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분석의 한계를 뛰어넘다
‘땀구멍 지도’ 이용한 새로운 지문분석법 개발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 김종만 교수
미국 드라마 ‘CSI’를 보면 수사대원들이 범죄현장에 남아 있는 범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지문을 채취하고 분석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지문은 개인마다 고유하고, 그 모양이 평생 변하지 않아 지문을 분석하는 것이 신원 확인을 위한 가장 확실하고 기본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현재 지문분석은 융선을 파악하는 방법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경우 지문이 많이 남아 있을 때에만 분석할 수 있다는 단점을 지닌다. 또 종이와 지폐 등 수분 흡수가 빠른 종이에 찍힌 지문은 땀구멍 모양의 점 패턴만 남아 그동안 증거자료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한양대학교 김종만 교수가 손가락 끝의 땀샘에서 나오는 미량의 수분을 감지해 ‘땀구멍 지도’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 기존 지문분석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지문분석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지난해 10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한 김종만 교수를 만났다.
기존 지문분석법 보완할 땀구멍 지도 개발
주민등록증의 뒷면을 보면 본인의 엄지 지문이 찍혀 있는데, 신원 확인과 범죄 예방을 위해 정부에서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문 모양은 곡선 형태의 융선으로 기록된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만지면 손가락에서 수분, 지방, 아미노산 등의 분비물이 퍼져 나와 융선 형태로 남기 때문이다. 이 때 융선은 개인마다 모두 다른 고유의 형태를 보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융선의 패턴을 파악하는 지문분석방법은 신원 확인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여겨지며, 지난 100년 이상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융선을 이용한 방법은 지문의 많은 부분이 존재할 때에만 분석이 가능하고, 종이와 지폐 같은 다공성 고체표면에 찍혀 있는 잠재지문(육안으로 쉽게 관찰할 수 없고 이화학적 처리를 해야 관찰할 수 있는 지문) 분석에는 한계를 가진다. 다공성 고체표면에 손가락이 닿았을 때 지문의 융선 모양 패턴이 남지 않고 손가락의 땀구멍에서 나오는 땀이 다공성 종이에 빠르게 흡수되어 점 패턴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점 패턴은 기존의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융선 패턴과 대조를 할 수가 없어 증거자료로 활용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김종만 교수가 개발한 ‘땀구멍 지도(sweat pore map)’를 이용한 신원 확인 방법을 활용하면 이러한 한계점을 대체, 보완할 수 있다. 땀구멍도 지문과 마찬가지로 개인마다 패턴이 다르고,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면 변하지 않는다. 땀구멍은 머리카락 굵기의 50분의 1 크기로, 피부의 모공만큼이나 작은 크기다. 김종만 교수는 이 작은 땀구멍을 추출하기 위해 땀샘에서 나오는 미량의 수분을 감지하고, 이미지화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전에도 손가락 끝에 있는 땀구멍 패턴을 추출하려는 시도는 있어 왔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고해상도 스캐너와 복잡한 알고리즘이 필요하고, 땀구멍과 융선이 겹쳐져 있는 지문의 복잡한 구조로 인해 땀구멍만 추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김종만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땀구멍에서 나오는 소량의 물과 반응해 색의 변화를 가져오는 센서소재인 수변색 물질(물과 반응해 색이 변하는 물질)인 폴리다이아세틸렌(PDA)을 이용해 지문에서 땀구멍만 추출해 땀구멍 지도를 만들었다.
