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에 전도성 채널 만들어 고효율 LED를 구현하다
고려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김태근 교수
201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최초로 개발한 일본 과학자 3명이 선정됐다. 선정 위원회는 “20세기가 백열등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백열등 대비 전력소비량이 10분의 1 수준인 LED의 시대”라며 LED를 인류에게 엄청난 혜택을 가져다 준 기술로 평가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7월, 국내 연구진이 투명한 부도체에 전도성 채널을 만들어 고효율 LED를 구현했다는 소식이 화제를 모았다. 고려대학교 김태근 교수가 바로 그 화제의 주인공이다. 차세대 광원으로 각광받고 있는 LED의 효율 향상에 기술적 돌파구를 제공하며, 세계 속의 대한민국 LED 산업을 견인하고 있는 김태근 교수를 만나 보았다.
전기가 흐르는 유리
‘투명전극’은 광 투과성과 전도성이 있는 전극으로, ITO(Indium Tin Oxided)를 이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ITO 투명전극’은 LED, OLED 등 다양한 분야에 이용되고 있으며, 터치패널 제작의 필수요소다. 그러나 ITO 투명전극의 주성분인 ‘인듐’이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되며 매장량도 많지 않아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또 ITO 투명전극은 가시광선 영역은 통과시키지만 자외선 영역은 흡수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김태근 교수는 저항변화메모리(RRAM)의 온/오프 스위칭 메커니즘에 착안해 절연체지만 높은 투과도를 갖는 밴드갭이 큰 물질에 전기장을 인가해 전도성을 부여할 수 있다면 ITO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 교수가 주목한 대체물질은 ‘유리(SiO2)’다.
유리는 가시광선뿐만 아니라 자외선에 대해서도 높은 투과도를 보이지만 전류주입이 어려워 그동안 전극물질로 고려되지 않았다. 김 교수와 그가 이끄는 ‘차세대 반도체 연구실’은 전류가 흐르지 않는 유리 내부에 전도성 채널을 만드는 방식으로 투과도가 높은 유리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전류가 통할 수 있도록 한 ‘유리 투명전극’을 2013년에 개발했다.
유리 내부의 산소 또는 질소 결함을 제어해 전류가 흐를 수 있는 채널을 만든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이다. 전압차로 인해 투명전극의 주성분인 유리산화물 내부의 금속원소와 산소 또는 질소간의 결합이 끊어지면서 전도성 채널이 생기고, 이 채널을 통해 전하가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중견연구자지원사업으로 수행한 이 연구결과는 저명한 학술지 「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게재되는 등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유리의 주성분인 석영과 같이 매장량이 풍부하면서도 전기화학적으로 안정된 물질을 이용해서 가시영역을 넘어 자외선 영역에서까지 활용할 수 있는 투명전극을 처음으로 개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 연구팀은 2013년 개발된 유리 투명전극이 고체조명, 디스플레이 및 에너지 산업 등 광전소자의 투명전극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산업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적용하기 위한 후속연구에 돌입했다.
‘유리 투명전극’ 기술로 ‘고효율, 고출력 LED’ 구현
현대과학이 만든 새로운 빛 LED(Light Emitting Diode, 발광 다이오드)는 디스플레이 백라이트 유닛, 자동차, 신호등, 전광판 등 다양한 분야에 이용되고 있으며, 최근 일반조명으로 그 응용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LED는 백열등, 형광등과 비교해 가격은 비싸지만 에너지 효율이 높고 수명이 긴 친환경적인 광원이다. LED 해외시장의 규모는 2010년 11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지금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미국은 LED를 차세대 광원으로 2006년부터 육성하고 있고, 중국은 LED 조명 도시화를 추진 중이다. 유럽도 모든 광원을 LED로 교체 중에 있다.
