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세계 성질 관한 고전적 확률 의존성 규명
양자물리는 1905년 영국의 물리학자인 러더퍼드가 실험을 통해 발견된 원자 모형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했다.
기존 제시된 원자 모형은 푸딩에 건포도가 박혀 있는 것과 비슷한 형태였지만,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은 중간에 원자핵이 있고 전자가 그 주위를 회전하는 형태였다. 기존 물리학 이론으로는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을 설명할 수 없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양자물리학이다.
기존 물리학 이론이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을 설명하지 못했던 이유는 기존 물리학 이론과의 충돌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자면 후에 알려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때문이다. 미시세계에서는 불확정성 원리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양자물리를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기존 물리학에 불확정성 원리를 모순 없이 적용하려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양자물리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신비한 현상들이 일어난다. 1990년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이해를 위해 물리학자 페레스는 양자세계에 대한 유명한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은 ‘얽힘이 없는 특정 양자상태들에 대하여 두 사람이 떨어져 있지만 모든 고전적 통신수단을 동원해 그 양자상태가 무엇인지를 알아맞히는 경우와 그 양자상태가 무엇인지 두 사람이 한 자리에서 알아맞히는 경우가 동일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후에 이 문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이 두 경우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얽힘 없는 비국소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질문이 특별한 이유는 맞히는 대상이 양자상태들이 아니라면 두 경우 모두 동일한 확률로 정답을 맞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주목할 만한 연구들을 통해 특정 양자상태들에 대하여는 두 사람이 떨어져 있지만 모든 고전적 통신수단을 동원해 알아맞히는 경우와 그 두 사람이 한 자리에서 알아맞히는 경우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 알려졌죠.”
기존에는 특별한 양자상태들이 모두 동일한 확률로 준비되어 있을 경우로 국한되어 연구되었다. 동일하지 않은 확률로 준비된 특정양자 상태들에 대한 연구기법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영헌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러한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연구방법을 도입했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한 새로운 양자상태들을 고안했는데, 지금까지 어느 연구팀도 고려하지 않았던 세 가지 종류의 양자상태였다.
먼저 이 양자상태에 대한 모든 분석을 마치고 문제분석을 간략하게 하기 위해 세 양자상태 중 두 양자상태의 확률은 동일하게 한 뒤 나머지 하나의 양자상태에 대한 확률을 변경시키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결과 준비된 양자상태의 확률에 따라 ‘얽힘 없는 비국소성’이 일어날 수도 또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얽힘 없는 비국소성’은 양자세계에서만 등장하는 특별한 현상인데 그 특별한 현상이 고전적 확률에 좌우됨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얽힘 없는 비국소성’이라는 양자세계의 성질이 고전적 선택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사실에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는 특별한 양자상태들이 준비되더라도 그 양자상태들에 대한 고전적 확률에 따라, 양자세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인 ‘얽힘 없는 비국소성’이 결정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양자통신 개발을 위한 실마리 제시
준비된 물리계의 상태를 구별하는 상황은 여러 장의 카드 중 한 장의 카드를 뽑아 뒤집어 놓고 두 사람이 협력해 그 카드의 종류를 맞추는 놀이에 비유될 수 있다.
