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질환 치료의 새로운 전기를 열다
폐암 조기진단·치료에 응용할 신규 마이크로RNA 발굴
차의과학대학교 약학과 김진경 교수
마이크로RNA는 동식물 세포에 들어 있는 물질로, 세포 속에서 유전자가 과도하거나 부족하게 활동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세포의 대사·증식·노화·사멸 등 여러 가지 생물학적 작용에 관여하기 때문에 마이크로RNA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당뇨나 암과 같은 질병을 앓을 수 있다. 따라서 최근 마이크로RNA를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활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온 가운데 차의과학대학교 김진경 교수 연구팀이 폐암세포에서 발현이 줄어드는 신규 마이크로RNA를 발굴, 치료법 개발에 새로운 단초를 제공했다. 저명한 약과학자로서 의학, 생명과학 분야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는 김진경 교수를 만났다.
신규 마이크로RNA 클로닝 및 기능 연구에 주력
일반적으로 유전자는 수백에서 수만 개의 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종적으로 단백질을 만들어 인체에 작용한다. 하지만 마이크로RNA는 대략 18~25개의 염기로 구성된 짧은 non-coding RNA라고 할 수 있다. 이 마이크로RNA는 특정 선택된 유전자에 상보적으로 결합해 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들지 못하게 함으로써 선택된 유전자의 기능을 억제시키는 역할을 한다.
마이크로RNA가 생명체 내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최초로 밝혀진 때는 지난 1993년이다. 미국의 앰브로스 박사팀은 선충(線蟲)의 발생 시기를 조절하는 일련의 유전자를 찾아냈는데, 이중에는 단백질을 생성하지 않은 작은 RNA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어 2000년과 2001년에는 미국과 독일의 연구팀이 각각 초파리와 사람의 세포 내에서 122개에 이르는 새로운 RNA를 찾아냈다. 이렇게 발굴된 새로운 RNA는 마이크로RNA로 명명되었으며, 모든 동물에 존재하는 새로운 종류의 조절물질로 널리 알려졌다. 이후 마이크로RNA에 대한 의과학계의 뜨거운 관심 속에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그 결과 2014년 3월 현재 인간에서 대략 1,870여 개의 마이크로RNA가 발견된 상황이다.
“학문적인 중요성 외에도 마이크로RNA의 연구는 의학적, 산업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마이크로RNA qRT-PCR, 마이크로RNA microarray, 마이크로RNA 기능 연구 등 다방면에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관련 시장 규모 역시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 마이크로RNA 시장 규모는 2.03억 달러로, 2015년에는 9.86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마이크로RNA에 대한 관심은 연구의 활성화와 시장의 확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신규 마이크로RNA의 클로닝 및 기능 연구는 미미한 실정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진경 교수의 연구는 더욱 큰 의미를 남긴다. 김진경 교수는 그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신규 마이크로RNA 발굴에 집중하며,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 앞장서 왔다. 신규 마이크로RNA의 클로닝 및 기능 연구는 암세포의 개체 수준의 생명현상 매커니즘을 밝히는 도구로 적용될 것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연구다. 최근 폐암세포에서 발현이 줄어드는 신규 마이크로RNA를 발굴하고 그 조절기전을 밝힌 것 역시 오랜 시간 새로운 마이크로RNA를 찾아내기 위해 공들여온 김진경 교수의 저력과 끈기가 빛을 발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암세포는 유전자 및 마이크로RNA의 발현이 불안정하고, 암의 발생과 진행과정에서 신호전달이나 세포의 증식 및 전이 등에 마이크로RNA가 밀접하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특히 폐암세포에서 특이적으로 증가되거나 감소된 유전자에 특정 마이크로RNA가 조절하고 있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죠. 우리 연구팀은 폐암세포에 존재하는 신규 마이크로RNA를 발굴하고 고유한 기능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연구를 수행, Akt1을 직접적으로 표적해 폐암의 증식 및 전이를 억제하는 miR-9500을 세계 최초로 클로닝할 수 있었습니다.”
폐암 특이적인 ‘miR-9500’ 클로닝과 표적유전자의 상호작용 증명
유전자 변이는 세포의 과다한 증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이로 인한 종양형성을 억제하기 위해 Akt1과 같은 대표적인 종양유전자의 활성을 조절할 수 있는 물질을 발굴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세 개 가량의 마이크로RNA가 Akt1을 표적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폐암에서는 보고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폐암세포에서 특이적으로 발현이 줄어드는 신규 마이크로RNA miR-9500이 표적유전자 Akt1을 억제, 폐암 증식과 전이를 억제하는 기작을 밝혔다. 폐암세포에서 miR-9500 발현이 감소되고 Akt1의 발현은 늘어나는데, 연구팀이 그 상호작용을 밝힌 것이다.