“연구실에서 연구하던 도중 수분에 의해 색이 변하는 고분자 물질을 우연히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분에 의해 색이 변한다면 손가락 끝에서 나오는 소량의 수분에 의해서도 색이 변할 수 있는지 조사했죠. 놀랍게도 수분에 의해 색이 변하는 고분자를 필름형태로 만들어서 지문을 날인한 결과, 땀구멍 패턴이 얻어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에 이용한 폴리다이아세틸렌은 본래 형광이 없는 청색을 띠지만 땀구멍에서 나오는 아주 극소량의 수분과 반응하면 주사슬이 비틀리는 구조 변화로 인해 적색의 형광을 띠게 된다. 이러한 특성에 착안해 김종만 교수는 폴리다이아세틸렌을 고체 기판 위에 코팅해 필름으로 만든 후 지문을 날인하면 땀에 함유된 수분과 반응해 청색에서 적색으로 변하도록 설계했다. 즉, 폴리다이아세틸렌으로 만든 필름에 손가락을 찍으면 땀샘에서 나온 땀이 찍혀 적색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고, 이를 형광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땀구멍 패턴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폴리다이아세틸렌을 이용한 땀구멍 지도의 장점은 수분이 나오는 활성화된 땀구멍과 땀이 나오지 않는 비활성 땀구멍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기술은 폴리다이아세틸렌 필름에 지문을 날인해 땀구멍 패턴을 얻은 후 고해상도 스캐너를 이용해 얻은 지문이미지와 중첩을 시켜 활성 땀구멍과 비활성 땀구멍을 구별하는 최초의 기술이다. 이것을 이용해 기존에 땀구멍 지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놓으면 패턴 매칭 프로그램을 이용해 잠재지문의 땀구멍과 비교,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
“종이 위에 땀이 빠르게 흡수되어 형성된 잠재지문에는 수분이 빨리 증발하고 땀 성분의 일부인 미량의 아미노산이 종이에 고정되는데요. 이 아미노산이 닌하이드린(Ninhydrin, 아미노산과 반응하면 색의 변화가 나타나는 화학물질)이라는 물질과 반응하면 보라색 염료를 형성하기 때문에 이미지 구현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얻은 잠재지문의 땀구멍 패턴과 폴리다이아세틸렌을 이용해 얻은 패턴과 대조해 신원파악이 가능한 것이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다
김종만 교수의 이번 연구성과는 세계적 자연과학분야 학술지 ‘네이처(Nature)’지의 자매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지 2014년 4월 29일자 메인 기사로 게재되었고, 5월 8일에는 ‘네이처’지에도 지문분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했다는 내용이 research highlight로 소개되었다. 이외에도 Science, Discover Magazine, Chemistry World 등 다양한 과학 잡지에 소개되며 세계적으로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은 다공성 고체에 남겨져 있는 잠재지문으로부터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지만, 땀구멍 지도를 이용한 이미지 매칭 시스템으로 인해 잠재지문도 신원 파악에 유용하게 사용될 전망이다. 또한 땀 분비 관련 질환이나 땀구멍이 중요한 이슈가 되는 화장품 연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실제 스킨케어 제품을 만드는 세계적 대기업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김종만 교수에게 공동연구를 제안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존의 지문 데이터베이스 외에 땀구멍 지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범죄수사 뿐 아니라 신원 파악에도 용이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만들어서 상용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죠. 상용화를 위해서는 가격 선정문제, 보존력 문제 등 고려해야 할 점들이 많은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향후 범죄수사와 신원 확인 뿐 아니라 다양한 보안출입 시스템, 화장품 개발, 의료분야에도 응용되어 여러 분야에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짜휘발유 판별 가능한 센서칩 상용화
김종만 교수는 지난 15년 동안 폴리다이아세틸렌 센서 관련 연구에 매진해 왔다. 그 결과 폴리다이아세틸렌과 관련된 수많은 논문을 국제저명학술지에 게재하며, 연구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세계적 리더로서 김종만 교수는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겨 왔는데, 그 중에서도 가짜휘발유를 쉽게 판별할 수 있는 휴대용 센서칩 개발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기존의 가짜휘발유 판별 센서는 고가의 분석장비 또는 유독한 화학물질을 사용하거나 휴대가 불편했는데 김종만 교수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명함 크기의 가짜휘발유 센서칩을 개발, 상용화에 성공하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폴리다이아세틸렌이 내포된 전기방사 섬유를 톨루엔에 노출시켰을 때 청색에서 적색으로 색전이가 일어남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가짜휘발유는 대부분 톨루엔이 15% 이상 들어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 가짜휘발유 판별키트를 개발한 것이죠. 즉, 정품휘발유에는 센서의 색이 청색을 유지하나 가짜휘발유에 노출되면 적색으로 바뀌게 됩니다. 또한 정품휘발유에는 나노섬유의 형태가 유지되지만, 가짜휘발유에는 보호막으로 작용하는 나노섬유가 녹으면서 가짜휘발유가 섬유내부로 침투, 폴리다아이세틸렌과 반응해 색전이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동안 공액고분자를 이용한 센서 소재 및 시스템과 관련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으나 김종만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센서칩을 제외하고는 실생활에 적용가능한 공액고분자 센서는 전 세계적으로 단 한건도 보고된 바가 없었다. 이는 김종만 교수의 연구가 학문적으로도 매우 탁월할 뿐 아니라 실용적 연구에도 역량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가짜휘발유 센서칩은 소량의 샘플(100 마이크로리터 이하)로 3초 이내에 청색에서 적색으로의 색변화를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다. 가짜휘발유 센서칩 연구는 한양대학교 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로 기술을 이전해 상업화에 성공했다. 현재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2012년 상용화한 이래 2014년 7월 현재 약 230,000개의 판매실적을 나타내고 있다.
또 하나 김종만 교수의 연구성과 중 위조 방지용 열변색 공액고분자 잉크센서 개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연구팀은 폴리다이아세틸렌을 이용해 손쉽게 위변조 제품을 식별할 수 있는 위조방지용 잉크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결과는 재료 분야의 세계적 권위지인 ‘Advanced Materials’지에 2011년 12월 게재되었으며, 특허등록이 완료된 상태다.
