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온초전도체 메커니즘의 실마리를 찾아서
카드뮴으로 고온초전도 제어 가능성 규명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박두선 교수
도체의 전기저항은 온도가 커질수록 커지고, 온도를 감소시키면 전기저항이 작아져 전기가 잘 통한다. 특히 낮은 온도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양자상태를 초전도현상이라 하고, 이러한 성질을 나타내는 물질을 초전도체라 일컫는다. 초전도체는 전기저항이 없기 때문에 열손실을 막을 수 있고, 전자석을 만들 경우 매우 안정되며 강한 자기장을 만들 수 있어 꿈의 물질로 불린다. 하지만 이 꿈의 물질을 현실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보다 경제적이고 활용 폭이 넓은 고온초전도체의 발견과 이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최근 성균관대학교 박두선 교수의 연구에 과학계의 뜨거운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연구팀은 카드뮴(Cd)으로 고온초전도체를 제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함으로써 초전도현상에 대한 원천적 이해와 더불어 실용화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카드뮴 첨가로 초전도현상 제어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Heike K′amerlingh Onnes)는 1911년 아주 낮은 온도인 -269.2℃에서 수은의 저항이 사라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저항은 물체에 전류가 흐르는 것을 방해하는 성질을 말하는 것으로, 저항이 클수록 전류가 잘 흐르지 못하게 된다. 저항이 없는 완벽한 전기 도체를 발견한 오너스는 이러한 현상에 초전도라는 이름을 붙이고 초전도현상을 보이는 물체를 초전도체라고 명명했다.
초전도체를 이용하면 에나멜선이나 철심을 이용해 만든 전자석보다 매우 강력한 세기의 전자석을 만들 수 있다. 초전도전자석은 강한 자기장을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기 에너지의 손실도 없어서 매우 경제적이다.
초전도체를 이용한 대표적인 예로는 자기부상열차를 들 수 있다. 열차의 밑바닥에 초전도체로 만든 고리를 달면, 열차가 움직이면서 이 고리가 철로 속에 있는 전선 고리에 전류가 흐르게 만든다. 이 때 두 고리 사이에 서로 밀어내는 힘이 작용하면서 열차가 뜨게 된다. 열차가 철로에서 몇 cm 정도 뜨게 되면 열차의 속력을 줄이는 마찰력이 매우 작아져서 같은 연료를 이용해 훨씬 더 빠르고 더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자기부상열차 뿐 아니라 초전도 케이블, 자기공명장치, 초전도 소자, 양자컴퓨터 등에 이르기까지 초전도체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꿈의 물질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초전도체는 낮은 온도에서만 작동하고, 초전도성이 쉽게 사라진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임계온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져 왔다.
따라서 기존 저온초전도체와 성질이 매우 다르고 초전도 전이온도도 높은 고온초전도체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고온초전도체는 비싼 액체 헬륨이 필요한 저온초전도체와는 달리 가격이 저렴한 액체 질소 환경에서도 작동하기 때문에 활용 폭이 넓어 차세대 신물질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통상 화학물질 첨가 등을 통해 특정 조건에서 초전도현상을 유도하는데 이 때 첨가되는 물질로 인한 불순물 효과 때문에 원래 초전도체의 형성과정을 밝혀내는 것이 어려웠다.
“양자임계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화학적 치환, 압력 또는 자기장과 같은 외부변수가 가해져야 하고, 특히 그 중 화학적 치환을 통한 양자임계 효과에 대한 연구는 어렵습니다. 이는 화학적 치환에 의해 유도된 무질서가 이미 존재해 불순물 효과와 순전한 물리적 효과를 구별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죠. 따라서 양자임계현상과 고온초전도와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부변수가 필요하지 않은 태생적으로 고온초전도를 보이는 양자물질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박두선 교수 연구팀은 최근에 발견된 무거운 전자(heavy fermion) 물질인 CeCoIn5에 주목했다. 세륨(Ce), 코발트(Co), 인듐(In)을 포함하는 초전도체 CeCoIn5는 자기장이나 전기장 또는 화학적 치환 등 외부변수가 가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연적으로 초전도상전이가 일어나며 양자임계현상을 보여주는 양자임계 초전도체이다. 연구팀은 CeCoIn5가 고온초전도의 메커니즘과 양자임계현상에 대한 불순물 효과를 연구할 수 있는 이상적인 양자물질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CeCoIn5에 1~2% 미량의 카드뮴(Cd)을 첨가해 인듐 자리에 치환, 그 결과 초전도현상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초전도 형성원인을 규명할 실마리이자 초전도현상의 제어 가능성을 열은 것으로, 정밀한 전자제어가 필요한 초전도 산업 분야에 널리 응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양자임계현상의 비가역성 발견
이번 연구결과 극저온에서 압력을 가하면 다시 초전도현상이 회복되지만 양자임계현상은 발생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자임계현상은 온도 0K(영하 273℃)에서 압력이나 자기장 등을 변화시킬 때 열적요동이 아닌 양자요동으로 인해 나타나는 초전도나 준자성 등 고전물리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양자역학적 현상을 말한다.