“우리 연구팀이 발굴한 신규 마이크로RNA miR-9500은 폐암세포나 조직에서 발현이 감소하는 패턴을 보이며 발암유전자인 Akt1을 선택적으로 조절합니다. miR-9500을 과발현 시켰을 때, 체내·외에서 폐암 세포의 증식 및 전이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즉, 폐암세포에는 Akt1이라는 유명한 암 유전자가 존재하고, 암의 증식 및 전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Akt1을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마이크로RNA를 발굴한 것이죠.”
miR-9500은 Akt1의 하위 신호전달 체계를 교란해 이러한 결과를 유도하는데, 특히 세포 주기에 영향을 미치는 Cyclin E와 Cdk2의 상호 작용을 억제해 G1기에 세포 주기가 정지됨을 다양한 실험법으로 증명했다. 우선 연구팀은 분자영상법을 활용해 마우스 모델에서 miR-9500이 대조군에 비해 폐암의 증식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형성된 종양에서 miR-9500을 처리한 그룹은 대조군에 비해 증식이 억제된다는 것을 ki-67의 면역염색을 이용해 증명했다. 마우스 꼬리 정맥에 폐암세포주와 miR-9500을 비롯한 대조군을 주사한 후 결과를 관찰했을 때 전이능이 억제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혈액을 이용한 진단은 간단하면서 비용이 적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혈액에는 마이크로RNA가 존재하고 순환하고 있죠. 따라서 비환자와 암환자의 혈액에 존재하는 마이크로RNA의 양을 비교해 진단마커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신규 마이크로RNA miR-9500을 인체의 암조직에 넣었을 때 부작용이 없다면 치료제로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miR-9500을 폐암의 조기진단 마커로 활용하거나 이를 이용해 종양유전자를 제어할 경우 폐암 특이적인 치료에 응용할 수 있어 관련 후속연구가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진경 교수 연구팀은 향후 혈액을 이용한 진단마커 개발과 Akt1 이외 다른 표적 유전자 검색 등 후속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마이크로RNA는 짧은 서열을 지니기 때문에 조작 및 활용이 가능해 특정 선별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기능을 지니는 장점이 있지만, 단 하나의 유전자만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유전자를 조절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고유하게 Akt1에만 작용하는 마이크로RNA를 구조적으로 변환시키는 것이 급선무죠. 이를 위해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과 공동연구를 적극적으로 수행해 나갈 계획입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일반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으며, 연구결과는 네이처 자매지 ‘세포죽음과 분화(Cell Death and Differentiation)’지 2014년 3월 21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되었다.
‘유전자조절연구실’ 연구진의 저력이 빛을 발하다
김진경 교수가 이끌고 있는 ‘유전자조절연구실은’은 노화, 증식, 분화, 세포사멸, 발암기전 등 각종 생물학적 과정에 특이적인 인자를 찾기 위해 연구를 수행해 왔다. 그 결과 각종 세포에 존재하고 특정 기능을 하고 있는 신규 마이크로RNA들을 찾고 재현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miR-9500 발굴에 앞서 연구팀은 선행 연구로 줄기세포 분화에 관련된 신규 마이크로RNA 7종, 증식에 관련된 신규 마이크로RNA 2종의 기능을 연구해 4편의 SCI급 논문을 투고했고, 2개의 국내 특허를 등록한 바 있다.
더불어 신규 마이크로RNA의 클로닝 및 기능연구를 진행하기 이전에는 subtractive hybridization법을 활용해 각종 생물학적 과정에서 특이적으로 발현 상승되는 신규 유전자의 클로닝 및 기능연구를 진행해 왔다. 배아줄기세포 stemness에 관련된 신규 유전자 3종, 신경 전구세포 분화에 관련된 신규 유전자 5종, 혈관내피세포 분화에 관련된 신규 유전자 2종, 줄기세포 노화에 관련된 신규 유전자 2종, 폐암세포 증식에 특이적인 유전자 5종을 각각 발굴했으며, SCI급 논문 6편을 투고하고, 2개의 국내 특허를 등록했다.
“우리 연구팀은 다른 연구팀에서 연구가 진행되지 않는 신규 마이크로RNA 및 유전자를 클로닝하고 고유한 기능을 밝히기 위해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여기서 말한 신규 마이크로RNA 및 유전자는 유전자 데이터베이스(miRbase:마이크로RNA, Genbank:유전자)에서 서열이 공개되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인간 염색체에는 존재하지만 서열이 공개되지 않은 물질이죠.”
