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학제간 연구로 신성장을 앞당긴다
국민대학교 ‘자기조립소재공정 연구센터’ 이재갑 교수
Q. ‘자기조립소재공정 연구센터’는 어떤 연구를 하는 곳인가요
A. 외부의 인위적인 간섭 없이 자발적인 힘으로 물질을 형성하는 것을 자기조립이라 하는데, 자연의 모든 생명체들이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하여 생성되고 있습니다. 자기조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동물의 형성과정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동물의 경우 구성최소단위 DNA로부터 셀(cell)을 형성하고 셀로부터 다양한 기능을 가진 기관(organ)을 만들면서 생명체의 모습을 갖추는데,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이 자기조립적으로 일어나고 일정한 규칙성을 가진 형상을 반복적으로 만들어가면서 최종물이 완성됩니다.
최근에는 이와 같은 자기조립특성을 각 분야에서 산업화 하고자하는 노력이 확대 되면서 많은 관심을 갖고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반도체 칩을 살펴보면 칩의 특성을 결정하는 틀(template)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소자를 형성하여 소자로부터 다양한 기능을 가진 회로를 만들어 최종적으로 반도체 칩이 완성됩니다. 이 같은 일련의 제작과정을 자발적으로 진행시켜 최종적으로 원하는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자기조립기술개발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행해지던 공정들은 수백 년 전부터 이뤄지던 것들인데 혁신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조공정을 개발하고 있으며, 연구센터에서는 이 같은 자기조립기술을 개발하기위해 자기조립특성을 띄는 소재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자기조립소재공정 연구센터에서는 이것을 제품생산에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하고 있습니다.
Q. 연구센터의 설립배경이 궁금합니다
A. 현대산업에 있어서 기술의 발전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어 왔습니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는 머지않아 기술적인 한계와 경제적인 한계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가령 40나노공정의 반도체 소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정교한 장비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고 연구하기 위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어 경제적인 한계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조립소재공정 연구센터에서는 자발적이고 자기제어적인 자연의 특성을 이용하여 재료의 손실이 없는 자연친화적인 자기조립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자발적인 특성을 이용하여 제조비용을 혁신적으로 줄이고 자기제어적인 특성을 이용하여 나노크기의 소자를 제조하여 기술적인 한계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재료, 화학, 물리, 전자, 기계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교수들이 함께해야했고, 2005년 과학재단의 ERC(Engineering Research Center)로 지정받으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지금까지 활발한 공동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본 연구실에서는 반도체외에도 디스플레이(display), 태양전지(solar cell)등의 산업분야에도 적용될 것으로 예상하여 각 분야에서 제조비용을 줄이기 위한 다각적이고 혁신적인 연구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Q. 대한민국의 ‘자기조립소재공정' 연구는 세계에서 어느 정도 위치하고 있나요
A. 자기조립소재는 신물질의 합성, 물질의 특성연구 및 응용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범위가 매우 광범위해서 정확한 우열을 가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제출된 논문이나 연구의 인력과 규모 등을 종합하여 산출해본다면, 상당수의 개념을 정립하고 전반적으로 연구를 이끌어 가는 미국이 가장 높은 수준을 갖고 있으며 다음으로 독일, 일본, 대한민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특히 화학분야에서 자기조립에 대한 탁월한 결과를 보이며 활발한 연구 활동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국민대학교 자기조립소재공정 연구센터는 2005년부터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3년이 지난 시점에서 1단계 평가를 진행했다. 그 무렵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는데 Nanotechnology 연구 분야의 가장 저명한 저널중의 하나인 Nature Nanotechnology에 소개된 것입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layer by layer method라 불리는 방법이 있는데 층층이 다른 막을 올릴 수 있는 제조방식입니다. 그것을 이용하여 나노 입자(particle)를 적은 지역에 밀도 높게 집적시켰고, 이를 이용하여 플래시 메모리를 제작한 것입니다.
이외에도 활발한 연구에 따른 새로운 성과가 발표되고 있으며, 이 같은 자기조립(self-assembly)방법을 이용한 새로운 응용기술은 반도체 회사에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더불어 산업에 적용시킬 수 있도록 국제특허절차가 진행 중이며 반도체회사와 기술이전 협의도 계획 중입니다.
