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단국대학교 분자생물학과 정선주 교수

 RNA에 의한 세포 암화과정의 새 패러다임 제시
‘RNA와 질병’ 연구로 암 진단 및 치료제 연구·개발에 새 날개를 달다
단국대학교 분자생물학과 정선주 교수


전 세계적으로 RNA 연구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RNA 대사 이상에 의한 질환의 발병 및 진행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최고의 여성과학자로 손꼽히는 정선주 교수는 암세포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베타카테닌‘과 RNA의 연관성을 세계 최초로 발견하고, 'RNA 앱타머' 기술을 자체적으로 습득했다. 그리고 현재는 RNA 분야의 기초연구를 질환연구에 접목시켜 ‘RNA와 질병’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국내 최초 RNA 앱타머 연구 및 국제 특허 등록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서 포스트닥으로 RNA 분야 연구를 시작한 정 교수는 1995년 단국대학교에 신설된 분자생물학과에 유일한 여성이자 최연소 교수로 부임했다. 그리고 대학원 설립이 인가된 1997년에 ‘RNA 세포생물학 연구실’을 만들고 학부생 1명, 석사과정생 1명과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분자생물학과는 캠퍼스 이전을 준비하는 신설학과여서 개인 실험실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세계적으로 붐이 일고 있었지만, 국내에선 성공한 예가 없었던 ‘RNA 앱타머(aptamer)’ 발굴 기술을 확보해 다수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정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RNA 앱타머는 대부분의 암세포에서 과다 발현되어 이상을 유도하는 분자를 표적으로 한다. 암 진단 및 치료에 이용될 수 있는 기술인만큼 임상의사와 공동으로 연구를 수행했다.

 



RNA는 단백질을 합성해 유전자를 발현하는 것 외에도 분자에 달라붙는 능력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분자와 결합할 수 있는 RNA의 성질을 조작해 원하는 표적분자를 찾아가 달라붙도록 만든 작은 조각이 바로 RNA 앱타머다. 이는 각종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차세대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항체를 이용해 병을 치료하면 몸에 내성이 생기지만, RNA 앱타머는 면역반응을 유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정 교수의 연구팀은 다수의 앱타머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특허등록 2건, 미국특허출원 1건, PCT 출원 4건 등이다. 2011년 등록한 ‘RNA 앱타머 및 그의 용도’ 특허는 해당 분야 최초로 미국에 등록된 특허로 의미가 크다. 국내특허는 현재까지 24건을 등록했다.

 



RNA 연구로 암의 발병 원인을 추적하다

‘암’의 발생원인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가족력 등 유전적 요소나 발암물질, 방사선, 바이러스 감염 등의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해 세포기능에 중요한 유전자의 발현 양상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정도다. 통계를 보면 암 발생 건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고무적인 현상은 암환자의 생존율 역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 기술의 발달 덕에 암은 더 이상 ‘사형선고’가 아니다. 과거 치명적인 질병이었던 천연두, 흑사병, 소아마비 등을 인류가 이미 정복했듯 암도 언젠가는 정복될 것이다. 그런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RNA 연구를 통해 암의 원인을 밝히고, 암 진단과 치료에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정 교수의 의해 진행되고 있다.

 


베타카테닌(β-catenin)은 암세포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발암성 단백질이다. 베타카테닌의 돌연변이 활성화에 의해 폐암, 난소암, 대장암, 유방암, 전립선암 등 각종 암이 유발된다. 반면 RNA는 생명정보가 담긴 DNA의 명령을 받아 몸 안에서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거나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유전물질이다.
베타카테닌과 RNA의 기능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각각 이루어졌고, 연관성에 대해선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러나 정 교수가 베타카테닌이 RNA와 결합해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보고했다. 유전자 발현 과정에서 조력자 역할만 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RNA가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며, 비정상적인 RNA가 암을 비롯한 질병들의 주요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음을 밝혀낸 것이다.
이 연구 결과들은 2006년부터 Cancer Research와 Nucleic Acids Research, Molecular and Cellular Biology 등 유수의 매체에 발표되었고, 정 교수는 국제적으로 RNA 전문 암연구자로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암 진단·치료제 개발을 위한 기틀, ‘RNA와 질병’ 연구

