비싼 반도체 소자용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바느질, 베틀과 같은 간단한 기구를 이용할 수 있어 누구라도 쉽게 메모리 소자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기존의 섬유산업에서 사용하던 장비 및 기기를 그대로 활용해 대면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죠. 향후 다양한 스마트 패션,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미정 교수 연구팀의 이번 연구성과는 미래창조과학부·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사업(중견연구자 지원사업), 기초연구사업 융합연구선도연구센터(CRC), 글로벌연구실지원사업 등의 지원으로 수행되었다. 재료과학 분야 국제적인 저명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터리얼즈(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지 2017년 2월 28일자에 게재되며, 과학계와 산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끈기’와 ‘주체성’이 연구 성패 좌우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겪지 않으면 매화꽃의 달고 아름다운 향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어려움을 이겨내고 얻어낸 성과는 더욱 값지고 소중하다. 그렇기에 연구자들의 연구가 성공을 거두고, 그 결과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되는 것은 매우 값진 일이다. 그 한 번의 성공 이면에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아흔 아홉 번의 실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를 비롯해 이미정 교수가 추진해온 연구들이 성공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로 끊임없이 도전하고, 연구팀의 리더로서 구성원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이끌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구라는 것은 한 번의 성공을 위해서 수십 번의 실패를 감수해야 하는 일인 만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자신이 열정을 쏟아내며 추진해온 연구가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심적으로는 상당한 좌절을 겪게 되고는 하죠. 이럴 때 팀원들이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끊임없이 믿음을 심어주고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연구팀의 리더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강인한 정신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정 교수의 리더십은 연주에서 곡의 강약을 조절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닮아 있다. 연구를 진행할 때는 냉철한 판단력을 잃지 않는 트레이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팀원들에게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동기를 부여하는 유연한 리더십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정 교수는 한 발 먼저 연구자의 길을 걸어온 선배로서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팀원들, 그리고 후학들에게 끈기와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구자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항상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끈기 있게 추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들쑥날쑥한 컨디션으로 마라톤을 완주할 수 없듯이 연구도 지속적인 노력과 끈질긴 의지 없이는 성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끈기를 가지고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길 바랍니다. 더불어 주체성과 창의적인 사고도 중요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의지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려는 사람은 절대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자신의 능력을 자유롭게 펼쳐 보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자옷감 산업화,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이미정 교수 연구실의 특징 중 하나는 공동연구를 통해 연구에 완성도를 더하고, 시너지 효과를 도출한다는 점이다. 정체성이 될 수 있는 연구 분야를 확고히 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른 학문, 다른 연구자들과 공동연구를 수행해 연구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대표적인 공동연구 분야로 스마트 패션을 꼽을 수 있는데, 이미정 교수는 현재 국민대 모듈형 스마트 패션 플랫폼 연구센터에서 다양한 연구자들과 함께 스마트 패션을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국민대 모듈형 스마트 패션 플랫폼 연구센터는 신소재공학부를 비롯해 의상디자인학과, 전자공학부, 컴퓨터공학부, 경영학부, 스포츠학과 등 다양한 분야의 학제 간 협업으로 이뤄진다. 지난 2015년부터 미래창조과학부가 주관하고 한국연구재단이 시행하는 선도연구센터 융합분야(CRC)의 단계평가에 최종 선정되면서 2022년 2월까지 총 100억 원을 지원 받는 등 국내 스마트 패션 산업의 중심축으로 성장하고 있는 곳이다.
이미정 교수는 향후 전자공학부, 디자인학과와 융합연구를 진행해 국민대학교 모듈형 스마트 패션 플랫폼 연구센터에서 올해 11월 세 번째로 주최하는 스마트 패션 쇼케이스에 이번에 개발한 전자옷감을 활용한 패션아이템을 제작해 전시할 계획이다.

“개발된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섬유업체 및 패션업체들과 전자옷감을 산업화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전자옷감 관련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현재 메모리 소자 외에 다양한 전자소자들을 전자옷감화 하는 연구들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 전자옷감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EU 및 미국의 연구센터들과 공동연구를 위한 연구 교류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더불어 이미정 교수는 연구자들이 마음껏 새롭고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이 계속되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차세대 기술들은 연구의 지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일회적인 관심 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적절한 자원의 배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개발한 기술과 물질들이 실제로 실용화되고, 사람들에게 사용됨으로써 우리 사회, 나아가 인류의 삶에 작으나마 도움이 되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는 이미정 교수. 화려하거나 거창하기보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연구실의 스위치는 오늘도 ‘ON’이다.






취재기자 / 안유정(
reporter1@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7년 10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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