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광 집적회로 기술의 벽을 넘어서다
나노 포토닉스는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나노미터 크기에서 다루며, 차세대 광통신 기술과 실리콘 기반 광 집적회로(Photonic Integrated Circuits, PICs)의 혁신을 이끄는 핵심 기술이다. 이 기술은 빛을 활용해 데이터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송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며, 기존 전자 회로가 가진 속도와 에너지 효율의 한계를 극복한다. 이처럼 미래 기술을 재정의할 열쇠로 주목받고 있지만 안정적으로 구현하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특히 전자 및 광 집적회로의 핵심 재료로 사용되는 실리콘이 자체적으로 빛을 방출하지 못한다는 점이 광원 개발의 가장 큰 기술적 걸림돌이었다.
이에 과학계에서는 빛을 생성하는 III-V 반도체와 실리콘을 결합하는 방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일부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열적 불안정성과 비효율적인 광 집속 문제로 인해 나노 크기에서 연속파 발진을 구현하는 것은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 있었다. 특히 나노미터 크기의 레이저는 작은 부피 때문에 과도한 흡수 및 산란 손실이 발생하기 쉬워 발진이 억제되거나 레이저 임계값이 급격히 상승하는 문제가 자주 발생했다. 이러한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건국대학교 물리학과 노유신 교수와 고려대학교 KU-KIST 융합대학원의 김명기 교수는 최소한의 III-V 반도체 물질을 실리콘 나노 공진기에 정밀하게 이식하는 신개념 ‘on-demand minimal-gain printing’ 기법을 도입했다. 기존에는 완성된 레이저를 실리콘 집적회로에 이식하는 방식이었다면, 공동연구팀이 도입한 기법은 레이저 발진에 필요한 발광 이득 물질만을 최소한으로 이식하는 방식이다. 이식 후 레이저 증폭은 실리콘 회로 내부에서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설계했다.
하지만 기대한 결과를 얻기까지, 연구팀은 수없이 실패와 도전을 반복해야 했다. 나노미터 수준에서 빛을 정밀히 다루는 기술은 이전에 구현된 사례가 거의 없었고, 상당한 숙련도와 경험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연구팀이 사용한 초미세 전사 인쇄 기술은 소자를 실리콘 기판에 정밀하게 이식하는 과정을 포함하는데, 이 기술은 나노미터 수준의 정밀도를 유지해야 하므로 초기 단계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소자가 작아질수록 발생하는 열 문제도 큰 도전 과제였다. 나노 크기의 소자는 열이 쉽게 축적되어 안정적인 작동을 방해하거나 소자의 손상을 초래했다. 기존 기술로는 저온에서만 작동 가능한 소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연구팀은 상온에서도 연속파 발진이 가능한 시스템을 설계하며 기존의 한계를 극복했다.
실험 결과, 고비용의 III-V 물질 사용을 최소화하면서도 기존 나노 레이저에 비해 훨씬 높은 열적 안정성과 낮은 발진 임계값을 달성할 수 있었다. 상온에서 50µW 이하의 낮은 전력으로 동작하는 집적형 연속파 실리콘 나노 레이저를 구현함에 따라 나노 크기 소자의 작동 안정성과 에너지 효율성을 동시에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연구 결과는 2024년 9월 19일 Science의 자매지인 ‘Science Advances’에 게재(노유신 교수·김명기 교수 교신저자, 고려대 박병준·건국대 김민우 제1저자)되었다.
장기 연구의 가치를 입증한 성공적 사례로 남아
이번 연구는 나노미터 스케일에서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초미세 전사 인쇄 기술을 활용해 소형화된 나노 레이저를 개발했을 뿐 아니라, 광 집적회로의 다른 구성 요소인 광 디텍터와 모듈레이터로 확장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실리콘 웨이퍼에 쉽게 통합할 수 있는 제조 공정을 통해 기존 기술 대비 효율성과 정밀도를 크게 개선하며, 광통신 기술의 혁신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차세대 광통신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는 CPO(Co-Packaged Optics)와 옵티컬 인터커넥트 기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산업계의 관심도 뜨겁다. 실제 성과 발표 이후 기업들의 기술 협력 문의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 “이번에 도입한 기술은 차세대 광통신과 고성능 광 집적회로에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레이저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집적 소자에도 광범위하게 사용 가능하다”고 밝혔다. 노 교수 역시 “실리콘 광 집적회로 기술에 중요한 분기점을 제시한 연구로, 차세대 광 집적 기술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이번 연구의 성공은 장기적인 연구 지원이 가진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연구팀은 한국연구재단의 중견연구자 지원 사업을 통해 약 5년간 안정적으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으며, 이는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기반이 되었다. 만약 연구가 단기 과제로 제한되었다면, 초기 단계에서 요구되는 반복적인 시도와 기술 축적이 어려워 성과를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긴 호흡의 지원 덕분에 연구팀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며 완성도 높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연구의 성공은 연구팀뿐만 아니라 참여한 연구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연구가 점차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학생들은 자신이 참여한 연구가 큰 가치를 지닌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통해 연구에 대한 의지와 성취감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 특히, 연구 성과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연구원들에게 더 큰 자부심과 동기를 부여한 점도 의미 깊다.
