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정보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 속 ‘디옥시리보핵산’(DNA)에 담겨 있다. 세포의 핵 속에는 세포가 분열할 때 유전 물질을 전달하는 23쌍의 염색체가 존재하는데 이 염색체 속 DNA에는 한 사람의 유전 정보가 모두 기록되어 있다. DNA는 아데닌(A)·티민(T)·구아닌(G)·시토신(C) 등 4개의 염기 복합화합물로 구성되어 있어 인간의 몸이라는 설계도를 구성하고 있다.
처음 과학자들이 유전자 지도를 완성했을 때 많은 이들이 유전자를 검사해 유전병에 해당하는 잘못된 염기서열을 바로잡고, 생로병사의 비밀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DNA를 다루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DNA의 비밀을 풀기 위한 연구자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한양대학교 배상수 교수 역시 현재 가장 뜨겁게 관심을 받고 있는 유전자 교정 기술 중 하나인 염기교정 유전자가위(Base Editor) 연구를 통해 DNA 염기서열 변형 및 교정을 연구하고 있다.
물리학 전공 배상수 교수, 생화학으로 전공 변경하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이중나선의 DNA 분자 구조를 처음으로 밝혔다. 크릭과 왓슨은 DNA를 이루고 있는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 등 4가지 염기가 쌍을 이뤄 결합한다는 데 착안, 두 가닥의 DNA가 염기쌍을 중심으로 나선형으로 꼬여 있다는 획기적인 모델을 생각해냈으며, 4가지 염기가 결합해 유전정보를 전달한다는 점도 알아냈다.
과학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발견을 이루어 낸 생물학자 왓슨과 물리학자 크릭의 공동연구는 물리학을 전공하던 배 박사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왓슨과 크릭의 연구 케이스를 보며 “물리학을 전공해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겠구나, 특히, 생물학에 큰 기여를 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배 교수가 이 같은 생각을 했던 당시는 유전자가위 기술 분야가 막 시작되던 때로 배 교수는 유전자가위 분야에 엄청난 매력을 느끼고 생화학으로 전공을 변경했다. 이후 현재까지 관련 분야의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학계 최초, 아데닌 염기교정 유전자가위의 오류를 발견하다
우리가 아는 모든 생명체는 DNA로 이루어져 있다. 동물과 식물은 물론,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이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것’은 모두 DNA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DNA의 변이는 이러한 DNA의 서열이 바뀐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의 경우, 약 30억 쌍의 DNA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질병에 걸렸을 때 혹은 식물이 비타민을 더욱 많이 합성하게 하고 싶을 때 DNA의 일부를 변형·교정한다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 DNA 하나만 바꾸면 되니 쉬운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이루어진 적이 없다.
사슬처럼 얽혀 있는 수많은 DNA 중 단 하나만 골라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유전자가위 기술은 한 가닥의 DNA 이중나선을 자를 수 있는 기술이다. 이 중 배 교수가 연구 중인 염기교정 유전자가위는 미국 하버드대학의 리우 교수팀에 의해 처음으로 개발되었다. 리우 교수팀은 2016년 시토신 염기교정 유전자가위(CBE)를 개발한데 이어, 2017년 아데닌 염기교정 유전자가위(ABE)를 연달아 개발하였다.
자연계에서는 DNA를 기질로 하는 아데닌 탈아미노효소(Adenosine deaminase)가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에, 리우 교수팀은 운반 RNA(transfer RNA)에 작용하는 RNA 아데닌 탈아미노효소를 인공적으로 진화시켜서 지금의 DNA 아데닌 염기교정 유전자가위를 만들게 되었다.
아데닌 염기교정 유전자가위는 가이드 RNA(표적 DNA를 인식하는 유전물질)를 기반으로 DNA 이중나선을 절단하지 않으면서도 특정 아데닌 염기 하나만을 바꿀 수 있어 보다 정교한 기술로 평가받는 만큼 유전자 연구 및 실험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다만, 이러한 기술의 정확도와 문제점에 대한 것을 밝혀진 바가 없었다.
지난 2017년부터 아데닌 염기교정 유전자가위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던 배 교수팀은 2019년 아데닌 염기교정 유전자가위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문제점을 발견했다. 특정 DNA 타깃에서 아데닌 염기교정 유전자가위가 아데닌 이외에 시토신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배 교수는 연구를 통해 시토신 염기치환이 시토신 주변의 염기서열에 영향을 받아 시토신의 5‘에 티민이 존재할 경우에 높은 효율로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시토신 염기교정의 범위가 기존의 염기교정 유전자가위보다 좁은 범위 내에서 일어난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냈다.
시토신 염기교정이 세포 내 환경이 아닌, 시험관 내에서도 발생한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이러한 현상이 세포 내 다른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아데닌 염기교정 유전자가위 본연의 활성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도 입증했다.