Q. 세계 선진국과 비교하여 정부의 관심과 지원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A. 국민대학교 ‘자기조립소재공정 연구센터’는 2005년부터 과학재단에서 연간 10억씩 2014년까지 지원을 받습니다. 국민대학교에서도 연구 2단계부터 연간 2억씩 지원받고 있으며, 서울시에서도 1억씩 지원받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각자 산업체 연구를 함께 진행하는 것이 약 2억 정도 됩니다. 구성원으로는 20여 명의 참여교수가 함께 집단연구를 하고 있으며 국민대학교에서 13명, 서울대, 한양대, 공주대 등 7명의 외부교수도 함께 참여하며 학생들도 90여 명이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자기조립소재에 관한 연구는 주로 일부 대학의 교수 실험실에서 개별 연구로 진행되는 실정입니다. 본 센터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하기 전까지는 정부의 움직임이 미미한 것이 사실이었지만 차차 인프라가 구축되며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따라 국내에 많은 연구자들과 연계해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정부의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또한 본 센터에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바이오분야의 연구지원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세계의 우수한 연구소들을 살펴보면 성공적인 연구를 위해서 다양한 분야의 많은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제를 지속시키는 연구비의 필요성은 물론 근본적으로 우수한 연구 인력이 많이 충원되고 양성되어서 우수한 연구결과를 도출하도록 해야 합니다.
더불어 일반적인 연구센터는 기초기술에 대한 것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지만 ERC(Engineering Research Center)의 경우는 산업이전이 가능한 많은 기술이 도출됩니다. 그러므로 기업체 특히 중소기업체중에서 연구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에서는 우수한 센터와 연계를 맺어 산업현장의 기술문제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함께 연구계획을 잡고 연구해나간다면 상호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다학제간 연구를 이끌어나가면서 문제점은 없는지요
A. 연구가 지속 된지 수년이 흘렀지만 아직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화학을 연구하는 연구자에게서 나온 자기조립기술로 기계, 재료, 전자분야에서 공정기술을 개발하며 서로 역할을 나누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며 문제없이 협력하고 있습니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분야를 연구하고 공정개발을 담당했던 연구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에 자기조립(self-assembly)에 관한 화학적 지식은 상당히 생소했고 다른 각도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이전에 생각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연구의 방향이 잡히기도 하는데, 상호간에 완벽한 이해가 이뤄지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지만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좋은 논문이 탄생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하다보면 생각지 못한 시너지가 발생하기도합니다.
다양한 연구 인력이 모이는 본 연구센터를 이끌면서 집단연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강점에 주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연구자간에 잦은 모임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협력하고 결과를 도출해낼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혼자서 하는 것이 더욱 쉽고 빠르게 진행되지만 최근에 집중되는 연구들을 살펴보면 한두 명의 연구자로 이룩할 수 없고 반드시 협력해야만 이뤄낼 수 있는 결과들이 많습니다.
이 밖에도 집단연구는 국제공동연구를 하기에 매우 용이합니다. 연구센터가 설립된 이래로 미국의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센터와 상호간의 산업방문을 하며 컨퍼런스를 함께 개최하는 등의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것은 연구업적과 더불어 센터의 규모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2007년 세계의 센터들과 국민대학교에서 합동 워크샵을 진행한바 있으며, 올해도 보스턴에서 노스이스턴대학의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센터와 합동 워크샵을 진행했습니다. 이처럼 지속적인 워크샵이 이뤄지면서 참여한 구성원들은 각자의 연구를 평가받고 의견을 들으며 많은 자극을 받으며 성취감과 뿌듯함을 얻고 돌아옵니다. 이처럼 그들과의 형식적이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안팎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Q. 연구센터를 이끌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A. 과학재단으로부터 ERC(Engineering Research Center)로 선정되기까지 많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몇 명의 젊은 교수들과 함께 화학, 재료분야 등 팀을 이루어 연구과제에 지원했었는데 3년 정도 연이어 실패를 하며 좌절을 맛보았습니다. 지금의 연구센터가 있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런 시간이 지속되다보니 ‘이제는 포기할 때가 되었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국민대학교에서도 우수연구센터의 프로그램을 통해 3년간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지 않아 미안하기도 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사활을 걸고 대형과제들을 지원하기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함께 연구하던 연구자들이 모두 지칠 때쯤 마지막도전이라는 마음으로 지원했던 ERC(Engineering Research Center)에서 그동안의 노력을 결실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고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특히 이 성과는 카이스트, 포항공대, 고려대등 전국 유수의 대학들과 경쟁하여 성취한 것인데, 짜임새 있는 계획서가 평가자를 감격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함께 연구하던 연구자들 간의 격려가 없었다면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끝까지 믿고 기다려준 국민대학교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 학교 측에서는 ERC(Engineering Research Center)에 도전하기위해 어떠한 지원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응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연구결과가 'Nature Nanotechnology'에 실렸을 때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습니다. 모든 연구자가 합심하여 일궈낸 결과라 더욱 감동적이었고,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주변에 많은 축하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공동연구를 통해 세계를 흔들법한 탁원할 연구결과를 이뤄낼 것 입니다.