“거시세계에서는 두 사람이 한 장소에 모여 맞추든 또는 떨어진 장소에서 전화로 이야기하면서 맞추든 성공할 확률이 같습니다. 하지만 양자세계에서는 한 장소에 모여 맞출 때의 성공확률이 더 높아지는 특별한 상황(얽힘 없는 비국소성)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특별한 상황은 준비되는 물리계의 상태에만 의존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이번 연구를 통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리계를 어떤 고전적 확률로 준비하느냐에 따라 특별한 상황(얽힘 없는 비국소성)이 나타날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으로, 각 종류의 카드들을 어떤 비율로 섞느냐에 따라, 양자세계의 성질(얽힘 없는 비국소성)이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연구팀은 새로운 양자상태들을 임의의 확률로 준비하고 이를 분석하는 기법을 고안해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양자상태들을 A, B, C의 세 가지 카드라고 할 때 B와 C 카드는 600장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이때 A 카드의 개수가 342장인지, 343장인지에 따라 특별한 상황(얽힘 없는 비국소성)이 결정된다. 전체 카드에서 A 카드의 미세한 비율의 차이(여기서는 단지 1장의 차이)로 인해 양자세계의 성질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고전적 선택이 양자정보적 성질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것으로, 양자상태를 이용하는 양자통신 등의 개발에 새로운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재 도청이 불가능한 차세대 통신수단으로 양자통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양자통신은 여러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는데, 그 중 양자상태에 정보를 담아 전달하는 방식들이 있죠. 이번 연구결과는 이러한 양자통신 문제, 특히 다자간 양자통신을 수행하는 경우 활용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기본연구지원사업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양자컴퓨팅기술개발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된 이 연구의 결과는 양자정보 분야 국제학술지 ‘엔피제이 퀀텀 인포메이션(npj Quantum Information)’에 2021년 5월 25일(온라인) 게재되었다. ‘엔피제이 퀀텀 인포메이션’은 관련 분야에서 최고 권위의 학술지로, 순수 국내 연구로 게재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자정보 연구에 한 획을 긋다
권 교수가 이끄는 연구실은 양자정보를 이용한 정보처리 분야를 연구하는 수리물리연구실과 다양한 인공지능 알고리즘들을 바탕으로 한 애플리케이션을 소프트웨어에서부터 하드웨어까지 다방면에 걸쳐 연구하는 음향학연구실로 구성되어 있다. 양자정보, 양자컴퓨터, 인공지능 분야에서 이론적 접근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연구실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양자상태 구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며 여러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겨 왔다. 그중에서도 권 교수와 하동훈 박사가 2013년 발표하고 특허 등록을 마친 ‘세 양자상태 처리 장치 및 방법(등록번호 10-1918793)’을 대표적 성과로 꼽을 수 있다.
고전적인 경우에 있어서 각 상태들은 서로 수직해 모든 상태들이 항상 완벽하게 구별된다. 그러나 양자상태를 고려하게 되면 서로 수직하지 않은 상태들의 존재 때문에 완벽하게 구별되지 못한다. 종전까지는 임의의 두 양자상태를 구별하는 방법만이 보고되었고, 세 양자상태가 임의로 주어질 경우 이에 대한 최적의 구별방법은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에 연구팀은 연구를 통해 세 큐빗양자상태들을 명확하게 구별하고 관리하는 양자상태 처리장치 및 방법을 제시했다.
“세 큐빗양자상태들의 구별이 가능하면 세 큐빗양자상태에 관한 정보를 이용해 양자통신, 양자컴퓨터, 양자암호화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송신기가 세 큐빗양자상태 정보를 수신기로 전송하면, 수신기는 이 정보에 따라 적절한 측정장치 준비가 가능합니다. 따라서 타인이 통신 동안 데이터를 해킹하더라도 최적의 측정장치를 준비하지 못하는 한 세 큐빗양자상태 정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해당 데이터를 정확하게 해석할 수가 없는 것이죠.
이는 곧 특별한 암호화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통신 보안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학계에서 30년간 미해결 문제였던 세 큐빗양자상태 구별 문제를 해결한 연구팀은 이후로도 양자세계의 비밀을 풀기 위한 여러 연구들을 진행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특허 등록을 완료하며 국내 양자정보, 인공지능 분야를 선도하는 연구팀으로 입지를 다져 가고 있다.
특히 지난 8월에는 남궁민 박사와 함께 수행한 양자상태 구별의 미해결 문제 이해를 위한 최적 측정 전략연구가 ‘복수개의 결맞음 상태를 이용한 양자 통신 방법 및 이를 위한 전자 장치’라는 명칭으로 특허 등록(등록번호 10-2289632)을 마쳤다.