배 교수 연구팀은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단장 김진수)과 공동 연구를 통해 염기교정 유전자가위의 문제점을 최초로 찾아내 2019년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Nature Biotechnology) 10월호에 게재했다.
이 연구는 염기교정 유전자가위의 특성을 더 이해하는 도움을 줬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특정 조건에서 염기교정 유전자가위가 아데닌이 아닌 사이토신을 교정한다는 사실이 발견됨으로써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나 사이토신 이외의 유전체 교체나 사이토신을 교정하는 유전자가위로의 용도 전환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될 수 있게 됐다.
부작용 줄이고 치환을 최소화한 염기교정 유전자가위를 개발하다
2021년 염기교정 유전자 가위의 오류를 발견해 낸 배 교수는 지속되는 연구를 통해 또 하나의 성과를 거둔다.
바로 자신이 찾아낸 염기교정 유전자가위의 오류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배 교수와 고려대 생명과학부 우재성 교수 공동연구팀은 연구를 통해 다른 미생물 종에 있는 아데노신 탈아미노화효소들의 서열 및 구조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타겟 DNA 염기들과 결합할 수 있는 주요 아미노산들을 찾아냈고, 이들의 변이체를 아데닌 염기교정 유전자가위에 도입했다.
이어 연구팀은 30여 개의 유전자가위를 제작한 뒤, 기존 교정 효율은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로 부작용은 현저히 줄어든 유전자가위를 추려냈다.
그 결과 높은 교정 효율은 높이고, 부작용은 현저히 줄어든 초정밀 아데닌 염기교정 유전자가위 ‘ABE8eWQ’ 개발에 성공했다.
또한 앞서 발견했던 아데닌 유전자가위의 부작용을 활용해 주변에 시토신 염기가 많더라도 목표로 한 시토신만을 치환할 수 있는 초정밀 시토신 염기교정 도구 개발도 연구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기존 아데닌 염기교정 유전자가위의 원래 기능인 아데닌 치환은 최소화하고, 시토신 치환 능력을 극대화한 초정밀 시토신 염기교정 유전자가위 ‘ABE-P48R’과 ‘ABE-P48R-UGI’를 개발했다.
이렇게 개발된 유전자가위는 기존 시토신 염기교정 유전자가위와 달리 티민 서열 바로 다음에 존재하는 시토신만을 목표로 정확하게 작용했다.
배 교수, 우 교수팀은 현재 이 연구에 관한 특허출원을 완료했다.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해당 연구는 올해 7월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
배 교수는 새롭게 개발한 초정밀 유전자 염기교정 기술이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물론 식물과 동물에 적용하는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유전자 염기교정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기관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배 교수는 간 질환과 암 질환 및 피부 질환 치료에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기도 했다.
배 교수는 “새로 개발된 염기교정 도구들은 기존의 유전자가위들보다 안전성ㆍ특이성이 높아 향후 다양한 유전질환 등에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연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은 우연히 발견한 현상에 대해 꾸준히 파고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처음 염기교정 기술에 관해 연구를 시작할 때, 함께 연구하는 학생이 A가 C로 바뀐다는 결과를 가져왔어요, ‘이런 결과가 나올 리 없다, 혹시 실수한 게 아니냐’고 의문을 가졌는데, 포기하지 않고 그러한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밝혔어요.
우리의 기대와 다른 데이터가 나타났을 때 그냥 넘어가지 않고 그 이유를 찾은 것이 연구를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입니다.”
배 교수는 연구 중 원하는 부분, 도움받을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주변의 공동 연구팀을 찾아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얘기 한 것도 연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유전자가위 플랫폼을 만들다
앞으로 배 교수는 세 가지 방향으로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유전자가위 툴을 더욱 발전시키고, 지금껏 누구도 개발하지 않은 새로운 유전자가위 도구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임상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는 툴을 개발함으로써 유전자의 많은 영역을 교정하고, 인류의 삶과 건강에 도움을 주는 연구를 계획 중이다.
마지막은 실험 프로토콜 및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을 개발하여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유전자가위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이미 배 교수가 운영하고 있는 유전자가위 웹사이트를 이용하면 누구나 쉽게 크리스퍼 유전자가 타깃을 디자인하고 분석할 수 있다. 현재 웹사이트는 전 세계 130여 개국에서 총 200만 회 이상, 하루 평균 280여 명의 연구자들이 사용하고 있다.
이용자 현황을 살펴보면 중국과 미국이 50% 정도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어 한국에서도 사용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전자가위 분야에 대한 연구가 치열하다. 이미 반도체만큼이나 중요한 연구 분야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이 기술을 더 발전시키고 우리의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배 교수는 “나는 칼을 만드는 사람이에요. 큰 칼이던 작은 칼이던 이 칼을 정교하게 잘 만들어 요리사에게 가져다주면 한식, 중식, 일식 등 다양하게 활용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 칼이 되는 원천기술 개발을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예정입니다.”라고 말하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취재기자 / 박아영(reporter3@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1년 8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