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보정 없이 낮밤·실내외 구분 않는 얼굴 인식 구현
최근 시각 정보를 바탕으로 즉각 판단해야 하는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카메라가 ‘무엇을 보느냐’만큼이나 ‘어떤 빛 조건에서도 얼마나 안정적으로 보느냐’가 비전 시스템의 성능을 좌우하는 문제로 떠올랐다. 현실의 조명 환경은 실내의 낮은 조도부터 한낮의 강한 직사광선, 역광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거리까지 스펙트럼이 넓고, 기존 CMOS 이미지 센서 기반 카메라는 이런 극단적인 밝기 변화에서 과노출·저노출로 정보가 무너지며 인식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 일상 사진에서는 ‘어둡게 나왔다’는 불편으로 끝나지만, 보안 얼굴인식이나 자율주행 상황에서 같은 왜곡이 생기면 판단 오류가 위험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소프트웨어 보정의 고도화만으로 해결하기보다, 센서 자체가 조명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도록 시각 정보 처리 구조를 바꾸는 접근을 택했다.
“얼굴은 코처럼 튀어나온 부분과 눈 주변처럼 들어간 부분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밝기 차이로 입체감이 생기는데, 조명이 지나치게 밝거나 어두우면 그 입체감이 무뎌져 판별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요즘은 AI 소프트웨어로 왜곡을 보정할 수도 있지만, 이미지 센서가 스스로 보정할 수 있다면 AI는 보정이 아니라 더 어려운 판단에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명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차세대 이미지 센서를 만들고, 자율주행과 로봇처럼 실시간 고급 의사결정이 필요한 분야에 적용하고자 했습니다.”
연구의 출발점에는 인간의 시각·신경 시스템에서 영감을 받은 ‘뉴로모픽 비전’ 개념이 있다. 뉴로모픽 비전은 사람이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하며 학습·판단하는 방식처럼, 복잡하고 비정형적인 환경에서도 실시간 처리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시각 정보 처리 패러다임이다. 특히 연구진은 신경세포와 아교세포가 함께 시냅스를 이루는 삼단자 시냅스(tripartite synapse) 구조에 주목했다. 아교세포는 신경조절 물질을 분비해 신경세포 사이를 오가는 신호의 세기를 조절하고, 이 과정이 학습과 기억 형성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구조를 모사하면 빛 정보를 받아들이는 단계에서부터 선택적으로 신호를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는 새로운 유형의 시각 센서를 만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실제 소자로 구현하기 위해 연구진은 게이트, 드레인, 소스로 구성된 삼단자 강유전체 광트랜지스터를 설계했다. 강유전체 게이트는 빛이 들어왔을 때 형성되는 광전류를 독립적으로 조절하는 역할을 맡는다. 여기에 더해 강유전체가 지닌 독특한 분극 거동을 활용해, 한 번 감지한 빛의 정보를 센서 안에 일정 시간 저장하고, 필요할 때는 그 신호를 더 키우거나 줄이는 기능까지 부여했다.
연구진은 이렇게 제작한 강유전체 광트랜지스터를 이용해, 이미지 센서 내부에서 대비를 높이고 노이즈를 줄이며 전체 밝기를 조정하는 과정까지 직접 수행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별도의 소프트웨어 연산을 거치지 않고도 소자 차원에서 일종의 ‘이미지 후처리’를 수행한 것이다. 나아가 조명이 극단적으로 바뀌는 조건에서도 학습 데이터셋을 다시 만들거나 인공지능 모델을 재학습시키지 않고 얼굴을 안정적으로 구분해 내는 시연 결과를 제시했다. 이 센서에서 출력되는 신호가 합성곱 신경망(convolutional neural network)과 같은 기존 인공지능 연산 구조와 자연스럽게 연동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밝혔다. 이러한 연구성과는 국제학술지 ‘Advanced Materials’에 2025년 7월 28일 온라인 게재됐다.
