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의 투명망토를 현실에서 만나다
스마트 메타물질 개발로 신축성 있는 투명망토 구현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 김경식 교수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마법학교에 입학한 해리포터는 투명망토를 선물로 받게 된다. 해리포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투명망토를 두르자 그의 몸이 감쪽같이 사라지는데, 이후로도 이 투명망토는 해리포터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마법도구로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이렇게 투명망토는 판타지 영화에서나 가능했던 우리 상상 속의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최근 연세대학교 김경식 교수 연구진이 스마트 메타물질을 자체 제작해 신축성 있는 투명망토를 실험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 현실화의 길을 열었다.
모양 변해도 은폐 성능 유지하는 신소재 개발
사람이 물체를 볼 수 있는 것은 빛이 물체에 부딪힌 후 반사되어 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명망토는 가리고자 하는 물체에 빛이 반사되거나 흡수되지 않고 뒤로 돌아가게 해 물체가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처럼 빛이 물체에 닿지 않고 뒤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일정한 굴절률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핵심. 이런 원리를 이용해 미국 듀크 대학교의 스미스 교수와 영국의 펜드리 교수가 세계 최초로 투명망토의 재료가 되는 메타물질을 2006년에 만든 바 있다.
그러나 기존 메타물질은 투명망토를 현실로 가져오기에는 한계가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투명망토는 고정된 모양의 숨기려는 물체에 맞춰 설계되었기 때문에 일정한 형상을 가지고 있어 접거나 변형할 경우 투명망토의 기능을 잃게 되고, 외부의 충격 등에 망가질 위험이 있었다. 이 뿐 아니라 불균일한 특정구조의 재료를 사용하므로 작은 크기로 만들려면 공정이 어렵고 제작하는 데 매우 긴 시간이 걸려 실용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최근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 김경식 교수 연구팀이 이런 메타물질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소재 ‘스마트 메타물질’을 자체 제작, 투명망토를 실험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스마트 메타물질은 ‘스마트’ 플러스 ‘메타물질’로 저희가 처음으로 이름 붙인 신조어입니다. 메타물질은 자연계에 없는 광학 특성이나 열 특성을 갖도록 인위적으로 고안한 물질로서 주로 빛의 파장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인공원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스마트 물질은 탄성변형이나 열 등의 외부자극에도 특정 기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제작된 물질이죠. 이 두 가지 개념이 합쳐진 물질이 스마트 메타물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굴절률뿐만 아니라 특정한 탄성을 동시에 만족시켜 투명망토를 압축해도 굴절률의 분포가 투명망토의 광학적 성질을 자동으로 만족시킬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증명해, 지속적으로 숨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또한 압축성이 뛰어난 실리콘 고무 튜브 구조를 이용해 마이크로파 영역에서 투명망토를 실험적으로 검증했다. 즉, 스마트 메타물질을 이용해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숨기려는 물체가 변형되더라도 은폐 성질을 계속 유지하는 신축성 있는 투명망토를 구현한 것이다.
“기존에는 굴절률만 염두에 둔 연구에 그쳤지만 저희는 여기에 탄성의 개념을 동시에 만족시키도록 신소재를 개발했다는 점에서 차별됩니다. 압축성이 뛰어난 실리콘 고무 튜브 구조를 이용해 마이크로파 영역인 10~12기가헤르츠에서 해리포터 영화에서와 같이 변형시켜도 성질을 계속 유지하는 신축성 있는 스마트 투명망토를 실험적으로 검증한 것이죠. 또한 이 기술은 균일한 구조의 재료를 압축해 투명망토를 구현하기 때문에 제작공정이 훨씬 쉬워져서 대면적으로 확장하기가 용이합니다.”
