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수님 인터뷰] 고려대학교 화공생명공학과_ 이정현 교수
  • 자연의 지혜로 인류의 내일을 설계하다 수전해 및 업사이클링 기술로 구현하는 환경과 에너지의 선순환

  • 그린수소 생산의 핵심인 음이온 교환막 기술은 경제적인 차세대 에너지 제조 방식으로 주목받아 왔으나, 기존 소재의 낮은 이온 전도도와 내구성 저하 문제가 상용화의 큰 걸림돌이었다. 고분자 구조 내 작용기의 불규칙한 배열이 전달 효율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장기 구동 시 구조적 변형이 일어나기 쉬운 고질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이정현 교수 연구팀은 최근 단량체 간의 멘슈킨(Menshutkin) 반응을 활용해, 작용기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가교 구조의 고내구성 음이온 교환막을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성과는 상용 제품 대비 월등한 수전해 성능과 1,000시간 이상의 안정적인 구동 능력을 입증하며, 수소 경제 자립을 위한 혁신적인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지난해에는 버려지는 폐플라스틱을 고부가가치 유가금속 회수용 흡착제로 탈바꿈시키는 업사이클링 성과를 거두며 자원 순환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러한 연구 행보는 척박한 기초 소재 분야에 우직하게 뿌리를 내리고, 공학적 설계를 통해 자연의 순리를 회복하려는 집념의 결과물이다. 차가운 실험실에서 자라난 기술의 나무는 이제 세상을 정화하는 푸른 숲이 되어, 환경과 에너지라는 두 갈래 길을 하나의 지속 가능한 미래로 이어주고 있다.


    차세대 수전해 기술의 경제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

    물은 정화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거대한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이에 이 교수 연구팀은 깨끗하게 정화된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수전해’용 분리막 소재 개발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며, 깨끗한 물을 얻는 ‘환경’의 가치와 그 물을 활용해 청정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의 가치를 하나로 결합해 왔다. 이러한 집요한 탐구는 결실을 맺어, 지난해 그린수소 생산을 위한 수전해용 음이온 교환막 제조 기술을 개발, ‘Small’지에 2025년 8월 29일 자로 성과를 게재했다.
    화석연료 사용량의 급격한 증가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문제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이러한 환경 위기에 대응할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그린수소다. 
    재생에너지를 동력 삼아 물을 전기분해해 얻는 그린수소는 생산부터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완전한 청정에너지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여러 방식 가운데 특히 음이온 교환막 수전해는 고가의 귀금속 전극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수소 생산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경제적인 기술로 평가받는다.
    “음이온 교환막은 수전해 반응 시 음이온을 선택적으로 투과시켜 수소 생산을 촉진하는 핵심 소재입니다. 하지만 기존 소재들은 고분자 주쇄에 양이온 작용기가 곁사슬 형태로 붙어있는 선형 구조를 취하고 있어 구조적 한계가 뚜렷했죠. 이러한 형태는 음이온의 전달 효율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가혹한 수전해 환경에서 내구성이 쉽게 저하되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결국 수소 경제의 상용화를 위해서는 성능과 수명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는 혁신적인 소재 설계가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연구팀은 단량체 간의 단일 반응만으로도 간편하게 제조할 수 있는 새로운 공정 방식을 제안하며 이 난제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연구팀이 구현한 음이온 교환막은 느슨한 선형 구조를 탈피해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가교 결합된 입체 구조를 가진다. 덕분에 열화학적 안정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으며, 양이온성 작용기를 고밀도로 균일하게 배열할 수 있어 음이온 전달 효율을 극대화했다. 실제 테스트 결과 상용 제품 대비 월등한 성능과 장기 구동 안정성을 입증하며, 더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그린수소 생산의 길을 열었다.

