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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인터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고광표 교수님


질 내 박테리아 프리보텔라의 유전 영향 및 비만, 조산 연관성 최초 제시
장 내 바이러스 등 인체 마이크로비옴 연구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고광표 교수





인체 마이크로비옴(Human Microbiome, 인체 내 미생물군집유전체)은 ‘제2의 게놈(유전자 정보)’ 이라고 불릴 만큼 인체와 밀접한 또는 인체 그 자체의 요소라고도 볼 수 있는 개념으로, 2000년대 중반 즈음 제기되어 현재는 바이오 및 의료 등에서 매우 주목 받고 있다. 최근 몸 속의 미생물이 장염, 비만, 피부질환은 물론 심장질환, 자폐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지난 해 말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고광표 교수 연구팀은 여성 생식기 내의 박테리아인 프리보텔라가 유전적 영향을 받고 이 박테리아가 비만, 조산과도 연계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최초로 발표했다. 이는 국제 미생물학 학술지인 셀 호스트 앤 마이크로브에 게재되었다. 국제 인체 마이크로비옴 컨소시엄(International Human Microbiome Consortium, IHMC)의 한국 연구책임자이기도 한 고광표 교수에게 해당 연구 및 인체에 의외로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마이크로비옴에 대해 이야기 들어보았다.



* 미생물군집유전체(microbiome): 몸 속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등 미생물과 미생물의 총체적인 유전정보를 총칭.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미생물군집에도 차이가 있음.







본 연구의 개요
고광표 교수 연구팀은 여성 생식기 내 미생물집단의 유전적 영향에 주목하고 인체 유전인자의 질 내 박테리아에 대한 영향 규명
을 목표로 본 연구를 진행했다. 일란성/이란성 여성 쌍둥이를 위주로 총 542명을 분석한 결과, 유전자 연관성이 가장 높은 일란성 쌍둥이의 질 내 미생물집단이 가장 유사하였다.

이는 유전에 의하여 질 내 미생물집단이 달라짐을 의미한다. 질 내 미생물 중 하나인 프리보텔라는 락토바실러스와 더불어 인체의 유전적 요인을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으며, 특히 면역유전자 중 하나인 IL5의 단일 유전자 변이에 따라 프리보텔라의 존재 여
부가 결정됨이 밝혀졌다.

또한 프리보텔라가 여성의 질 내에 위치할 경우 잠재적 유해균으로, 다른 요인과 함께 세균성 질환 유발 및 비만 등의 대사성 질환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12주 고지방 식이요법으로 비만을 유도한 쥐에서 프리보텔라가 증가했으며 이 쥐의 질 내 미생물을 일반 쥐로 이식시키면 비만이 될 가능성이 있는 지표중 하나인 내독소혈증이 나타남을 확인했다. 이것은 나아가 프리보텔라 같은 질 내 미생물이 비만 등의 대사성 질환까지 영향을 줄 가능성을 뜻한다.
이 연구는 인체의 유전적 요인에 따른 질내 미생물 군총 변화를 최초로 규명하고 질 내 미생물과 비만과의 인과 관계를 규명한 점, 프리보텔라를 바이오마커로서의 여성질환 진단 및 평가를 위한 척도를 마련해 맞춤형 마이크로비옴 치료제 개발의 초석을 마련한 것에 의의가 있다.
고 교수는 “질염, 조산 등의 질환에 있어 미생물군집유전체의 특성에 기반한 맞춤형 치료제 개발에 본 연구결과를 적용할 수 있으며, 비만과 질 내 미생물군총 사이의 관계를 밝히기 위한 후속 연구를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단일유전자 변이(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세포 핵 속의 염색체가 갖고 있는 30억 개의 염기서열 중 개인의편차를 나타내는 한 개 또는 수십 개의 염기변이.



* 내독소혈증(endotoxmia): 박테리아의 내독소(endotoxin)가 혈류에 나타나는 현상. 비만과 당뇨 같은 대사성 질환의 위험성을 증가시킴. 이 연구에서는 이를 비만의 전 단계 마커로 사용함.






