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연구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연구자
연세대학교 지구시스템과학과 이용재 교수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귀함과 건강을 지켜준다는 영원불멸의 상징 다이아몬드. 고대 인도인들에게는 다이아몬드 원석이 무적의 상징물로 인식되기도 했는데 그래서 왕족과 특권층들이 원석을 많이 갖고 있으면 강하고 부유한 나라로 알려지기도 했다. 당시 평민들이 다이아몬드를 소유할 수 없다는 법이 만들어진 것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며 고대인들은 다이아몬드를 하늘에서 내리는 비나 구름, 아침이슬에 의해 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믿어 정령화, 신격화 시켰다. 그리스어 아다마스(Adamas)에서 유래된 다이아몬드는 ‘정복되지 않는다.’는 뜻을 갖고 있다.
자연에 숨어있는 과학은 아직 알려지고 학문화 된 것보다 그렇지 못한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다. 고압나노과학을 연구하는 이용재 교수는 대기압의 만 배에서 부피가 팽창하는 나노물질을 발견했는데 이때 다이아몬드를 이용한 고압장치를 사용했다. ‘정복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다이아몬드를 갖고 ‘정복되지 않은’ 분야를 정복하는 연구자 이용재 교수를 만나보았다.
Q. 고압나노과학 연구를 시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A. 고압나노과학은 고압의 환경에서 나노재료의 특성을 연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나노재료를 연구하면서 고압에서 일어나는 구조변화나 물성변화, 고압에서만 일어나는 화학적 반응의 특성을 찾아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단순히 나노과학과 고압과학을 묶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된 것만은 아니고, 미국에서 연구를 하던 중 나노물질의 한 종류인 제올라이트가 특정압력에서 결정구조와 화학조성이 흥미롭게 변화되는 것을 실험도중 관찰한 것을 계기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연구의 재료로는 합성 제올라이트나 미네랄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 물질들은 광물물리를 비롯한 고압연구의 소재로 빈번하게 사용되는 물질이 아니었습니다. 박사과정에서는 온도나 조성변화에 따른 제올라이트의 구조변화에 대한 주제로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상압에서의 실험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현상들을 많이 관찰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압력을 가하면 이러한 상압에서의 현상들이 어떻게 변화될 지 호기심이 생겼고, 고압실험을 통해 매우 특이한 현상의 발견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다이아몬드 엔빌셀(Diamond anvil cell)이라는 고압장치를 이용하여 진행되는 실험에는 모든 방향에서 압력을 작용시키도록 하기 위해 물(혹은 다른 액체)을 한 방울 떨어뜨려서 압력을 가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상식적으로 물질에 압력을 가하면 부피가 줄어들기 마련이지만, 이 실험 결과에서는 어느 정도 압력이 가해지면 2~3%정도 부피가 팽창하였다가 다시 수축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7%정도 팽창했다가 다시 수축했지만 그 줄어든 양이 실험 전 상압의 상태보다 부피가 증가한 것으로 관찰되었습니다. 또 압력을 가한 후에 부피가 팽창했다가 상압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팽창한 부피가 유지되는 흥미로운 결과도 나왔습니다. 첫 실험 당시 어드바이져가 “실험이 잘못된 것 아니냐”며 다시 해보자고 하셨고 계속 해봐도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실험데이터를 바탕으로 원인을 분석 해보니 제올라이트 격자구조가 압력에 의해 열리면서 나노사이즈의 빈 공간에 물 분자들이 추가로 흡착된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관련 연구를 지속하게 되었고, 현재는 새로운 기술로 개발할 수 있을지 계속 구상과 실험을 진행중에 있습니다.
Q. 고압나노연구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고압나노과학은 국내에서도 생소하지만 사실 국제적으로도 흔한 분야는 아닙니다. 기술적으로는 나노과학의 한 분야라 생각하셔도 되고 마찬가지로 고압과학의 한 분야라 보실 수 도 있겠습니다. 국내에서도 NT하면 잘 알려져 있고 고압을 사용하는 과학은 네이쳐나 사이언스 등 유명저널의 단골소재이기도 한데, 고압나노과학하면 두 분야 사이 일종의 틈새시장이라고 표현해도 될까요?
고압실험을 하려면 압력을 만들어야하는데 다이아몬드 앤빌셀 실험에서는 기본 압력단위가 다른 고압연구에서 사용되는 스케일과 다릅니다. 기본단위가 대기압의 천배인 kb(kilobar)이며, 광물물리에서 쓰이는 단위는 kb의 10배인 Gpa(Giga Pascal)을 사용합니다. 지구중심의 압력이 약 360Gpa 즉 대기압의 360만 배로 추정되는데, 다이아몬드 앤빌셀로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압력은 약 200Gpa정도로 지구핵과 맨틀의 경계부분인 하부맨틀정도에 해당하는 압력입니다.