이러한 차세대 조명용 광원 LED의 핵심요소는 고효율, 고출력이다. LED는 전기에너지를 빛 에너지로 전환하는 반도체 발광소재로, 에너지 효율이 높지만 고출력이 어렵고 발광효율 저하 및 발열 등의 기술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극을 수직구조로 배치한 ‘수직형 LED’에 대한 연구가 산학연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수직형 LED는 소자의 대면적화에 따른 효과적인 전류 주입 및 분산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수직형 LED는 전극이 n-GaN에 직접 접촉해 전류주입이 이뤄지므로 대면적화 할수록 균일한 발광분포와 높은 광출력 특성을 얻기 어렵고, 고전력 동작시 불균일한 전류분포로 인한 열 발생으로 광출력의 조기 포화나 소자의 수명 단축의 우려가 있었다.
n-GaN 위에 ITO, ZnO, 그래핀 등의 투명전극을 이용해 이러한 전류분산과 전류주입 효율을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있었지만, ITO는 상대적으로 큰 광흡수가 문제되었고 ZnO와 그래핀은 전기적 특성저하 문제로 사용이 제한되어 왔다.
김 교수의 연구팀은 저항변화메모리 소자의 구조가 LED 소자의 전극구조와 비슷한 점에 주목했다. 저항변화메모리 소자의 저항변화 물질은 액티브 물질로 외부 전기장을 인가해서 전류를 넣을 수도 있고 끊을 수도 있다. 이에 아이디어를 얻은 연구팀은 LED 소자에도 이런 절연물질을 넣고 같은 방식으로 전류가 흐를 수 있는 통로를 만들 수 있다면 충분히 투명전극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유리 투명전극을 LED에 실제로 적용할 수 있었다.
김 교수 연구팀은 n-GaN 층 위에 큰 밴드갭(5.6eV)으로 인해 높은 투과도를 갖는 질화규소(SiNx)를 박막하고 외부 전기장을 인가해 박막 내부에 전도성 필라멘트를 형성했다. 이를 통해 높은 투과도를 유지하면서 n-GaN와 오믹 접촉이 가능한 수직형 LED를 구현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투명전극의 투과도를 파장대 별로 살펴본 결과, 가시광 영역(97.7% @460 nm) 뿐 아니라 자외선 영역(92% @300 nm)에서도 높은 투과도를 보였고, 이 기술이 적용된 소자는 동작전압이 감소(0.5V)하고 광 출력이 향상(9%)됐다. 또 기존 금속전극과 비교해 균일한 전류 주입과 효과적인 전류분산으로 발광 세기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유리 투명전극을 고효율 LED에 적용한 첫 번째 사례입니다. 기존의 오믹형성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방식인 전도성 필라멘트 방식의 오믹형성 기술을 활용해 고효율, 고출력 특성의 수직형 LED 개발에 성공한 것이죠. 이 기술은 반도체 기판의 종류와 물성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고체 조명, 디스플레이 및 에너지 산업 등 다양한 광전소자에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 김 교수는 이번 연구가 고효율 조명용 광원 뿐 아니라 2017년 3억 달러 규모의 시장형성이 예상되는 자외선 LED 소자의 효율 향상에도 기여하게 되길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추진하는 중견연구자지원사업(도약)으로 수행된 이번 연구결과는 「Nature」 자매지인 「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되었다. 또한 해당사업 단계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인 S등급을 획득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영역의 연구를 하다 보니 남다른 고충이 있었을 터. 김 교수는 참조할 만한 레퍼런스가 없다는 것, 또 결과를 발표하더라도 학계의 의구심들을 처음부터 규명해나가야 나가야하는 점 등을 어려움으로 꼽았다.
“이 분야를 선도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크지만 성숙된 기술이 아니다 보니 연구 과정에서 실패가 많았습니다. 실패가 잦아지면 연구원들이 침체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고생하는 연구원들을 격려하고, 때론 강하게 이끌어야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융합 연구 통해 기술적 한계 극복
김 교수의 ‘차세대 반도체 연구실’은 큰 틀에서 반도체를 이용한 응용소자를 연구한다. 메모리소자와 광소자가 그 두 축이다. 김 교수는 두 분야의 기본 원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저항변화메모리소자 분야 기술을 투명전극에 적용하는 융합적 사고로 투명전극의 한계를 극복할 길을 찾았다.
