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기능제어 통해 삶의 질 향상 물질을 개발하다
라스 단백질 분해조절 원리 규명
연세대학교 단백질기능제어이행연구센터 최강열 교수
단백질은 인간의 생명현상을 조절하는 생체 내 중요 물질로 염색체 내의 유전자 정보의 해독을 통해 만들어진다. 따라서 유전자의 돌연변이 또는 직접적인 단백질의 변형으로 단백질의 기능 이상이 발생하면 우리 신체 또한 기능 이상이 생기고, 이로써 질병을 초래하기 때문에 단백질은 우리 삶의 질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단백질의 기능을 제어하는 물질은 특정 단백질의 이상으로 인해서 생긴 다양한 종류의 질병 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 최근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대장암, 췌장암을 포함하는 많은 종류의 암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라스 단백질의 새로운 조절 원리를 밝혀 한계극복용 항암제 개발 가능성을 연 연세대학교 단백질기능제어이행연구센터의 센터장인 최강열 교수를 만났다.
항암치료 막는 ‘라스 단백질’ 제어원리 밝혔다
라스(Ras)는 암 발생을 유도할 수 있는 단백질로 그 유전자는 30년 전 처음 밝혀졌다. 라스 단백질은 정상적인 세포에서는 세포의 성장 및 분열을 조절하는 Ras-MAP kinase 신호전달에서 신호전달 유무를 결정하는 스위치 역할을 수행한다. 즉, 정상적인 라스 단백질은 세포막에 붙어 성장신호를 보냈다가 끊었다가 하면서 세포 성장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돌연변이 라스 단백질은 세포에 성장신호만 일방적으로 보내기 때문에 세포가 비정상적인 증식을 일으켜 암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라스의 돌연변이는 대장암 환자의 경우 40~50%, 췌장암의 경우 90%의 환자에서 높은 비율로 돌연변이가 발견되고 있으며, 다른 종류의 암에서도 30~40%의 높은 비율로 돌연변이가 일어나며, 이들 암 발생의 중요한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돌연변이 라스 단백질로 인한 암은 기존 항암제로 치료가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수많은 연구자들과 다국적 거대 제약회사들이 지난 20년 동안 라스 단백질을 제어할 수 있는 항암제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대표적으로 라스가 암을 유발하려면 세포막으로 이동해야 하는 점에 착안해 라스의 이동을 막아 활성을 억제하는 항암제를 개발하고자 시도했지만 임상실험에서 효과가 적고 부작용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로 막대한 연구비만 쓴 채 실패에 그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 돌연변이가 일어난 라스를 제어할 수 있는 임상적용이 가능한 항암제는 없는 상황이며, 오늘날 많은 연구자들은 라스를 제어할 수 있는 항암제 개발이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라스를 제어하는 항암제 개발은 차세대 항암제로 부상하고 있는 EGFR(상피세포수용체)을 무력화시키는 시툭시메브 같은 단클론항체 항암제들이 라스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환자에게는 약효가 없음이 밝혀짐에 따라 그 개발 필요성이 더욱 절실한 상황입니다. 우리 연구진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단백질 분해에 의해 라스가 조절되는 새로운 원리를 규명하고자 했고, 이를 통해 암을 발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활성화된 라스를 제어하는 신개념의 항암제 개발에 단초를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최강열 교수 연구진은 돌연변이가 일어나 활성화된 라스 단백질을 분해함으로써 그 활성을 제어할 수 있음을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세포의 성장조절 신호전달체계인 윈트(Wnt)신호전달계의 저해인자인 인산화 효소 GSK3β가 윈트신호를 억제해 라스를 인산화 시키고, 인산화된 라스에 단백질 복합체(β-TrCP-E3 ligase)가 결합해 유비퀴틴화를 촉진, 라스가 세포 내 단백질 분해 장소인 프로테아좀으로 이동해 분해되어 없어진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이렇게 분해되어 제거된다면 결과적으로 암 유발을 억제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 규명한 라스 분해 조절 원리는 라스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GTP가 붙은 활성화된 형태의 라스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분해되어 없어지기 때문에 암의 발병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입니다. 특히 그동안 수많은 연구자들이 지금까지 연구해 온 라스라는 중요 단백질이 기존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단백질 분해라는 새로운 원리에 의해 분해될 수 있음을 규명한 최초의 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이 원리를 활용해 라스를 분해시키는 저분자 화합물을 발굴, 이를 효과적이고 특이적인 항암제로 개발 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강열 교수는 이 원리를 이용해 개발하고 있는 항암제는 라스 단백질의 돌연변이가 원인이 되어 현재 이용되고 있는 항암제로는 치료가 힘든 암을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한계극복용 항암제로 개발될 가능성을 전망했다.