인체 미생물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의 범위는?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나?
인체 미생물과 그 조성은 건강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염증, 감염, 장기발달, 최근에는 자폐 등의 정신질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인간 이전에 미생물이 있었고 인간과 함께 진화해왔다. 우리 세포의최소 10배, 유전자로는 100배 이상 존재하는 인체 미생물을 사람의 건강을 논할 때 떼놓을 수 없다는 것이 지금의 관점이다.
홀로바이옴이라는 단어도 생겼는데, 사람이 인체 세포로만 구성된 게 아니라 미생물과의 공생체로 보아야 한다는 시각이 담겼다. 또 사람의 유전자에 의해 미생물의 조성이 달라지고, 그 미생물들이 다시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 미생물들은 우리 몸에 좋은 역할을 하기도, 나쁜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우리의 세포보다 더 많기에 박멸할 수도 없으며 박멸해서는 인간이 살 수도 없다.


최근 발표된 논문에서 다른 시각도 있긴 하나, 태아일 때는 멸균상태이다가 출산 과정에서 모체로부터 미생물에 노출되는 것이
첫 시작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자연분만, 제왕절개 등을 비교한 역학조사에 의하면 출산 방식에 따라 천식, 아토피 또는 감염
률의 차이 등이 유의미하게 구분되고 있다.



유전적 요인과 생식기 미생물, 또 이 미생물과 비만의 상관관계 연구에 착안한 계기는?
인체에는 부위마다 다양한 미생물 군집이 존재하며 대사나 질병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울대학교 마이크로비옴 센터가
인터내셔널 휴먼 마이크로비옴 컨소시엄에 참여하면서 국내 2천명 쌍둥이를 대상으로 장, 피부, 구강, 호흡기, 생식기 등 휴먼 마이크로비옴이 주로 살고 있는 5개 사이트를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고 본 연구는 그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장이 가장 중요하
다고 여겨지며 1단계에서는 건강한 사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이제는 특정 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단계로 제2형 당뇨의 대
사질환, 염증성 장염, 여성질환 등이 주요 연구 주제다.


기존에 생식기 박테리아 중 하나인 유산균의 종류가 인종에 따라 다르다는 연구가 있었으며 이때 여성질환, 조산 등도 상당한 유전적 요인 등이 작용되는 것으로 보고되어, ‘이러한 질병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질내 미생물이 유전적 요인으로 결정되지 않나’하는 가정을 세우게 되었다. 미생물 군집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환경적 요인을 파악함으로써 개개인의 감수성을 고려하여
미생물군총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되는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연구결과 유의미한 유전적 영향을 확인하였으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질 내 균은 프리보텔라와 락토바실러스로 나타났다. 프리보텔라의 우세는 락토바실러스의 감소로 이어지고 폐경, 질염과 강한 연관성을 보였으며 한국인 여성과 더불어 고지방식이로
유도된 비만 쥐의 생식기에서도 프리보텔라가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장내 미생물 또한 숙주의 비만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그로 인해 염증과 인슐린 저항을 일으킨다는 것은 최근의 연구결과로 알려
진 사실이다. 비만은 보통 대사질환이라고 생각되어왔는데 실제로는 낮은 수준의 염증성 질환으로 볼 수도 있으며 사실 대사질
환 자체는 면역과 상당히 관계가 있다. 최근 고령화로 인해 폐경기 여성의 수가 늘고 있으며 이들에게 비만도 증가한다. 폐경이 되면 호르몬의 변화에 따라 질 내 미생물군총이 크게 바뀌는데, 기존의 패러다임과 다르게 비만과 질 내 미생물군총의 연관성 및 인과관계 또한 규명해보고자 했다.
또 비만인 여성의 질에서 락토바실러스 이너스(L. iners) 균과 락토바실러스 크리스파투스(L. crispatus)의 비율이 다르게 존재한다는 보고 역시 비만과 질 내 미생물군총과의 연관성을 뒷받침한다.





프리보텔라는 무엇인가? 또한 남녀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
프레보텔라는 Bacteroidetes에 속하는 혐기성 그람 음성균으로 장이나 구강에서 흔하게 발견되며 위치에 따라 역할이 다르다.
장 내에서는 섬유소를 분해하고, 호흡기에서는 폐렴을 유발하거나 쥐 모델에서는 골수염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유럽과 아프리카 어린이를 대상으로한 연구에 따르면 고지방의 서구식 식생활을 주로 하면 장 내에서 Bacteroidetes가 우점종이 되고 섬유소를 주로 섭취하면 프리보텔라가 우점종이 된다는 발표도 있었다. 질 내에서 프리보텔라가 우점하게 되면 락토바실러스가 줄어들게 되어 질염을 유발한다. 우리 연구결과에 따르면 다른 미생물군총은 이 두 종류의 미생물에 따라 분포나 역할이 차이가 날것으로 판단되었다.


