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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병원 심혈관센터 심혈관 줄기세포 연구실 김효수교수



세계의 가슴속에 한국의학을 심는 연구자
서울대학교병원 심혈관센터 심혈관 줄기세포연구실 김효수 교수
 


  

BC1275년 고대 이집트 시대에 그려진 벽화를 살펴보면 심장과 깃털을 저울에 달아보는 장면이 나와 있다. 심장을 저울에 달아보고 그 사람의 선함과 악함을 구별하는 것인데, 이는 심장에 감성, 지성, 성격이 담겨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왕을 미이라로 만들 때 심장만은 제거하지 않았다. 이유인즉 심장을 생명의 근원으로 믿었고 심장이 없으면 다시 부활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심장이라는 단어는 핵심의 의미를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많이 사용되는데,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근본적인 기관으로 그 중요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의 심장은 하루에 약 10만 번, 평생 26억 번 수축을 반복한다. 1분에 5L의 피가 심장을 거쳐나가 40초 만에 온몸을 순환하고 다시 되돌아오게 하는 일을 하는데, 잠깐이라도 멈춰있으면 곧 사망과도 직결된다. 이런 심장은 관동맥이 막히면 심근이 죽는 경우가 생기는데, 과거에는 죽은 심근을 재생할 방법이 없어 관동맥을 뚫더라도 죽은 심근은 그대로 두고 여생을 살게 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최근 혈관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혈관을 살리고, 심근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심근도 살려 심장조직을 정상화하는 줄기세포 연구가 한창이다. 이는 죽은 조직을 재생시켜 원래 장기와 같은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세계 많은 의학 선진국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대한민국 의학의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서울대학교 김효수교수를 만났다. 인터뷰가 시작 되기 전 친절한 PhD와 함께 대학병원내의 많은 시설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설명하는 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심혈관연구센터의 자부심이 전해지는 시간이었다. 수 많은 책이 천장가득 꼽혀있는 방에서 김교수를 만났다. 짧은 인터뷰로 그간의 연구이야기를 모두 담아내기는 부족했지만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정진하는 그의 근근한 노력은 마음가득 담아 올 수 있었다.

 

 

 


 

교육, 진료 그리고 연구의 사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는 전통적으로 추구해야할 세 가지 덕목이 있다. 대학교의 기본인 교육, 대학병원의 기본인 진료, 마지막으로 연구가 그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가 모이는 캠퍼스이기 때문에 연구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의대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국가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으로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그와 그의 연구원들은 쉼 없이 연구한다.
같은 주제를 놓고 연구를 할 때도 그 접근방법에 따라 반짝이는 샛별 같은 아이디어가 탄생하기도 하는 반면,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레지던트 시절 김교수가 디자인한 샛별 같은 아이디어는 스승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그들은 그에 대한 지원과 응원도 아끼지 않았다. 1985년 디자인한 아이디어의 경우 환자혈액을 심장의 각 부위에서 추출하여 물질의 대사경로를 추적하는 것이었는데, 실험에 필요한 측정키트가 당시 200만원이었다. 회사원 월급보다 비싼 액수의 장비를 담대하게 지원해주신 스승들의 응원과 관심으로 연구 분야로의 투신은 자연스럽게 시작 될 수 있었다.

 


 

분자생물학과 심혈관의 만남
1992년 어느 날 일본의 제약회사인 ‘다이이치 상쿄’에서 서울대학교에 지원을 하겠다는 연락이 온다. 서울대학교 교수들은 그 당시 연구에 매진하던 김교수(당시 내과전임의)를 떠올린다. 당시 교수들은 연구원의 유학지원을 약속받고 당시 미국유학을 준비하던 김교수에게 일본유학을 제안한다. 일본과의 연결통로도 만들고 제한된 연구비로 최대의 효과를 누리는데 유익이라 판단한 김교수는 일본의 유학을 선택한다. 그렇게 김교수는 동경대 의학부에서 심혈관계통 분자생물학에 관한 학문을 1년 반 동안 연구하게 된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올 즈음 유학을 도왔던 선임교수들은 김교수가 귀국한 후 Lab을 차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없는 살림이지만 김교수를 믿었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아낌없이 도움을 준 것이다. 그때 시작되었던 연구실이 지금의 서울대학교 병원 심혈관 연구실이다. 1994년부터 혈관생물학과 동맥경화증, 죽상경화증의 발병기전 연구가 비로소 시작되었던 것이다. 심혈관 환자들이 관동맥 성형수술을 하면 다시 혈관이 좁아지는 현상을 분석했는데 유전자 치료법과 방사선치료법을 공유하는 김교수의 1기 연구생활은 혈관연구와 관동맥 성형수술 재협착 원인규명과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시기였다.
6년간의 연구 생활 중 몇 번의 위기가 찾아온다. 적은 연구비와 연구 인력의 부재도 그렇겠지만 6년간의 연구데이터를 바탕으로 제작한 논문이 세계 무대에서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었던 것이다. 비교적 하위저널에 논문을 제출했지만 요구하는 수준은 높았기에 국제무대의 벽을 실감하였다. 그로인해 김교수는 심한 불면증에 시달려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연구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렇게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김교수는 2001년 보스턴세인트 엘리자베스 병원으로 향했다. 2년간 후배교수에게 심혈관연구실을 맡기고 유전자치료에 대한 연구를 위해 떠난 것이다. 그곳은 바이러스를 이용한 유전자치료가 한창이었다. 한편 바로 옆 실험실에서는 혈관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유명한 그룹이 자리하고 있었다.