또한 라스는 Raf-MEK-ERK 전달계는 물론 암 발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또 다른 아래 단계의 신호전달계인 PI3 kinase-Akt 신호전달계를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개발될 라스 분해 항암제의 경우는 이들 주요 신호전달계들을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이상적인 ‘다중타겟 항암제’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연구진이 스크리닝을 통해서 개발하고 있는 항암제들의 효능을 평가한 결과 라스 돌연변이가 원인인 암을 효과적으로 억제함을 확인함으로써 이들 화합물들이 라스 돌연변이 때문에 상피세포수용체(EGFR) 단클론항체항암제에 대한 내성을 보이는 환자들의 치료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같은 연구개발이 가능하게 한 라스 단백질 분해 원리에 대한 연구결과는 세계 최고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의 자매지로서 세포신호전달분야의 권위지인 ‘사이언스 시그널링 (Science signaling)’ 4월 10일자에 게재되었으며, ‘대장암에서 라스분해 저해’라는 제목으로 별도의 코너(Perspective)에 상세히 소개되는 등 연구의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실용화에 초점 맞춘 ‘단백질기능제어이행연구센터’
단백질은 생체 내에서 기능을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물질이다. 그런 만큼 단백질 관련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어 왔고, 현재 유전자나 단백질에 대한 국내 기초연구 수준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발전해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응용 및 실용화를 위한 이행연구는 상대적으로 뒤쳐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바로 연세대학교 단백질기능제어이행연구센터. 지난 2009년 9월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 하에 선도공학연구센터(ERC, Engineering Research Center)로 첫 걸음을 내딛었다.
“ERC는 기초연구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SRC(Science Research Center)와는 그 설립 목적에서 차별성을 가집니다. 특히 단백질기능제어이행연구센터는 기초연구성과들을 바탕으로 다학제 및 산학 간 협력연구를 수행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단백질기능제어물질을 발굴, 개발해 산업체로 이행함을 목표로 합니다. 이와 더불어 국내 이행연구의 활성화에 이바지 하고자 전문이행연구인력 육성에도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첫 걸음을 뗀 이후 3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단백질기능제어이행연구센터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창출하며, 역량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 80여 전문학술지 논문 게재, 71/38건의 특허등록 및 출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150여개의 국내?외 학술대회 연구발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기술이전 2건과 상용화 3건을 통해 총 192,600,000원의 기업체 연구비를 수주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향후 발전가능성도 매우 높게 점쳐지고 있다.
특히 연구진들은 단순한 호기심에서의 연구가 아니라 한 단계 나아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산업화용 물질 개발’에 무게중심을 두고 기초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항암제, 골다공증치료제, 발모제, 비만치료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삶의 질 향상 물질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 모두가 Wnt/beta-catenin과 Ras-ERK 신호전달계의 작동 원리, 생리 및 병리현상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물질들이다. 특히 스크리닝 및 성격규명을 통해 발굴된 물질들 대부분이 단백질 기능을 제어하는 저분자 화합물과 펩타이드들인데 산업화 가능성이 높은 물질들이라 현재 다양한 기업들과 공동연구 및 기술이전이 추진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최근 (주)아모레퍼시픽과 공동개발을 통해 산업화 과정을 진행 중인 발모를 촉진하는 물질 발프로산의 개발을 손꼽을 수 있다. 연구진은 2천여 종의 저분자 화합물과 800여 종의 천연물 검색을 통해 신경과 치료에 사용되어 왔던 발프로산이 발모를 촉진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혔고, 이를 바탕으로 한 발모촉진 탈모치료제가 미국, 일본, 유럽, 캐나다 등 6개국의 특허출원 중이며 아모레퍼시픽(주)를 통해 임상실험을 거쳐 상용화 과정을 밟는 중이다.
“오늘날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바이오시밀러를 포함해 거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단백질 기능제어물질은 생물학, 화학, 의학 등 특정 학문만으로는 개발이 용이하지 않습니다. 다국적 회사를 포함한 수많은 해외 연구소들이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는 연구자들이 함께 연구개발에 참여해 연구개발을 수행할 필요성이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죠. 이에 비추어 볼 때 센터에 참여하고 있는 13명의 핵심연구원들이 다양한 분야의 선도 주자들로 연구진이 구성되어 있다는 점, 100여 명의 참여연구원들을 통해 다학제 간 융합연구의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는 점이 단백질기능제어물질 개발에 있어 우월성을 확보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더불어 단백질기능제어이행연구센터는 처음부터 연구개발을 새로 시작하기 보다는 기존에 개발해 온 대상물질을 우선적으로 산업화 이행을 추구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의 원천기술 개발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위험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전문 연구원들 아우르는 체계적 시스템 구축
단백질기능제어이행연구센터는 단백질기능제어물질 개발을 위한 시스템 구축의 모델 센터로서 성장하는 것을 넘어 경제적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통해 국가 지원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자립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산학협동연구센터로 거듭나려는 것이다.