정 교수 연구팀은 석사과정생으로만 구성되었던 초기 5년은 RNA 앱타머 발굴 연구를 수행했고, 박사과정생이 들어온 2002년부터는 RNA와 암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로 확장했다.
RNA 기초연구를 질환연구에 접목시켜 ‘RNA와 질병'이라는 새로운이라는를 개척하고 있는 연구팀은 질병의 원인이 돌연변이 DNA, 혹은 단백질의 이상 발현이나 비정상적인 작동 때문만이 아니라, RNA의 이상 발현에 의해서도 질병이 유도 접진행됨을 증명하기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강의할 때 빼고 대부분의 시간은 연구실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엔 베타카테닌 외에도 암세포에서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그 기전을 잘 알지 못하는 발암유전자들이 RNA 대사를 어떻게 조절하는지, 또 어떤 종류의 RNA를 조절하는지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이 연구는 RNA를 이용한 병의 진단과 치료제 개발의 지평을 여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정 교수는 다년간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임원직을 맡고 있고, RNA 분과 회장직도 겸하고 있다. 그는 최근 ‘RNA meets Medicine & Genomics’란 주제로 RNA 심포지움을 개최했는데, 이는 올해로 15년이 된 RNA 분과행사다. 행사에는 RNA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IBS RNA 연구단 김빛내리 단장(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IBS 유전체교정연구단 김진수 단장(서울대 화학부 교수)을 비롯해 해당 분야의 우수한 교수, 의사, 학생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RNA가 질환 안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거의 연구된 바가 없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죠. 연구꺼리가 참 많아요. 그런 의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RNA 연구 발표가 있었던 이번 심포지움은 RNA가 의학과 제약학, 유전체학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또한 정 교수는 RNA 분야가 성장 가능성이 큰 블루오션이라고 강조했다. 국제적으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는 가운데 대한민국이 선도적인 역할을 점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그는 대형연구과제를 꼽았다. 대규모 과제가 있어야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공동연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 이공계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인 10명 중 4~5명이 미국에 남는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학업을 마친 박사들은 귀국을 주저하는 이유로 ‘일거리의 부족’을 들었다. 정 교수는 외국에 남아 있는 젊고 능력 있는 인력을 고국으로 유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기틀은 기초 연구입니다.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기초 연구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훌륭한 기초 데이터가 있어야 의학, 제약 산업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제 꿈은 뛰어난 국내 연구자들을 모아 대규모 연구를 할 수 있는 RNA 센터를 만드는 것입니다. 연구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큰 시너지를 창출하는 공간과 시스템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연구인력 양성을 위한 리더십 발휘

정 교수는 전문 연구인력 양성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단국대에 20년 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해 좀 더 심도 있는 연구자가 되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2006년, 단국대 대학원 분자생물학전공은 RNA 전문인력 양성사업팀으로 BK21 핵심사업팀에 선정됐다. BK21은 국제 수준의 연구중심 대학을 육성하고, 핵심 고급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국가가 마련한 사업이다. 단국대 대학원은 2007년과 2008년에 BK21 평가에서 생물분야 사업팀 중 1위를 차지했다. 또 정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 ‘RNA 세포생물학 연구실’은 2008년도에 국가지정연구실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RNA 연구에 꼭 필요한 국내 인재를 양성하고 이끄는데 힘을 쏟고 있다.

 


연구실의 분위기는 어떨까. 정 교수는 자신이 여성이다 보니 연구실 분위기는 부드러운 편이라고 한다. 그는 연구실의 중요한 행사로 매주 월요일 아침 랩미팅을 꼽았다. 랩미팅은 사실 연구원들이 조금 힘들어 하는 일이라고 한다. 평소에는 학생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정 교수이지만 한 주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는 냉철함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디스커션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다른 이의 데이터를 두고 토론하는 가운데 아이디어를 개선하고 개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논문을 읽을 때는 분석적으로 장단점을 파악하고 자신의 연구에 접목시킬 수 있는 응용력을 키우는 훈련을 시키려고 노력한다.