“전 아이디어를 굉장히 소중히 여깁니다. 섣불리 이건 된다 안 된다 판단내리기 보다는 누구라도 의견을 내면 일단은 긍정적인 마인드로 받아들입니다. 긍정적인 자세는 문제를 푸는 하나의 강력한 솔루션입니다. 도전적인 자세 역시 중요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근본원인을 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뻔한 방식이 아닌 색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학문 간의 경계를 허무는 융합이 이뤄집니다. 그러나 너무 먼 학문 간의 융합보다는 관련 분야 내에서의 융합을 먼저 시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The First, The Best ‘차세대 반도체 연구실’
김태근 교수는 고려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은 국내 토종박사다. 그는 학위과정부터 반도체 나노구조를 적용한 전기, 광소자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박사과정 중 IEEE 주관의 전국학생 논문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삼성전자 주관 휴먼테크 논문대상 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졸업 후에는 미국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에서 포스트닥 과정을 거친 뒤 일본 최고 권위의 NEDO fellowship을 받아 국책연구기관인 Electrotechnical Laboratory에서 3년간 근무했다. 이후 김 교수는 삼성종합기술원, 광운대학교, 고려대학교에 재직하며 차세대 반도체 연구를 수행했다.
김 교수는 2004년부터 모교인 고려대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차세대 반도체 연구실’은 ‘The First, The Best’라는 모토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학교 선배이자 교수로서 학생들을 이끌고 있는 김 교수는 부족했던 학생들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저는 국내 토종박사입니다. 2004년 처음 부임했을 때는 국내파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은 의욕, 열정이 컸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더 이상 국내, 국외의 경계가 없습니다. 객관적인 연구 실적으로 전 세계 인재들이 실시간으로 경쟁하고 있죠. 그러다 보니 굳이 국내파, 해외파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소 진부한 생각을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여기서 1등을 하면 전 세계에서 1등을 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심어주고, 또 그런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가 연구원들을 뽑을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열정, 성실함, 적극적인 자세라고 한다. 김 교수의 연구팀은 지식경제부, 미래부 등에서 주관하는 국책연구과제를 수행하며 뛰어난 성과를 거둬왔다. 삼성전자와는 5년간 메모리 관련 연구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2012년 개발된 ‘플래시 융합메모리’ 기술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선정한 정부연구개발 우수성과 66선 중 정보전자분야 최우수 성과로 선정되었다. 2013년과 2014년에는 유리 투명전극 기술 개발로 해외 유수매체에 연구결과가 소개되고, 각종 특허를 취득하는 등 많은 주목을 받았다. 또 연구원들은 학위를 마친 뒤 대부분 삼성, 엘지, 하이닉스 등 국내 굴지의 기업과 독일 라이프니츠 연구소 등 해외 유수 연구소에서 활약하고 있다.
“원천기술을 실제 상용화시킨 하나의 성공사례 만들고 싶어”
대표적인 차세대 기술인 LED를 연구하며 학계와 산업계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김 교수의 꿈은 무엇일까. 그는 앞으로도 학교에 남아 학생들을 이끌고 싶다고 대답했다. 최근 공학계 교육이 실용화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그는 기초교육을 충실히 하면서 정부, 기업과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해 학생들의 역량을 더욱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 연구실의 모토는 ‘The First, The Best’입니다. 그동안 연구원들과 함께 First는 이뤄냈지만 Best는 아직입니다. 기업이 아닌 학교에서 최고의 기술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러나 유리 투명전극을 실제 LED조명에 적용해 그 우수성을 입증한 것처럼, 앞으로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이슈들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또 김 교수는 “미래에는 LED처럼 친환경적이고 녹색성장이 가능한 기술들이 더욱 각광받을 것”이라며 “오늘날 미국, 일본, 유럽, 중국이 정부 주도적으로 LED 산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만큼 대한민국 LED가 세계 속에 우뚝 서려면 정부와 산학계가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명 유리전극을 LED에 적용해 상용화할 수 있음을 확인한 김 교수는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기술의 근본적인 원리에 대한 탄탄한 이론을 갖추고, 다양한 영역에 하나하나 적용시켜보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은 상용화되었을 때 파급력이 크므로 많은 원천특허도 내놓은 상태다. 원천기술을 실제 상용화시킨 하나의 성공사례를 만들고 싶다는 김 교수. 치열한 연구개발과 남다른 후진양성 노력으로 대한민국 산업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그의 열정이 대한민국 LED의 미래를 환히 밝히길 기대해 본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5년 2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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