세포는 물론 동물실험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연구환경은 물론 기초연구를 통해 도출된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항암제, 발모제, 골다공증 치료제 등 다양한 산업화 가능 물질 개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고, 개발된 물질을 산업체로 이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센터의 자립은 긍정적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러한 단백질기능제어이행연구센터가 당면한 문제는 연구원들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시스템 개발을 통한 인재양성이다. 센터를 이끌고 있는 최강열 교수는 어떻게 해야 우수한 인재들의 우수한 역량을 조화롭고, 강하게 증폭시켜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 다각적으로 고민해 보고, 차근차근 하나의 완성된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생각이다.
“우수한 사람 여러 명이 모였다고 해서 전체가 우수한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개별분야에서 각각 탁월한 역량을 가진 인재들이라 할지라도 이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얻기란 어려운 법이죠. 따라서 개개인의 우수함을 조화롭게 이끌어내 시너지 효과를 보다 향상시킴으로써 센터의 공동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더 나은 방안 및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더불어 최강열 교수는 확고한 자기 목적과 비전을 지닌 인재를 발굴하고, 이들을 더 크게 성장시키는 것도 센터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강조한다. 특히 그가 연구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바로 ‘fashion’.
“학문 및 연구개발에 있어서도 ‘fashion’은 매우 중요합니다. 학계의 변화 및 사회의 변화에 따라 중요한 분야가 바뀔 때 정체되지 않고, 새로운 접목과 융합을 시도할 수 있는 확고한 자기 목적과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죠. 또한 새로운 방법이나 연구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있어서 두려움이 없는 적극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백질기능제어이행연구센터는 실용성을 강조하는 공학선도연구센터인 만큼 교육을 이수한 연구원들이 연구개발을 산업화로 이루는 전체적인 안목을 갖춘 인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꽃을 피워야 향기를 알 수 있다
오늘날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연구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향상되고, 연구비가 증가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연구개발에 종사하는 인력에 대한 사회적인 대우와 배려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것 또한 사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이공계 기피현상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이 점에 대해 최강열 교수 역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많은 젊은이들이 뚜렷한 비전이 없는 힘들고 어려운 기초연구개발 보다는 조금 더 안정되고 생활이 보장되는 길을 걷기를 원하며, 이제 이 같은 상황을 우리도 받아 들여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 세대에서는 기초연구 및 개발 관련 직업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보장이 되어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현재 연구개발에 종사하는 우리들의 책무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학교, 연구소, 기업체를 통해서 수많은 연구개발이 수행되어 좋은 논문이 도출되었으나 그 결과가 산업화라는 가시적인 결과로 이어져 열매를 맺은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열매를 맺게 하고, 달다는 것을 실제 보여 줌으로써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관련 분야의 산업체 및 연구기관이 활성화 되고, 종사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면 자연스럽게 기초과학 및 연구개발에 자신의 인생을 거는 젊은이들이 증가하게 될 것이며, 이는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끝으로 최강열 교수는 향후 단백질기능제어물질 개발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국제적 허브기관으로서의 단백질기능제어이행연구센터의 미래를 청사진으로 제시했다.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탄탄한 기초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한 이행성 연구개발이 더욱 활성화되고 가시적인 결과가 우리 연구센터에서 도출되리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이에 앞서 단백질기능제어이행연구센터라는 조직을 이끌며, 전체적인 센터 발전을 위해 연구원들 간의 공동연구 수행 및 시너지를 도출할 수 있는 형태의 연구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단백질기능제어이행연구센터는 국내 최초의 단백질기능제어관련 이행성 연구기관이라는 상징성을 가지는 기관인 만큼 국내외 네트워크를 통한 단백질기능제어물질 개발을 선도하는 국제적인 허브기관으로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꽃을 피워야 향기를 알 수 있듯 새롭게 발견한 기초과학 원리도 산업화를 통해 실제 사람들에게 이롭게 사용되어야만 그 가치가 있는 법이다. 개발한 물질들이 산업화를 거쳐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는 최강열 교수. 생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바탕으로 ‘사람이 이로워야 한다’는 궁극적 가치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는 그를 통해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이들의 절망이 희망으로 바뀔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2년 7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