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입자로 질병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인지질 이용한 다기능성 전도성 고분자 나노입자 제조
중앙대학교 화학신소재공학부 박주현 교수
전도성 고분자 나노입자 내부에 자성나노입자를 내입시킬 경우 이 자성나노입자의 특성을 활용하면 MRI를 통해 질병을 진단하는 것이 가능하다. 진단 뿐 아니라 전도성 고분자 나노입자의 특성을 이용해 질병의 치료가 가능한 다기능성 나노입자를 구현할 수도 있다. 이처럼 한 종류의 나노입자를 사용해 질병의 진단과 치료가 동시에 가능한 바이오메디컬용 나노입자를 개발하고자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중앙대학교 화학신소재공학과 박주현 교수 연구팀이 전도성 고분자에 세포막의 주요성분인 인지질을 결합한 바이오메디컬용 나노입자를 개발, 질병의 진단과 치료가 동시에 가능한 다기능성 하이브리드 나노소재 개발에 중요한 단초를 제공했다.
기존 방법 한계 극복한 차별화된 제조 기술
전도성 고분자로 된 나노입자는 우수한 형광발현 효율과 증대된 형광수명 때문에 2000년대 이후 바이오메디컬 분야에 활용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입자 표면에 특정 세포나 조직에 결합할 수 있는 기능기를 도입해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이미징, 센싱 기능은 물론 치료를 위한 약물전달장치 등에 활용하기 위한 연구들이 보고되는 추세다.
“1977년 처음 보고된 전도성 고분자는 유기물질에 전도성을 부여한 특성 때문에 최근까지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트랜지스터 등 광전자소자를 제작하는 용도로 주목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바이오메디컬 관점에서 봤을 때 전도성 고분자는 인체 내부에서 안정성이 높고 광전자적 특성을 구현할 수 있어 진단이나 치료에 있어서도 응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즉, 특정한 암세포에 부착되도록 제어해 빛을 내도록 함으로써 질병의 진단에 활용할 수 있고, 열을 방출해 암세포를 사멸시켜 질병 치료에도 이용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 연구팀은 전도성 고분자의 유용한 특성을 바이오메디컬 분야에 적용하고자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널리 사용되는 전도성 고분자 나노입자 제조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저분자 단량체를 이용해 에멀젼을 형성시킨 후 직접적으로 고분자화 반응을 진행시켜 합성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기존에 합성되었거나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전도성 고분자를 유기용매에 묽게 용해시킨 후 용해도가 현저히 감소된 다른 용매에 떨어뜨려 침전을 형성시켜 제조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기존의 제조방법은 어려운 고분자 합성법을 이용하거나 입자 제조수율이 현격히 낮고, 인체 적용을 위한 기능기를 나노입자 표면에 도입하기 위해 여러 단계의 후처리 화학반응이 필요하다는 문제점들이 있었다.
이에 박주현 교수 연구팀은 기존의 전도성 고분자 나노입자 제조방법과는 전혀 다르게 인지질과 전도성 고분자가 상분리되어 있는 필름을 분쇄해 나노입자를 제조함으로써 기존 방법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연구에 사용된 전도성 고분자는 PCPDTBT라는 물질로, 고분자 태양전지에 많이 사용되며 에틸헥실 곁가지를 보유한 근적외선을 흡수할 수 있는 고분자다. 이 전도성 고분자와 인지질 분자를 동시에 유기용매에 용해시킨 후 유기용매를 증발시켜 박막을 형성시키면 상분리된 형태의 박막이 형성된다. 이는 인지질 분자의 친수성 부분과 소수성 전도성 고분자의 극명한 물리화학적 특성 차이에 기인한다.
이 때 인지질 분자의 소수성 알킬사슬과 전도성 고분자의 알킬 곁가지의 길이가 비슷하면 알킬들 간 밀접한 자기조립이 발생해 상분리된 영역의 크기가 수십 나노미터 범위인 나노모폴로지가 형성된다. 이러한 박막에 물을 부가한 후 초음파 처리를 할 경우 인지질 분자의 극성부분은 물과 인접하려는 성향이 있고, 반대로 인지질 분자의 소수성 부분과 전도성 고분자는 물로부터 멀어져서 응집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박막이 분쇄되어 물에 분산된 평균직경 58nm 정도의 전도성 고분자 나노입자를 형성한다.