연구팀은 카드뮴이 1% 치환된 CeCoIn5를 고압력 셀을 이용해 약 3GPa(대기압의 3만 배)까지 가해 주었으며, 온도는 상온(300K)에서 0.3K까지 비열 및 전기저항을 측정했다. 처음 반강자성만 존재하는 낮은 압력부터 초전도가 유도되는 압력까지 비열의 온도에 따른 변화를 관찰했고, 이를 통해 뚜렷한 양자임계현상은 나타나지 않음을 발견했다.
“온도에 따른 저항그래프는 압력에 따라 반강자성 및 초전도상전이 온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고, 양자임계현상 분석을 통해서 도핑되지 않은 CeCoIn5와 비교해 양자임계현상이 달리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인듐 원자 주위의 미소 환경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NQR(nuclear quadrupolar resonance)실험을 통해 스핀물방울(spin droplets)이 카드뮴 원소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이것은 원거리 반강자성이 사라진 압력에서도 스핀물방울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 것이죠.”
연구팀은 불순물 효과를 통해 양자임계현상과 초전도를 사라지게 한 뒤, 처음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해주었다. 양자임계현상 분석에 주요한 역할을 해왔던 비열, 전기저항측정 및 자기공명실험을 통해서 물질 전체의 (global)상태는 불순물 효과에도 불구하고 가역적으로 돌아왔지만, 양자임계현상은 불순물 주변의 스핀물방울로 인해서 비가역적이 되는 것을 발견했다.
즉, 물이 얼었다가 온도가 높아지면 다시 물로 녹듯이 극저온에서 고체상태의 전자스핀들이 압력을 받아 액체상태로 바뀌지만 여전히 미량의 전자 불순물들이 고체상태를 유지한 결과 새로운 양자역학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풀이된다는 설명이다.
“이번 연구는 CeCoIn5를 통해 불순물이 초전도상과 양자임계현상 변화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규명한 것으로 앞으로 더 다양한 복잡전자물질계의 불균질한 전자구조상태를 이해하는 데 기반을 제공하리라 기대됩니다. 또한 저온영역에서의 무질서로 인한 양자임계현상의 비가역성은 양자역학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물리현상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두선 교수가 주도하고 서순범 박사과정 연구원(제1저자) 등이 수행한 이번 연구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리더연구자지원사업(창의적연구)의 지원으로 수행되었으며 미국 로스알라모스국립연구소와 공동연구로 진행되었다. 연구결과는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지 2014년 2월 1일에 게재되었으며, 동 저널의 News&Views 에 소개 및 2월호의 표지 그림으로 선정되는 등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상온초전도체 디자인, 그 꿈을 향해 달리다
연구자로서 외길을 걸어온 박두선 교수는 고체물리 첨단연구 분야에서 찬란한 족적을 남겨 왔다. 특히 양자임계현상 및 초전도 연구를 수행하며 세계적으로 괄목할 만한 결과를 창출, 국내 연구진의 저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선 세계 최초로 각분해 비열법을 사용해 초전도 갭을 결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초전도 상태에 숨어 있는 양자임계점 발견도 세계에서 처음으로 달성한 결과였다. 또한 전자 이중성을 통한 자성과 초전도의 공존메커니즘을 제시하고, 다중 극한 환경 각분해 비열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적용하는 한편 철-기반 고온초전도 메커니즘 이해에 기여하는 등 질적으로 우수한 성과들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물질의 조직 원리로 알려진 란다우-페르미 액체가 파괴되는 양자임계 영역은 물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최첨단 연구 분야입니다. 비등방적 수송성 측정을 통한 새로운 양자임계현상의 검증, 초전도 상태에 숨어있는 양자상전이의 발견, 전자 이중성이라는 양자적 개념 도입을 통한 초전도와 자성의 새로운 공존 상태 제시, 각분해 비열법의 개발을 통한 초전도 메커니즘의 이해 등 다각적인 연구를 통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개척자로서의 열정과 노력에 힘입어 박두선 교수의 논문은 네이처에 주저자로 2편, 네이처 피직스 주저자로 1편, PNAS 주저자로 1편, PRL에 11편이 게재되는 등 세계 과학계의 인정을 받으며 대한민국 연구자로서의 자존심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한편, 박두선 교수가 이러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동력원은 그가 이끌고 있는 ‘양자물질 초전도 연구단’이라고 할 수 있다. 성균관대학교 양자물질 초전도 연구단은 현재 시료합성팀과 물성측정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란다우-페르미 조직원리가 붕괴되는 초전도 표준상태 이해 △초전도 갭 대칭성 연구를 통한 양자물질 초전도 메커니즘 이해 △고온초전도 이해 및 상온초전도체 디자인을 중심으로 연구를 수행 중이다.
