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의 기초의과학 연구센터를 꿈꾸다
경희대학교 <활성산소 생체반응 기초의과학 연구센터> 김성수 교수
Q. 연구센터를 설립하시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A.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의 ‘활성산소 생체반응 기초의과학 연구센터’는 활성산소에 의한 기초의과학적 생체반응과 활성산소에 의해 발병되는 질병의 기전, 치료법 개발을 목표로 2002년에 설립되었습니다.
본 연구센터가 설립되기 전까지는 의과대학 기초연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에 당시 김영한 과학기술부 장관(현 국회의원)은 기초의과학을 진흥시키기 위한 기초의과학 연구센터(MRC: Medical Research Center)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2002년 9월 한국과학재단(현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9년간 약 60억원을 지원받으며 시작하게 되었고 경희대학교에서도 이에 대응하는 연구비와 각종 기자재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20여 명의 교수와 100여 명의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본 연구센터에 참여하여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대학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연구, 교육, 시설 측면에서 이미 우수 연구센터로 자리 매김하고 있습니다.
Q. 활성산소가 무엇이며 체내에서 어떠한 작용을 하나요
A. 활성산소란 우리 몸에서 호흡하는 과정에 체내로 유입된 산소가 산화되는 과정에서 산소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잔존하게 되는 것으로 완전히 연소되지 못한 산소를 말합니다. 활성산소는 일반적으로 생체조직을 공격하고 세포를 손상시키는 산화력이 강한 유해산소가 대부분인데 환경오염과 화학물질, 자외선, 혈액순환장애, 스트레스 등으로 산소가 과잉 생산되어 생겨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잉 생산된 활성산소는 사람 몸속에서 산화 작용을 일으키며 세포막, DNA, 그밖에 모든 세포 구조를 손상시키고 경우에 따라서는 세포의 기능을 잃게 하거나 변질시킵니다. 또한, 체내의 아미노산을 산화시켜 단백질의 기능을 저하시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활성산소는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만 준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이서구 박사에 의해 (현 이화여대) 세포의 다양한 신호전달에도 영향을 미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전에 유럽이나 미국의 연구자들에 의해서 활성산소의 긍정적인 역할의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된 적은 있으나 현상적인 측면에 그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서구 박사의 연구결과는 활성산소가 특정 단백질을 타겟팅해서 신호전달에 관여되며 좋은 역할을 미친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바 있습니다. 이후로 활성산소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모두 고려되어 연구되고 있습니다.
본 연구센터는 활성산소의 두 가지 면을 다각적으로 연구하여 활성산소의 부정적인 측면을 막아서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활성산소를 생성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함께 연구하고 있습니다.
Q. 선진국의 연구상황과 대한민국의 연구수준은 어떠한가요
A. 활성산소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모든 의과학분야의 연구가 그러하지만 국내 연구자들의 연구 논문수준은 상당히 훌륭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높은 수준의 논문을 발표하는 것에 비해 활성산소에 대한 기초 지식, 화학적 배경지식이 깊지 않은 경향이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물론 대한민국 과학의 역사가 미국, 일본, 유럽 등과 비교하여 짧기 때문에 그들처럼 발전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정부의 본격적인 지원이 시작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공과대학 쪽이 아닌 바이오분야의 지원이 시작된 것은 90년대 들어서부터였으니 불과 20년 만에 지금의 우수한 수준에 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누가 보더라도 지금의 결과를 얻게 된 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뻗어나가는 연구가 아닌 이미 밝혀진 결과나 현상을 활용해서 연구의 모티브를 삼는 것이 흔한 상황이다 보니 미국이나 일본의 연구와 비교했을 때 근본적인 바탕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세계인들에게 집중 받는 훌륭한 연구자들이 많이 있지만, 국내의 연구 배경을 더욱 튼튼하게 다지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Q. 세계적인 성과를 위해 정부와 기업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A.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대한민국의 과학은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아서 선진국과 비교해서 아직 채워야 할 바탕이 많습니다. 이는 활성산소에 국한되어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이에 교수와 학생은 물론이고 정부의 관계자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정부는 최근 들어서 시기적절하게 원활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지원뿐 아니라 국민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에도 신경 써야 합니다. 특히 이공계분야는 다른 분야와 달리 연구 활동을 위한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과학이라는 분야가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하야함은 물론이고 그럴 가치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합니다. 또한 교수들도 현재 각자의 위치에서 전력을 기울이며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상의 연구결과를 발표해야 합니다. 이러한 부분은 교수뿐 아니라 함께 연구하는 학생을 포함한 모든 연구자가 가져야 할 마음일 것입니다.