“우리 연구팀이 개발한 위조방지용 잉크는 기존의 복잡하고 고가의 장비가 아닌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잉크젯 프린터를 이용해 종이류에 쉽게 프린팅이 가능합니다. 다이아세틸렌(diacetylene) 단량체와 계면활성제 복합체를 잉크로 해 일반 사무용 잉크젯 프린터의 검정색 잉크 카트리지에 넣은 후 인쇄를 하면, 처음 인쇄한 상태에서는 다이아세틸렌 단량체로 되어 있어서 아무런 이미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외선을 노광하면 중합이 일어나 폴리다이아세틸렌이 형성되어 청색의 이미지가 나오고 열을 가하면 청색이 적색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죠.”
연구팀은 잉크젯 프린팅이 가능한 이 센서 시스템을 지폐에 적용해 가역적 색전이가 일어남을 확인했다. 먼저 Bank of Korea를 천원 지폐에 잉크젯 프린터를 이용해 인쇄하면 아무 이미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외선 노광에 의해 이미지를 형성 후 온도를 올리면(70oC) 적색으로 색전이가 일어나고 상온으로 식히면 1초 이내에 청색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가역적 색전이는 수백번 사용해도 색의 변화가 없이 안정함을 확인했다. 이 연구결과는 기업체에 기술을 이전한 상태로, 한국조폐공사에 의뢰해 지폐 위조 방지용 잉크로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 및 상용화를 추진 중에 있다.
이밖에도 김종만 교수는 폴리다이아세틸렌과 protective layer 개념을 도입해 특정 용매에만 색이 변하는 Turn-On 형태의 용매발색 센서시스템을 개발해 ‘Nature Communications’지에 2013년 9월 게재하는 등 다양한 연구성과를 창출해 왔다. 그 결과 2003년 한국고분자학회 ‘PSK-Wiley 젊은과학자상’을 비롯해 2009년 한양대학교 ‘우수강의교수’, 2010년 한양대학교 ‘최우수 연구교수상’, 2012년 스승의날 포상 ‘국무총리상’,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등을 수상하며 우수한 연구역량과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 김종만 교수는 유기나노소재연구실을 이끌며 과학적으로 흥미로운 연구부터 실생활에 응용 가능한 실용적인 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그의 뒤를 이을 우수한 연구인재 양성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함께 한양대학교 나노과학기술연구소의 소장으로서 경쟁력 있는 나노기술 관련 융복합과학기술 연구 분야 개발 및 교육체계 구축, 세계적 수준의 국내외 나노기술 연구기관과의 국제협력체제 구축 등을 추진 중이다. 나노과학기술연구소는 2012년 이공분야 대학중점연구소지원사업에 선정된 바 있다.
테크니션이 아닌 사이언티스트가 되라
김종만 교수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화학시간에 벤젠고리에 대해 공부를 한 후 유기화학 분야에 흥미를 느껴 화학공학을 대학교 전공으로 선택했다. 이후 김종만 교수의 삶은 오로지 유기화학을 향한 ‘도약’의 삶이었다.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높이 나는 갈매기가 멀리 본다’라는 문구를 좋아해요. 대학교 진학 후 내가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최대한 가보자는 꿈을 키우게 되었죠. 그래서 학문적으로 학사에 만족하지 않고 석사, 박사까지 공부를 하면 좀 더 시야가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박사학위를 갖기까지는 여러 가지 힘든 일도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학사나 석사학위까지만 공부했다면 알지 못하는 연구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 있어서 매우 잘한 선택이었다고 자신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기회가 생긴다면 가능한 박사학위까지 해보라고 권하고 있어요.”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후연구원 경험을 쌓은 김종만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선임연구원으로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때 한 세미나에서 조건에 따라 색이 자유자재로 바뀌는 폴리다이아세틸렌을 접하게 되었고, 이에 반한 나머지 관련 연구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 김종만 교수는 폴리다이아세틸렌 센서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리더로 성장했다. 김종만 교수는 스스로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창의적 삶을 살아온 만큼 후학들에게 ‘테크니션(technician)’이 아닌 ‘사이언티스트(scientist)’가 되라고 강조하고 있다.
“대학원생들에게 제가 자주하는 말은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테크니션이 되지 말고 창의적인 생각이 요구되는 사이언티스트가 되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물질의 개발에 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문헌 조사 및 독창적 아이디어 접목에 관해 스스로 노력하라는 것이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남들이 하지 못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훌륭한 연구결과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종만 교수는 가짜휘발유를 손쉽게 구별할 수 있는 센서칩을 만들어 상용화에 성공한 것과 같이 앞으로도 일상생활에 적용 가능한 센서 개발에 연구를 집중할 예정이다. 학문적 깊이와 동시에 실제 우리 생활에 응용 가능한 연구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꽃을 피워야 향기를 알 수 있듯이 연구 역시 실제 사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김종만 교수의 연구가 꽃을 활짝 피워 인류의 삶에 아름다운 향기를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5년 3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