    “무엇보다도 현재 국내 수전해 시장에서 사용되는 음이온 교환막을 전량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국산 음이온 교환막을 개발함으로써 그린수소 생산 기술의 완전한 자립화를 이루고, 나아가 해외 시장까지 창출하는 기회를 모색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또한 이번에 개발한 분리막은 수전해뿐만 아니라 연료전지나 레독스 흐름 전지, 전기투석처럼 다양한 전기화학 공정 전반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차세대 전기화학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기술적 토대가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본 연구에서 제시한 음이온 교환막은 기존 소재들과 차별화된 물리적 강건함을 바탕으로 수소 경제 시장의 기술적 표준을 새롭게 정립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에너지 자립과 환경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번 성과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폐플라스틱의 화려한 변신, 유가금속 회수용 고성능 흡착제 개발

    이 교수는 그동안 해수 담수화나 수질 정화용 분리막 소재 개발을 주력으로 수행해 왔으나, 물리적으로 입자를 걸러내는 분리막만으로는 특정 이온을 선택적으로 포집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기술적 갈증을 해소하고자 약 5년 전부터 원하는 물질만 골라내어 회수하는 흡착제 연구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은 지난해 고려대학교 원왕연 교수팀과 공동연구를 통해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고성능 유가금속 흡착제 제조 기술을 개발(‘Advanced Science’지 2025년 5월 9일 자 게재)하는 가시적인 결실로 이어졌다. 

    첨단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금, 백금, 팔라듐 등 유가금속의 수요는 폭증하고 있지만, 이들은 자원이 희소할 뿐만 아니라 채굴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 소비와 환경 오염을 초래한다. 이에 전자폐기물이나 폐촉매에서 금속을 회수하는 기술이 대안으로 떠올랐으나, 기존 흡착제들은 제조 공정이 복잡하고 유해 물질을 사용하며 선택성이 낮다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연구팀은 주변에서 흔히 버려지는 폴리염화비닐(PVC) 폐플라스틱에 주목해, 이를 고부가가치 유가금속 흡착제로 탈바꿈시키는 친환경 업사이클링 전략을 새롭게 제시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흡착제는 용매 처리를 통해 PVC 내부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촘촘한 다공성 구조를 형성한 뒤, 하이드라진 기능기를 도입해 강력한 흡착 능력을 부여한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제조된 소재는 수용액 내 금속 이온을 빠르게 흡착해 나노입자 형태로 환원시키며, 폐컴퓨터나 폐촉매 침출수처럼 여러 금속이 뒤섞인 환경에서도 유가금속만을 골라내는 탁월한 선택성을 보였다. 여러 번 반복 사용해도 초기 성능이 유지될 만큼 내구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흡착 후 고온 소성 처리만으로도 복잡한 공정 없이 고순도의 금속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이용해 고가의 유가금속을 회수할 수 있다면 자원 순환과 환경 보호라는 두 가지 난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특히 이번 연구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산업 공정에 적용했을 때의 경제적 이윤과 환경적 우수성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했다는 점에 차별화된 의의가 있죠. 분석 결과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 폐플라스틱 가공 공정은 기존 금 채굴 방식보다 경제성이 월등히 높았으며, 에너지 소모와 온실가스 배출 측면에서도 현저히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소재 개발부터 실제 응용 시의 환경친화적 타당성까지 학문적으로 입증해낸 셈입니다.”
    이러한 성과가 발표되자 PVC 제조사를 비롯한 관련 기업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기업들은 저가의 폐기물을 고부가가치 소재로 전환하는 업사이클링의 수익성에 주목했으며, 귀금속 외에 다른 특정 촉매 소재를 포집할 수 있는 소재 개발 가능성을 타진해 오기도 했다. 현재는 대외적인 산업 경기 영향으로 실질적인 추진이 잠시 소강상태이나, 소재의 부가가치와 경제적 타당성이 이미 정량적으로 확인된 만큼 향후 산업계로의 확장 가능성은 높게 평가되고 있다. 

    “이번에 개발한 기술은 PVC 폐플라스틱의 원형을 유지하기 때문에 향후 다양한 실용화 모델로 확장이 가능합니다. 다만 실제 현장에는 여러 플라스틱이 혼재되어 있으므로, PVC만을 정밀하게 선별해 회수하는 기술과 이를 대량으로 처리할 수 있는 스케일업 공정 구축이 상용화를 위한 선제적 과제라고 봅니다. 현재는 PVC뿐 아니라 PET나 비닐봉지의 주성분인 폴리에틸렌 등으로 연구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소재의 다변화와 정밀 제어 연구를 통해 자원 안보와 환경 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후속 연구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후속 연구를 통해 다변화될 흡착 기술은 공급망 안보와 직결된 리튬 및 희토류 회수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중금속이나 방사성 물질 제거와 같은 환경 정화 분야로도 활용이 가능해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기술적 방벽이 될 전망이다. 폐플라스틱이라는 ‘애물단지’를 유가금속이라는 ‘보물’을 낚는 도구로 바꾼 이 교수의 집념은 이제 전 지구적인 자원 순환 지도를 새롭게 그려 나가고 있다.