이처럼 연구팀은 신규 마이크로RNA 및 유전자의 클로닝과 고유기능 연구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며 관련 분야에서 연구력을 공고히 다져 왔다. 특히 연구팀이 단기간에 시스템을 완성하고, 연구원들이 역량을 100% 발휘할 수 있었던 데는 자유로움을 중시하는 김진경 교수 특유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다.
“연구라는 것이 수많은 실패를 견뎌 내며 꾸준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야 하는 길인만큼 연구원 자신의 의지와 인내 없이는 수행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누군가가 억지로 하라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그렇게 한다고 연구가 좋은 결과를 내는 것도 아니죠. 그래서 저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데요. 출근시간을 자율화할 뿐 아니라 연구원을 뽑을 때에도 기존 연구원들이 면접을 진행하도록 해 그들이 직접 함께 연구할 동료를 선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유롭고 편한 연구 분위기가 확산될 수 있었고, 이러한 특징이 연구의 효율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김진경 교수는 언제나 총괄 디렉터의 책임을 다 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결정하려 하기보다 연구원들이 각자의 장점을 발휘해 합리적으로 최선의 선택을 도출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즉, ‘How to’와 ‘Direction’을 주되, 연구원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큰 그림을 그려주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각자의 능력과 개성을 자발적으로 발휘하도록 돕는 김진경 교수의 리더십은 차의과학대학교 유전자조절연구실을 대변하는 하나의 중요한 코드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가치관은 연구원들이 앞으로 나아가고, 연구실이 더욱 진화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남보다 먼저 하는 것이 경쟁력이다
김진경 교수가 지나온 걸음들을 되새기다 보니 문득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두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연구를 수행하면서 많은 연구자들이 기로에 서고는 한다. 연구비를 조금 더 쉽게 지원받고,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 과제를 할 것인가,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의미 있는 연구에 뛰어들 것인가. 이 경우 국내에서 후자를 선택했을 시 막대한 어려움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연구자들의 선택은 전자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김진경 교수는 달랐다. 언제나 쉬운 길을 버리고, 남들이 가지 않은 개척자로서의 길을 선택했다. 이미 남들이 한 것을 해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이 녹록치는 않았지만, 새로운 것을 찾겠다는 그의 소신은 변함이 없었고, 지난 30여 년에 걸쳐 외길을 걸어온 결과 그의 연구력과 노하우는 한층 두터워졌다. 그리고 이제 김진경 교수는 신규 마이크로RNA 및 유전자의 클로닝과 고유기능 연구에서 명실상부한 리더로 자리매김 하며,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과학과 정보는 급격하게 발전되어 왔습니다. 이제는 단시간 내에 전세계에서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보고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단 한명의 성공한 사람을 위해 수십, 수백의 실패한 사람들이 나타나는 시대가 된 것이죠. 따라서 저는 타 연구진들이 진행하지 않는 신규 마이크로RNA 및 유전자를 클로닝하고 고유한 기능을 밝히는 데에 연구 초점을 맞췄습니다. 신규 마이크로RNA 및 유전자는 우리 연구팀에 의해 세계 최초로 클로닝된 서열이기 때문에 타 연구진에 비해 경쟁력과 연구의 특이성이 존재한다고 자부합니다.”
전혀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하는, 그야말로 불모지에서 꽃을 피워내야 하는 일이었던 만큼 사실 어려움도 많았다. 신규 마이크로RNA의 경우 등록하기까지의 과정이 어려울 뿐 아니라 비인기 분야라 연구비를 지원받는 것이 수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김진경 교수의 경우 차의과학대학교의 관심과 지원이 이뤄지며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갖출 수 있었다. 사실 이러한 지원이 없었다면 훗날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켜 줄 수 있는 소중한 마이크로RNA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따라서 김진경 교수는 연구 윤리의식 강화와 함께 소수의 연구과제에 대한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우리나라의 과학은 급격한 발전이 진행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조작 및 표절이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습니다. 이는 인기 분야 연구에 대한 무분별한 경쟁과 이기주의가 저변에 확산되면서 파생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보고와 연구 윤리의식 강화가 급선무입니다. 또한 유행하는 인기 분야뿐만 아니라 소수의 연구과제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며, 이러한 소수 연구의 성공은 융합과학 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진경 교수는 앞으로도 신규 마이크로RNA의 클로닝과 기능연구를 통해 질환의 이해나 극복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청사진을 밝혔다. 아울러 국내외 연구진과 긴밀히 협력하고, 공동연구를 적극적으로 수행해 신규 마이크로RNA를 활용한 질환의 진단 및 치료제 개발에 대한 연구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이렇듯 김진경 교수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치료제 개발이라는 내일을 향해 꾸준히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아무도 가지 않은 불모지에서 불굴의 의지로 꽃을 피우고 있는 약과학자, 김진경 교수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4년 6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