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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자대학교 약학대학 문애리 교수

유방암 전이를 유도하는 유전자 역할 규명으로

암세포 전이 차단 연구에 이정표를 세우다
덕성여자대학교 약학대학 문애리 교수






유방암 전이제어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쳐온 문애리 교수. 유방암 전이 기전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알려져 있는 그는 암세포의 전이를 유도하는 유전자와 이와 연관된 효소의 역할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또한 국내 여성들의 발병빈도가 높은 갑상선암과 유방암의 전이 제어를 목표로 꾸준하게 연구를 해왔다. 최근 그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5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상 진흥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덕성여자대학교 BK21 플러스 사업팀장을 비롯해 덕성여대 부총장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문애리 교수를 만나보았다.





유방암 전이 제어를 위한 끊임없는 연구
유방암은 여성 암 발생률 2위에 해당할 만큼 많은 여성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질병이며, 국내 유방암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선진국형 질병인 유방암이 급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대표적으로 서구화된 식습관과 여성 호르몬 이상, 후천적 요인, 비만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유방암은 전이 이전과 이후의 생존율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전이 이전에 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평소 여성의 건강증진과 삶의 질 향상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던 문애리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고 일찌감치 유방암 전이 제어 분야의 연구를 지속해왔다.






“유방암 전이 제어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1997년부터 20년 가까이 연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현재 제 연구실에서는 활성화 변이형 종양유전자 H-ras, N-ras에 의해 다르게 유도되는 전이에 관한 분자적 기전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유방암 발병률은 날로 증가추세에 있지만 조기 발견해 치료하면 생존율이 높은 질환입니다. 하지만 시기를 넘기면 체내 거의 모든 기관으로 전이가 되어 치료가 어려워집니다. 이에 따라 우리 연구실은 수년간 수행해온 유방암 전이 기전연구를 바탕으로 ‘유방암 전이 제어를 위한 바이오신약 타깃 발굴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암이 악성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많은 인자들이 관여를 한다. 그는 유방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자들을 발굴하는 데 초점을 맞춰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종양 단백질 중H-ras, N-ras 등 서브 타입의 차별화된 역할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1980년대 초 대표적인 발암 유전자인 RAS가 발견된 이후 많은 연구자들이 이를 타깃으로 하는 항암제 개발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많았죠. 현재 RAS의 서브타입 역할에 대해선 제대로 규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H-ras, N-ras의 역할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어떤 것이 더 유방암의 악성화를 진행시키는지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기존 연구가 갖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그의 끊임없는 고민은 성과로 이어져 유방암 전이에 있어서 특징적인 핵심 분자를 도출하기 위한 연구 시스템을 확보하게 되었다. 특히 그가 연구하는 기전은 암세포가 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지질을 분해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기전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연구된다면 암이 전이되는 것을 막고 생존율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명감과 책임감은 열정의 에너지
유방암세포 전이 과정에서 차별적인 역할을 하는 ‘H-Ras/N-Ras 단백질’의 전이 핵심 미세구조와 신호경로를 규명한 업적을 세운 그는 이를 바탕으로 유방암 치료를 위한 바이오 타깃을 발굴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6월 ‘2015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상’ 학술진흥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로레알코리아와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이 공동 주관하는 이 상은 2002년 제정돼 지난 14년간 57명의 수상자를 배출해왔다. 국내 생명과학분야에서 학술활동 및 연구업적이 탁월하고, 생명과학분야 발전에의 기여도와 성장 잠재력이 큰 여성 과학자들을 발굴해 학술진흥상과 펠로십 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한다. 이번 수상은 2004년 약진상(펠로십) 수상에 이어 11년 만에 이룬 쾌거이기에 의미가 각별하다.


“연구중심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연구조건에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구에 매진해 온 것을 높이 평가해 주신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11년 전 수상한 약진상이 앞으로 계속 연구에 매진하라는 채찍이었다면, 학술진흥상은 제 자신의 연구 능력 향상보다는 여성과학자를 비롯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연구하는 연구자들을 위해 기여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함께 힘이 되어준 대학원생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고, 앞으로 국내 여성생명과학자들의 사회적 지위 제고와 연구 환경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롤모델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겠습니다.”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에서 생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생명공학연구소와 식품의약품연구처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문애리 교수는 1995년부터 덕성여자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수상에 앞서 그는 유방암 전이제어와 관련된 활발한 연구 활동을 진행해 2008년 '국가지정연구실(NRL)'에 선정되었으며, 국제저명학술지인 'Cancer Research', 'Oncogene' 등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하는 등 우수한 연구 성과를 창출했다. 이처럼 유방암과 관련된 국제적인 기술 경쟁력 확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과학기술진흥유공자 대통령표창, 2014년 과학기술훈장 진보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원동력은 남다른 책임감과 사명감에 있다.






“95년도에 처음 대학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제까지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을 해준 가족들과 스승님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고,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쉴 수가 없었죠. 교수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이 때론 어깨를 무겁게 하지만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자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어줍니다.”
끊임없이 연구를 하며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그 한계점에서 새로운 연구로 가능성을 열어가는 것. 그 마음가짐은 지금도 열정을 불어넣는 에너지가 되고 있다.