이와 같은 제조방법은 바이오메디컬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인지질 액적(vesicle)을 제조하는 공정과 유사해 소재 합성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기존 바이오 메디칼 분야 종사자들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 연구팀이 제시한 기술은 전도성 고분자와 인지질의 필름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친수성인 인지질과 소수성인 전도성 고분자는 서로 섞이지 않으려는 성질 때문에 서로 분리되어 필름 내에 존재하는데, 분리된 영역의 크기를 수십 나노미터 정도가 되도록 제어했습니다. 그 뒤 필름을 물에 담가서 초음파 처리를 하면 물분자가 친수성인 인지질 내부로 침투해 필름이 분쇄되고 결과적으로 나노입자가 물에 분산된 형태로 제조되는 것이죠. 이처럼 저희가 개발한 방법은 상분리된 필름을 이용해 나노입자를 제조한다는 개념에서 다른 제조방법들과는 완전히 차별화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주현 교수는 다른 제조방법에 의해 제조된 나노입자의 경우 바이오메디컬에 적용하려면 표면에 기능기를 도입해야 하므로 표면처리가 필요하지만, 연구팀이 제조한 입자는 제조된 즉시 표면처리 단계 없이 바로 기능기를 도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이 뿐 아니라 한 번에 제조할 수 있는 나노입자의 양 역시 타 기술에 비하면 훨씬 많다는 설명이다.
진단·치료 가능한 다기능성 나노입자 제조 기대
형성된 나노입자는 표면에 인지질의 극성부분이 위치하고 내부는 전도성 고분자와 인지질의 소수성 부분이 밀집된 형태를 보유하게 된다. 이 같은 밀집된 분자상태에서는 전도성 고분자의 주사슬간 거리가 0.314nm 정도로 매우 가깝게 된다. 결과적으로 전도성 고분자가 보유하고 있는 파이자유전자 사이의 공유가 발생해 에너지레벨을 안정화시킴으로서 근적외선 영역을 포함하는 장파장 영역에서 빛의 흡수를 증대시킨다는 것이다.
전도성 고분자 나노입자의 증대된 근적외선 흡수능력은 암세포사멸용 나노소재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는 인체에 근적외선을 조사할 경우 장파장 특성에 기인해 가시광선에 비해 보다 피부 깊숙이 최대 8cm까지 빛이 침투할 수 있고, 전도성 고분자 나노입자가 인체 내부로 투입되어 암세포에 결합되어 있을 때 인체 외부에서 근적외선을 조사하면 효과적으로 암세포를 사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근적외선은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에 사용되는 적색등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이 인체 내부로의 효과적인 에너지 전달 특성 때문에 치료용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익숙한 에너지원이다.
또한 제조된 나노입자는 약 40%의 양자효율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나노입자가 외부로부터 빛을 흡수할 경우 흡수한 에너지의 40%는 형광으로 방출하고, 60%는 열로 방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특성을 이용하면 전도성 고분자 나노입자가 내입된 자궁경부암세포인 헬라세포의 형광이미징이 가능해지는 동시에 808nm의 근적외선을 조사했을 때 나노입자에 의해 방출된 열에 의해 암세포가 사멸되는 효과를 동시에 구현할 수 있다. 즉 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인지질의 극성부분에 일차아민을 보유하고 있는 인지질을 이용해 전도성 고분자 나노입자를 제조할 경우 제조된 나노입자의 표면은 일차아민으로 구성된다. 이 일차아민에 암세포에 특이적인 기능기를 부착하거나 인체 내부에서 비선택적 흡착을 방지하기 위한 폴리에틸렌글리콜 등을 부착하는 것은 바이오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일차아민과 카르복실산의 아미드화 반응에 의해 용이하게 진행될 수 있다. 모델 시스템으로서 전도성고분자 표면에 효소의 일종인 바이오틴(biotin)을 아미드 결합을 통해 부착시킨 후 표면에 단백질의 일종인 스트렙타비딘(streptavidin)을 보유하고 있는 폴리스티렌 마이크로입자에 적용할 경우 바이오틴-스트렙타비딘의 특이적 결합에 따라 나노입자가 마이크로입자 표면에 조밀하게 결합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즉, 복잡한 다단계화학반응을 피하면서 용이하게 기능기를 나노입자 표면에 도입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 연구팀이 제조한 나노입자의 특성 중에 하나는 직경 58nm 정도 되는 전도성 고분자 나노입자 내부에 직경 10n 정도의 인지질 액적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전도성 고분자 나노입자 내부에 다른 제3의 물질을 넣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죠. 제3의 물질은 기존에 많이 사용되는 이미징용 형광 염료나 양자점, MRI을 위한 자성나노입자 등이 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무기 하이브리드 나노입자의 제조가 가능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연구결과는 한 종류의 나노입자를 사용해 질병의 진단과 치료가 동시에 가능한 다기능성 하이브리드 나노소재를 개발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박주현 교수는 현재는 새로운 나노입자의 제조기술 개념에 대한 제시를 한 상태로, 인지질과 전도성 고분자가 상분리된 상태의 구조적 특성이 어떻게 광학적 특성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메커니즘 규명에 대한 연구와 함께 바이오메디컬용 다기능성 나노입자를 구현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뿐 아니라 인지질과 전도성 고분자의 상분리현상을 트랜지스터 등 광전자소자의 효율 향상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점에 착안해 관련 연구를 수행 중에 있다.