다이아몬드 앤빌셀에서는 말그대로 압력을 발생시키기 위한 모루로써 지구상 가장 단단한 물질인 다이아몬드를 사용합니다. 일반적인 보석으로 사용되는 것과 같은 자연산 브릴리언트 컷의 다이아몬드 바닥에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면인 큘랫이 존재하는데 이 면에 시료를 놓고 같은 조건의 다이아몬드를 서로 정렬시켜 눌러주는 방식입니다. 압력은 작용시킨 힘에서 작용 받는 면적을 나누는 공식이 적용되기 때문에 압력을 높게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힘을 많이 주는 방법과 함께, 힘이 제한되었을 때는 면적을 줄이는 것이 압력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다이아몬드의 바닥면 큘랫의 면적이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압정의 뾰족한 팁의 면적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손가락으로 벽을 눌러도 구멍이 생기지 않지만 압정으로 누르면 구멍이 생기는 것과 같은 원리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를 사용한 고압장치는 아주 작은 면적에 시료가 올라가기 때문에 손가락으로만 눌러줘도 킬로바 단위의 압력이 발생합니다. 그것을 고압실험에 필요한 정도의 높은 압력을 만들 수 있게 하고 또한 정렬된 큘랫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이아몬드 주변에 단단한 금속으로 장치를 하고 스크류를 이용해서 균일하고 지속적인 힘이 작용하여 압력이 가해지게 합니다. 이 장치가 다이아몬드 엔빌셀(Diamond anvil cell)입니다. 이 실험에서는 다이아몬드가 균일하게 정렬이 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어긋나있으면 깨지기도 합니다.
Q. 연구하시면서 기억나는 순간이 있었다면
A. 저희 연구실의 고압연구에는 4대 보석 중 3가지의 보석이 사용됩니다. 고압을 발생시키는 모루로써 사용되는 다이아몬드가 그 첫 번째이고, 발생된 압력을 측정하기 위하여 작은 크기의 루비입자도 필요합니다. 또한 비교적 낮은 정도의 가스압력이 필요할 때 이를 유지시키는 챔버로써 사파이어 튜브가 사용되기도 합니다. 아무리 단단한 다이아몬드라 할지라도 서로 부딪치면 깨지게 되고 높은 온도가 가해지면 타버리기도 합니다. 루비나 사파이어 튜브 또한 단순한 소모성 실험재료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다이아몬드 고압실험이 잘 알려지지 않은 관계로 국가에서 주는 연구비로 다이아몬드나 루비, 사파이어를 구입한다고 할 때 연구처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우가 흔히 있고 사용용도를 잘 설명해야합니다.
일전에는 연구실 대학원생이 다이아몬드 고압기를 정렬시키는 과정에서 다이아몬드가 깨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학생은 손을 부르르 떨며 눈물까지 머금고 보고를 위해 달려왔고 저는 놀란 학생을 진정시키며 말했습니다.
“다이아몬드 보기를 돌같이 하자. 다만 우리의 연구결과를 다이아몬드와 같이 하자.”
대학교 4학년 때 아르바이트생으로 연구에 참여하기 시작한 그 학생은 지금 대학원생이 되어 함께 연구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미국에도 함께 방문해 고압실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Q. 연구팀을 이끌며 연구원들에게 강조하는 원칙이 있다면
A. 학생과 교수의 입장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간의 신뢰입니다. 교수 혼자 실험해서 논문을 쓰고 분석하지 않습니다. 기획할 때부터 학생과 함께하고 실험도 같이 진행하고 각자 담당한 파트가 서로 맞물려서 최종결과까지 진행됩니다. 하지만 신뢰가 손상되면 위와 같은 연구를 진행하는데 상당한 손실이 생기기 때문에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종종 성과만을 중시하는 팀의 안타까운 경우도 접하곤 하는데 사람사이의 기본적인 것을 간과한 결과라 생각됩니다. 실험 도중에 다이아몬드가 깨지는 것은 상관없지만 다이아몬드가 깨진 이유는 정확히 사실대로 설명되어야 합니다.
