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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인터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종호 박사님

대면적 프로톤 세라믹 연료전지 기술 개발
2019년 2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수상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종호 박사님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면 덩치 큰 터미네이터가 2개의 심장, 즉 아주 작은 배터리 2개를 힘의 원천으로 삼아 가동된다. 심지어 그 작은 배터리가 터지면 핵폭탄 수준의 위력을 가진 배터리로 묘사되는데 이 영화 속 배터리의 정체가 바로 연료전지다. 연료전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배터리가 아닌 화학에너지를 바로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킬 수 있는 첨단장치로, 오염물질 배출 없이 높은 발전효율을 갖는 미래에너지 소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세라믹 연료전지는 다른 연료전지에 비해 발전효율이 높고, 그중에서도 프로톤 세라믹 연료전지는 기존 세라믹 연료전지 전해질보다 100배 이상 전기전도율이 높은 차세대 연료전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은 오랜 연구개발에도 불구하고 상용화 가능성이 요원했는데, 지난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종호 박사 연구팀이 상용화 가능한 수준의 고성능 대면적 프로톤 세라믹 연료전지 공정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 상용화 길을 여는 쾌거를 거뒀다. 아울러 이번 연구 결과를 연료전지의 차세대 확장 분야인 에너지 저장 기술에 적용하면 재생에너지의 활용도를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연료전지의 경제성·대면적화·고성능화 동시 달성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로 지구 환경이 몸살을 앓으면서 인류의 건강한 삶을 위한 미래에너지 기술 연구가 다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화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장치인 연료전지는 오염물질 배출 없이 높은 발전효율을 갖고 있어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친환경 미래 자동차 구현을 가능하게 하는 미래에너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세라믹 연료전지는 귀금속 촉매가 사용되지 않음에도 다른 연료전지에 비해 발전효율이 높고 다양한 연료사용이 가능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이온인 프로톤(수소 이온)을 전도하는 세라믹 전해질로 구성된 프로톤 세라믹 연료전지(PCFC)는 이론적으로 중저온영역에서 기존 세라믹 연료전지 전해질보다 100배 이상 높은 전기 전도도를 갖기 때문에 차세대 연료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기존 세라믹 연료전지보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소재 물성으로 인해 박막 전해질-전극 접합체 제작이 매우 어렵고, 고온공정 중 급격한 물성 저하가 발생해 오랜 연구개발에도 불구하고 상용화 가능성이 요원한 실정이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이종호 박사 연구팀은 한양대학교 신동욱 교수 연구팀과의 협업을 통해 프로톤 세라믹 연료전지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의 대면적 전지를 제조할 수 있는 공정기술 개발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전해질-전극 접합체 구조의 열처리 과정 중 전해질이 치밀해지는 원리를 세계 최초로 체계화했고, 이를 응용해 공정 온도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또한 연구팀은 추후 상용화를 고려해 실제 양산공정에 쓰이는 대면적 스크린 인쇄법과 단시간 저온 열처리가 가능한 마이크로파 공정을 활용함으로써 경제성을 확보했다.

5μm(마이크로미터, 십 만분의 1cm) 두께의 전해질로 구성된 5x5cm2 크기의 대면적 프로톤 세라믹 연료전지는 기존 결과에 비해 10배 이상의 높은 출력을 나타냈다. 실제 연료전지 사용 환경과 유사한 측정 시스템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출력성능을 검증한 만큼 그동안 요원하게만 느껴졌던 프로톤 세라믹 연료전지의 상용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괄목할 만한 성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 연구팀은 기존 프로톤 세라믹 연료전지 기술이 가지는 한계를 충분히 기술적으로 극복 가능하다는 믿음 아래 기본적인 셀 제작 단계에서부터 원인 분석에 들어가 열처리 과정 중 전해질이 치밀해지는 원리를 세계 최초로 체계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에 기반해 제작 온도를 획기적으로 낮추고 전해질의 두께는 최소화해 상용화가 가능한 성능 수준을 확보할 수 있었죠. 무엇보다 기존의 실험실 레벨의 기술이 아닌 추후 산업체에서도 활용 가능한 대면적 양산공정에 적합한 범용의 세라믹 공정을 활용해 제작한 것으로, 프로톤 세라믹 연료전지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이번 연구성과는 에너지 기술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Nature energy’(IF:46.859, JCR 분야상위: 0.515%) 2018년 8월 28일 자 온라인 판에 게재되며 세계 과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종호 박사를 비롯해 지호일 박사(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신동욱 교수(한양대학교), 안혁순 박사(한양대학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등 9명이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특히 지난 2월 이종호 박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우수한 연구개발 성과로 과학기술 발전에 공헌한 연구개발자를 매월 1명씩 선정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국책과제 종료 후에도 연구 끈 놓지 않아
사실 이종호 박사 연구팀이 거둔 이번 연구성과는 관련된 국책과제가 종료된 지 한참 후에 얻어진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연구팀은 2010년부터 프로톤 세라믹 연료전지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전기적, 전기화학적, 반응동역학적 거동을 다루는 ‘Protonics’ 전 분야에 걸쳐 많은 연구를 수행해 왔다. 그러나 기존의 고체산화물 연료전지보다 재료공학적으로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소재 특성으로 인해 성능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원인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다. 한계 극복에 고군분투하는 사이 국책과제가 종료되면서 연구개발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지만, 연구팀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다.