자율주행 자동차, 보안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 적용 기대
이번 연구의 가장 중요한 기술적 과제는 빛 정보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특성과 인가 전압에 따라 그 정보를 세밀하게 조절하는 특성을 하나의 소자 안에서 동시에 확보하는 일이었다. 연구팀은 비교적 간단한 소자 구조와 흔히 사용되는 물질들을 활용해 이 두 가지 특성을 모두 실험적으로 확인했지만, 강유전체 소자가 지금까지 주로 전기적 메모리로 연구·활용되어 왔다는 점이 곧 다른 난관으로 이어졌다. 광학 메모리 관점에서 이러한 거동이 왜 나타나는지 설명해 줄 선행 연구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문 심사위원들이 제시한 평가 의견을 참고하면서, 강유전체 소자와 광학 메모리의 기초 이론을 다시 짚어 보고, 이번 실험에서 관측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정리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도출된 핵심 성과는 그동안 전기적 메모리 소자로 인식되던 강유전체 소자를 뉴로모픽 비전과 인-센서 컴퓨팅의 하드웨어 플랫폼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강유전체 광트랜지스터 하나로 광학 메모리와 센서 내 연산이 동시에 가능함을 보이며, 강유전체 트랜지스터를 시각 정보 처리에 적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특정 재료계에서만 나타나는 특수한 효과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전기적으로 부분 분극 조절이 가능한 다양한 강유전체 소자에 확장 적용할 수 있는 일반성을 갖춘 점도 학술적 의의를 키운다. 강유전체와 광감응 물질을 조합해 시각 정보를 다루는 방식은 향후 다른 연구 그룹들에도 하나의 유효한 설계 전략이 될 수 있다.
응용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번에 제시된 강유전체 기반 뉴로모픽 비전 소자는 센서 내부에서 실시간 정보 처리와 적응형 응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빛 정보를 센서 단계에서 저장하고 전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후단의 소프트웨어나 주변 회로가 맡아야 할 연산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는 에너지 효율이 중요하고 환경 변화가 심한 자율주행, 스마트 로봇, 웨어러블 디바이스, 보안 시스템 등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연구에서는 시각 정보를 ‘광량’에 국한하지 않는 방향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자연 환경에서 빛은 세기뿐 아니라 파장, 편광, 위상 정보까지 함께 포함하고 있는데, 이번 연구는 이 가운데 광량 변화에 적응 가능한 AI 이미지 센서를 제시한 단계에 해당한다. 따라서 연구팀은 연구를 더 확장해 빛의 종합적인 변화를 겪는 비정형적 환경에서도 사용 가능한 이미지 센서를 제작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전방위 촬영 가능한 수륙양용 카메라로 과학기술인상 수상
송 교수 연구의 큰 축을 이루는 영역은 다양한 동물의 눈 구조를 모사한 생체모방 카메라 시스템 개발이다. 곤충과 어류, 동물의 시각 기관을 정밀하게 분석해 이를 광학·전자 구조로 구현하기 위한 연구들이 꾸준히 이어져 왔고, 그중 2022년에 선보인 농게 눈 모방 카메라는 하나의 소형 장치로 360도 전방위 시야와 수륙양용 촬영을 구현해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성과는 시스템 반도체의 핵심 요소인 이미징 센서 기술과 자율주행차, 가상현실 기기 등에 요구되는 영상기술 고도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수여하는 2023년 2월 과학기술인상에 선정되었다.
농게 눈 모방 카메라 연구는 초소형 광각 카메라에 대한 수요와 기존 광각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스마트폰, 자율주행자동차, 내시경 카메라 등에서는 작은 크기와 넓은 화각이 동시에 요구되지만, 기존 광각 카메라는 7~13매의 어안렌즈를 겹쳐 사용하는 방식이어서 부피가 커지고 영상 왜곡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다. 두 개 이상의 카메라 영상을 합성해 360도 화각을 구현하는 방식 역시, 하나의 일체형 카메라로 전 방향을 보는 구조와는 거리가 있었다.