여성과학자들의 행로를 안내하는 든든한 길잡이
2001년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 창립에 기여한 그는 지난 2011년,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 회장직을 역임하여 국내 여성생명과학자의 권익과 위상 제고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는 이사 및 위원장을 맡아 우수한 여성 과학자 발굴을 통한 생명과학기술의 발전과 보급에도 이바지했다. 그밖에도 대한약학회, 분자세포생물학회, 생화학분자생물학회 등 관련 학회에서 중책을 맡으며 전문가로서 다양한 대외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많은 역할을 하는 것이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이 여성과학자들의 행로를 비추는 등대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지금은 유방암 분야에 있어 세계적인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실험은 물론 육아와 집안일까지 도맡아 하며 남성 위주의 과학기술 분야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아이들이 한창 엄마 손이 필요한 나이였을 때 다른 엄마들처럼 항상 곁에서 살뜰히 챙겨주지 못했어요.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아도 실험 때문에 바로 병원에 가지 못할 때도 있었죠. 스스로 잘 자라준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지원해주고 격려해준 가족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여성과학자가 오랫동안 연구자의 길을 걷기 어려운 이유는 과학자로서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아야 하는 기간이 결혼과 임신, 출산 시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그는 여성 과학자가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한다. 생명과학 분야에서 여성이 가진 장점이 놀라운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는데 아직까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아 여성과학자가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지론. “미래사회에는 ‘여성’이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입니다. 특히 생명과학은 여성의 섬세함과 따뜻함, 조화로움이 얼마든지 장점으로 부각될 수 있는 분야죠. 전문직 여성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능력인 구성원들 간의 화합을 이끌어내는 조화로운 균형감각 역시 일반적으로 여성이 더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생명과학 분야의 실험 자체가 섬세함을 요하기도 하며 실험 가설을 세우고 기획, 디자인하는 과정에서도 여성의 꼼꼼함을 필요로 하기에 그런 장점들이 발휘될 있도록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해나가야 합니다.”






최근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여성의 소프트 파워가 빛을 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여성 과학 인력의 활용률은 낮은 편에 속하고, 과학의 길을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문제로 인해 국가과학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국내 과학계의 현실이다. 이에 대해 그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여성과학자들이 역량을 발휘해 시너지를 이룬다면 향후 국가 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예전에 비해 연구 환경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남녀 불균형은 여전하다. 그만큼 여성이 과학을 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는 여자라서 힘든 일을 못한다는 편견을 극복해야 하고 같은 조건이면 남성을 채용하는 식의 남성 위주의 사회적 정서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여성 스스로 뛰어난 전문지식과 기술로 무장한 실력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밤늦게까지 실험실을 지키며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아야 하고 맡은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는 책임감과 근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 앞으로 우리나라 과학계를 이끌어 나갈 많은 여성과학자들이 배출되기를 바란다는 그는 최근 20~30대 젊은 여성 연구원들을 위한 실험실 안전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실험실에서는 여러 시약이나 물질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가임기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성과학자에 대한 그의 애정과 관심은 차세대 연구자들의 행로에 든든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후학 양성은 과학발전과 미래를 위한 투자
덕성여자대학교 약학대학 학장과 교무처장을 역임한 그는 올해 3월부터 부총장으로 부임해 후학 양성과 행정 분야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재 BK21 플러스 사업팀장으로서 '유방암 전이제어를 위한 바이오신약 타깃 발굴 연구'를 수행하며 혁신 신약 개발에도 매진하고 있으며, 필요한 연구 역량을 갖춘 여성생명과학 인재양성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강의와 연구만으로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후학 양성은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기에 처음 강단에 섰을 때의 마음으로 열정을 다하고 있다.
“덕성여대 최초로 2013년 약학대학에서 BK21 플러스 사업에 선정되어 현재 암과 염증 사이의 네트워크를 규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수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죠. 1995년 덕성여대에 부임한 이후 20년 동안 강의를 통해 후학을 길러내는데 많은 투자를 해왔어요. 그동안 교무처장, 약학대 학장을 거쳐 부총장까지 두루 보직을 맡아온 것은 제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 대한 애정 때문입니다. 학교 구성원으로서 공공성을 지향하고 다양한 입장에서 생각하며 조화를 추구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는 수퍼 우먼으로 통하지만, 그는 그런 수식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저 마음속의 작은 열정과 소망을 묻어두지 않고, 그것을 꺼내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었을 뿐이다. 또 그런 의미 있는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지금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 저는 머릿속에 서랍을 만들어요. 일을 하나씩 처리할 때마다 차곡차곡 서랍에 넣어 정리를 하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그것들이 머릿속에서 헝클어져 있으면 일하기가 힘들거든요. 각기 다른 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머릿속에 만들어둔 서랍에 넣으면 다음 일에 집중할 수 있어요. 그리고 여가가 생기면 소파에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평소 좋아하던 소설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죠.”
주위 사람들과 배움과 열정을 나누는 성실한 연구자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는 학생들과 함께 20년 가까이 진행해온 유방암 전이 제어 관련 연구를 5년 내에 항전이 전략을 구현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후학 양성과 과학발전을 위한 그의 열정이 차세대 연구자들의 희망이 되길 기대해본다.



취재기자 김수은  [reporter3@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5년 10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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