Q. 연구하시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A. 국내에서는 실험을 하기 위해서 포항가속기연구소를 방문합니다. 다이아몬드 엔빌셀은 사전에 준비하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되지만, 사용되는 가속기의 빔라인은 다목적으로 사용되는 공동시설이기 때문에 실험 전 특별한 세팅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고압관련 연구가 국내에선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까닭도 있기 때문에 항시적으로 고압실험 셋팅이 갖추어져 있는 전용 빔라인은 아직 기대하기 힘듭니다.
또한 빔타임을 배정받기 위해서 사전 신청을 해야 하는데 계획서를 쓰고 실제 실험을 하기까지는 몇 달의 기간이 걸립니다. 그 사이에 실험내용이 변할 수도 있고 다른 흥미로운 내용이 생기기도 하는데, 기술적으로는 제한된 시간에 계획된 연구만 해야 하는 점이 가끔은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일 년에 최대 3차례 한 차례 당 2~3일 정도 빔라인 실험을 할 때 새로운 나노과학과 응용과학을 다양하게 시도해봐야 하는데, 짧은 기간 동안 계획된 실험만을 수행하는 것도 충분치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동안은 방학 때 마다 미국에서 근무하던 실험실을 방문하였는데 그곳의 장점은 연구자가 원하고 내용이 적합할 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실험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다양하게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번 방문하면 보름에서 한 달 정도 실험을 하고 돌아오는데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으니 하고 싶은 실험을 충분히 하면서 가능성 있는 부분을 찾아서 돌아오곤 합니다.
Q.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A. 지구시스템과학과에 여러 교수님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 앞 휘트니스 센터에 다니면서 유산소운동과 간단한 근력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일 년을 비교적 꾸준히 운동하여 12Kg의 체중을 줄였습니다. 달리기를 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인데 달리기가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방학을 이용해 미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면 그곳에서도 조깅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매일 달리기를 하다 보니 생긴 좋은 습관인 것 같습니다.
Q. 2009년 한해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A. 우선은 정부과제의 지원을 받아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고압과 관련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포항에 고압실험 전용 빔라인이나 지질과학 전용 빔라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고압은 기본적인 열역학적 변수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저처럼 고압실험을 전문적으로 하는 그룹이 아니더라도 재료합성을 하시는 분들이나 화학, 물리, 혹은 생물을 하시는 분들이 가끔 해당 재료가 고압에서 독특한 성질을 나타낼 것으로 예측이나 계산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문고압실험연구단들 뿐이 아니라 여러 다른 분야의 연구를 하시는 분들도 원하실 때 쉽게 고압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게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특화된 빔라인 건설이 추진되려면 그것을 요구하는 사용자 기반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저 혼자 실험하겠다고 요청 할 수도 없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지금 환경에서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의미있는 실험결과 창출과 공동연구 구축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Q. 대한민국에서 고압나노연구를 꿈꾸는 후학들에게 지침이 될 말씀이 있다면
A. 서울과학고등학교의 학생들을 상대로 고압과학을 소개하고, 영재교육을 통해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지구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지구과학에 관심과 흥미가 있는 학생들이 비교적 많이 있는데 모두 전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도 과거를 돌이켜보면 지질학과로 입학하여 장래가 어렵다는 선입견에 휩싸여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공을 선택하고 연구를 지속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진로를 모두 계획해서 다 이뤄나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게 될 상황에서는 본인에게 주어진 환경에 흥미를 갖고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의 경우에는 어떤 분야는 우월하고 어떤 분야는 그렇지 못하다는 절대 우위가 없습니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최근에 어떤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뿐이지 어느 분야든지 스스로가 관심을 갖고 적응하여 흥미를 갖다보면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더불어 남들이 잘하지 않는 분야는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해당 연구가 성공했을 때는 누구보다도 강력한 경쟁력이 생깁니다. 이목을 끄는 저널이 아니더라도 좋은 연구가 소개된 사례도 많이 있기에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이용재 교수는 그동안 실험을 위해 하나둘 모으게 되었다는 자연산 미네랄들을 소개해주었다. 그중에는 제올라이트의 결정위에 칼슘카보네이트가 눈꽃처럼 피어난 것도 있었는데, 이 교수는 그 현상을 추측하면서 이산화탄소저감과 관련한 광물탄산화 실험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술의 개발은 새로운 현상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둠을 몰아내며 제2의 빛을 발명한 에디슨이 그러했고 라듐을 발견한 퀴리부인이 그러했다. 대기압의 만 배에서 부피가 팽창하는 제올라이트의 발견을 시작으로 앞으로 어떤 새로운 현상들이 고압나노과학을 통해 발견되고 미래의 기술개발로 이어지게 될 지 상상만으로도 기대되는 인터뷰였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09년 3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