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재적층구조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반도체 소자 실현 가능성 입증
연세대학교 신소재공학과 이관형 교수
연세대학교와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연구진이 꿈의 2차원 신소재 적층을 이용해 세계에서 가장 얇은 반도체에서 최고 속도의 전하 이동과 양자수송 현상을 최초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를 이끌어온 이관형 교수는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황화몰리브덴과 그래핀, 유전체인 질화붕소를 층층이 쌓는 방식으로 수개의 원자 층 두께로 얇고 매끄러운 계면을 가지는 신개념 소자구조를 개발했다. 이를 통해 그는 고성능·저전력·초스피드 양자소자와 초박형 반도체의 실현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번 연구는 향후 반도체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소재적층기술로 기존 연구의 한계를 넘어서다
2010년 그래핀의 발견으로 맨체스터 대학의 두 과학자가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2차원 반도체 물질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최근 2차원 반도체 물질의 다양한 소자 응용 가능성을 보여 주는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소자 특성이 이론적인 예상치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관형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여 2차원 반도체 물질의 고유 특성을 평가할 수 있는 표준소자구조를 개발해 2차원 반도체가 가지는 한계 성능을 평가하고, 이를 통해 신개념 소자를 개발하고자 이번 연구를 시작했다.
“실리콘 기반의 반도체 산업이 계속 발전함에 따라 유연하고 투명한 소재 개발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어요. 이에 따라 그래핀이 개발되었고, 관련 연구도 활발해졌죠. 하지만 그래핀은 밴드갭이 없다는 단점이 있어요. 반도체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밴드갭이 있는 그래핀과 유사한 물질이 필요했어요. 그것이 2011년에 개발된 이황화몰리브덴인데, 이 물질들의 성능을 개선하고 신소재적층구조를 적용하면 새로운 소자를 개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연구를 하게 되었어요.”
이황화몰리브덴은 그래핀과 유사하게 층상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핀과 달리 중간의 몰리브덴과 양쪽의 황 원층에 의해 샌드위치 구조로 밴드갭의 반도체 특성을 보이는 물질이다. 최근엔 그래핀과 함께 이황화몰리브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높은 전하이동도와 광반응성, 투명도와 유연성 등으로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서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의 이황화몰리브덴을 사용한 소자들은 이론적인 값보다 훨씬 낮은 전하이동도를 갖고 있어, 실질적인 활용 가능성이 낮고 새로운 물리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차원 물질을 적층하는 기술을 이용했다. 여러 종류의 2차원 물질로만 이루어진 소자를 제작해 그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것이다. 그는 2차원 물질을 적층한 표준소자구조로 기존의 2차원 물질 기반 소자가 가지는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했다.
세계 최초로 2차원 반도체의 양자수송 현상 관측 성공
세상에서 가장 얇은 반도체의 전하이동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표준소자구조를 개발한 이번 연구는 고성능 전자소자 및 신개념 양자소자의 개발의 초석이 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와 차별화된다. 그는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제임스 혼 교수 연구팀과 고려대학교 이철호 교수와 공동으로 신소재적층구조로 얇고 매끄러운 계면을 가지는 신개념 소자구조를 개발하여, 최고 전하 이동도를 측정하고 2차원 반도체의 양자수송 현상을 관측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즉, 이종 물질 사이에서 아주 깨끗한 계면을 만듦으로써 이론적으로만 예상하였던 이황화몰리브덴의 최고 전하 이동도(34,000㎠/Vs)를 처음으로 관측한 것이다. 또한 극저온 상태의 자기장 내에서 이동하는 전하와 자기장의 상호작용 현상을 측정해 이황화몰리브덴에서 일어나는 양자진동과 양자-홀 현상(양자수송 현상)을 세계 최초로 관측했다. 이와 더불어 기존에 고품질 반도체나 그래핀에서만 관측되었던 현상을 2차원 반도체에서 최초로 확인함으로써, 양자수송을 활용한 신개념 2차원 반도체 소자 구현의 가능성도 열었다. 이번 연구로 이룬 성과는 기존의 차세대 반도체 소자로 개발된 탄소와 질소 기반 벤젠고리 6각형 결정구조체(C2N-h2D 크리스털) 보다 상온에서는 10배, 저온에서는 100배 이상의 전류량(점멸비)과 전하 이동도를 보인다. 이처럼 놀라운 성능을 갖고 있는 이황화몰리브덴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12년. 이황화몰리브덴 연구의 시초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소자를 제작하기까지 꼬박 2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후에도 그는 1년 동안 소자 제작의 성공률과 측정기술을 향상시키는 수정보완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처음 이 연구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황화몰리브덴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다. 