끝으로 젊은 연구자들에게 이공계 분야에 투신해도 충분히 먹고살 만하다는 것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국내의 많은 젊은이는 당장 일자리가 불안하고 미래를 설계하기 불안하다 보니 이공계를 꺼리는 것입니다. 심지어 연구를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돈을 벌려고 연구에 사용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보면 아직 연구자를 위한 환경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개선되고 일정기간이 흐르고 나면 대한민국의 연구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훌륭한 결실을 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하루아침에 해결되거나 아니고 어느 누군가에 의해서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에 각 구성원이 항상 염두에 두고 신경 써야 할 부분입니다.
Q. 연구센터를 운영하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
A. 기초의과학 연구센터는 현재 전국 대학에서 31개가 운영되고 있으며, 기초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인체와 질병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의과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있지만, 자연과학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본 연구실에는 의과대학 졸업생이 한 명도 없을 정도입니다. 이유인즉 대부분의 의과대학을 졸업한 학생은 의과학을 연구하는 이학박사(PhD: Philosophiae Doctor)가 되기보다는 직접 환자들을 돌보는 임상의사(MD: Medicinae Doctor)가 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의과대학을 졸업한 학생들도 상당수 이학박사의 길을 선택하여 그에 따른 훌륭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은 그만큼 이학박사에 대한 역사도 깊고 국내 환경과는 다른 요인들도 있겠지만, 국내의 현 상황은 심각할 정도로 편승 돼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임상의사와 이학박사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 기초의학을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 사이에 있다는 것이 긍정적인 면에서는 임상 의사들과 이학박사들 간의 회의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우수한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의과대학을 졸업하는 학생은 대부분이 임상의사로 진로를 결정하고, 자연과학대학을 졸업하고 지속적인 연구를 꿈꾸는 학생들은 해당 대학의 교수님들과 함께 연구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 스스로 기초의과학 연구에 뜻을 품고 찾지 않는 이상은 우수한 학생들의 유입이 쉽지 않습니다.
자연과학대학에서는 교수와 학생 간에 다년간 쌓아온 연구 팀워크를 바탕으로 비교적 빠른 시간에 결과를 낼 수 있지만, 교수와 학생이 새롭게 하나 되어 연구를 시작하는 기초의과학 연구센터에서는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기까지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학생들이 연구에 뜻을 품고 오면 다행이지만 이공계 기피현상의 영향은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경희대학교는 학교 자체의 장학금제도가 잘 프로그래밍 되어 있어 대학원생들이 많이 찾고 있지만 다른 대학은 상황이 더욱 어렵다고 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훌륭한 인력과 교수들의 능력이 합쳐져 우수한 연구를 성취해내는 것을 정부의 표현으로 ‘연구수월성’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연구과제나 연구비를 연구수월성을 바탕으로 선정하기에 앞서 말한 학생과 교수의 차이는 연구진행의 문제와도 직결됩니다. 그러다 보니 혹자들은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표현을 하기 도합니다.
하지만 얼마 전 참가한 학회에서 저는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전국의 31개 MRC 교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학회를 했는데,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것도 시작한 지 불과 7년밖에 되지 않은 연구들이 서서히 결실을 보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여한 다른 교수들도 모두 입을 모아 훌륭한 결과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제도적으로 조금 더 뒷받침이 있다면 10여 년 정도 후에는 기초의과학이 각 분야를 중계하며 연구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훌륭한 센터로써 자리매김하여 국가의 투자에 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Q. 연구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A. 경희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가 15년째 되었습니다. 이후에 기초의과학 연구에 뜻을 품고 MRC를 시작한 것도 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시 처음 연구센터를 꾸려나가며 본 대학에서 기초의과학을 연구하려는 인재를 발견하기 쉽지 않았는데, 그때 연구센터에서 함께 연구의 열정을 불태웠던 한 여학생이 기억에 남습니다.