“과제 수행 기간 동안에는 주어진 연구목표 달성에 급급해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들을 놓친 것이 많았고, 비록 연구목표는 달성했지만 계속 아쉬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에 연구팀 멤버들은 과제는 종료되었지만, 시간만 더 주어진다면 그동안 해결 못 했던 난제들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지난 수년 동안 과제를 통한 연구비 지원 없이 최소한의 연구인력을 투입해 그동안 궁금했던 사항, 풀리지 않았던 문제들에 집중해 왔습니다. 연구 결과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참여 연구원 모두 매진할 수 있었고, 시간 제약과 부담감 없이 연구에 집중하다 보니 그동안 놓친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종호 박사는 초기 대규모 연구인력을 투입해 추진해오던 연구개발 전략을 바꿔 소수 정예의 인원으로 가장 병목기술로 파악된 공정기술들에 대해서만 우선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구사했다. 또한 기존에 보고되어 있던 타 연구팀의 경험을 찾아내 활용하는 것이 시간과 노력을 단축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고, 프로톤 세라믹 연료전지 관련 보고들을 자체적인 기준을 세워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난립해 있던 자료들 속에서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기존의 보고들은 실제 작동하는 공기극의 면적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열처리 이전의 전해질-전극 접합체, 또는 열처리 후의 전해질 면적만을 보고하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기술 수준을 비교 평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연구팀에서는 모든 데이터들을 작동 면적을 기준하여 세 가지로 구분해 도식화했고, 이를 통해 출력밀도를 향상하는 데 필요한 전략과 대면적화를 위한 연구전략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이처럼 중간에 숨고르기를 하며 팀원들이 연구에 대한 부담을 덜고 조금 더 여유 있게 본인의 연구내용이나 다른 연구자의 연구 결과들을 검토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던 것이 연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저희가 느낀 점은 연구원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는 과제 시한이나 연구비 등의 제한 없이 연구원들이 창의적으로 충분히 고찰하고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과제목표 달성 여부로만 연구원을 평가하기보다는 그 과정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로 평가하는 것이 연구원들이 기본에 충실하며 실질적인 연구 결과물을 얻어내는 길인 것 같습니다.”
연료전지는 친환경 발전 장치 외에도 군용이나 휴대용 장치에 필요한 파워팩, 친환경 자동차용 전원 장치 등으로도 개발되어 왔다. 특히 최근에는 에너지 저장 기술로서의 가치가 급격히 부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재생에너지 3020 정책을 통해 풍력이나 태양광과 같은 친환경 발전 기술의 비중을 늘리고 있는데 아쉽게도 재생에너지는 날씨나 계절, 시간에 따른 변동성이 커서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어렵다.
