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 기능을 조절할 수 있는 유기화합물 개발로
암 정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다
연세대학교 화학과 신인재 교수
화학생물학 분야의 탁월한 연구 업적으로 ‘세계 100대 과학자’로 손꼽히는 신인재 교수는 유기화합물을 이용한 생명 현상을 규명하고 질병 치료제의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를 꾸준히 수행해온 연구자이다.
유기화학을 전공한 그는 생물학을 접목한 화학생물학 분야를 개척하며 21세기 혁신적인 연금술을 펼쳐나가고 있다. 최근 세포 내의 단백질 기능을 조절할 수 있는 유기화합물을 개발하여 난치성 질병과 암 정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신인재 교수를 만나보았다.
탁월한 항암 효과를 가진 아폽토졸의 개발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암을 정복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하지만 지난해를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연간 1,000만명이 암으로 사망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평균적으로 4명중 한명이 암으로 사망한다는 통계 결과가 있다. 현대 생명 과학은 이 같은 의학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암 정복에 도전하고 있다. 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수술로 치료할 수 있고 완치율도 높지만, 시기를 놓치면 항암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수많은 연구자들이 암의 원인을 규명하고 항암제로 개발하려는 연구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 화학생물학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신인재 교수는 암을 비롯해 난포성 섬유증 등 난치성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획기적인 유기화합물을 개발해 화학생물학과 의학 발전에 기여하고자 15년간 관련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처음에는 약물 고속검색법을 통해서 세포 자살을 유도하는 화합물을 발굴하고 싶었던 것인데,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HSP70가 굉장히 많은 생물학적 역할을 하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 중 하나가 암 세포의 죽음을 억제한다는 것이었어요. 또 HSP70의 타겟 단백질은 아폽토졸이라는 것을 확인했죠.”
특히 신 교수가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것은 항암 효과를 갖는 유기화합물. 그는 이를 규명하기 위해 연세대 생화학과 송기원 교수와 연세대 의과대학 박영년 교수 연구팀과 함께 새로운 열 충격단백질 70의 저해제인 아폽토졸을 개발했다. 또한 이 화합물의 세포 내 작용기전과 항암효과에 대해서도 면밀한 조사를 이어나갔다. 이 연구에서 개발된 아폽토졸은 세포 내에서 열 충격단백질 70이 에이팝 원(Apaf-1) 단백질과 결합하는 것을 억제해 암세포가 세포 자살을 통해 죽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알려진 항암제인 독소루비신과 동시에 아폽토졸을 암세포에 처리하였을 경우 항암효과가 더 뛰어나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려움과 실패는 후속 연구의 모티베이션
항암제 종류는 다양하지만 지금까지 HSP70를 작용점으로 하는 저해제는 개발되지 않았다. 그동안 학계는 제약회사와 함께 HSP70와 유사한 HSP90이라는 단백질 저해제를 개발해왔을 뿐이다. 그는 HSP90을 저해시키면 세포 내에서 암세포가 사멸되는 것을 억제하는 HSP70가 많이 생성되어 항암 효과가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한계점은 HSP70와 아폽토졸을 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까지 많은 연구진들이 HSP70의 저해제를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현재까지 우수한 억제 효과를 보이는 유기화합물은 거의 없는 실정이며, 임상에 들어간 저해제도 없는 상황이다. 그의 연구가 의미가 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연구를 하는 모든 과정이 즐거움을 주고, 연구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희열을 느끼게 하지만, 때로는 실패도 하고, 힘들 때도 많아요. 아폽토졸이라는 화합물보다 더 나은 효과를 가진 화합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수없이 고민하고 구조생리활성 연구도 했죠. 하지만 아직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는 못한 것이 아쉬워요. 앞으로 후속 연구를 계속한다면 획기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아쉬움이나 실패, 어려움은 다음 연구의 모티베이션이자 연결고리가 된다. 아폽토졸의 개발도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얻어낸 성과이다. HSP70는 세포 자살에 대한 신호전달 과정이 굉장히 많다. 때문에 저해제인 아폽토졸의 작용 지점을 연구하는 것은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겐 가장 어려운 과정이기도 하다. 항암 작용 기전 연구를 하며 연구에 난항을 겪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연구를 거듭했다. 그 결과 HSP70가 세포 자살을 유도시키는 원리를 규명하는 것은 물론 뛰어난 항암작용을 하는 아폽토졸을 성공적으로 개발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일은 업으로 삼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만 즐기면서 오랫동안 일을 할 수가 있어요. 특히 과학 분야는 자기가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분야이기도 하죠. 좋아해야 그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어려움을 감수할 수 있어요.”
평소 연구자가 되길 희망하는 연구생들에게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끈기와 투지를 가지라고 조언하는 그는 신중하게 선택하고, 한 번 결정한 것은 번복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과학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연구자들이 연구를 시작해서 결과를 얻기까지 수많은 실패를 겪고, 어려움을 헤쳐 나갔던 것처럼 신진 연구자들도 그렇게 해나가길 바란다는 소망도 전한다.