연구팀은 갯벌 환경에 적응해 진화한 농게의 눈이 작은 홑눈이 모인 겹눈 구조로 전면에 돌출되어 있어 전후좌우 360도를 동시에 볼 수 있고, 물속과 물 밖에서 모두 선명한 시야를 확보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농게 홑눈의 분포와 렌즈 형상을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겉으로는 평평해 보이지만 내부에서 곡률과 굴절률이 서서히 변하는 구배형 구조가 두 매질에서 모두 초점을 맞추는 핵심임을 확인했고, 이를 모사한 편평 구배형 렌즈(graded index lens)를 제작했다. 이 렌즈를 이미지 센서와 결합하고, 렌즈와 포토다이오드로 구성된 광학 시스템을 지름 약 2cm 크기의 구모양 구조 안에 집적해 왜곡을 억제하면서 360도 파노라마 영상을 수륙양용으로 획득하는 카메라를 구현했다.(2022년 7월 Nature Electronics 게재)
“농게 눈을 모사한 카메라에서는 렌즈를 여러 장 겹치거나 카메라 여러 대를 이어 붙이지 않고, 하나의 소형 카메라만으로 360도에 가까운 화각과 수륙양용 촬영을 동시에 구현하는 데 목표를 두었습니다. 표면은 평평하지만 내부 굴절률이 구배를 이루는 렌즈 구조를 도입함으로써, 물과 공기라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도 초점이 유지되는 광학계를 만들 수 있었고, 이를 구형 구조물에 집적해 전방위 시야를 확보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렌즈는 곡면이어야 한다는 관점이 강했지만, 이 연구를 계기로 편평 렌즈 기반 설계의 가능성도 함께 제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연구팀은 불리한 빛 환경에서 고대비·고해상도 영상을 얻는 문제를 갑오징어의 눈 구조에서 풀어냈다. 바닷속에서 먹잇감을 포착하는 갑오징어는 위쪽에서 들어오는 강한 빛은 줄이고, 아래쪽에서 들어오는 빛은 효율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동공이 W자 형태로 발달해 있다. 망막에는 아래쪽 빛이 맺히는 영역에 광수용체가 밀집되어 있어, 먹잇감이 지나가는 아래쪽 방향에서 높은 해상도의 시력을 확보한다. 연구팀은 이 구조를 모사해 구형 렌즈 앞에 위치한 조리개를 갑오징어의 동공과 같은 W자 형상으로 설계함으로써, 위쪽에서 강하게 들어오는 빛을 효과적으로 줄이고 광다이오드가 과노출되는 상황을 억제했다. 동시에 갑오징어 망막처럼 관심 영역에 해당하는 영상 부분에 광다이오드 픽셀을 집중 배치해, 필요한 구간만 고해상도로 얻을 수 있는 카메라 구조를 구현했다. 여기에 원통형 광다이오드 어레이에 유연하게 밀착될 수 있는 탄소나노튜브 기반 유연 편광 필름을 제작해 부착함으로써, 편광 방향에 따라 빛을 선택적으로 흡수·투과시키고 명암 대비를 한층 높였다.
기존 카메라 시스템이 불규칙한 빛 환경에서 획득한 영상을 소프트웨어로 후처리해 개선하는 방식에 의존했다면, 이 시스템은 하드웨어 단계에서 빛 조건을 조절해 고대비 영상을 직접 수집하는 방식을 제안한 셈이다. 이러한 구조는 불균일한 조도 환경에서 고품질 영상을 요구하는 자율주행차, 이동형 로봇, 드론 등의 카메라 시스템에 적용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제시되었다.(2023년 2월 Science Robotics 게재)
독수리의 시야와 고양이의 동공으로 확장된 생체모방 비전
2024년에는 하늘 높이 날며 수 ㎞ 떨어진 먹잇감을 포착하는 독수리의 눈을 모사한 물체 감지 특화 카메라, 그리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사냥감을 구분해 내는 고양이 눈 구조를 본뜬 위장 해제 카메라가 연이어 발표되며, 동물의 시각 시스템을 공학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이 새로운 단계로 이어졌다.