정 교수는 현재까지 박사 5명과 석사 40명을 양성했다. 이들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하버드, 스탠포드 대학 등에서 포스트닥을 하고 있거나 국내 유수의 바이오 관련 회사나 연구소에 취업했다. 현재 그의 연구실에는 연구교수 2명, 박사과정 2명, 석사과정 4명, 학사과정 2명의 학생들이 연구에 정진하고 있다.

 
 

여성과학자로서의 삶

어린 시절 책 읽기를 즐겼던 정 교수는 천문학 책을 보면서 아름다운 자연에 진리가 숨어 있음에 감동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과학대 진학을 결심했고,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평생 원하는 분야의 연구를 할 수 있는 기초 과학자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 1학년 때 우연히 타임지에 실린 유전 공학이 미래의 유망 학문이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고, 그 흥미롭고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고 싶어 생물 분야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다.
촉망받는 여성과학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얼마 전 2014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상’에서 학술진흥상을 받았다. 분자생물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과학 교육과 여성과학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여성과학자로서의 여정을 묻는 질문엔 “쉽지 않았다.”고 운을 뗐다.

 

“가족의 도움이 있었지만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잡느라 힘들었습니다. 우리 연구팀에도 아이가 돌이 갓 지난 박사가 있는데 보면 안쓰럽습니다. 그래서 여성 연구자들을 보면 격려를 많이 해주는 편입니다. 얼마나 힘든지 제가 겪어봐서 잘 아니까요. 이제 사회가 여성이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에 13년째 힘을 보태고 있고 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는 총무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여과총에서 가장 주력하는 사업이 바로 일과 가정(삶)의 양립입니다. 일과 개인의 삶이 양립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저와 같은 선배 여성과학자들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건강과 행복에 이바지 하고 싶어”

정 교수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미국의 조나스 솔크(Jonas Edward Salk) 박사를 꼽았다. 그는 특허를 양도하라는 제약회사들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특허를 포기해 인류를 소아마비로부터 해방시켰으며, 자신이 받은 연구비를 투자해 소크 연구소를 만들어 많은 의·과학자들을 길러냈다.

 



 



“저의 연구가 인류의 복지와 미래에 조금이나 기여한다면 기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소크 박사처럼 인류의 질병 정복과 행복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가능성 있는 연구자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정 교수는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걸은 과학자로 기억되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걷도록 부추기는 원동력으로 호기심을 꼽았다. 호기심으로 새로운 길을 걷다 보면 새로운 발견도 하게 된다는 것. 그는 우리가 자연의 질서 중에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라며, 그것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 바로 과학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사실 저와 같은 기초연구자들은 초반부터 응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연구를 시작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워서가 가장 큰 이유죠. 자연의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은 언제나 설레입니다. 흥미롭게도 오랜 세월 깊이 연구하다 보면 이 연구를 어떻게 응용할 수 있겠다는 혜안이 생기기도 합니다. 기초연구의 결과가 쌓여서 결국 의미 있는 발견이 나오고 관련 산업에 응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기간에 급히 연구결과를 얻으려고 하면 도리어 중요한 가능성을 놓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새로운 발견을 하려면 나이가 들어도 아이처럼 새로운 눈으로 자연을 바라봐야 한다는 정 교수. 그러기 위해 좀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방법이 고민이라는 그를 보며, 인류가 자연이 감춘 베일을 벗기고 암을 극복하게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국내 최고의 여성 RNA 과학자인 정선주 교수의 열정이 암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류의 오랜 꿈을 이루는 밑거름이 되어주길 기대해 본다.

 


<손지혜 기자 reporter@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4년 8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