때문에 연구진은 황무지를 개척하듯 연구에 도전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게다가 성공률도 매우 낮은 상황이었으므로 실패할 위험성을 안은 채 연구를 시작해야만 했다. 하나의 소자를 만드는 데는 통상 3주에서 4주 가량이 소요된다. 그는 연구원들과 함께 무려 100개의 소자를 만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 몇 달 동안이나 고생을 했지만 소자가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결과를 맞닥뜨린 후 포기를 해야 할지, 연구를 계속 진행해야 할지 고민도 많이 했지만 그는 열정의 끈을 놓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황화몰리브덴에 대한 연구를 거의 처음 시작한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참고할 수 있는 기존 연구가 전무했어요. 소자가 만들어지지 않을 때는 연구 과정에 문제가 있는 건지, 이 물질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는 상태라 막막했죠. 도보로 30분이 걸리는 학교와 집을 매일 걸으면서 왜 안 될까, 무엇이 문제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그러는 사이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다음날 빨리 연구실에 가서 적용해보고 싶은 마음에 잠을 설치기도 했어요.”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한 걸음씩 정진하는 동안 크고 작은 문제점들이 해결되기 시작했고, 드디어 2년 만에 소자를 만들어냈다.
“처음으로 소자를 측정한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저녁식사도 거르고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온 거예요. 측정된 값을 믿을 수가 없었죠. 혹시 잘못 측정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측정 장비도 살펴보고, 연구원들이 돌아가며 계산도 다시 해보았죠. 결과를 최종 확인한 후 함께 고생한 시간을 떠올리며 하이파이브도 하고 기쁜 마음에 서로 끌어안기도 했죠.”
끊임없는 인내와 노력은 ‘세계 최초의 2차원 반도체 양자수송 현상 관측 성공’이라는 결실을 만들어냈다. 미국 콜럼비아 대학교 제임스 혼 교수 연구팀과 고려대학교 이철호 교수의 공동 연구로 수행한 이번 연구는 나노과학 분야의 세계적 국제학술지인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Nature Nanotechnology> 2015년 4월 27일 온라인 판에 게재되었다.
차세대 반도체 소자 개발과 정보통신기술산업에 기여하다
기존 2차원 반도체 소자의 한계를 뛰어넘는 표준소자구조는 다른 2차원 반도체 물질에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2차원 반도체의 고유 기초물성과 새로운 양자물리 현상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2차원 반도체 물질에서 발현될 것으로 기대되는 다양한 양자수송 현상에 대한 기초연구를 촉발할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또한 높은 전하이동도를 필요로 하는 고성능 전자소자의 개발이나 신개념 양자소자 개발 연구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차세대 반도체로 주목받고 있었지만, 그동안 활용 가능성이 입증되지 못했던 이황화몰리브덴의 빠른 전하 이동과 양자수송 현상을 입증한 것이 이번 연구의 의의라고 할 수 있어요. 앞으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반도체를 활용한 차세대 반도체 소자 개발과 정보통신기술산업 발전의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이 실용화되면 2차원 물질로만 이루어진 표준소자구조는 높은 전하이동도로 인해 고성능 반도체 스위칭소자를 구성할 수 있다. 또, 원자 수층의 두께로 인해 투명하고 유연한 소자의 제작을 가능하게 한다. 새로운 양자효과의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은 물론 양자수송 현상을 이용한 신개념 양자소자로 활용될 수 있다. 대략 5~10년 후에는 실용화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실용화를 위한 과제도 많고 2차원 반도체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다. 성공적으로 실용화하기 위해서는 2차원 반도체의 고유 특성을 파악하고 소자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소자 구조 개발이 필요하다. 성공적인 실용화를 위한 또 하나의 전제조건은 최상의 소재이다. 다시 말해 제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재 자체가 잘 만들어져야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2차원 물질에 대한 연구로 결함이 없고 성능이 좋은 소재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오픈마인드로 단절된 분위기를 해소하는 것이 공동연구의 전제조건