 


 

운명 같은 줄기세포연구
EPCs(Endothelial progenitor cells)의 존재를 처음 증명한 옆 연구실의 연구과정은 김교수에게는 흥미롭기만 했다. 이후 2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그는 기존의 혈관생물학 유전자치료법은 그대로 진행하면서 줄기세포분야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심혈관연구실은 혈관생물학과 줄기세포생물학을 하는 두 파트로 나뉘게 되었다.
김교수에게 줄기세포생물학에 대한 연구는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다른 의학 분야에 비해 역사가 길지 않았고, 당시 세계적으로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김교수는 이후 세계의 권위 있는 학술지에 다양한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혈관내피전구세포(EPC)가 여러 가지 다양성이 있다는 것과 그들간의 상호상승작용이 있음을 세계최초로 발표하였고, 혈관내피줄기세포 기능을 항진시키기 위한 유전자에 관한 논문도 발표하였다. 또 줄기세포 주입시 허혈부위에 안착하여 재생하는 기준을 발표하는 등 대한민국은 물론 동양을 대표하는 팀으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팀이 되었다. 심지어 김교수 연구팀에 EPC Group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창적인 ‘MAGIC CELL' 프로그램은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으로 7년 전부터 환자에게 직접 적용하여 진행 중인 독특한 치료방법이다. 환자골수에서 동원된 줄기세포를 말초혈액에서 따와서 경색심근에 부어주는 방법인데 경색부위에 심근혈관을 재생시키는 놀라운 치료법이다. ‘MAGIC CELL'프로그램의 논문은 영국최고 의학지인 ‘Lancet’에 발표되는 등 10개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다.

 


 

기초가 튼튼한 연구실
김교수는 후학들에게 독창성과 창의력 키우는 법을 가르친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먼저 개발하는 것, 또한 다른 나라에서 치료해내지 못한 것을 우리나라에서 치료하는 것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차분하게 생각하되 엉뚱한 생각을 유도하는데, 무조건 발로만 뛰는 방법이 아닌 한걸음을 걷더라도 가치 있는 걸음을 걷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런 방법은 시간과 연구비를 절약하는 길인 것이다.
독창성과 창의력에 대한 해답은 이론무장이었다. 김교수는 “이론을 기반으로 그 분야에서 이뤄지지 않은 것을 찾고 나아가야할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말한다. 어떤 분야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의외로 다른 분야에서 쉽게 찾을 수 있기에 학생들에게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들어보길 권한다고 말한다. 연구에 대한 충분한 구상과 아이디어, 그리고 실현가능성에 대한 깊은 통찰 후의 움직임이야말로 오늘날의 연구자가 갖춰야할 기본 덕목인 것이다.
김교수는 그간의 튼튼한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줄기세포에 관한 전반적인 연구를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지방줄기세포도 연구의 물망에 올랐다. 한 분야가 아닌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는 이유를 묻자 김교수는 “어떤 연구 분야에서 성공적인 결과가 나오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한다. 각기 다른 줄기세포라 하더라도 공통점이 있을 것이고 그에 맞게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꾸준한 연구에 따른 결과물은 많은 논문과 함께 계속 발표되고 있다.
최근 Nature Biotechnology에 리뷰중인 역분화방법은 우리의 독창적인 기술로 성공한 방법이다. 기존에 행해졌던 방법은 일본 교토대학교 야마나까교수의 방법으로 세포를 갖고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방식이었다. 피부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주입하여 배아줄기세포로 만드는 방법인데 전혀 다른 방법으로 김교수가 성공한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높은 연구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결과이다.
2003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논문은 연구실의 많은 연구원들과 밤새 연구하면서 탄생한 눈물겨운 결과물이라며 항상 제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엉뚱한 연구광 인생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는 열악하다. 이 세상의 어떤 연구 분야가 유복하겠냐고 말하지만 생명과학자의 적은 봉급에 관한 것 외에도 연구과정에서 실험의 실패확률은 유난히 높다.  연구실에서 아직도 피펫을 잡고 있는 그는 짧지 않은 연구인생을 갖고 있다. 그가 돌이켜본 그의 실험결과는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았다. 그 과정에서 자괴감이 들 수도 있고, 젊은 혈기가 금방 사그라질 수도 있다. 당장 먹고살기 힘들다면 그 정신적인 데미지는 더욱 심할 것이다. 김교수는 그런 과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힘들어 하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운명론과 희망론이 그것이다. 생명과학을 하기 위해 태어난 운명이기 때문에 운명을 받아들이고 힘든 환경을 이겨내며 연구에 몰두하라는 운명론. 세상이 어떻게 될지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생명과학분야가 얼마나 발전할지 아무도 모르니 희망을 갖고 연구에 몰두하라는 희망론. 결국 연구에 몰두하라는 것이 결론이지만 그의 대답은 절대 틀림없다.