독수리 눈 모방 카메라는 조류 시각의 핵심 구조인 깊고 좁은 중심와와 다중 파장 감지 기능을 하나의 시스템 안에 녹여낸 결과다. 독수리와 같은 새의 눈에는 망막에 깊게 파인 중심와가 존재해 먼 거리에 있는 물체를 확대해 보기 유리하고, 이 영역에 색을 감지하는 원추세포가 높은 밀도로 분포해 선명한 상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 사람과 달리 자외선까지 감지해 복잡한 환경에서도 다양한 시각 정보를 얻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연구팀은 이 구조와 기능에서 영감을 받아, 새의 중심와를 본뜬 인공 중심와를 설계하고 광학 시뮬레이션을 통해 멀리 있는 물체를 왜곡 없이 확대할 수 있는 형상을 도출했다. 여기에 서로 다른 파장 영역을 흡수하는 네 종류의 페로브스카이트 물질로 만든 광센서를 수직으로 적층해 별도의 색 필터 없이 가시광선과 자외선을 동시에 구분·감지하는 다중 파장 이미지 센서를 구현했다.
이 카메라의 특징은 시야의 중앙부에서는 멀리 있는 목표를 확대해 보여주면서도, 주변부 시야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이다. 기존 줌 렌즈 기반 카메라는 확대된 영역 밖 주변부 정보가 사라지지만, 이 시스템은 확대 영역과 주변 배경을 동시에 제공해 두 시야의 차이를 이용한 움직임 감지가 가능하다. 시뮬레이션 결과, 물체 인지 신뢰도는 기존 카메라 시스템의 약 두 배 수준(0.39→0.76)으로 높아졌고, 움직임 변화율에 대한 민감도 역시 3.6배 증가해 움직이는 물체를 더 민첩하게 감지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필터 없이 가시광선과 자외선을 함께 다루는 구조 덕분에 시각 정보의 폭이 넓어지는 동시에, 공정 비용과 무게를 줄일 수 있다는 점도 드론·무인 로봇·자율주행차에 요구되는 카메라 시스템에서 강점으로 제시된다.(2024년 5월 Science Robotics 게재)
고양이 눈 모방 카메라는 밝은 한낮부터 어두운 환경까지 조명이 크게 달라지는 상황에서, 객체와 배경을 어떻게 분리해 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연구다. 일반적인 카메라 시스템에서는 밝은 환경에서 픽셀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어두운 환경에서는 광전류가 부족해 물체와 배경의 경계가 흐려지는 문제가 반복된다. 연구팀은 고양이과 동물이 가진 수직으로 길쭉한 동공과 망막 뒤편의 휘판(tapetum lucidum) 구조가 다양한 조명 조건에서 ‘위장 해제’, 즉 객체와 배경을 분리해 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수직 동공은 피사계 심도를 비대칭적으로 만들어 특정 거리의 물체에는 초점을 선명하게 맞추면서, 그와 다른 거리에 있는 배경은 자연스럽게 흐리게 만들고, 휘판은 망막 뒤에서 빛을 반사해 어두운 환경에서도 시각 감도를 끌어올린다.
연구팀은 수직 가변 조리개와 결상 광학계를 결합하고, 하나의 포토다이오드와 은(銀) 휘판으로 구성된 단위 픽셀을 반구형 이미지 센서 어레이 위에 배치해 이러한 구조를 공학적으로 구현했다. 수직 가변 조리개는 강한 빛이 들어올 때 특정 방향의 빛을 효과적으로 차단해 포토다이오드의 과노출을 막고, 어두운 환경에서는 은 휘판 구조가 빛을 한 번 더 활용해 흡수 효율을 약 52%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광학 시뮬레이션과 실험 비교에서는 수직 동공을 모사한 조리개가 작은 원형 조리개보다, 일정 거리의 물체를 또렷하게 포착하면서 다른 거리에 있는 배경을 더 효과적으로 흐리게 처리해 객체와 배경을 분리하는 데 유리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인공지능 기반 객체 인식 실험에서도 수직 조리개 시스템이 객체 인식률 향상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연구 성과는 2024년 9월 ‘Science Advances’ 표지 논문으로 게재되었다.