이번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는 공동 연구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연구가 많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번 연구도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열정을 연구로 승화했기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공동연구는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이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아요. 사람도 친해져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것처럼 공동연구도 서로 가깝게 교류해야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어요. 공동연구는 거창한 게 아니라, 단절된 분위기를 오픈마인드로 바꾸고 함께 모여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어려운 점을 얘기하는 데서 출발해요. 깊이 있는 공동연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향후 진행될 연구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세미나에 참석하며 아이디어를 얻는 그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연구에 대한 흥미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해준다고 말한다. 연구를 통해 새로운 결과를 얻어내고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공유하는 일.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질문과 과제를 찾아내고 새로운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 연구자로서의 즐거움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 꿈도 과학자였어요. 지금보다는 조금 내성적이었지만 수업시간엔 질문도 많이 하고 스킨스쿠버 같은 익사이팅한 스포츠도 좋아하는 학생이었죠. 과학자들의 일대기를 담은 위인전이나 역사책을 보면서 유명한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어요. 교수가 된 후엔 그때 가졌던 설렘이나 꿈, 고민들을 학생들을 통해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어요.”
학생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토론하기를 즐기며 수평관계를 지향하는 그는 아는 것은 아낌없이 나누고, 모르는 것은 인정하는 자세로 후배 연구자들에게 배움에 대한 열정을 심어준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거리감 없이 그의 연구실로 찾아와 허심탄회하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럴 때면 그는 다른 연구자들의 논문을 많이 읽어서 지식을 쌓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라는 조언을 건넨다. 논문을 읽을 땐 비판적이며 창의적으로 분석하고, 내 연구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라는 구체적인 어드바이스도 전해준다. 그리고 기존에 있는 것을 개선하거나 효율을 높이는 연구보다 앞으로 20~30년 동안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자기만의 커리어를 쌓을 것을 권유한다. 또한 진로를 결정할 때 돈과 명예를 따라가기 보다는 원하는 분야의 1인자가 되라고 말한다. 그 길이 성공의 지름길이자 연구자의 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교수가 되기 전, 3년 동안 대기업에서 회사생활을 해본 경험도 있는 터라 취업에 대한 걱정이 많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건넬 수가 있다. 친구나 선배처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면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연구나 진로에 대한 대화도 나누고 서로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연구를 할 때만큼은 일과 삶의 경계가 따로 없다는 이관형 교수. 현재 그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는 차세대 반도체 소자 개발과 이황화몰리브덴을 비롯한 다양한 2차원 반도체 물질에 관한 연구이다. 이를 위해 그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11시까지 타임 테이블을 구분지어 놓고 연구에 몰입한다. 평일에는 오후 5시면 업무를 마무리할 수 있지만 저녁 시간까지 할애하여 다른 연구도 폭넓게 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편이다. 주말엔 테니스를 치거나 가족과 함께 보내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한다. 표준소자구조를 이용해 다른 2차원 반도체의 특성을 측정하고 이를 활용해 실용화 가능한 신개념의 양자소자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는 그는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샴페인캠퍼스에서 재료공학으로 방문연구과정을, 미국 콜롬비아대학교에서 기계공학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연세대학교 신소재공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자신이 드러나는 것보다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하며 재료공학 및 관련 분야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그는 앞으로도 차세대 반도체 물질의 연구와 상용화에 이바지할 계획이다. 한계를 뛰어넘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룬 작은 성공을 큰 결실로 맺어가는 그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5년 9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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