연구팀은 나노 레이저 개발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광학 소자 개발로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노 교수는 후속 연구로 광 디텍터와 모듈레이터 같은 다른 핵심 광학 소자에 이번 기술을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초기 결과도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고 있다”며, “해당 기술이 광 집적회로에서 더 넓은 응용 범위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김 교수는 “더 높은 수준의 기술 구현을 목표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고 전하며, 아직 논문으로 발표되지 않은 연구 성과도 계속 축적되고 있음을 언급했다. 이들 연구는 차세대 광통신 기술과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을 더욱 혁신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차세대 광학 기술의 기반을 다지다
노 교수와 김 교수는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주제를 발굴하고, 새로운 방법론을 찾기 위해 힘써 왔다.
그 결과 광학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꿀 연구 성과들을 내놓으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먼저 노 교수는 정밀 전사 기술을 활용한 광학 및 나노 기술 연구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어 왔다. 2022년 기존의 금속전극을 광학적으로 투명하고 기계적으로 유연한 초박막 그래핀 전극으로 대체하는 신기술 ‘상하단 그래핀전극 접촉 기법(All-Graphene-Contact)’을 개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기술은 기존 금속전극 광소자가 유발하는 빛 흡수 및 산란 문제와 다른 소자와의 광 상호작용 제한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또한 미세 정밀전사가 가능해 고집적 광회로 연구 분야의 숙원과제인 다양한 온디맨드(on demand) 전기구동 광원을 구현할 가능성을 제시했다(Nano Letters, 2022년 1월 20일 온라인 게재).
2020년에는 투명 마이크로 폴리머 구조물을 활용한 미세구조 프린팅 전사 기술을 개발해 초소형 광소자들을 개별적으로 고밀도 광 회로에 집적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초고속·초소형 광 집적회로는 다양한 개별 광소자들의 집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들 개별 소자들을 회로 내에 정확한 위치에 집적시키는 기술의 개발이 필수적이다. 연구팀은 수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초소형 레이저를 높은 전사 정확도로 원하는 위치에 집적하고 구동에 성공하며, 이 기술이 미래 광회로 개발의 핵심이 될 것임을 입증했다(ACS Photonics, 2020년 12월 3일 게재).
김 교수는 포토닉스 집적회로와 양자 통신 기술 등 차세대 광학 기술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혁신적인 연구를 선보이고 있다. 몇 가지를 꼽는다면, 먼저 지난 2022년 단일 광섬유로 18µm 간격의 고밀도 나노 레이저 배열을 구동하고 프로그래밍하는 기술을 개발한 바 있다. 광섬유 내 빛의 간섭 패턴을 활용해 전극 없이 나노 레이저 구동을 정밀히 제어하는 방법으로, 전력 소모와 열 발생을 줄이는 동시에 처리 속도와 집적도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이 기술은 데이터전송의 대역폭 확장과 에너지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핵심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Optica, 2022년 12월 20일 게재). 2020년에는 기초과학연구원 연구팀과의 협업으로 근접장 주사광학현미경(NSOM)의 해상력을 향상시켜 나노미터 크기의 미세 정보를 관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반대칭모드 이미징 기법을 도입해 탐침 구멍보다 작은 구조도 구분할 수 있는 해상력을 구현해 냈다(Nature Communications, 2020년 5월 22일 게재).
한편, 최근에도 기존의 기술적 한계를 넘어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발표하며, 혁신적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연구팀은 고려대 안동준 교수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세계 최초로 나노미터 크기의 물(H₂O) 분자 거동을 실시간으로 관찰, 저온에서 고밀도 물 분자 나노 클러스터 형성 규명에 성공했다. 플라즈모닉 나노칩 센서를 활용해 영하 77K의 저온 환경에서 물 분자의 상변이 메커니즘과 얼음 결정 구조 간의 상호작용을 규명한 이 연구는 동결 보존 및 에너지 사업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Small Science, 2024년 10월 24일 게재).