    자연으로 자연을 치유하다

    연구팀은 수전해 및 흡착제 연구와 더불어, 자연의 구조와 기능을 설계도 삼아 혁신적인 분리막을 구현하는 ‘생체 모방’ 기술 연구를 활발히 수행해 왔다.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는 공학적 접근과 함께, 수억 년의 진화를 거쳐 완성된 자연 소재의 강점을 연구의 또 다른 핵심 축으로 삼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게나 새우껍질에서 추출한 키토산을 활용한 필터링 기술이다. 물속에서 매우 안정적이고 견고한 구조를 유지하는 이들 천연 조직에 미세한 다공 구조를 형성해, 그 자체로 훌륭한 기능을 수행하는 환경 정화용 필터를 재탄생시켰다.

    연구의 시작은 늘 우리 주변의 친숙한 풍경 속에 있었다. 키토산 연구를 기획할 당시 학생들과 함께 대게를 먹으며 그 껍데기의 구조적 특성을 관찰하고 연구를 설계했을 만큼, 이 교수는 일상의 세밀한 관찰을 강조한다. 자연에 존재하는 소재를 적절히 개질해 환경 정화에 필요한 기능성을 부여하는 과정은 연구팀이 추구하는 자원 순환의 또 다른 형태다. 
    “제가 지향하는 연구 미션인 ‘자연으로 자연을 치유하자’라는 개념에는 천연 소재의 활용뿐만 아니라 자연의 기능을 정교하게 모사하는 기술이 모두 포함됩니다. 약 7~8년 전 수행했던 해수 담수화 연구가 대표적인데, 바닷물을 강한 압력으로 짜내어 소금을 걸러낼 때 분리막 표면에 오염원이 쌓여 물의 투과를 방해하는 ‘막 오염(Fouling)’ 현상은 이 분야의 고질적인 난제였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다를 평생 헤엄치면서도 표면이 늘 깨끗하게 유지되는 상어의 피부 구조에 주목했습니다. 상어 표피 특유의 미세 패턴이 오염 물질의 부착을 억제한다는 점에 착안해 이를 분리막 표면에 그대로 구현해냈고, 실험 결과 오염 저감 성능이 월등히 향상됨을 확인하며 과학적 원리까지 규명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공포와 동경의 대상이었던 상어를 관찰하며 수처리 기술의 결정적인 힌트를 얻었듯, 자연에 내재된 해답을 찾아내는 집요한 시선은 연구실을 지탱하는 가장 큰 동력이다. 자연에서 얻은 영감이 공학적 설계를 거쳐 다시 자연을 치유하는 기술로 환원되는 선순환의 고리는, 이 교수가 그리는 지속 가능한 미래의 청사진이자 변하지 않는 연구의 본질이다.


    가치를 쫓는 우직함, ‘지속 가능형 환경소재 연구실’

    이 교수가 이끌고 있는 ‘지속 가능형 환경소재 연구실’은 현재 분리막 팀, 흡착 팀, 수전해 분리막 팀의 세 그룹으로 나누어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수소 생산을 위한 수전해용 음이온 교환막 개발부터 중금속 및 방사능 제거용 흡착제, 천연물 기반의 다공성 물질 및 생분해 고분자 물질 합성까지 폭넓게 뻗어 있다. 환경과 에너지를 아우르는 고분자 소재 설계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연구실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다.
    연구실을 지탱하는 가장 큰 자산은 구성원들의 다채로운 배경에서 뿜어져 나오는 ‘다양성’이다. 창의성은 뛰어난 지능을 가진 소수에게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개체들이 섞일 때 극대화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지론이다. 실제로 이곳은 성별과 출신 지역은 물론, 화학공학이나 고분자 전공자부터 천연 소재 연구를 위한 산림 자원 전공자까지 학문적 배경이 매우 다채롭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학생들이 각기 다른 생각과 전문성을 공유하는 구조 자체가 연구실의 독보적인 정체성을 형성한다.