구멍이 많은 스펀지를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압축된 표면 부근의 밀도가 유난히 커지는 분포를 갖게 된다. 이 때 이 부분이 광학적으로도 높은 굴절률을 갖게 되는데, 스마트 메타물질 투명망토에서 필요한 굴절률 분포의 변화가 가능해진다. 다만 이 원리에 스펀지 대신 실리콘 고무를 사용한다는 것. 실리콘 고무의 밀도 변화에 따른 굴절률 변화가 투명망토를 자동으로 만족시키는 탄성-광 결정구조를 설계, 제작할 수 있었으며 바로 이러한 설계가 스마트 메타물질을 처음으로 가능하게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스마트 메타물질에 세계 과학계가 주목하다
연구팀이 이번 연구를 통해 선보인 스마트 메타물질은 역학적인 탄성변형에 따라서 광학적 물성이 바뀔 수 있음을 보였고, 이를 투명망토에 적용시켜 숨기려는 형상의 변화에 적응해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스마트 메타물질의 제작방식은 기존의 개별적 가공이 필요한 메타물질 광학기기의 제작방식과는 달리 탄성변형을 이용해 대면적의 메타물질 제작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에 개발된 투명망토는 기존의 기술과는 달리 역학적 성질과 광학적 성질을 동시에 가지는데, 앞으로 기계공학과 광학의 융합이 활발히 이루어져 탄성변형을 이용한 대면적의 투명망토 제작이 가능하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특히 메타물질 기술은 투명망토 국방스텔스
뿐 아니라 실제 산업에서 광리소그래피 장비, 광학소재, 열소재, 고효율 에너지소재 등 다양한 기능성 소자에 적용 가능한 중요 기술인만큼 이번 연구가 가지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스마트 메타물질을 이용한 광대역 전자기 투명망토’의 연구결과는 세계 최고의 권위지 네이처의 자매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2012년 11월 20일자 온라인 판에 게재되었다(교신저자:연세대 김경식 교수, 제1저자:연세대 신동혁 박사과정).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는 여러 학문 분야에 대한 종합 저널로서 네이처 출판 그룹(NPG)에서 공식 발간하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술지이며, 특히 피인용지수가 2012년 기준 7.396으로 과학 분야에서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저널이다.
또한 네이처 출판사로부터 ‘One size cloaks all’이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보도할 주요 연구성과로 채택되어 미국의 Science Daily, 영국의 Physics World, 독일의 Pro-Physik 등에서도 보도되며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메타물질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세계학회인 Metamaterials 2013에서는 ‘스마트 하이브리드 다기능 메타물질’이라는 특별 세션을 개최할 예정이고 김경식 교수가 초청강연자로 초대되었다.
특히 이번 연구에 함께 참여한 미국 듀크 대학의 스미스(Smith) 교수는 음굴절률 메타물질과 투명망토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세계적인 대가로서, 2009년부터 로이터 통신 등에서 노벨물리학상의 유력한 수상후보로 거명되고 있다.
고효율 광대역 반사방지막 소재 개발
김경식 교수의 연구는 비단 이번 스마트 메타물질 연구에만 그치지 않는다. 앞서 2011년에도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한 의미 있는 연구결과를 내놓으며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바로 차세대 태양전지 및 광학 디스플레이 등에 널리 사용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고효율 반사방지막 광결정 소재 기술을 개발한 것.
고효율 광대역 반사방지막 기술 개발은 태양전지에서의 낮은 흡광율, LED에서의 낮은 광추출율, LCD 디스플레이에서의 눈부심 현상과 같은 고질적인 광전자 소자들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기술이다.
연구팀은 현재 산업현장에서 주로 이용되고 있는 4분의 1파장(quarter-wavelength) 반사 방지막 기술을 나노섬(nanoislands)의 개념으로 도입해 최근 각광받고 있는 광대역의 나방눈(biomimetic moth’s eye) 광결정 구조에 융합시킴으로써 기존 반사방지 성능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이번 제안은 나노스피어 리소그래피(nanosphere lithography)와 반도체 공정 기술을 활용해 실험적으로 구현되었다. 기존 나방눈 광결정 구조의 취약점으로 알려진 매우 작은 나노 구조를 만들지 않고서도 근자외선 영역에서의 광손실까지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기술로서 제작공정이 용이한 고효율 광대역 광결정 포토닉스 소재 구현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결과는 제작이 용이하지만 협대역의 단점을 가지던 4분의 1파장 박막 기술과 광대역이지만 제작공정이 어려운 나방눈 광결정 구조를 융합시킴으로써 제작공정의 용이성과 고효율 및 광대역의 성과를 동시에 이룰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습니다.”
김경식 교수가 주도하고 미국 보스턴 칼리지의 파디야(Padilla) 교수 등이 공동으로 참여한 이번 연구결과는 재료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즈(Advanced Materials)’ 2011년 12월 22일자에 게재되었다.
