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나노기술을 이용한 유전자 항암 치료기술 개발
가톨릭대학교 생명공학과 나건 교수
국내 연구진이 빛에 반응하는 치료용 고분자를 이용하여 항암치료를 위한 나노유전자 전달체를 개발했다. 이번 연구를 이끈 나건 교수는 기존 방법에 비해 치료용 유전자의 손상 없이 암 조직 깊숙이 전달할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해 유전자 치료제의 한계를 극복했다. 빛과 나노기술을 융합시킨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받고 있는 이번 연구는 유전자 전달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약품 전달에 적용할 수 있는 기반 기술로써 향후 암 정복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유전자 항암제의 한계를 넘어서다
유전공학과 분자생물학 기술의 발전으로 최근 다양한 치료용 유전자가 개발되고 있다. 유전자를 이용한 항암 치료법은 기존의 화학 항암제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좋아 차세대 항암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유전자 자체만으로는 암세포 내로 전달할 수 있는 효율성이 낮아 치료 효과가 낮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암세포는 조직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효과적인 암 치료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깊은 조직까지 의약품을 전달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10년 가까이 나노입자를 이용한 항암 치료제와 약물 전달 시스템(Drug delivery system)에 관해 연구해 온 나건 교수는 이 같은 필요성에 동감해 연구진과 항암 치료를 위한 나노유전자 전달체를 개발했다.
“처음에는 화학 항암제를 이용한 연구를 했습니다. 하지만 기존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 화학 항암제의 경우 탈모, 구토와 같은 다양한 부작용이 문제가 되고 있죠. 때문에 화학 항암제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치료 효과가 좋은 유전자 항암제에 주목하게 됐어요. 암세포 내로 전달되기 어려워 치료 효과가 낮은 유전자 항암제의 단점을 극복하고,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이번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는 빛을 받으면 활성산소를 생성하여 암세포벽을 무력화해 전달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신기술을 도입하여 신개념 유전자 항암 치료법을 개발했다. 또한 유전자 의약품의 암세포 전달 기능을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빛을 이용한 세포 내 약물 전달 기술을 기반으로 빛에 반응하는 약물 전달체를 개발해냈다. 약물 전달체는 pH감응성 펩타이드 고분자와 광응답제를 화학적으로 접합해 암세포의 주변 환경의 pH를 인식하여 구조를 변환할 수 있게 합성하였다. 이번 연구에서 개발된 빛을 이용한 스마트 나노유전자 전달체는 치료용 유전자의 손상 없이, 조직 깊숙이 유전자를 전달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실제 흑색종(melanoma) 암세포를 이식한 생쥐 모델에서 항암 억제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p53유전자를 함유한 나노 전달체를 처리한 후 빛을 조사 하였을 때 암세포의 성장을 효과적으로 저해한 것으로 나타났다.
빛을 이용한 유전자 의약품 전달의 새로운 패러다임
기존의 빛을 조사하면 활성산소를 발생하여 암세포 조직이나 세포벽을 붕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광응답제 (photosensitizer)를 이용한 약물 전달 시스템의 경우, 전달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활성산소가 오히려 치료용 유전자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위험이 있었다. 활성산소(reactive oxygen species, ROS)는 산소원자를 포함하는, 화학적으로 반응성이 아주 높은 분자로 산화력이 강해 생체조직 내 세포막과 DNA, 그 외의 모든 세포 구조를 손상시키고 손상의 범위에 따라 세포가 기능을 잃거나 사멸된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연구진과 함께 개발한 광감각제는 암세포 내로 들어가면 암조직의 낮은 산도에 반응해 유전자 치료제와 자동으로 분리되기 때문에 손상은 최소화 시킬 수 있고, 유전자 치료제가 깊은 암 조직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어 매우 효과적이다. 빛을 받은 광감작제가 활성산소를 만들면 이 활성산소가 암세포의 세포내막을 붕괴시켜 치료제를 세포 내로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
|
“이번 연구는 빛을 이용한 광역학 치료 기술과 기능성 고분자 제작 기술, 나노 기술을 융합해 유전자 치료법에 적용한 것입니다. 유전자 치료제에만 적용되는 제한적 기술이 아니라, 최근에 국내외에서 활발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단백질, 항체 의약품과 같은 다양한 의약품 전달에 사용될 수 있는 기반 기술로써 의미가 크지요.”