락토바실러스는 다른 세균들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는데, 잘못된 다이어트, 식습관, 폐
경 등으로 이 둘의 밸런스가 깨지게 되면 다른 대사질환과 연관이 되게 된다. 따라서 질내 미생물의 불균형을 개선시켜 질염 및 비만 등의 치료에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프리보텔라 뿐 아니라, 현재의 기술로는 전체 미생물군총을 파악할 수 있어 병원성 미생물의 조절 등을 이용해 여러 질병의 맞춤형 치료제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인체 면역유전자 중 IL5(염증 질환에 관여하는 조절유전자) 단일유전자 변이에 따라 프리보텔라의 존재여부가

결정됐다고 하셨다.

Il-5은 일반적으로 Th2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cytokine으로 알려졌고 이외에도 항체의 분비 및 천식 등의 질환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 연구결과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단일유전자의 차이가 직접적으로 질환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지만, 질 내 미생물의 분포를 결정하기도 하고, 이 미생물이 또 다른 질병의 유발체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하고 계신 후속 연구는?
마이크로비옴과 다양한 질환과의 인과관계를 규명하고자 연구 중이며 이를 이용한 질환의 예방 및 치료법을 임상에 적용하고자 한다. 특히 여성질환에 대한 관심이 많다. 우리가 논문을 낸 이후 다른 곳에서도 HIV 감염과의 영향에 대한 논문이 나오기도 했다. 노로바이러스 역시 장 내 미생물군총에 의해 감염된다는 논문도 나오고 있다. 전체 미생물군총 수십만 개의 염기서열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플랫폼인 차세대 유전체 분석기술 (NGS-Next Generation System)을 이용해 수십 만개의 미생물들을 그룹으로 연구하고 있기도 하다.



*마이크로비옴 연구에는 빅데이터 분석 등 새로운 분석기술과 솔루션 또한 필수적이다. 고교수가 이끄는 랩은 생물정보학, 시퀀스분석팀 등을 포함해 25명 이상으로 구성되어 서울대 안에서도 매우 큰 규모다. 또한 외부 병원 등과의 콜라보레이션 연구도 많다.


우리나라는 IHMC의 8번째 회원국인데, 세계 관련 학계에서 우리나라의 현 위치 및 이 분야를 지망하는

과학도들에게 조언 바랍니다.

마이크로비옴 분야는 최근 매우 주목 받고있다. 비교적 연구 초기단계로, 우리나라가 특정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현재 바이오 산업 자체가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기 때문에 학계나 연구소뿐만 아니라 R&D에서 개발 (development)을 주목적으로 하는 산업계에도 관심을 가지면 안목을 키울 수 있을것이다.


앞으로 이 분야를 연구하고자 하는 과학도들은 지적 호기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즐기면서 연구하면 좋겠다. 지금 학생들, 어려움이 많은데 제가 보기에 좋은 사이언스 연구자의 대부분은 좋은 직장을 가졌다고 본다. 물론 실험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받지만 이는 당연한 과정으로, 즐기면서 열정과 인내를 갖고 연구하는 자는 반드시 성공한다고 믿고 있다. 인내란 고통을 참는다기 보다는 한 분야를 꾸준하게 한다는 의미다. 연구 과정의 보람도 있지만 우리 분야는 그 결과 또한 인간과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란 점에서 커다란 긍지를 준다.




실험장비, 관련 정책 등에 있어 개선되면 도움이 될만한 것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바이오 분야 실험장비와 도구는 매우 고가인 경우가 많다. 고가의 연구장비를 보유하고 있는 센터를 만들어 많은 연구자들이 이를 공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개별연구자의 장비에 대한 부담을 줄이면 좋을 듯하다.
그리고 좋은 연구장비가 있다 해도 이를 다룰 수 있는 소프트웨어 테크니션의 직업 안정성이 고려되지 않아 노하우가 축적되지
않고 최대 효율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관련 인력 및 자원의 연속성과 안정성 확보가 중요하다. 또한 다른 전문 분야와의 협력 즉 파트너십 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취재기자 / 이현주(reporter2@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7년 5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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