    “우리 연구실 학생들의 특징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우직함’입니다. 반도체나 AI처럼 자본과 관심이 쏠리는 유행을 쫓기보다, 상대적으로 소외된 환경 소재 분야를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과 근성이 있다는 증거죠. 현실의 기조에 휘말리지 않고 이곳에 모인 제자들의 태도를 매우 높게 평가하며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제자들이 ‘연구가 좋다’는 막연한 마음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10년 뒤나 20년 뒤의 삶에 대해 단기·중기·장기적인 계획을 철저히 세우도록 독려한다. 체계적인 미래 설계와 목표가 뒷받침되어야만 현재의 연구도 흔들림 없이 주도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환경의 소중함을 알고 모인 인재들이기에, 그들이 연구자로서 자신만의 길을 전략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가치관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도 방식에 있어서 이 교수는 ‘할 거면 확실히 하고, 안 할 거면 말라’는 명확한 원칙을 고수한다. 연구 시에는 한계까지 몰입하는 집중력을 요구하는 반면, 휴식기에는 학생들에게 온전한 자율권을 부여해 재충전의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이러한 명확한 구분과 상호 신뢰는 연구 현장에서 팀 간의 유기적인 협업을 이끌어내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시대의 기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 연구원들의 결속은, 척박한 기초 소재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일궈내는 연구실만의 비결이다.


    실험실의 불빛이 세상의 빛이 되는 날을 꿈꾸며

    미국 국립표준과학연구소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칠 때까지만 해도 이 교수의 연구 중심은 고분자 및 나노 소재의 원천 과학에 맞추어져 있었다. 당시 논문 주제 역시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본격적인 환경 연구의 길로 들어선 것은 201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합류하고, 이후 2014년 고려대학교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다. 그렇게 지난 12년 동안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환경 연구를 수행해 왔다. 오히려 환경 공학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었기에, 보유하고 있던 고분자 나노 기술을 환경 소재에 접목하는 과감한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었다.

    “학회에서 상어 표피 패턴을 모사한 분리막 연구를 발표했을 때, 전통적인 환경 연구자들로부터 의구심 가득한 시선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러한 차별화된 시각이 지금의 독창적인 성과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정형화된 연구보다는 이른바 ‘근거 있는 미친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길을 지향할 계획입니다. 도전 과정에서 겪는 실패의 위험도 크겠지만, 그게 연구자의 숙명 아닐까요.”
    이 교수는 과학이라는 학문이 결국 타인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공공의 연구비를 투입하는 만큼 반드시 유형의 가치를 창출해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소신이다. 대단한 업적이 아닐지라도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작은 초석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가짐이다.

    연구자로서 확고한 길을 걸어온 그에게도 개인의 삶이라는 측면에서는 문득 멈춰 서게 되는 지점들이 있다. 평생 연구에 매진하며 명절 연휴조차 실험실에서 보내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제자들을 지도하며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인간 이정현’으로서의 삶은 많은 부분 희생되었다. 최근 들어 그는 연구자라는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느라 놓쳐버린 개인의 행복과 시간들에 대해 깊은 성찰을 이어가고 있다.
    “신진 연구자나 후학들에게 연구만큼이나 ‘자신의 삶’도 진지하게 챙겨보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연구의 방향을 고민하듯 개인의 삶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회와 타인을 위한 헌신에만 몰두하다 보면 정작 소중한 자신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죠. 연구자로서의 사명감과 개인의 삶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지속 가능한 연구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교수의 버킷리스트는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마주하는 것이다. 연구에만 함몰되어 살아온 스승을 안타까워하는 제자들은 졸업 후 직접 짐꾼이 되어주겠노라 농담 섞인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그는 남은 시간 동안 연구의 가치를 지켜내면서도, 오랫동안 꿈꿔왔던 오로라를 마주할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치열한 연구의 현장은 때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과 같다. 이 교수는 그 터널 끝에서 만날 한 줄기 빛이 사회를 밝히는 기술이 되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그 빛이 연구자 자신의 마음을 비추는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소망한다. 척박한 땅에 우직하게 뿌리를 내린 나무가 마침내 푸른 그늘을 만들어 타인에게 쉼터를 제공하듯, 그의 연구는 세상을 정화하는 푸른 숲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그는 그 숲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즐기며, 차가운 실험실의 불빛 대신 신비로운 오로라의 빛을 가슴에 담을 준비를 하고 있다.

    취재기자 / 안유정(reporter1@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6년 4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 글쓴날 : [26-04-09 09:06]
    • 최진민 기자[reporter2@s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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