 


 

개인의 연구에서 국가의 관심으로
그간 연구실 규모에도 변화가 있었다. 1994년 연구비20만원에 연구원 2명, 전공 3명으로 진행되던 1기 연구시절과는 다르게 지금은 35여명의 교수, 연구원들과 함께 연구실을 지키고 있고, 정부로부터 40억 원의 지원도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세포치료 사업단’을 결성하여 세포치료를 통해서 병원의 블루오션을 찾아 연구중심병원을 제안하였고 ‘혁신형 연구중심 병원사업’에 채택되어 연 40억씩 5년간 200억 원의 지원을 받고 있다. 또 심혈관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교육과학기술부 국가지정연구실로 선정되어 연간 2억씩 5년간의 지원을 받고 있다.
김교수는 이러한 지원을 국가와 국민이 준 기회로 생각하고 있다.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연구자로서 받을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제공받은 것이다. 국민이 낸 혈세로 진행하는 연구인만큼 게으름 피우지 않고 대한민국 후세대를 위한 새로운 과학지식을 만들어내는데 혼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그에게서 남다른 열정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들에게 조차 깊이 생각하고 실현 가능성을 따진 후에 실행에 옮겨서 연구비 낭비를 막는 가르침을 주고 있으니 말뿐인 다짐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열심인 김교수는 일주일 중에 한가로이 여가를 즐길 시간은 전혀 없다. 김교수의 일주일 생활을 살펴보면 월요일은 매주 진행되는 리서치미팅으로 4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가 진행되고. 화, 수, 목, 금은 매일 저녁 학술좌담회의 참가로 항상 늦게 일정이 마무리 되며 토요일과 일요일조차 쉴 틈 없이 평일에 못했던 논문감수를 진행한다고 한다.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김교수는 훌륭한 틈새시간 공략 법을 전수해주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그리고 잠들기 전에 하는 약간의 운동으로 기본적인 체력유지를 하는 방법이었다. 그와 더불어 12층이나 되는 교수실에 오르내릴 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이용하는 것은 바쁜 시간 중에 공략할 수 있는 훌륭한 운동공간이라 말했다. 좌담회에서 식사를 할 때도 마지막에 나오는 요리는 먹지 않는 자신만의 소식(小食)법으로 건강을 유지한다고 전했다.

 


 

연구현장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구자인 김교수도 가정으로 돌아가면 여느 가장과 다름없는 아버지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가 바빠지면서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이 많지 않아 항상 미안하고 특히 아내에게 더 미안하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훌륭한 연구결과와 함께 기뻐하게 될 가족의 모습을 그리며 인터뷰를 마쳤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늦은 밤에도 연구실의 불은 켜져 있었다. 그 연구실에서 대한민국의학과 과학의 빛이 밝혀졌다. 더불어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심장과도 같은 그에게 전 인류의 생명의 빛이 밝게 빛나게 될 것이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09년 1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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