빛을 이용한 유전자 의약품 전달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이번 연구가 눈부신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물질 최적화 과정과 임상시험 단계 등을 거쳐 실용화되어야 한다. 실용화되기까지는 앞으로 5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전 임상 단계와 임상시험 과정. 즉 동물실험을 통해 물질을 최적화시키고,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임상시험을 거쳐야 실용화가 가능하다. 그는 구체적인 동물실험 데이터 확보를 통해 물질을 검증하고 최적화해 현재보다 더 높을 효율로 유전자 치료제를 전달할 수 있다면, 실용화를 통해 실제 암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에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향후 다양한 질병 치료에 활용되고, 암 정복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이번 연구는 나건 교수와 박신정, 박우람 연구원이 수행한 것으로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중견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되었다. 이번 연구와 관련된 논문인 ‘Tumor Intracellular-Environment Responsive Materials Shielded Nano-Complexes for Highly Efficient Light-Triggered Gene Delivery without Cargo Gene Damage’는 나노 재료 분야의 공신력 있는 저널인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티리얼즈誌 (Advanced functional Materials) 2015년 6월17일자 게재되었으며, 저널 표지로 선정되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배려와 존중은 공동 연구의 전제조건
이번 연구는 빛과 광응답제를 비롯해 나노입자, 고분자, 유전자 치료제, 암세포와 같이 다양한 학문 분야를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다. 때문에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까지는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빛과 나노입자를 이용한 최첨단 기술이기 때문에 빛의 세기, 광응답제의 농도와 같은 실험조건을 최적화하는 데에만 일 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는 과정이 어렵고 힘들었지만 순수 국내 연구진의 힘으로 얻은 결과이기 때문에 더욱 값진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모든 실험이 마찬가지지만 성공보다 수많은 실패가 연구자를 좌절시킵니다. 하지만 그 실패와 한계의 지점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회를 발굴해 전환점을 마련하기도 하지요. 빛을 이용한 바이오 실험을 하면서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어요. 또 다양한 조건에서 실험하면서 최적의 조건을 찾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까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길고 긴 시간을 인내해야 했지만 끊임없는 연구로 마침내 유전자 치료제를 전달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찾게 되었고, 풀릴 듯 풀리지 않았던 연구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안겨주었다. 이번 연구를 성공적 이끌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융합연구.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공부하고 전문가들과 교류하면서 연구를 수행했기에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새로운 기술을 만들고, 과학과 의료기술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평소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갖고 다양한 학문을 공부해두어야 합니다. 현재 하고 있는 연구와 실험, 행정 업무 등으로 분주한 상황 속에서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고 융합하여 하나의 기술로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연구를 하면서 막막해질 때마다 각 분야의 전문가와 교류를 통해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에도 그는 공동 연구로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 연구단 현택환 단장(서울대 중견석좌교수; 화학생물공학부)과 함께 공동 연구팀을 꾸려 종양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수행 할 수 있는 ‘나노 수류탄’ 개발에 성공한 것. 이 연구로 연구팀은 나노 소재를 이용해 종양을 조기에 진단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기존의 치료법으로는 치료하기 힘들었던 이질성 종양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공동연구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연구 과제를 끝까지 파고들 수 있는 열정과 다른 분야 연구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필요하다. 내가 내 것을 주장하는 순간 공동연구는 존재할 수가 없다. 자신의 것을 주장하기 이전에 함께 연구하는 상대를 존중하면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얻을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파급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빛과 나노기술, 스템셀 연구로 암 정복에 기여하다
인류복지에 기여할 수 있는 신기술의 아이디어를 만들고, 적절한 재료를 디자인하는 것은 그가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의 기쁨과 고통, 연구 결과가 나온 순간의 희열은 연구자로서의 보람을 느끼게 하고 항상 설레는 마음을 갖게 한다. 때로 연구가 힘들 때 조차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힘과 열정을 불어넣어준다. 미래의 연구자를 길러내는 교수로서 그가 활력을 느끼는 순간은 랩 미팅이나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눌 때이다. 학생들이 한 달 동안 연구한 것을 프리젠테이션하고 질의, 응답하는 랩 미팅 시간이 되면 그는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선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족함을 채우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학생들과 식사를 할 때면 연구와 진로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관심사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학생들이 연구자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전남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공업화학을 전공하고, 광주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과 박사 후 연수 과정을 거쳐 미국 유타대학교 약학대학 박사 후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연구 조교수를 역임한 그는 현재 가톨릭대학교 생명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성심산학협력단장과 연구행정실장, 가톨릭대학교 LINC사업 부단장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그는 2013년 가톨릭대학교 강의 최우수 교수에 선정되었으며, 2014년 가톨릭대학교 연구업적대상과 가톨릭대학교 산학협력 대상을 수상했다. 올해 1월엔 ‘2014년 기초연구사업 우수평가자’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아직 연구자로서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그는 학생들에게 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연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열정과 노력들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직하게 한 길로 걸어 나가면 자신이 꿈꾸는 미래가 만들어진고. 또, 개울물에 떠 있는 나뭇잎 결국 바다로 흘러가듯이 주어진 일 하나, 하나에 정성을 기울이면 그 ‘최선’이 모여 ‘최상’의 미래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
|
“연구를 할 때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수행하면 결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조급함은 부실한 연구 결과를 낳기 때문에 차근차근 모든 과정에 공을 들여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요. 또 앞으로는 융합연구가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그만큼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됩니다. 연구자가 되길 희망하는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키워가길 바랍니다.”
차세대 연구자들의 든든한 안내자가 되고 싶다는 그는 학생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실험실에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겐 진로 상담과 추천을 통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기에 그의 실험실은 ‘미래 연구자들의 산실’이자 ‘제2의 도약을 이루는 출발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연구 결과를 성취하는 기쁨으로 추진력을 얻고, 스트레스도 해소한다는 그는 아내와 함께 서울 근교에서 산책도 하고 쇼핑도 하며 여가를 즐긴다.
“이번에 개발한 기술을 유전자 전달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약품에 적용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실제 임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달체를 개발하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지금까지 얻은 연구결과를 실질적으로 환자에 사용될 수 있도록 최적화시켜 과학과 의료기술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현재 그는 빛과 스템셀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향후 두 가지를 접목해 획기적인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일반적인 치료제가 아니라 몸 안의 면역력을 증강시켜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이를 위해 그는 면역 분야의 전문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연구 성과를 이루고 이를 실용화할 예정이다. 기회가 된다면, 유망한 기업을 만들어서 실용화를 직접 하고 싶다는 포부도 전했다. 그가 최선의 노력으로 탄탄하게 다져놓은 기반 위에서 빛과 나노 기술을 이용한 유전자 항암 치료기술이 성장하고 발전해 암 정복의 길을 열어가길 희망한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5년 11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