따라서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의 잉여전력을 연료전지를 이용해 수소와 같은 화학에너지 형태로 고용량으로 저장하는 기술이 주목받고 있는데, 이종호 박사 연구팀도 최근에는 이러한 에너지 저장 기술 쪽으로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연료전지는 친환경 발전이나 친환경 자동차를 구현해 지구환경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기술입니다. 그만큼 인류의 미래 생존을 좌우할 중요한 기술이기에 가급적 빨리 우리가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이었고 또 그것을 이루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작은 결실을 보았지만, 이것으로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며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들이 더 많습니다. 연료전지 기술이 우리 사회와 인류의 미래에 꼭 필요한 기술이라 믿기에 비록 제 생애에 그 결실을 보지는 못하더라도 후배들이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만이라도 충실히 하자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20여 년의 세월, 연료전지 분야 외길을 걷다
이종호 박사는 인류의 미래 생존을 좌우할 중요한 기술이라는 사명감으로 20여 년간 연료전지 분야의 한 우물을 판 토종과학자다. 특히 고체이온 공학에 기반을 둔 독보적인 전문성을 바탕으로 선구적인 연구성과를 제시해 왔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근간인 전자공학이 ‘고체 내에서 전자 이동을 제어하고 응용하는 학문’이라면, 고체이온 공학은 ‘고체 내에서 이온 이동을 제어하고 응용하는 학문’이다. 최근 지구온난화와 에너지 고갈 문제로 미래에너지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그중에서도 친환경 발전이나 친환경 자동차 기술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연료전지와 배터리 기술 등이 모두 이온의 이동 현상에 기반을 둔 기술이다. 이종호 박사는 그 학문적 근간이 되는 고체이온 공학이 매우 매력적이었고, 무엇보다 연구 결과가 인류의 미래와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고 전했다.
“지난 20년 동안 고체이온 공학에 기반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연료전지를 주제로 연구를 수행해 왔고, 그동안 제가 얻은 대부분의 연구성과 역시 연료전지 기술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연구자로서 한 분야의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큰 행운입니다. 또한 연료전지는 한 사람의 역량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규모가 큰 연구인데, 팀 연구가 가능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여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기에 이러한 결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제가 지금까지 이룬 성과들은 한 분야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지원해 주신 우리 연구팀과 그동안 힘든 과정 속에서도 동고동락 해온 선후배, 학생 연구자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이종호 박사 연구의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SSEMS 연구팀’의 가장 큰 장점은 국가적으로 필요한 대형 원천기술 개발을 추구해야 하는 출연연구소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멤버구성이 되었고, 그 취지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연구팀은 이론적인 기초 원천기술을 담당하고 있는 전문가부터 상용화 기술을 담당하고 있는 전문가까지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다. 멤버 각자가 대외적으로는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우수한 역량을 발휘하며 팀을 대표하고, 내부적으로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긴밀한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한다. 그 결과 학문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그 역량을 인정받고 있으며,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커다란 National agenda를 해결할 수 있는 팀으로도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깨끗한 지구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파
우리나라 연료전지 기술 분야는 타 기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원천소재 및 부품기술에 대한 대외의존력이 크다. 그러다 보니 해외기업들에 비해 경쟁력을 확보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천소재 및 부품기술에 대한 경쟁력은 단시간에 확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에 이종호 박사는 과제를 지원하는 국가나 산업체에서 긴 호흡으로 장기적인 투자를 해주고, 연구자들도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려 하기보다는 시간이 들더라도 산업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연구 결과물을 산출해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것만이 자원빈국인 우리나라가 기술선진국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미래 과학자를 꿈꾸는 후학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제 또래들은 어린 시절 대부분 에디슨을 떠올리며 막연하게나마 과학자가 되는 꿈을 많이 키웠습니다. 저 역시 어릴 때부터 과학자가 꿈이었고 결국 대학을 지원할 때 그 꿈을 실현해 지금까지도 과학자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지금 학생들에겐 더 이상 과학자가 꿈이 아니란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세상 사람들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과학자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과학자로 사는 것이 매우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과학자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이 있다면 제가 그러했듯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니 주저 말고 도전하라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울러 이종호 박사는 갈수록 아이들이 생활하기 힘든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는 만큼 개발 중인 연료전지 기술을 실생활에 활용하게 해 깨끗한 지구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요즘 TV에 나오는 보일러회사의 광고처럼 먼 훗날 아이들에게 ‘지구를 지키는 데 기여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이종호 박사, 지금 이 순간에도 아름답고 깨끗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 도전의 길을 걷고 있는 그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취재기자 / 안유정(reporter1@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9년 10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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