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 흑색종은 햇빛에 노출되어 발생하는 대표적인 피부암으로, 전이에 따른 사망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미국의 경우 한 해 200만 명의 환자가 신규 발생할 정도로 발병률도 높아,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만, 그 발병기전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가톨릭대학교 약학대학 조용연 교수 연구팀에 의해 베일에 싸여있던 피부 흑색종 발병의 실마리가 풀렸다.
연구팀은 STAT2 단백질*이 많아질수록 흑색종 세포주의 증식 속도가 빨라지는 것에 주목하고, 이를 토대로 STAT2의 분해를 조절하는 단백질 FBXW7을 도출, 피부암 조직에서의 상관관계를 밝혀냈다. 이는 STAT2의 안정성 조절이 피부 흑색종 발병의 원인임을 규명한 것으로, 치료제 개발을 위한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STAT 단백질: 시토키닌, 호르몬, 증식인자 등의 세포내 신호전달에 관여하는 SH3/SH2구조가 있는 전사인자. 각종 배위자가 수용체에 결합하면 JAK에 의해 C말단의 티로신잔기가 인산화를 받고, 그 후 SH2영역을 개재하며 2합체를 형성하며, 세포질로부터 핵으로 이행한다.
현재 STAT1에서 6까지의 6개의 패밀리멤버를 복제하고 있다.
STAT2 분해 조절하는 단백질 FBXW7 규명
사회구조가 노령사회로 진입하고, 여가활동의 증가로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흑색종을 포함해 피부암의 발생이 증가하는 추세다. 향후 발병률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 또한 막대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지만, 정확한 발병기전이 밝혀지지 않아 피부암 치료를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자외선은 우리 환경에 가장 풍부하게 존재하는 발암의 외부 환경인자로 피부 흑색종을 포함해 피부암 발생이 주원인입니다. 자외선에 의한 피부암 발생은 국내에서는 비교적 적게 발생하는 편이지만, 미국 및 유럽에서는 가장 빈번하게 출현하는 암종이죠. 그 예후 또한 좋지 않아 치료제 개발을 위해 꾸준히 연구가 진행되어 왔지만 적절한 치료제가 없는 실정입니다.”
종전까지는 자외선에 의한 피부암 발생의 기전으로 유전자 손상에 따른 돌연변이와 손상된 유전자의 복구 시스템 이상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하지만 다양한 유전자를 대상으로 특이적 유전자 손상을 확증할 수 없고, 손상된 유전자 복구 시스템 역시 특정 유전자를 대상으로 지목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원인 단백질과 분자기전을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조용연 교수 연구팀은 흑색종을 포함해 ‘모든 세포가 보여주는 표현형은 단백질의 양적 조절에 의해 보여진다’는 가설을 전제로 접근했다. 단백질의 양적 조절 기전으로 단백질 안전성 조절인자와 표적 단백질을 동정하는 것에서 출발해 단백질 안정성 조절 기전과 인체 생리학적 연관성을 찾아내는 데에 목표를 두었다.
이러한 방향 설정은 연구책임자인 조용연 교수가 그동안 수행해 온 연구에 기반해 이루어졌다. 조용연 교수는 미국에서 박사후 연구원과 연구조교수를 역임하는 동안 암 유발원인 자외선과 피부암 발생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고, 자외선에 의해 유도되는 단백질 인산화에 의한 활성조절, 피부암 발생과의 상관관계 관련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2011년 가톨릭대학교 약학대학에 부임한 이후에는 그동안 진행해 온 연구를 더욱 발전 시켜 자외선에 의한 피부암 발생과 관련된 단백질 안정성 조절기전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고, 이 과정에서 STAT2라는 단백질이 피부 흑색종 발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연구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피부암 조직에서 단백질 간 상관관계 확인
연구팀은 먼저 STAT2 단백질이 많아질수록 흑색종 세포주의 증식속도가 빨라지는 것에 주목하고 이를 기반으로 STAT2를 분해하여 세포 내 STAT2의 농도를 조절하는 단백질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유전자원을 활용한 스크리닝 작업을 통해 STAT2의 안정성을 조절하는 단백질 FBXW7을 도출해내는 데에 성공했다.
흑색종 조직과 정상조직에서 각각 STAT2가 많으면 FBXW7이 적고 STAT2가 적으면 FBXW7이 많은 서로 반대 관계에 있음을 알아낸 것이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스크리닝 시스템 확립과 유전자원의 확보였습니다. 21 센추리 유전자원센터, 애드진 등에서 유전자원을 확보해 현재 F-box 단백질 안정성 조절인자 69종 중 35종을 확보했고, 유전자 전사인자 30종 및 인산화효소 540종도 확보한 상태입니다. 이 유전자원을 이용한 스크리닝을 통해 FBXW7과 STAT2의 상호작용을 규명할 수 있었습니다.”