세계 석학과 공동연구 활발 ‘광학 메타물질 연구실’
김경식 교수가 이끌고 있는 광학 메타물질 연구실(Optics and Metamaterials Lab)에서는 크게 음굴절률 메타물질, 수퍼분해능 광리소그래피, 광학스텔스 및 투명망토 기술, 적외선 스텔스 기술, 광학 초정밀 센서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연구실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세계 석학들과 공동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스마트 메타물질 연구에 스미스 교수, 광대역 반사방지막 소재 연구에 파디야 교수가 참여한 바 있으며, 2011년 9월부터 3년 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지원을 받아 김경식 교수가 주관하고 독일 아헨공대의 Thomas Taubner 교수가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해 ‘IR 스텔스를 위한 광결정 구조에 관한 연구’라는 국제공동기초연구를 수행 중이다. 전차엔진, 항공기 및 로켓에서 복사되는 적외선을 탐지하는 IR seeker에 대응할 수 있는 IR 스텔스용 광결정 소재 기술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공동연구원인 Taubner 교수는 mid-IR 영역에서 Scanning Near-field Optical Microscopy를 수행하는 세계적 선도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지난해 2월에는 200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논문의 저자이자 광주파수빗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의 Scott Diddams 박사와 함께 세미나를 진행하고, 공동협력연구에 대한 논의를 펼쳤다.
더불어 김경식 교수는 201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의 David Wineland 박사와도 2007년에 피지컬 리뷰 레터즈(Physical Review Letters)지에 공동연구 논문을 게재한 바 있다.
이처럼 연구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석학들과의 공동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데에는 김경식 교수의 경험과 해외연구 활성화에 대한 의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김경식 교수는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연구원을 거친 바 있으며, 이 당시 200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John Hall 박사그룹의 Scott Diddams 박사와 함께 원자시계 광주파수빗 연구에 참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때의 경험과 인적 인프라를 기반으로 2006년 한국에 돌아와 지금의 연세대 기계공학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해외 공동연구를 꾸준히 추진해 왔으며, 이런 노력들이 바탕이 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소기의 성과들을 창출하고 있다.
겸손함에서 성공의 길을 찾다
영국의 대시인이자 극작가인 T.S.엘리어트는 ‘겸손은 가장 얻기 어려운 미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자기 자신을 높이 생각하려는 욕망만큼 여간해서 가라앉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정신적 노력이 부단히 필요한 일이지만 김경식 교수는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덕목이 겸손함이라고 강조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고 평가함으로써 현실을 직시, 부족한 점을 체크하고 채워나갈 때 비로소 연구가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새로운 지식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의 연구 능력에 대해 과대평가를 하거나, 연구가 한 번 성공했다고 자만한다면 연구자로서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자만심이 눈을 가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결국 길을 잃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연구자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겸손함과 성실함이 중요합니다. 항상 낮은 자세로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검증하고, 모르는 부분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며, 실패를 인정할 줄 알아야만 연구는 진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김경식 교수는 연구실의 리더로서 함께 하는 연구원들에게도 항상 겸손함을 강조하며, 때로는 쓴 소리가 될지라도 부족한 점을 정확히 짚어주려 노력하고 있다. 과학이란 것도 결국은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인 만큼 정신적인 성숙과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같은 길을 먼저 걸어온 선배로서, 같은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동료이자 연구실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로서 가장 합리적인 방향으로 연구실을 운영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저 또한 석사, 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난관을 겪어온 만큼 학생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연구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개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른 보상을 최대한 공정하고 철저하게 해주기 위해 노력 중이죠. 열심히 성실하게 연구를 수행한 사람에게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 가장 기본적인 사회의 가치를 지켜 공정한 연구실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사실 물리학과를 나와 박사과정에서 광학을 전공하고, 현재의 기계공학 분야로 오기까지 김경식 교수의 지난 길이 녹록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길을 걷는 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에 수없이 부딪혀야 했지만 그는 이 고비를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서로 다른 학문을 다각도로 융합하고 접목하면서 자신만의 강점을 키워 나갔고, 언제나 변화를 모색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스스로 개척했다. 김경식 교수는 앞으로 스마트 메타물질이 확실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연구를 지속하고, 이후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신중히 도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높은 파고를 긍정의 힘으로 넘으며, 새로운 물질을 창출해 온 만큼 김경식 교수의 ‘신중한 도전’이 다시 한 번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열쇠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3년 3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