그동안 결맞음 상태(Coherent states)는 양자통신이나 양자암호에서 가장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는 양자상태 중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결맞음 상태를 이용한 연속적 상태 구분은 제안되고 있지 않았다. 전기적 피드백과 외부 시스템과의 상호작용을 이용하는 최소 오류 구분 기술이 제시된 바 있으나 그로 인한 복잡성의 증가로 인해 실제 구현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선형 광학 장치에 기반을 두고 결맞음 상태를 이용해 연속적인 상태 구분을 수행하는 장치 및 그 방법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어 왔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송신장치로부터 3개 이상의 결맞음 상태 종류 중 하나를 수신하는 단계, 수신한 결맞음 상태를 특정한 구조를 가지는 양자와 상호작용 시키는 단계, 상호작용 시킨 양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단계 및 양자상태에 기반해 양자통신을 수행하는 단계를 포함하는 양자통신 수행 방법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송신장치에서 세 종류 이상의 결맞음 상태를 전송한다고 하더라도 수신장치에서 송신장치가 전송한 결맞음 상태 종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양자통신을 통한 데이터 통신량을 증가시킬 수 있게 된다.
이 밖에도 ‘네 양자상태 처리 장치 및 방법’, ‘양자상태 구별 방법’, ‘결맞음 상태의 연속적 상태 구분 장치 및 그 방법’ 등 다수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자율 중심의 능동적 교육을 실현하다
연구란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세상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끝없이 인내를 시험받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의 연구일 경우 불모지에서 꽃을 피우는 일만큼 어렵고 감수할 부분이 많다.
권 교수가 과학계에서 인정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줄곧 연구를 수행해 온 양자정보, 양자컴퓨터 분야의 경우 국내에서 연구하고 있는 연구자들이 많지 않은 분야다. 과감한 도전정신과 특유의 뚝심으로 포기하지 않고 연구를 지속한 결과 양자통신, 양자컴퓨터, 양자암호 개발에 대한 열기가 더해지는 지금, 그동안 일궈 온 성과들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더욱 고무적인 점은 차근차근 연구성과를 쌓으며 발전 시켜 나가는 동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구자 중 하나로 꼽히는 KAIST의 배준우 교수를 비롯해 하 박사, 남 박사 등 동료 연구자로 성장한 제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외에도 연구실을 거친 학생, 연구원들의 대다수가 교수, 해외 유명 연구소 연구원, 대기업 연구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제자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자율과 도전을 중시하는 연구실 문화에 스스로의 노력과 의지가 더해진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저는 토픽을 주며 방향성을 함께 의논할 뿐 연구원, 학생들의 자율적인 연구 수행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연구를 단순히 의무로만 생각하고 수동적으로 수행한다면 결코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둘 수 없습니다. 호기심이 생기고 하고 싶은 주제가 생기면 스스로 연구를 진행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교육자로서의 제 역할인 것이죠.
능동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다 보면 설령 연구가 실패로 끝날지라도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 교수는 큰 그림을 그려주되 연구원들이 각자의 능력과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장을 열어두고, 의견교환을 통해 스스로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돕는다. 이를 위해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세미나를 열어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개개인의 연구 역량과 도전 의지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제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자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동시에 연구자로서도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먼저 특정 양자상태를 더욱 일반화할 경우에도 얽힘 없는 비국소성 현상이 등장하는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양자세계에서만 생기는 특별한 현상들과 고전적 확률과의 상관성을 보다 심도 있게 연구할 예정이다. 아울러 양자컴퓨터 연구에 보다 집중해 쓸모 있는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양자물리 기술 개발에 많은 나라가 연구에 대한 지원을 이어가며 주목하고 있는 시점인 만큼 권 교수의 ‘우직한 도전’이 다시 한번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한국의 국력을 높이는 열쇠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취재기자 / 안유정(reporter1@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1년 11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