상호작용을 확인한 후에는 단백질 구조 예측을 통한 상호작용 아미노산 감별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논문에 발표된 것 이상의 많은 돌연변이체가 구축되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상호작용 영역을 동정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사실 단백질 구조 예측의 가지 수가 2,000가지가 넘는 만큼 이 가운데 가장 적절한 구조를 찾아내는 데에 많은 시간과 인력, 비용이 소요되었지만, 연구팀은 포기하지 않고, 끈기와 집중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해냈다.
단백질 구조 예측 프로그램을 위해 조용연 교수가 사비를 들이면서까지 연구를 이끌었던 것도 주효했다. 세포 내에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단백질은 제각각 고유한 수명을 가지고 있어 제 역할을 수행한 후에는 분해된다. 단백질 FBXW7은 이 과정에서 분해할 단백질을 선별하는 선별기 역할을 하는 단백질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번 연구를 통해 이 단백질과 STAT2의 상호작용이 자외선에 의한 흑색종 발생 과정에서 관여하고 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실제 흑색종 암조직을 포함하는 사람 피부암 조직 어레이(Array) 및 기능 분석 결과 70여 명의 사람 피부암 조직에서 단백질 FBXW7의 감소와 STAT2 단백질의 현격한 증가를 확인했고, STAT2 단백질의 증감에 따라 흑색종 암세포의 증식과 억제가 자외선 노출량에 의해 조절된다는 점을 규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성과를 토대로 단백질의 안정성을 조절하는 단백질 60여 종에 대한 표적 단백질을 규명하는 연구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번 연구에서 표적으로 한 STAT2 단백질은 여러 암종에서 발현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STAT2 단백질의 안정성을 조절하는 FBXW7 또한 사람의 여러 암종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있음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암종에 적용이 가능해 확장성이 크고, 면역계 조절 기전에 적용함으로써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외부 인자의 침입에 관여하는 면역작용 조절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기초연구실지원사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등의 지원으로 수행되었으며, 미국립과학원회보 ‘피엔에이에스(PNAS)’에 2020년 1월 7일 게재되었다.
단백질 간 상호작용체 연구로 암 정복에 나서다
의료기술과 생명과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여전히 암은 인류가 풀어야 할 난제로 남아 있다. 암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기에 부족하고, 외부 자극에 의해 세포 속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신호전달 방법을 충분히 해독,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암 정복을 향한 도전의 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암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새로운 연구들이 모이고, 모여진 연구 결과가 통합되어 새로운 방향의 연구를 만들어 나간다면 보다 빠르게 암 정복이라는 목표점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용연 교수는 언젠가 반드시 암을 정복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매일 ‘암을 역사 속에 묻기 위해 어떠한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 해답을 단백질 간 상호작용체 및 신호전달 네트워크에서 찾고자 전력을 쏟아 왔다.
외부 반응에 의해 세포 속에서 신호가 전달될 때 단백질과 단백질이 서로 접촉을 통해 활성 신호를 전달하는데, 이 방식에 의해 이루어지는 신호전달은 외부 자극의 종류, 세기 등에 따라 각각 달라진다. 그 결과 세포 속에서 단백질과 단백질의 접촉을 위한 Complex 형성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피부가 자외선에 노출되었을 경우 피부 세포는 자외선의 양, 그날의 날씨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반응한다. 이 반응은 세포 내에 있는 단백질과 단백질의 접촉이 달라진 결과로 다른 신호전달계를 사용해 반응이 다르게 나오게 하는 것이다. 자외선의 종류에 따라 세포가 다르게 반응하는 것도 이와 동일한 기전으로 설명 가능하다.
또한, 항암제를 이용한 암 치료과정에서 암세포가 항암제에 반응하는 원리도 동일하다.
문제는 항암제를 암세포에 투여하면 암세포는 항암제로부터 암세포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을 발동해 항암제 내성을 발현하는 신호전달계가 발동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호전달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단백질 간 상호작용체에 의한 신호전달 네트워크가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해서는 아주 일부만 이해하고 있다.
“암세포의 발생 및 항암제 내성에 관한 분자기전을 통해 암세포 속에서 특이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단백질 간 상호작용체를 발굴하고, 이를 이용해 신호전달 네트워크를 규명한다면 암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 약품 생화학연구실에서는 분자생물학, 유전공학을 기반으로 단백질 간 상호작용 및 신호전달 네트워크 연구를 수행해 다양한 외부 환경과 성장인자의 자극에 의해 암 발생에 관여하는 신호전달축의 기능을 규명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표적 단백질을 대상으로 천연물 또는 합성화합물을 이용한 활성제를 통해 항암제 개발에 대한 가능성을 검증하는 연구도 수행 중입니다.”