학생은 1989년 울산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미생물학과에 입학하여 석사학위를 받고, 서울대학교 연구실에서 연구를 진행하다가 사정에 의해 나오게 된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연구에 대한 열정을 쏟을 곳을 찾던 학생은 본 센터로 찾아왔고, 함께 한 지 2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미국의 하버드의대로 박사 후 과정(postdoc)을 가게 되었습니다. 박사 후 과정을 마친 학생은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조교수(faculty)로 2008년에 임용되는 쾌거까지 이룩했습니다. 연구를 시작하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였고, 세계를 놀라게 하기엔 어린 나이였던 그 학생의 이름은 김자영 박사입니다. 김자영 박사는 이후 전립선암을 비롯해 비뇨기과 관련 질병의 메커니즘을 밝히고 유전자 조절기술 등의 연구를 수행하며 세계 최고 권위의 임상연구 저널에 20편 이상의 논문을 게재했습니다. 2005년에는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마르퀴즈 후즈후(Marquis Who's Who)’에 암 생물학자로 등재되었으며 2007년에는 미국 비뇨기학회 우수발표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또 한 학생은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학생이었는데 기초의과학을 공부하고 싶던 학생의 뜻과 달리 부모는 다른 방향으로의 미래를 제시했습니다. 갈등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은지라 학생에게 미국 유학길을 권유했고 임상의사를 거쳐 교수가 될 것을 조언해주었습니다. 결국, 그 학생은 미국에 가서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현재는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메디컬센터에서 내분비내과 조교수가 되었습니다. 학생의 이름은 전윤근 박사이고 훌륭한 연구를 진행하며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이처럼 본 연구센터를 찾는 학생들은 대부분 저명한 대학을 졸업하기보다는 그렇지 않은 학생이 더 많습니다. 본 센터에서는 이 같은 학생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함으로 잠재되어 있던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세계 유수의 연구 집단에 분포되어 멋진 성과를 내는 것을 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낍니다. 불탄 자리에서 보석을 찾듯 숨겨진 인재들을 발굴해내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과거를 회상할 때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Q. 함께 연구하는 연구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씀이나 원칙이 있다면
A. 연구하는 학생들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생활환경이나 연구 환경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립할 수 있는 연구자가 되도록 고민하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닐 것이고 각자 이겨내야 할 부분도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연구자에게 공통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연구하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최고가 되어 연구책임자(PI: Principal Investigator)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들에게 출신 지역이 어디고 대학이 어디였는지는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현재 ‘활성산소 생체반응 기초의과학 연구센터’에 오면서 정부와 대학을 배경으로 한 새로운 기회를 부여받은 것입니다. 학비는 전액 장학으로 지원받고 있으며, 많지는 않지만 생활비까지 지원되고 있으니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시기에 집중해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삼아 자신만의 무기를 갖춘 훌륭한 연구자가 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결국 연구자로서 세계무대에 나가 존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Q. 2010년 연구실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A. 현재 연구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들을 문제없이 지속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목표입니다. 그중에는 연구의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어 성과를 내는 것도 있는데 논문뿐 아니라 가시적인 결실을 맺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 명의 학생이 내년에 졸업하게 되는데, 현재 논문의 승인을 기다리며 유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와 로체스터대학교로 진로를 결정했으며, 특히 활성산소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앨라배마대학교로 진로를 결정한 학생도 있습니다. 졸업하는 모든 학생이 각자의 위치에서 훌륭한 연구자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저의 중요한 계획이고 목표입니다.
끝으로 신약개발을 위해 연구를 진행하는 파트도 있는데, 얼마 전에 좋은 효과를 포착했습니다. 다른 연구 못지않게 신약개발 부분도 훌륭한 결과를 내는 한 해가 되도록 끊임없이 정진하겠습니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0년 1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