한편, 이번 연구성과는 박주현 교수가 주도하고 포항공대 화학과 김성지 교수, 포항방사광가속기 신태주 박사, 연세대 기계공학부 주철민 교수,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유필진 교수, 중앙대 화학과 박태정 교수 연구팀이 공동으로 참여했으며, 첨단 재료분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지’ 2014년 7월 9일자에 게재되었다.
모든 결과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다
박주현 교수가 주로 진행해 온 연구는 근본적인 측면에서 친수성인 분자와 소수성인 분자가 서로 섞이지 않으려는 성질을 이용해 자기조립 분자구조를 형성시키고 이를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사학위 과정에서는 테프론 표면과 같은 아주 소수성인 물질의 표면에 친수성 고분자를 흡착시켜 필름을 형성시키고 이 필름을 다시 떼어내어 배터리의 전극물질로 사용하거나 디스플레이 또는 센서의 픽셀을 제조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전도성 고분자와 인지질의 자기조립 현상을 이용해 미생물연료전지의 효율을 향상시키는 연구와 바이오메디컬 분야에 응용하는 연구에 매진해 왔다.
특히 2008년부터는 박주현 교수 연구의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유기광전자연구실’을 이끌며, 의미 있는 성과들을 창출하고 있다. 연구실의 가장 큰 특징은 연구원들이 언제나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교감할 수 있는 ‘열려 있는 연구실’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매주 개별 미팅을 통해 연구과정에 어려움은 없는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데, 이 때 박주현 교수는 연구원들이 스스로 깨닫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지켜봐 주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연구원들이 심리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지도교수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남들보다 빠르게 걷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가치 있고 깊이 있게 걷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치 있는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후배 연구자들이나 학생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어떤 연구주제에 대해 왜 그 연구를 진행하는지 명확하게 이해가 되어야지 목표를 올바르게 설정하고, 정진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연구를 진행하면서 실험결과물에 대해 왜 그러한 결과가 나왔는가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것이 연구의 요체일 것입니다.”
박주현 교수 연구실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공동연구를 통해 연구에 완성도를 더하고, 시너지 효과를 도출한다는 점이다. 정체성이 될 수 있는 연구 분야를 확고히 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른 연구자들과 공동연구를 수행해 연구의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박주현 교수는 신소재의 합성이나 형태 및 구조 제어에 전문성을 갖춘 만큼 이를 바탕으로 광전자 소자나 바이오 분야에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는 연구그룹들과 손을 잡고,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번 인지질을 이용한 다기능성 전도성 고분자 나노입자 제조 연구도 공동연구가 결정적 한 수로 작용했다.
“연구란 알려져 있지 않은 현상을 명확히 규명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늘 불확실성에 대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상의 명확한 규명을 위해서는 다양한 실험장비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작업을 진행해야 하죠. 이번 연구 역시 저희 팀 독자적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다양한 연구팀의 도움을 받아서 이번 연구를 성공할 수 있었고, 완성도 역시 훨씬 높일 수 있었습니다.”
박주현 교수는 앞으로도 이러한 열린 연구를 기조로 더욱 다양하고, 탄탄한 연구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을 더할 예정이다. 먼저 전도성 고분자와 양자점 또는 자성나노입자와 같은 무기물 나노소재를 결합한 유무기 하이브리드 나노입자를 제조하는 후속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를 이용해 나노입자 형성 메커니즘을 규명한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메커니즘 규명부터 신규 응용분야에 대한 구현까지 인류의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연구를 수행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튼튼한 기초가 건물의 효능을 보장하듯이 연구도 마찬가지다. 꾸준하게 본연의 역량을 쌓고 기본을 실천해 나가는 자세는 도외시한 채 눈앞의 성과만을 추구한다면 결국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펼쳐갈 박주현 교수의 연구가 기대되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큰 차이를 가져오는, 이 기본이라는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과에 급급하지 않고 언제나 본질을 중시하는 그의 곧은 정심(正心)은 과학계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4년 11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