이처럼 농게, 갑오징어, 독수리, 고양이를 비롯해 사람의 눈으로 이어지는 생체모방 연구에는 물리와 재료, 기계, 전기·전자, 영상 처리, 그리고 그 바탕에 놓인 생명과학까지 여러 층위의 요소가 겹겹이 얽혀 있다. 그렇다 보니 연구실 구성 또한 이런 구조를 그대로 닮았다. 전자공학, 물리학, 신소재공학, 기계공학을 공부한 인재들이 함께 모여, 새롭고 낯선 광학 구조를 두고 각자의 언어로 다른 관점을 내놓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저희 연구실은 생물 모방을 많이 하는데, 이런 연구는 선행연구가 거의 없습니다. 융합연구이면서 대부분이 처음 시도하는 주제다 보니,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접근하는 데 비교적 익숙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해파리 눈 연구를 해보자’라고 말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는 점이 연구실의 큰 특징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송 교수가 요즘 의식적으로 붙들고 있는 화두는 ‘왜 이 연구를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눈앞의 실험과 논문, 다음 과제를 준비하는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지금 진행 중인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산업 현장에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함께 일하는 동료와 학생들에게는 무엇을 남기는지 여러 겹으로 되짚어 보려는 시도다. 생체모방 비전이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이어 가는 동안 연구의 방향과 무게를 스스로 점검하는 과정이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같은 고민은 자연스럽게 실용화로도 이어졌다. 송 교수는 사하라 사막에 사는 은개미의 삼각기둥 모양 털 구조에서 착안해, 전기를 쓰지 않고 복사로 물체의 온도를 낮추는 복사냉각(radiative cooling) 기술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은개미 털이 체내 복사열을 바깥으로 효과적으로 방출하듯, 적절한 구조와 소재를 설계하면 필름 한 장으로도 태양 아래에서 물체 온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발상이다.
송 교수는 필름 형태의 복사냉각 소재를 만들어 건물 외벽이나 차량 표면에 부착해 에어컨 사용을 줄이면서도 실내를 시원하게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연구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많은 사람이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제품으로 나와야 더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 끝에 2019년 유연 광학 소재 및 에너지 솔루션 기업 (주)포엘(FOEL, Flexible Optics & Energy Laboratory)을 설립했다. (주)포엘은 ‘지구 온도를 직접 낮추는 제품으로 고효율 에너지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비전 아래, 설립 이후 유채색 복사냉각 소재 구현, 차량 내부에 갇힌 열을 제어하는 공간 냉각 개념 제시, 온도차를 활용한 발전 소자 연구 등으로 기술 포트폴리오를 넓혀 왔다. 기술보증기금 U-TECH밸리와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TIPS) 선정, 에너지 기업과 액셀러레이터, 정책금융기관으로부터 잇따른 투자를 유치하며 에너지·냉각 분야에서의 잠재력을 인정받았고, 최근에는 한전 초격차 프로그램과 환경·지역혁신 관련 R&D 사업에도 잇따라 선정되며 산업계의 기대 속에 성장 궤도를 다지고 있다.
“향후 궁극적인 목표는 ‘시각 혁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명암 대비 조절 같은 인-센서 컴퓨팅 기능과 동물의 눈을 모사한 렌즈, 이미지 센서를 모두 합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카메라를 만드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로봇용으로 쓰일 카메라는 사람 눈만 모방해서는 부족하고, 개별 동물들의 눈을 적절히 모방해 각 로봇의 역할과 환경에 맞는 맞춤형 설계가 필요합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자연계의 눈을 모방하고, 이를 상용제품까지 이어가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체모방 비전 연구가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구조를 찾는 창의성뿐 아니라, 그 구조가 현실에서 작동하도록 끝까지 책임지는 집요함이다. 송 교수는 ‘왜’라는 질문을 놓지 않으며 끝없이 연구의 방향을 점검하고, 그 질문을 구현과 검증의 기준으로 세운다. 자연이 만든 눈에서 출발한 설계가 인공 시각 시스템으로 구현되고, 실제 환경에서 반복 재현되는 단계까지. 그의 연구는 지금도 그다음 단계를 향해 조용히 전진하고 있다.
취재기자 / 안유정(reporter1@s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