이처럼 조용연 교수는 약품생화학연구실을 이끌며, 단백질 간 상호작용체 및 신호전달 네트워크 연구에 집중해 왔다. 그 결과 이번 흑색종 발병에 관여하는 단백질의 안정성 조절기전을 규명하는 데에 성공했고, 앞서 임팩트 팩터가 높은 수많은 논문들을 발표하며 관련 분야의 석학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뿐 아니라 Sox2** 를 유효성분으로 함유하는 대장암 예방 또는 치료용 약학조성물 키다마이신 유도체 L1-95-1 및 이를 유효성분으로 함유하는 암 예방 또는 치료용 조성물 키다마이신을 유효성분으로 함유하는 삼중음성 유방암 예방 또는 치료용 조성물 등 특허의 주발명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Sox2: Sex determining region Y-box 2를 약어로 쓰는 용어.
Sox2는 유전자전사조절인자로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iPS cell)을 만들때 사용되어 그 기능이 줄기세포에서 줄기세포능 조절에 깊게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암세포는 일반 세포와 달리 세포분열 후에도 영원히 사멸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세포에서는 갖고 있지 않은 줄기세포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 많은 암세포의 암세포 줄기세포능 조절에 관여한다는 논문이 발표되어 왔다.
조용연 교수가 일본에서 박사학위 과정 동안 줄기세포를 이용한 실험을 진행하여, 2007년 미국에서 연구조교수로 일하는 동안 관련연구를 진행하다가 대장암세포에 Sox2를 과발현하면 대장암세포의 노화를 유도하는 현상을 발현하였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서 이 연구를 진행하여 마무리 하였고 특허를 확보하였다. 하지만 아직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의료용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연구를 성공으로 이끄는 ‘소통’의 힘
조용연 교수가 주도하는 연구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며, 눈에 띄는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연구팀 구성원 간 소통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그만의 연구철학이 토대가 되었다.
“우리 연구팀의 가장 큰 특징은 대화가 굉장히 많다는 점입니다.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 중 시시때때로 연구원들과 같이 대화를 나누고 실험 결과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있죠. 연구가 긍정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원활한 소통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교수와 연구원 사이에 존재하는 담의 높이를 낮추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연구원들이 어떠한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통과 함께 조용연 교수가 강조하는 부분은 다양성이다. 우리가 즐겨 올라가는 산에는 흙도 있지만 단단한 바위도 있고, 몸에 좋은 황토가 있으며, 물 빠짐을 좋게 하는 모래흙도 함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한 곳에 모여 있어야만 비로소 많은 사람을 품에 안을 수 있는 우뚝한 산으로서 그 몫을 다할 수 있는 법이다.
조용연 교수가 말하는 다양성도 이와 같다. 사람을 품에 안을 수 있는 산에는 흙과 나무, 바위, 샘물 등이 골고루 있어야 하듯이 연구팀도 다양한 능력의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이런 다양성을 존중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논문 한 편을 냈을 때 그 안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연구원 개개인의 노력이 담겨 완성될 수 있었던 만큼 주 저자 뿐 아니라 연구원 모두가 중요한 저자로, 각각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협력과 소통, 존중과 배려는 조용연 교수 연구팀만의 중요한 연구 코드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람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는 연구팀 특유의 분위기는 위기가 다가왔을 때 진가를 발휘했다.
“처음에 STAT2가 흑색종에 관련되어 있다는 단서를 얻었을 때 흥분했었고, 그 안정성 조절인자로 FBXW7이 동정 되었을 때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새로운 결합이 발견되었고, 연구실 칠판에 가득 아미노산 서열을 적어 놓고 분석하면서 희열을 느꼈죠.
하지만 연구가 막바지로 접어들던 어느 날 우리 연구팀에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연구책임자인 제가 2018년 9월 위암 3기말 판정을 받았던 것이죠. 갑작스러운 암 판정과 수술 그리고 항암과정은 연구책임을 맡고 있는 저에게 큰 고통이었고, 심한 구토로 먹는 것조차 힘든 나날이 계속되었지만, 연구는 계속되어야 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연구팀은 더욱 뭉쳐졌고, 병실과 실험실을 왕래하며 이메일로 토의를 이어갔습니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었지만, 연구팀의 배려와 헌신 덕분에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를 위해 마음을 모아 준 연구원 모두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조용연 교수는 여전히 암세포와 싸우고 있는 중이지만, 암 정복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무엇보다 단백질 안정성 조절인자로 알려진 F-box 단백질 69종에 대한 표적분자를 동정하는 Stabiliome 연구를 진행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세포 내에서 단백질의 안정성 조절 지도를 만들어 기전을 규명하면 질병에 따른 단백질의 기능 지도를 더욱 세밀히 만들 수 있고, 병리/병태에 가능한 단백질 양적 조절 기전을 적용해 더욱 선택적, 효과적인 치료제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Protein stabiliome 연구센터를 계획 중에 있다.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며, 오랜 시간 끈질긴 근성과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온 조용연 교수. 암 환자들에게 새 희망을 선물한 그는 오늘도 여전히 암 정복이라는 정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오르고 있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0년 3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