Q. 연구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씀이나 원칙이 있나요
A. 함께 연구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학부 때부터 각 교수들과 함께 연구하던 학생들이며, 연구에 비전을 갖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연구센터에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지켜보다보니 실력은 물론 인성도 훌륭한 학생이 대부분입니다.
요즘 학생들의 경향을 보면 교수의 연구 성과와 진행 중인 연구들을 면밀히 살펴보며 연구의 방향과 과거의 업적을 인식합니다. 그렇게 하여 자신의 길을 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과학기술50선에 선정된 교수의 논문이나, 졸업 후 학생의 취업과 연구수상정보들도 학생들이 본 연구센터에 투신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학생들에게 실험에 임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항상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순수한마음으로 잡념을 떨치고 실험에 임하고 불필요한 욕심을 버려야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 강조합니다.
또한 연구 활동에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몰입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생들 스스로도 즐기면서 연구하다보니 자신이 진행하는 실험에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지 궁금한 마음에 늦은 시간까지 연구실에 남아있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회의실에서 새우잠을 청하며 연구에 매진하는 학생을 보기도 하는데, 이것은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각자가 진심으로 즐기며 임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자기조립소재공정 연구 분야는 자연현상을 모방하여 차세대 산업을 이끌어 갈 새로운 패러다임의 공정 기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분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학문의 융합이 이루어져야 하고, 각 분야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가져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학문에 대한 기초 지식이 탄탄해야 합니다. 또한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더욱 새롭고, 창의적이며, 도전적인 생각이 필요합니다. 이에 항상 다양한 사고를 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Q. 2009년 연구센터의 계획이 있다면
A. 쉽진 않지만 ‘nature’나 ‘Science’에 한 번 더 도전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매우 어려운 것임을 알고 있고 과정에 있어서 적지 않은 시간을 전념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의 연구진행 상황과 결과물들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센터차원에서도 업체와 연계하여 산업에 이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이며, 세계의 많은 연구센터들은 물론 국내의 많은 연구자들과 함께 공동연구를 이끌어 내는 것이 올해의 목표입니다.
Q. 사이언스21 독자들에게
A. 국민대학교 자기조립소재공정 연구센터는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장기간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유명저널에도 소개되는 훌륭한 연구 집단입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으며 연구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특히 중소기업체에서는 이러한 우수한 센터를 잘 활용하는 것이 서로 간에 큰 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소규모의 기업체의 경우는 연구개발에 따로 시간이나 자금을 투자하기 쉽지 않을 텐데, 같은 관심을 갖고 있는 기업체에서 센터에게 어떠한 주제만 던져준다고 해도 그것을 통해 연구를 진행하고 해결해나갈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될 것입니다. 이것은 기업과 연구센터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며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교류를 위해서 매년 정부부처의 지원 아래 다양한 박람회가 열리며 연결의 통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연구자가 참여해서 도움을 주고받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서로가 필요할 경우 직접 찾아가서 교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런 활동이 실제로 진행될 경우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심과 활동을 통해서 정부, 연구센터, 중소기업이 모두 하나 되어 산업의 발전은 물론 국가적인 핵심 산업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09년 8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