메커니즘을 밝히는 과정은 늘 어렵지만, 힘들고 어려울수록 성취하는 기쁨이 크다는 신인재 교수. 그는 앞으로도 적은 양의 화합물로 더 좋은 항암 효과도 얻고, 부작용도 줄일 수 있는 화합물을 개발하는 후속 연구를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
|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연구자
HSP70는 정상세포가 죽지 않도록 세포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단백질은 암세포에 많이 생성되어 암세포가 죽는 것을 억제하는 기능도 한다. 때문에 그동안 이 단백질의 활성을 억제하는 저해제를 개발해 항암제로 사용하고자 했으나,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아폽토졸을 알려진 항암제와 동시에 투여할 경우 기존 항암제의 농도를 낮추어 부작용을 줄일 수 있어요. 암세포를 이식한 쥐에 아폽토졸을 투여하였을 경우, 암세포 조직이 많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약물에 의한 부작용도 관찰되지 않았죠.”
이 같은 그의 연구는 항암제 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항암제 연구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셀(Cell)’을 발행하는 셀프레스의 저널 ‘케미스트리 앤 바이올로지(Chemistry & Biology)’ 13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된 바 있다.
탄수화물 기능연구의 핵심기술인 ‘고집적 탄수화물칩’을 비롯해 치매·뇌졸중·파킨슨병 등 퇴행성 신경질환 치료에 도움을 주는 ‘뉴로다진’, 척추동물의 배아 단계에서의 심장 발생에 영향을 주는 유기화합물 ‘카디오설파(cardiosulfa)’ 탁월한 효능으로 낭포성 섬유증과 암 치료에 기여하는 아폽토졸(apoptozole) 개발 등 이제까지 그가 이룬 성과들은 과학과 의료 분야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
화학생물학에 대한 연구결과로 과학인용색인(SCI) 등재 학술지에 약 80여 편의 논문을 게재하며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해온 그는 네이처와 사이언스, 미국화학회 및 영국왕립화학회의 뉴스지 등에도 지속적으로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구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은 영국 인터내셔날 바이오그래픽칼 센터(IBC)에서 주관하는 '2012년 세계 100대 과학자'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겨주었다. 같은 해인 2012년 12월에는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기화학자이지만 생물 분야 등 관련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야 더욱 가치 있는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은 연구자로서의 생명을 유지하는 일과도 같아요.”
업적을 쌓고 명예를 얻는 데 급급하거나 현재에 안주하면 발전할 수도 없고, 연구자로서의 생명도 잃게 된다고 말하는 그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노력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연구자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다.
|
|
공동 연구는 견제보다는 신뢰와 책임감이 필요
생기능성 유기분자 연구 단장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화학을 전공한 후 미네소타주립대 화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University of California-Berkeley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연세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현재 세계적인 학술지인 케미칼 소사이어티 리뷰(Chemical Society Reviews)를 비롯해 켐바이오켐(ChemBioChem), 커런트 케미칼 바이올로지(Current Chemical Biology) 등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기화학과 생물학을 융합해 화학생물학 분야를 개척하는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는 그는 다른 분야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공동연구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공동 연구는 관심사가 같고 흥미가 있어야 해요. 연구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면, 서로 견제하고 알력을 세우기보단 욕심을 버리고 함께 끝까지 해낸다는 책임감을 갖는 게 중요해요. 투명하게 진행상황을 공유하고 연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 데 각자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나의 운명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기는 안이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각자의 연구도 이와 연결된 공동 연구도 다른 사람이나 연구팀이 아닌, 자기 스스로 완벽하게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성공의 가능성과 실패의 가능성, 중도 하차의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있어야 진행하고자 하는 연구 자체가 사멸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에 공동 연구는 궁합이 잘 맞으면 최상의 결과를 낳지만, 서로 조화가 되지 않으면 연구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다. 공동 연구의 필요성과 더불어 그는 앞으로 진행될 연구 계획을 들려주었다.
“세포 연금술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2006년 영국왕립화학지에 생물 연금술이란 말이 최초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앞으로 연구 역량을 집중시켜 진행할 계획이에요. 제가 진행하고자 하는 세포 연금술은 중세기 전 유럽에서 성행한 원시적 화학기술이었던 연금술이 21세기 새로운 연금술로 탈바꿈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 중에서도 그가 연구하고 싶은 분야는 ‘유기분자에 기반을 둔 세포 연금술’이다. 지난 2007년에 세계 최초로 근육 세포를 신경 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는 유기화합물인 ‘뉴로다진(neurodazine)’을 개발해 전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이 연구의 밑바탕이 되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었다.
“학계와 의학계에 큰 기여를 하게 될 획기적인 연구이자 이상적인 연구이긴 하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연구들이 새로운 열정과 활력을 불어넣어 주리라 기대합니다. 유기분자에 기반을 둔 세포 연금술 분야를 연구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과 연구자로서의 일생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겠다는 그의 다짐은 오늘도 연구에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5년 7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