깊이 있는 탐구와 경계를 넘는 융합의 조화
노 교수와 김 교수 연구팀은 각기 다른 연구 스타일과 강점으로, 나노 포토닉스 및 광학 연구의 최전선을 이끌고 있다. 두 팀은 연구 방향, 학생 지도 방식, 연구실 분위기 등에서 뚜렷한 대조를 이루지만, 각각 독창적인 강점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창출해 왔다.
먼저 노 교수 연구팀은 한 가지 주제를 깊이 파고드는 연구 스타일을 특징으로 하며, 철저한 밀착 지도와 집중적 피드백으로 학생들의 연구 역량을 키운다. 노 교수는 “학생들이 혼자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며, 수시로 연구실에 방문해 피드백을 제공하고, 실험 문제 해결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학생들에게 높은 동기 부여를 제공하며, 학술적 성취와 함께 삼성, LG 등 국내 유수 기업 취업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노 교수는 “결과로 증명하지 못하면 설득이 어렵다. 학생들이 선배들의 성과를 보며 동기를 얻고, 자신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연구실은 목표 지향적 분위기 속에서 높은 집중력과 생산성을 유지하며, 이를 통해 단일 주제를 깊이 탐구하면서도 세계적 성과를 도출하는 연구실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김 교수 연구팀은 다양성과 융합을 기반으로 한 개방적 연구 문화를 지향한다. 김 교수는 “학생들이 관심을 가진 주제라면 무엇이든 가져오라고 한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는 협력자를 찾아 연결해 주거나, 스스로 공부하며 지원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한 가지 주제에 국한되지 않고 나노 포토닉스, 플라즈모닉스, 양자 광학, 나노소재 등 다방면의 연구를 병행하며, 학생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연구실을 운영한다. 특히, 공동연구와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드는 협력을 통해 새로운 접근법을 찾는 데 주력하며, 이는 융합대학원 소속이라는 특성과도 부합한다. 김 교수는 “경계를 허물면 정말 많은 가능성이 열리고, 연구를 더욱 즐길 수 있다”며, 학생들이 다양한 주제를 탐구하면서 서로 배우는 과정이 연구실의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여러 전공 배경의 학생들이 협력하며, 각자의 관심사를 발전시키는 가운데, 다양한 연구 주제를 성공적으로 융합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광자(光子)의 시대, 빛으로 미래를 그리다
노 교수는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지속 가능한 실력과 학문적 성취를 꼽으며, “단기적인 결과보다는 깊이 있는 실력이 궁극적으로 남는 자산”이라고 강조한다. 연구를 수행하며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는 연구비 확보와 학생 리크루팅의 문제를 언급했다. 특히 최근 연구비 삭감과 물리학 전공의 위축은 연구실 운영에 큰 도전이었다. 그러나 그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신뢰와 인내로 연구를 이어 왔다. “연구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그의 확신은 연구를 지속해 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김 교수는 다양성과 융합을 중시하는 연구 철학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접근과 폭넓은 학문적 교류를 실현하고 있다.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감과 열린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신감을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과 협력할 때 연구는 확장되고 발전할 수 있다”고 전한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도전으로 급변하는 시대적 요구와 학생들의 단기적 목표 지향성을 꼽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연구 주제와 학문적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데 힘 쏟고 있다. 다양한 연구 분야를 통합적으로 수행함으로써, 학생들이 연구에 대한 동기를 유지하도록 지원한다는 설명이다.
앞으로의 계획과 관련해 노 교수는 현재 진행 중인 연구를 기업의 요구에 부합하는 시스템 레벨로 확장하는 데 주력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는 기존 단일 소자 개발에서 나아가 산업체의 실질적인 응용과 연결될 수 있는 기술을 목표로 한다. 또한, 양자 광학 연구로의 확장을 통해 차세대 광학 기술 발전에 기여한다는 포부다.
김 교수는 학계와 산업계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에 주력하며, 협력을 통한 혁신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산업계가 풀지 못하는 문제들이 이미 학계에서 논의된 경우가 많은 만큼 학문적 연구의 깊이를 산업적 필요와 연결하면, 더 큰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따라서 실리콘 포토닉스와 양자 광학 등 최첨단 기술의 상용화를 목표로 연구의 가치와 실용성을 동시에 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노 교수와 김 교수의 연구 철학과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광학 기술의 미래를 개척하며 학문과 산업을 연결하려는 공통된 열정을 공유한다. 이들의 연구는 학문적 성과를 넘어, 빛이라는 도구를 통해 미래를 설계하는 작업이다. 서로 다른 방식의 열정과 헌신이 만들어 낼 결과가 과학과 산업, 학문과 실용이 어우러지는 새 시대의 초석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깊이와 넓이로 세상을 비추는 두 교수의 여정은, 오늘도 멈추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취재기자 / 안유정(reporter1@s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