“연구단은 표준상태가 란다우-페르미 준입자 원리로 설명이 불가능한 양자임계금속 및 초전도체에 나타나는 새로운 물리적 현상들을 발견,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초전도의 모형으로 제시되고 있는 양자물질 초전도의 발견과 초전도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전자의 유효질량이 무한대로 발산하는 현상을 보이는 양자임계영역은 다양한 전자상태가 겹쳐 있어서 기대하지 않은 새로운 양자상들의 발현이 용이하죠.”
즉, 양자임계요동이 너무 거칠고 크기 때문에 집단의 전자들이 자발적으로 새로운 양자상태를 만들어서 임계점으로 가는 것을 피한다는 설명이다. 양자임계점을 대체해서 나타날 바닥상태들은 관련된 자유도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에 따라서 그 특성이 결정되는데, 고온초전도체를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비정상 초전도체의 특징인 불순물에 대한 민감성 및 결과의 실험의존도 등은 양자임계 물질의 특징으로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자임계 물질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그동안 세계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해결 문제로 남아있던 고온초전도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는 물론 나아가 상온초전도체의 디자인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 연구단의 장기 목표 역시 고온초전도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온초전도체를 디자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연구단은 연구 수행 뿐 아니라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한 인재양성에도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중국, 브라질, 러시아 등 해외 연구진들과 공동연구를 수행할 뿐 아니라 상호 간 인력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또한 대학원생의 국내 및 해외학회 발표와 장단기 해외 대학 및 연구소 방문을 적극 권장하고, 세미나와 국제학회를 개최함으로써 연구원들의 글로벌 역량을 향상시키고 있다.
주어진 것에 ‘최선’을 더하다
사람들은 남들보다 앞서가고 싶고, 남들보다 빨리 성공하고 싶을 때 자신의 환경부터 바꾸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단숨에 현실을 뒤바꿀 만한 결정적인 무엇인가를 찾아다니고, 지금 하던 일을 쉽게 포기하고는 한다. 그러나 진정한 기회는 결국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제 성격의 단점이자 장점이 한 가지에 몰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재다능한 것은 아니지만 재능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한 분야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할까요. 저는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고유한 달란트가 있다고 믿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에 감사하고 그리고 그것에 최선을 다할 때 학문과 세상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박두선 교수는 ‘내가 잘하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자문 끝에 연구자로서의 길에 뛰어들었고, 길에 들어선 후에는 앞만 보며 최선을 다해 달려 왔다. 결코 서두르지도, 욕심을 내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 남들이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며, 과학계에 기여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박두선 교수는 스스로가 그랬듯 후학들도 최선이라는 가치에 삶의 가장 큰 무게를 두기를 당부했다.
“우리는 비교에 의한 평가에 너무 익숙해 있어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상대적으로 잘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연구는 다릅니다. 연구는 전문인의 생각을 가지고 접근해야 합니다.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심이 있는 것에 대해서 호기심과 애정을 가지고 다가가야 하는 분야죠. 호기심이 있다면 나에게 연구에 대한 달란트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달란트가 크든 작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길 바랍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큰 힘 가운데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강력한 신념이다. 박두선 교수는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는 불변의 믿음이 있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심사숙고하지만 일단 결정을 내리면 목표를 향한 강한 신념으로 최선을 다해 과제를 완수한다. 그 결과 그의 연구는 고요하지만 묵직한 울림을 전하고, 순수한 열정과 노력을 오롯이 담아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낸다. 신중한 한 수 한 수, 어느새 판의 흐름을 이끌고 있는 박두선 교수야말로 과학계의 ‘진정한 승부사’가 아닐까. 그가 새롭게 펼칠 또 한 번의 승부를 기대해본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4년 4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